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서 나 혼자 재벌-41화 (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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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국을 점령했습니다.

    -크아아아아아아!

    나는 다시 오틴을 소환하였다.

    와이번이 곧 바투루 병사들 손에 죽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오틴을 타고 자리를 뜨자 와이번을 상대하던 바투루 병사들 일부가 황급히 나를 쫓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였다.

    ‘드워프들을 위해서라도 적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놔야지.’

    직접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

    유인만 하면 알아서 죽어갈 테니.

    “아아아아악!”

    “살려줘!”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대로 돌아갔다.

    나를 쫓던 수천 명의 적군은 순식간에 수백 명으로 줄어들었다.

    전부 죽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몬스터 습격받고 있어 나를 쫓지 못하는 것.

    하지만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니 숫자가 제법 줄고 있는 것은 확실하였다.

    서걱! 서걱!

    물론 나라고 몬스터의 습격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단지 보스가 아니라면 순식간에 잡아서 시간이 지체되는 일이 없었을 뿐.

    그렇게 나는 바투루 병사들을 유인하며 마경 중심부로 향하였다.

    나를 쫓는 병력이 너무 줄었다 싶으면 오히려 속도를 늦추었다.

    더 많은 병력을 마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다려준 셈이다.

    ‘뭐지. 갑자기 숫자가 많아진 거 같은데?’

    감각 스탯이 워낙 높다 보니 나를 쫓는 인원이 대략 몇 명인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겨우 수백 명이 내 뒤를 쫓았는데, 어디서 충원된 병력인지 나를 쫓는 병력이 다시 수천으로 늘었다.

    몬스터의 습격이 있는데도 그 수천 명의 병력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트롤의 영역을 지났는데도 그러했다.

    이쯤 되자 나도 경각심을 가지고 다시 오틴에게 속도를 내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좁혀졌던 거리가 급격히 벌어졌다.

    내가 다시 여유를 되찾을 때, 수십 명 정도 되는 인원이 맹렬한 속도로 나를 추격하였다.

    휘휘휙!

    그 수십 명이 쏜 화살에 오틴이 맞았다.

    -크아아아악!

    오틴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본 나는 오틴을 역소환하였다.

    이런 곳에서 귀중한 소환수가 죽게 놔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몬스터이니 저 정도 상처는 알아서 회복하겠지.’

    분신과 달리 오틴은 죽으면 끝이었다.

    “이놈! 더는 도망칠 수 없을 거다!”

    나를 쫓던 이 중 한 사람이 그리 외치자 나는 피식 웃었다.

    저자는 아무래도 착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내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착각을.

    솔직히 나로서는 우스운 일이었다.

    겨우 3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인원이었다.

    수천 명이 쫓을 때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만 30명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행색이 요란한 걸 보니, 꽤 높은 사람인 거 같은데? 귀족인가?”

    “이분은 대바투루 왕국의 국왕 폐하이시다! 어서 예를 갖추어라!”

    “나를 죽이려는 놈에게 예를 갖추라고?”

    같잖다는 듯, 그리 말하자 이번에는 왕이란 자가 나왔다.

    “한 가지만 묻겠다. 내 아들, 바카르를 본 적이 있나?”

    “내가 죽였다.”

    “뭐, 뭣이?”

    “감히 내 물건을 탐내더라고. 주제를 모르는 거 같아서 죽였다.”

    일부러 도발하자, 예상했던 반응을 보여주었다.

    “놈! 가만두지 않겠다! 반드시 찢어 죽여주마!”

    왕은 이성을 잃었는지 갑자기 혼자서 나를 향해 죽일 듯 달려들었다.

    신기하게도 말을 탄 채로 덤비지 않았다.

    하지만 달려오는 속도를 보면 말이 필요 없어 보이긴 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는 거대한 크기의 검을 휘둘렀다.

    부우웅!

    나는 보자마자 느꼈다.

    저 검에 맞으면 뼈도 못 추릴 거란 사실을.

    아마 근력이 100 이상이거나 완력을 강하게 해주는 특성을 소유했을 거 같았다.

    ‘맞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지.’

    힘과 힘 대결도 솔직히 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힘으로 찍어누르려는 것이 보이는데, 굳이 힘과 힘 대결을 할 필요는 없으리라.

    나는 근력만 압도적인 사람이 아닌, 모든 스탯이 다 압도적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파바박!

    나에게 날아오는 검을 너무도 쉽게 피해내고는 그대로 빈틈을 노렸다.

