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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서 나 혼자 재벌-43화 (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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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 찍어 누르다.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했어? 조센징? 이 쪽바리 새끼가!”

    “진형아!”

    이한성의 파티에서 탱커를 담당하는 조진형이란 사내가 욱한 얼굴로 나섰다.

    안 그래도 중간 보스를 빼앗겨서 기분이 상한 그였다.

    그런데 일본인으로 보이는 유저에게 조센징 소리까지 들었으니 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걱!

    위협적인 얼굴로 켄타로에게 다가가던 조진형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추었다.

    “컥!”

    이한성을 비롯하여 그의 파티원 전체가 경악하였다.

    엄청난 내구 스탯을 자랑하던 조진형이었다.

    그런 조진형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나오고 있었다.

    “지, 진형아!”

    “시발! 진형이 죽었는데?”

    앞으로 쓰러진 조진형은 그대로 먼지처럼 사라졌다.

    죽은 것이었다.

    “내가 봤어! 저놈이야! 저놈이 검을 휘둘러서 진형이 형을 공격했다고!”

    파티의 막내인 김상욱이 켄타로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는 암살자 직업을 가진 근거리 딜러답게 감각이 좋았다.

    누구도 보지 못했던 켄타로의 공격을 그만큼은 볼 수 있었다.

    “알면 뭐 어쩔 건데?”

    “이 새끼가···!”

    김상욱이 분노하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늦은 감이 있었다.

    이미 켄타로의 검격이 그의 목을 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걱!

    가장 감각 스탯이 높았던 김상욱도 켄타로의 공격은 피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조진형의 최후가 그러했듯, 켄타로의 공격에 당한 김상욱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저, 저 미친놈이!”

    “모두 다 공격해! 저놈은 적이다!”

    “상욱이를 죽이다니. 절대 가만 안 두겠어!”

    조진형에 이어 김상욱까지 죽자 이한성 파티도 그제야 공격에 나섰다.

    검과 방패, 창, 그리고 화살까지.

    갖가지 공격이 켄타로를 향해 날아갔다.

    히든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의 공세는 무시무시하였다.

    평균 레벨이 15인 그들이었다.

    최하급 룬도 많이 모아서 스탯도 상당하였다.

    설령 10층에서 활동하는 랭커라고 해도 혼자서는 그들의 공세를 당해낼 수 없으리라.

    “사, 사라졌어!”

    “미친! 민첩이 몇인 거야?”

    이한성은 눈을 부릅떴다.

    흐릿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다급히 자신의 방패를 들어 올렸다.

    “커헉!”

    방패로 공격을 막았으나, 그는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뒤로 날아갔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공격력이야!’

    그레이트 베어의 공격을 창으로 막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겨우 검.

    그것도 레벨 5짜리가 휘두른 검에 이런 위력이 담겨있다니.

    서걱, 서걱.

    이한성이 잠시 쓰러진 사이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 이한성은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이게 6층 유저들의 수준인가? 형편없군.”

    “뭐야···.”

    “뭐가 뭐지?”

    “서, 설마 다 죽은 거야?”

    간신히 일어선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켄타로 하나뿐이었다.

    겨우 몇 초.

    길어야 10초쯤 지났을 뿐인데, 그의 파티원들이 전부 사라졌다.

    파티원이 서 있던 자리를 보며 이한성은 최악의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파티가 전멸했다는 상상을 말이다.

    빈자리에 아이템만 놓여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상상이라고 할 수도 없어 보였다.

    “도대체···.”

    잠시 말이 없던 이한성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힘겹게 열었다.

    “도대체 왜 우리를 공격한 거야!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조센징 주제에 시끄럽게 구는군.”

    이한성의 물음에 켄타로는 마치 더러운 것을 보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런 켄타로의 반응을 보고 이한성은 답답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물었잖아! 우리 파티를 공격한 이유가 뭐냐고!”

    “이유? 그런 게 필요한가?”

    “······.”

    켄타로는 너무도 태연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사람이 아닌, 벌레를 죽인 거 같은 반응이었다.

    “이 시발놈아! 개 같은 쪽바리 새끼! 너 절대 가만 안 둔다!”

    이한성은 핏발이 선 눈으로 켄타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파티 전체가 덤벼도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그 혼자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커억!”

    다시 얻어맞은 채 멀리 날아갔다.

    다행히 이번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켄타로가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이었다.

    “나를 죽이겠다고? 그딴 실력으로?”

    비웃음을 들은 이한성은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때 켄타로가 그의 머리를 발로 짓밟았다.

