귀환자와의 첫 번째 전투.
오크를 잡으면 다양한 아이템이 드랍되었다.
대검, 방패, 도끼 같은 무기 아이템부터 무언가의 재료로 쓰이는 오크 피, 오크 가죽.
그리고 파티의 사기를 올리는데 도움을 준다는 오크 깃발과 호른이라는 악기까지.
이중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오크 도끼였다.
오크 도끼는 무려 희귀급 아이템이었다.
랭커들이 쓰기엔 부족함이 있었지만, 랭커가 아닌 10층의 일반 유저들이라면 즉시 전력감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에 속했다.
일반 유저에게 팔면 50 카르마도 받는 게 가능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유저는 오크 도끼를 다른 유저에게 파느니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무기 상점에다 팔고는 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걸 어디다 팔지?’
운 좋게 오크 도끼를 얻은 유저, 이희만은 잠시 고민하였다.
원래라면 당연히 건우 대장간에서 운영하는 건우 무기 상점에다 무기를 팔았을 것이다.
건우 대장간이 유저를 상대하는 유일한 곳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건우 대장간의 경쟁 업체라 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
그것도 같은 유저가 운영하는 대장간들이 말이다.
이희만은 잠시 고민하다가 늘 갔었던 건우 대장간으로 향하였다.
유저가 운영하는 대장간이 가격을 더 잘 쳐준다는 소리는 그도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에서 너무 멀고 외진 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상남자가 겨우 몇 카르마 더 먹겠다고 거기까지 가는 건 에바지.’
그는 효율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다른 아이템까지 고려하면 최대 10 카르마까지 손해가 날 수도 있었으나, 그는 그걸 감수하기로 하였다.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선택은 최고의 결과를 낳았다.
“이것들은 다 뭡니까? 처음 보는 아이템들인데···.”
건우 무기 상점에 가니 진열장에 새로운 무기가 입고된 것이 보였다.
총 열 개였는데 하나같이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영웅급 아이템입니다.”
“영웅급이라고요?”
이희만은 눈을 부릅떴다.
설마 이곳에서 영웅급 아이템을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물론 그라고 영웅급 아이템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의 재력이라면 지금도 영웅급 아이템을 구매하는 게 가능하였다.
단, 그 아이템이 카르마 상점표 아이템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랭커라 자부하는 유저들 중에서 카르마 상점의 아이템을 구매하는 유저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격이야 저렴하다지만, 강화도 최대 3강까지밖에 못 하는 아이템을 사용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다 보니 이희만이 ‘진짜’ 영웅급 아이템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셈이었다.
“이것도 구매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어, 얼마입니까?”
이희만은 살짝 말을 더듬었다.
예전보다는 한산했지만, 그래도 상점을 돌아다니는 유저가 몇 명 있었다.
왠지 지금 이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그들에게 뺏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그가 보유한 카르마가 200 카르마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오크 잡고 얻은 아이템을 모두 팔아봐야 300 카르마 정도일 테니, 엄두도 못 낼 가격을 부를까 두려웠다.
“200 카르마입니다. 고객님.”
종업원의 말을 듣고 이희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싸서?
반대였다.
너무 저렴해서 놀란 것이다.
‘희귀급보다 겨우 4배 비싸다고?’
500 이상도 생각했었다.
영웅급 아이템이 무기 상점에 입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생각했던 가격보다 절반 이상으로 저렴하였다.
‘옵션이 구린 거 아니야?’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이 그레이트 소드엔 아이언 윌이라는 스킬이 달려있습니다. 물리적, 마법적 공격에 대한 사용자의 방어력과 저항력을 높이는 스킬입니다.”
“이 창에는 어떤 옵션이 달려있습니까?”
“회오리바람이라는, 바람 기반의 범위형 공격 스킬이 달려있습니다.”
어떤 아이템이든 옵션이 다 좋았다.
오히려 직업 스킬보다 더 좋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1차 직업의 궁극기 정도는 되어야 조금 비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희만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
옵션까지 듣고 망설이면 그건 바보였다.
“사겠습니다.”
“원래라면 주문 제작해야 해서 나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고객님은 VIP기에 바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이희만은 과거의 게을렀던 자신에게 환호를 보냈다.
다른 곳을 알아보기 귀찮다는 이유로 건우 무기 상점의 단골이 된 것인데, 그게 이렇게 복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도 여기만 이용해야겠어.’
