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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서 나 혼자 재벌-42화 (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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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국을 점령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시그마나 하윤은 놀라고 있을 거 같았다.

    내가 설마 적의 왕까지 인질로 잡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하지만 놀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벽.

    바투루 왕국의 수도 울란에, 원래는 없었던 성벽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평지에서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바투루 병사들의 추격을 받은 상태에서도 드워프 부대에 합류한 것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 잠깐 사이에 성까지 만들어놨을 줄이야.’

    중세의 전쟁처럼 성벽이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성벽 정도는 맨몸으로 오를 수 있는 초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성벽이 기병의 활용을 극도로 제한하는 시설물인 것은 분명하였다.

    드워프가 가진 무기를 생각해도 성벽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바투루 궁기병의 화살을 맞으며 총을 쏘는 것과 성벽이라는 엄폐물을 끼고 총을 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테니까.

    “삼촌!”

    “어떻게 된 건가, 자네?”

    오틴을 탄 채 성벽으로 내려오니 하윤과 시그마가 놀란 기색으로 다가왔다.

    “일단 급한 것부터 해결하고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성벽 바깥을 가리켰다.

    다그닥다그닥!

    내가 끌고 온 수천 명의 바투루 기병이 성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왕을 구하고 수도까지 탈환하려는 거 같은데, 인질이 왜 인질인지 모르는 기색이었다.

    “무엄하도다! 감히 짐에게···.”

    “아직도 본인이 왕이라 생각하는군.”

    아래에서도 잘 보이게끔 바이칸을 성벽 중앙으로 끌고 갔다.

    바이칸은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하였으나, 그는 쇠사슬로 묶인 몸이었다.

    아니, 설령 쇠사슬이 아니더라도 내가 있는 한 어떤 저항도 의미 없었다.

    “봐라! 이자가 바투루 왕국의 국왕, 바이칸이다!”

    중앙에 선 나는 초원을 바라보며 외쳤다.

    아마 적들의 눈에도 바이칸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시력 하나는 워낙에 좋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맹렬하게 달려들던 적이 말을 멈춰 세우기 시작하였다.

    “놈! 부왕을 풀어주지 않으면 죽이겠다!”

    바이칸을 부왕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바카르 같은 왕자인 듯싶었다.

    “저자의 이름이 뭐지?”

    “나의 차남, 바쿠라다!”

    “장남이 죽었으니 사실상 후계자나 다름없겠어.”

    “···네놈은 내 자식의 손에 죽게 될 거다.”

    아비고 자식이고 죄다 죽이겠다는 말만 하였다.

    실제로 두 부자는 말로만 협박하지 않았다.

    바이칸은 수천 명의 병사를 놔둔 채 혼자서 나를 공격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자식은 아비가 인질로 잡힌 상태에서 내게 활을 쏘았다.

    휘휘휙!

    내 목을 노리고 날아온 화살을 나는 덥석 잡았다.

    나를 저격하려 했던 바쿠라는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하였다.

    그의 반응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나는 검을 들었다.

    서걱!

    “크아아아악!”

    “더 공격한다면 그때는 왼팔을 베겠다!”

    바이칸이 인질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 바이칸의 팔을 잘랐다.

    그러자 초원에서 격렬한 반응이 나왔다.

    일부 기병들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성벽으로 달려왔던 것.

    “감히, 폐하에게!”

    “이놈 용서하지 않겠다!”

    “놈을 잡아서 사지를···, 컥!”

    타타탕!

    물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워프 전사들의 공격을 받고 전멸하였다.

    단 한 번의 일제사격으로 수백 명의 바투루 기병이 전사한 것.

    ‘위력이 상당한대?’

    마총이 강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막상 전장에서 그 위력을 보게 되자 훨씬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유저들에게 비싸게 팔 수 있겠어. 물론 유저들이 마력을 익히기까지 좀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다시금 검을 들었다.

    내 검이 가리킨 곳엔 바이칸이 있었다.

    바이칸은 그런 나를 보더니, 고개를 미친 듯이 저었다.

    제발 자르지 말라는 무언의 부탁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서걱!

    “크아아아악!”

    다시금 비명을 지르는 바이칸.

    양팔을 잃은 그는 마치 지렁이라도 된 듯, 바닥을 꿈틀거렸다.

    실로 처량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또 공격하였으니 이번에는 왼팔을 잘랐다!”

    나는 그런 바이칸의 모습을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초원을 향해 외쳤다.

    어차피 탑에서는 죽지만 않으면 어떤 부상이든 치료할 수 있었다.

    아니, 부상에서 회복하는 것을 넘어 아예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그러니 겨우 양팔이 절단된 모습을 보았다고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내게 완전히 굴종한다면 나중에 재영이가 3차 전직할 때 치료해주지, 뭐.’