    “이 개 같은 새끼가!”

    “지렁이처럼 바닥을 꿈틀거리는 것밖에 못 하는 네까짓 게, 나한테 복수하겠다고?”

    “죽일 거다, 반드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 말을 듣고 켄타로는 더욱 비웃었다.

    악마?

    이세계에서 마왕 때려잡는 용사 파티에 가입 직전까지 갔었던 그였다.

    악마 따위가 무서울 리 없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겠는데?’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한성이 자신을 복수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지켜보면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복수해봐. 어디 한번. 내가 친히 응원해줄 테니.”

    켄타로는 이한성을 죽이지 않았다.

    그에겐 죽일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이한성이란 자 따위는.

    ***

    10층으로 향하는 포탈을 타려면 유저들이 보스의 방이라 부르는 작은 통로를 지나야 했다.

    본래 이 통로를 지키는 것은 오크 투사였다.

    9층의 보스가 오크 투사였던 것.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이가 통로를 지키고 있었다.

    바로 요코하마 케이라는 일본 유저였다.

    유저가 같은 유저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인당 1,000 카르마야. 다른 거 안 받으니까 카르마로 내놔.”

    통로를 지키던 케이는 통로로 다가오는 유저들에게 1,000 카르마를 요구하였다.

    이는 일종의 통과세였다.

    그에겐 어떤 권리도 없었지만, 오직 강자라는 이유로 같은 유저들에게 돈을 요구하였다.

    케이의 이 같은 폭거에 유저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이미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와 그의 파티를 공격했다가 역으로 당했던 파티들이.

    그래서 케이는 방심하였다.

    사실 방심이라고도 볼 수 없었다.

    어차피 유저의 전투력은 겉으로만 봐도 대충 견적이 나왔다.

    착용 아이템이 일반급인지, 희귀급인지 그것만 알아도 수준이 예측되었던 것.

    그리고 지금 케이의 눈앞으로 다가온 유저는 누가 봐도 허접스럽게 느껴졌다.

    희귀급은커녕 아예 아이템을 착용조차 안 했으니, 허접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생산직인가?’

    위험한 탑에서 아이템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전투할 일이 없는 사람이거나.

    케이가 보기에 눈앞의 유저는 후자로 보였다.

    ‘그렇다면 돈은 많겠는데?’

    생산직 유저들은 아직은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아이템이든 간에 생산직 유저들이 만드는 제품보다 고인물이라 할 수 있는 탑의 주민이 만드는 제품이 훨씬 효과가 좋았다.

    당연히 생산직 유저들은 푸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0층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1층부터 9층까지는 탑의 주민이 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은 저층의 유저들은 10층 유저들처럼 탑의 주민이 생산하는 각종 아이템을 구매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러니 저층에서는 생산직 유저들이 나름대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우를 받으니 자본도 그만큼 쉽게 모을 수 있었다.

    “어이. 너는 2,000 카르마를 줘야겠어.”

    “나 말하는 건가?”

    “그럼 너지. 누구에게 말하겠냐?”

    케이가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밀며 그리 말하자, 그의 정면에 선 유저, 켄타로는 같잖다는 듯 픽 웃었다.

    “너 지금 나를 비웃은 거야?”

    켄타로의 미소를 본 케이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케이는 이내 검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딱히 공격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에게 검이 있으니 말할 때 주의하라는 의도였다.

    서걱!

    케이는 몰랐을 것이다.

    그 별거 아닌 행동으로 자신의 목이 잘릴 거라는 사실을.

    “헉!”

    “미친! 목을 잘랐어!”

    “저, 전사의 목을 저렇게 쉽게 자른다고? 공격력이 도대체 몇인 거야?”

    켄타로가 케이의 목을 날린 장면을 지켜본 유저는 모두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하였다.

    케이의 파티원들조차 제자리에서 벙찐 얼굴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켄타로가 다가오자 빠른 판단을 내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돈을 원하시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이한성과는 사뭇 다른 판단이었다.

    케이가 순식간에 죽은 모습을 보고 자신들이 상대할 자가 아님을 간파한 것이다.

    켄타로는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만약 한국인이었으면 가차 없이 죽일 생각이었다.

    이한성이야 재미 때문에 살려줬어도 다른 한국인까지 살려둘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유저들은 하필 그와 같은 일본인이었다.

    “꺼져라.”

    “가, 감사합니다!”

    그답지 않은 관대함을 선보이며 그는 거침없이 포탈로 향하였다.

    ‘여기가 10층인가.’