경쟁 업체에서 얼마를 더 쳐주든 알 바 아니었다.
영웅급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은 건우 무기 상점이 유일하였다.
그러니 랭커를 꿈꾼다면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
이희만은 그리 유명한 유저가 아니었다.
저층이라면 어딜 가든 랭커 소리를 듣겠지만, 10층에서는 그저 그런 평범한 유저였다.
“회오리바람!”
하지만 그가 특별한 창을 얻은 뒤에는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그 창에는 무려 스킬이 달려있었다.
-취, 취익!
-취이이익!
무거운 오크를 넘어뜨리는 그런 스킬이.
심지어 그 스킬은 범위형 공격이었기에 더욱더 유용하였다.
“건우 무기 상점에 가면 영웅급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는데? 게다가 가격도 200 카르마밖에 안 한대!”
“와! 저런 공격 스킬이 달린 아이템이 200 카르마라고? 이건 못 참아!”
“당장 가자! 사냥 나간 놈들이 돌아오기 전에 우리가 다 채가야 해!”
이희만이 오크를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유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건우 무기 상점으로 뛰어갔다.
무려 영웅급 아이템이었다.
심지어 가격도 200 카르마밖에 안 한다고 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상품이 전부 매진되어 구매하실 수 없습니다.”
“아니, 벌써 매진되었다고요? 언제 다시 입고되는데요?”
“예약하시면 5일 이내 상품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5일? 그렇게나 오래 걸린다고요?”
하지만 영웅급 아이템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이희만처럼 상점에서 바로 구매한 유저는 몇 명뿐이었다.
대부분은 최소 나흘, 심지어 일부는 2주 뒤까지 예약이 밀렸다.
“아이언 윌 달린 영웅급 아이템 1,000 카르마에 팔아요.”
그러자 그 몇 명밖에 없는 행운의 주인공은 상점에서 샀던 가격보다 최소 다섯 배를 받고 영웅급 아이템을 팔았다.
부자들에게는 시간을 돈으로 주고 사는 것이었기에 비싸게 사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되팔렘들이 여기도 있네.”
“젠장. 나도 돈만 있으면 비싸게라도 사고 싶다.”
“꿈 깨. 최소 1,500은 줘야 살 수 있을 테니까.”
허탕 친 유저들은 아쉬운 마음에 계속 건우 무기 상점에 남아있었다.
그러던 유저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우 무기 상점의 VIP가 되면 남들보다 빨리 영웅급 아이템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VIP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주일 동안 2,000 카르마 이상 구매하신 분을 VIP로 정하고 있습니다.”
VIP가 되는 방법은 쉬웠다.
상점을 많이 이용하기만 하면 금방 될 수 있었다.
“다른 곳은 이제 가지 말아야겠네.”
“그러게. 강화까지 생각하면 VIP 자격을 계속 유지해야 하잖아.”
“근데, 여기 가격이 더 저렴해진 거 같지 않아?”
처음에는 VIP 달려고 어쩔 수 없이 건우 무기 상점을 이용하기 시작한 유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눈치챘다.
모든 아이템의 가격이 이전과는 천지 차이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이러면 꼭 영웅급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겠는데···?”
“인정. 가격이 훨씬 싸네.”
유저들이 익숙한 건우 무기 상점 대신 유저들이 차린 무기 상점을 이용한 이유는 애국심이나 인맥 때문이 아니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가격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가격 경쟁력에서도 건우 무기 상점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주었다.
일반급이든, 희귀급이든 모든 품목에서 건우 무기 상점이 더 싸게 팔기 시작한 것이다.
***
10층에서 영웅급 아이템을 푼 건 잘한 선택이었다.
‘그래 봤자 겨우 장인급에 불과한데, 효과가 이리도 좋을 줄이야.’
아직 명인급, 달인급 아이템은 풀지도 않았다.
4강까지만 스트레이트로 가능하고 그 이상부터는 파괴 확률이 존재하는 장인급 아이템만 푼 상태였다.
그런데도 유저들은 미친 듯이 열광하였다.
일반급 아이템과 희귀급 아이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구도였다.
싸움 몇 번 치르면 부서지는 일반급 아이템과 달리 희귀급 아이템은 잘 부서지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도 작은 차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희귀급과 영웅급의 차이는 훨씬 더 극명하였다.
무려 옵션이란 게 생기기 때문이었다.