    한참 나중의 일이겠지만 어쨌든 복구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다음은 다리다! 왕의 사지를 전부 자르고 싶다면 어디 또 공격해봐! 다리 다음은 바로 목이라는 사실은 알아두고!”

    적군을 향해 다시 외쳤다.

    만약 이런데도 계속 공격한다면?

    그때는 진짜 바이칸의 목을 자르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인질로서 가치가 없는데 굳이 살려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

    양팔이 잘린 왕을 보고 바투루 병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자신들이 공격하면 왕은 죽을 것이다.

    땅딸보들을 공격해서 왕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정작 왕이 죽어버리면 구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뒤로 물러나! 지금은 잠시 후퇴할 때다!”

    “후퇴는 무슨 후퇴입니까! 형님,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공격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2왕자, 바쿠라가 군을 물리자고 하자, 5왕자인 바쿤이 곧장 반대 의견을 주장하였다.

    “부왕 폐하를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

    “그러면 이대로 수도를 빼앗기자는 겁니까?”

    “내가 언제 수도를 포기하자고 했지? 뒤로 물러나서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했거늘!”

    바쿤은 강경하게 주장하였다.

    지금 당장 공격해야 한다고.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왕의 양팔이 절단되는 것을 모든 병사가 두 눈으로 지켜본 상황이었다.

    명분이 중요한 바쿠라로서는 절대 바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물러난다!”

    결국, 계승 서열이 높은 바쿠라의 뜻에 따라 군이 뒤로 물러났다.

    ‘멍청한 바쿠라 새끼! 아무리 아버지의 목숨이라도 일개 개인의 목숨인데,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나라까지 빼앗기려고 하는 거야!’

    바쿤은 답답한 한숨을 토해냈다.

    그가 생각하기에 바쿠라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하였다.

    괜히 혼자 나대다가 인질로 잡힌 왕의 목숨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적에게 수도를 빼앗긴 참인데 말이다.

    “적의 성벽은 점점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적에게 시간을 줄수록 우리에게 희망은 사라지게 될 겁니다.”

    군을 뒤로 물린 뒤에 바쿤은 계속해서 주장하였다.

    공격해야 한다고.

    시간을 주면 줄수록 손해라고 말이다.

    하지만 바쿠라는 하루가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이튿날 저녁, 바쿤은 모종의 결심을 하였다.

    그 결심이란 다름 아닌, 반란이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형인 바쿠라를 죽여 권력을 얻겠다는 결심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바쿠라는 어설픈 사내가 아니었다.

    그는 바쿤이 공격할 낌새를 보이자 곧바로 자신의 군세를 모았다.

    순식간에 2,000의 군사가 모였는데 그는 이 군사들을 동원하여 역공을 가하였다.

    “5왕자가 반란을 일으켰다! 놈을 죽여라!”

    “2왕자가 적에게 매수됐다! 바투루 용사들이여, 2왕자를 죽여라!”

    바쿠라의 역공에 바쿤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바쿠라보다 더 많은 군사를 끌어모은 상태.

    바쿤은 본인이 직접 전투에 나서며 공세를 가하였고 치열한 전투 끝에 바쿠라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다.

    ***

    바투루 왕국 잔당들과의 전쟁은 의외로 쉽게 끝이 났다.

    왕자들끼리 내분이 일어나서인데, 전투에서 패전한 2왕자 세력이 항복을 뜻하는 백기를 들고 울란으로 왔다.

    그 숫자는 대략 1,500명.

    5왕자가 2왕자를 잡기 위해 추격하였지만, 우리의 총격을 맞고 뒤로 크게 물러나야 했다.

    ‘그럼 잔당은 겨우 3,000명도 안 남은 건가?’

    많아 봐야 2,500명 정도.

    이러면 저들이 사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인 숫자 우위도 깨졌다고 봐야 했다.

    “라그나는 지금 우리가 공격하면 이길 거 같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침 시그마가 내게 물었다.

    역공을 가하자는 제안이었다.

    “좋은 거 같습니다.”

    “평지에서의 전투도 도와줄 거지?”

    “제 도움이 필요 없을 겁니다. 아마도.”

    잔당 따위가 사기가 높아 봐야 얼마나 높겠는가.

    아니, 사기가 얼마나 높던 저 숫자로 드워프 군대를 이길 수 없었다.

    마총을 든 드워프 군대는 같은 수의 바투루 기병대를 상대로도 이길 만큼 강력한 전투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이 땅딸보 놈들이 미쳤구나! 감히 성을 포기하고 평지로 기어나오다니! 우리 바투루 용사들과 회전을 선택한 걸 후회하게 해주마!”