    낯선 풍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9층과 10층은 이렇게 풍경부터 달랐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유저의 수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를 것이었다.

    ‘랭커란 자들, 과연 얼마나 강할까?’

    솔직히 큰 기대는 안 됐다.

    그는 이세계에서 무려 10년을 넘게 검과 마법을 수련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탑의 유저들은?

    겨우 한 달.

    켄타로의 기준에서는 애송이 중의 애송이들이었다.

    아무리 게임 시스템으로 빠르게 성장했다고는 해도 그가 겪은 유저들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검술은커녕 기본적인 전투 자세도 갖출 줄 모르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랭킹 1위부터 노려야겠어. 어차피 그 아래는 허접한 놈들밖에 없을 테니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11층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이미 랭커라 불리는 이들은 11층으로 갔으니 말이다.

    ***

    “저기 봐. 저 바이킹 투구 쓴 유저 보여?”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어떤 유저를 가리키며 자신의 옆에 선 유저에게 말했다.

    “덩치 큰 사람 말하는 거 맞죠? 근데 저 사람이 누군데요?”

    “이바노프란 자야.”

    “이바노프라면 혹시? 디스트로이어라고 불리는 자 아닙니까?”

    “맞아. 도끼 든 야만인이지.”

    이바노프.

    그는 현재 랭킹 9위로 알려졌다.

    “원래는 9위인데, 여기서만큼은 사실상 1위지. 8위까지 전부 11층으로 올라갔으니 말이야.”

    “···그래서 저렇게 폭군처럼 구는 건가 보군요.”

    설명을 듣던 유저는 이바노프의 행동을 보며 혀를 찼다.

    랭커라 하면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바노프가 하는 행동을 보면 존경심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이바노프는 유저들을 상대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여기서 장사하려면 돈을 내놓으라는 둥, 자신과 한번 자주면 버스를 태워주겠다는 둥.

    멀리서 그의 행태를 지켜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자는 얼마나 강할까요?”

    “왜? 마음에 안 들어?”

    “그냥요. 얼마나 강해야 저렇게 나댈 수 있는지 궁금해서.”

    질문하는 유저는 갓 10층에 들어온 뉴비였다.

    그러니 이바노프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이템을 봐. 반짝이는 거 보이지? 저 정도로 반짝인다는 건, 최소 5강까지 됐다는 뜻이야.”

    “5강이라니. 엄청나군요.”

    “그럼 엄청나지. 조던 매런 파티도 겨우 4강으로 11층에 갔는데.”

    “그러면 이바노프가 조던 매런보다 강한 건가요?”

    “지금은 그럴 수도 있어. 4강과 5강의 차이는 작지 않으니까.”

    강화를 5강까지 하는 건 절대 쉽지 않았다.

    일단 강화석 자체가 엄청나게 비쌌다.

    시세가 계속 달라지기는 하지만, 현재 시세로 무려 300 카르마나 했다.

    5번 하려면 1,500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1,500 카르마를 모은다고 바로 5강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건 또 아니었다.

    강화는 실패 확률도 있었고 파괴 확률도 있었다.

    일반 등급의 아이템으로 5강까지 올리는 건 사실상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과 비슷하였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랭커조차 5강 아이템을 얻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바노프는 모든 아이템이 5강 이상이었다.

    “근데 저 사람은 그럼 몇 강인 거예요? 훨씬 더 반짝이는 거 같은데?”

    그때였다.

    한 동양인 유저가 이바노프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평범한 유저처럼 보였지만, 10층의 유저라면 절대 이 동양인 유저를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정보통으로 보이는 30대 후반의 사내도 그 동양인 유저를 보고 깜짝 놀랐다.

    “7강 아니 설마 8강인가?”

    “8강이라고요? 그게 가능한 수치입니까?”

    한 가지 아이템만 7강이어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투구부터 신발까지 모든 아이템이 전부 7강 이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나도 모르겠군. 저게 가능한 일인지.”

    7강 이상의 강화 아이템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았다.

    ‘이 모험가 거리에 흑막이 존재한다던데,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흑막이 저자인가?’

    모험가 거리를 만든 사람이 일개 유저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저가 진짜 랭킹 1위라는 소문도.

    사내는 지금까지 그 소문이 거짓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막 생각이 바뀌려고 하였다.

    “근데 저 사람이 이바노프와 싸우면 어떻게 될까요?”

    “글쎄···.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는 힘들지 않을까?”

    둘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데 마침 동양인 유저와 이바노프가 마주쳤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향해 흉흉한 기운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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