‘VIP 기준을 계속 높여야겠어. 무기 상점에서 더 많은 돈을 쓰게끔 말이야.’
아예 멤버십 같은 것도 만드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잡화점, 강화소, 대장간 등.
내가 하는 모든 사업장에서 공통으로 쓸 수 있는 멤버십을 만든다면 더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생산직 유저 몇 명 모았다고 감히 내 사업에 도전하는 일도 사라질 테지.
“사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누굽니까?”
“금우 길드의 진동민이라는 사람입니다.”
영웅급 아이템을 판매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세력은 금우 길드였다.
금우 길드는 수도 한복판에다 엄청난 규모의 무기 상점을 차린 상태.
생산직 유저들도 비싼 돈 주고 대거 영입하였다.
당연하겠지만, 그들이 차린 무기 상점이 흑자가 나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적자를 무릅쓰고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는 상황.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내가 치킨게임을 시작했으니 다급할 수밖에 없겠지.’
그냥 치킨게임도 아니었다.
금우 길드는 아예 제작할 수도 없는 영웅급 아이템까지 제작하며 경쟁에 나섰다.
내가 금우 길드를 경영하는 입장이어도 나를 한 번쯤 만나러 올 거 같았다.
타협이든, 협박이든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테니까.
“이번에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10층에서 아이템 시장에 뛰어든 것은 패착이란 사실을.”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패배를 인정한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저에게 상점을 매각하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진동민은 타협도, 협박도 아닌 제3의 선택을 하였다.
그건 바로 나에게 사업체를 매각하는 것.
‘결단력이 상당히 좋은데?’
미련을 가질 만도 할 텐데, 무척이나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이러면 나로서도 진동민을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결정에 환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우 길드가 모은 생산직 유저의 수만 스무 명이 넘었다.
그 스무 명의 유저를 고스란히 내가 얻는다면 이보다 남는 장사가 없었다.
“좋습니다. 인수가는 1만 카르마면 좋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1만 카르마는 너무 작습니다. 투자금도 보전하지 못하는 금액입니다.”
“모든 걸 잃을 상황에서 손해 안 보는 것만으로도 다행 아닙니까?”
“······.”
진동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제시한 인수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금우 상점 소속의 장인이 22명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생산직 유저들 중에서는 거의 탑급에 속하는 실력자들입니다.”
“그래봤자 영웅급 아이템 하나 못 만들지 않습니까?”
그는 어떻게든 나를 설득해서 더 높은 금액으로 사업체를 매각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1만 카르마를 주장하였고 결국, 먼저 포기한 것은 그였다.
“알겠습니다. 1만 카르마에 지분을 모두 넘기겠습니다.”
그렇게 금우 길드가 보유한 무기 상점과 대형 대장간을 얻었다.
물론 그 대장간에 소속된 생산직 유저는 덤이었다.
‘금우 길드는 시작이다. 다른 대장간도 전부 인수해야겠어.’
아마 다른 길드에서도 곧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
10층의 모든 유저가 영웅급 아이템의 등장에 엄청난 관심을 보냈으나, 딱 한 명만은 달랐다.
“컥!”
“랭킹 4위라는 자가 겨우 이 정도인가? 10층도 더 볼 것 없겠군.”
사내는 갑옷을 입지 않았다.
그저 검 하나만 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내를 어쩌지 못해 랭킹 4위가 포함된 파티가 전멸하였다.
랭킹 4위가 포함된 파티를 전멸시킨 사내의 이름은 켄타로였다.
“11층으로 가야겠어.”
켄타로는 여전히 레벨이나 직업, 아이템 등에 관심이 없었다.
그딴 걸 모을 시간에 오러나 마법을 연마하는 것이 그에게 훨씬 남는 게 많았다.
실제로 10층에서 랭커라 부르는 자들은 그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건 11층 너머로 진출한 랭커들이라고 다르지 않으리라.
영웅급 아이템의 등장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모든 유저를 통틀어 최강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선두권이라 할 수 있는 유저들은 11층 너머로 진출한 상황.
그가 최강자의 자리에 오르려면 그들을 따라 11층 너머로 향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직 그가 자격의 증표라는 것을 모으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켄타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신 같은 걸 찬양하는 역겨운 놈들이 내 앞길을 막는다면 죽일 뿐이다.’
신전이 앞길을 막는다?
그럼 신전도 없애버리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