    5왕자는 굉장히 자존심 상한 듯 보였다.

    감히 드워프 따위가 성을 버리고 역공을 가한 게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거 같았다.

    그래서일까?

    드워프가 성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는 바로 돌격을 시도하였다.

    타타타타타탕!

    바투루 잔당이 활을 들기도 전에 드워프 군대에서 먼저 사격을 시작하였다.

    성에서도 보았지만 마총의 위력은 엄청났다.

    마치 기관총으로 갈아버린 것처럼 수백 명의 바투루 잔당이 말과 함께 쓰러졌다.

    쓰러진 바투루 잔당은 다신 일어나지 못하였다.

    만약 드워프가 든 총이 화승총이었으면 이번 공격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장전 시간이 오래 걸렸을 테니, 수백 명을 죽인 것으로 만족하고 적 기병과의 백병전을 준비해야 했겠지.

    하지만 드워프가 들고 있는 무기는 마총이었다.

    휘니가 든 마총처럼 연발 사격은 무리지만, 수초 안에 사격할 수 있었다.

    타타타탕!

    드워프들은 총알만 채운 채 바로 사격하였다.

    다시금 수백 명의 바투루 잔당이 무리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투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제 진짜 바투루 왕국의 수도가 내 것이 되었군.’

    유저들이 10층을 지나 11층으로 향해도 이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아니, 20층까지 오면 오히려 좋았다.

    20층에서의 내 영향력은 10층보다 훨씬 강했으니까.

    ***

    이한성 파티는 실력이 출중한데도 다음 층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6층에 그레이트 베어라는 중간 보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 층으로 넘어가 다른 유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느니, 중간 보스를 독점하는 것이 훨씬 얻는 게 많았다.

    “그레이트 베어가 잡혀 있는데?”

    “저 새끼 뭐야! 설마 혼자서 그레이트 베어를 잡은 건가?”

    하지만 이한성 파티가 중간 보스를 독점한다고 해서 다른 유저가 그레이트 베어를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24시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아니었으니,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누가 스틸하는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으니까.

    그래도 지금까지는 독점이 깨진 적이 없었다.

    워낙 부지런했고, 또 그레이트 베어라는 몬스터가 그만큼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잠깐 자리를 비울 동안 그레이트 베어를 잡을 유저는 적어도 6층에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순식간에 그레이트 베어를 잡을 실력자가 굳이 6층에 있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오늘 막 깨졌다.

    이한성의 파티가 그레이트 베어가 리젠되는 장소로 되돌아오자, 웬 사내 한 명이 아이템을 줍고 있었다.

    “혹시 당신이 그레이트 베어를 잡은 겁니까?”

    “그런데?”

    “당신 레벨이 몇입니까?”

    “3이었다. 방금 곰 녀석을 잡고 5가 되었지만 말이야.”

    파티원 중 한 명이 사내에게 묻자, 사내가 무뚝뚝하게 대답하였다.

    그 같은 답변으로 이한성은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내가 그레이트 베어를 잡은 사람이 맞다는 것과 그레이트 베어를 잡았을 때 사내의 레벨은 겨우 3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3? 레벨이 3이라고?”

    “5라고 했을 텐데.”

    “이, 이럴 수가!”

    이한성은 경악하였다.

    현재 그의 레벨은 15.

    그레이트 베어가 리젠될 때마다 잡으며 열렙한 결과였다.

    상식적으로 그레이트 베어를 저리 쉽게 쓰러뜨렸다면, 최소 15 레벨 이상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사내의 레벨은 겨우 3.

    이한성보다 레벨이 12나 낮은 이가 그레이트 베어를 순식간에 쓰러뜨린 것이다.

    “히든 직업, 히든 직업 하더니. 진짜 히든 직업이 좋은 모양이네.”

    씁쓸하게 웃었다.

    예전에 그는 화염 마법사란 직업을 민건우에게 판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막상 히든 직업으로 보이는 유저가 말도 안 되는 실력을 선보이자,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했던 이상으로 히든 직업의 가치가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히든 직업? 나는 아직 무직이다만?”

    “······!”

    이한성은 입을 떡 벌렸다.

    알고 보니 상대는 직업도 없단다.

    레벨도 낮고 아이템도 검 하나뿐인데 직업까지 없는 것.

    ‘이 사람, 도대체 뭐지?’

    도저히 6층에 있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방어 아이템 하나 없이 그레이트 베어를 잡을 사람이라면 6층이 아니라 10층, 그 이상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너희들 설마 조센징이냐?”

    그때였다.

    사내가 갑자기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한성은 그 목소리를 듣고 왠지 모르게 섬뜩함을 느꼈다.

    기온이 10도 이상 내려간 거 같은 느낌이었다.

    ‘눈이 정상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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