    이 공격이 성공하면 왕을 인질로 삼을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때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왕이 끌고 온 병사 중에서 가장 체격이 작은 사람이었다.

    흠칫!

    예상외로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나조차 공격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야 할 정도였다.

    “콘피에르! 짐이 허락도 안 했거늘, 어딜 감히 신성한 대결에 끼어드느냐!”

    “···죄송합니다.”

    당연히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나를 공격할 줄 알았는데 왕은 엉뚱한 소리를 지껄였다.

    중간에 끼어든 사람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어떤 꼴을 당했을지 전혀 모르는 기색이었다.

    왕은 헛소리만 내뱉고는 다시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점프하여 공격을 시도하였는데 그 점프 높이가 실로 엄청났다.

    저 높이에서 검을 찍어버린다면 즉사를 피하기 어려울 거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격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가 착지할 곳이 어딘지 아는데 그냥 맞아줄 이유는 없었던 것.

    오히려 점프 공격을 시도한 건 패착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 등이 무방비해졌으니까.

    나는 당연히 무방비해진 그의 등을 노렸다.

    그러자 콘피에르란 자가 또 끼어들었다.

    도대체 민첩이 몇인지 꽤 멀리 있었는데도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특성 때문이겠지만, 이 정도면 나보다도 빠른 거 같았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내 검은 왕의 등을 꿰뚫고 있었다.

    “커허억!”

    쓰러지는 왕의 모습을 보고 근위대로 보이는 병사들이 경악하였다.

    누가 봐도 패닉에 빠진 기색이었는데, 자신들의 왕이 이런 곳에서 쓰러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콘피에르란 자는 오직 나만 보았다.

    다시 무서운 속도로 덤벼드는 콘피에르!

    캉!

    기어코 검과 검이 부딪쳤다.

    예상했던 대로 근력은 내가 압도하였다.

    나는 그대로 검에 힘을 실어 상대를 뒤로 날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콘피에르의 검이 뱀처럼 휘어지더니 기습적으로 내 목을 찔러왔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움직임을 보며 나는 속으로 감탄하였다.

    검술 실력도 대단히 훌륭하였다.

    내가 검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의 반격에 당황했을지도 몰랐다.

    콘피에르에게는 안타깝게도 난 지금, 이 순간에도 분신을 통해 검을 배우고 있었다.

    비록 검술 실력은 아직 그에게 한참 밀렸지만, 이 정도 차이는 압도적인 스탯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컥!”

    칼등에 맞고 멀리 날아가는 콘피에르였다.

    나는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콘피에르는 다시금 덤벼들었다.

    내구 스탯도 상상 이상으로 높은 듯 보였다.

    ‘솔직히 일개 탑의 주민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예상 못 했는데.’

    엄청난 민첩에, 출중한 검술 실력까지.

    이 정도면 훗날에 나타날 20층 랭커 파티의 핵심 멤버가 되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만약 이자를 우리의 파티로 데려오면 어떨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친 생각일 수도 있었다.

    평범한 전사도 아니고 무려 왕의 최측근인 자를 파티원으로 삼겠다니.

    하지만 이미 그는 무력화된 상태였다.

    그를 억지로 21층에 끌고 가면 그 역시 바투루 왕국으로 돌아갈 방법은 하윤에게 부탁하는 것밖에 없으니 내 말을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그의 실력은 이렇게 억지까지 써가며 데려갈 정도로 대단하였다.

    ‘어쨌든 마무리부터 짓자.’

    멀리서 수천 명의 병사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적의 본군이 도착하기 전에 상황을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마무리란, 바이칸이란 이름의 왕을 인질로 잡는 것을 말하였다.

    “저, 저놈을 막아!”

    “폐하를 지켜라!”

    병사들은 악을 쓰며 나를 막으려 하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콘피에르란 자까지 쓰러진 이상, 더는 나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컥!”

    스탯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칼등으로 쳐서 멀리 날려주었다.

    칼등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기에 힘 조절은 필수였다.

    “괴물 같은 놈···. 이런 실력을 갖춘 주제에 왜 지금까지 도망친 거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던 왕이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유인하려고.”

    “뭐?”

    “바투루 왕국의 주 전력을 마경으로 유인할 생각이었는데, 설마 왕까지 올 줄은 몰랐어.”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실로 무능한 자가 아닐 수 없었다.

    겨우 30명만 데리고 공격하다가 인질로 사로잡히다니.

    뭐,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말이겠지만.

    ‘인제 슬슬 드워프들을 수도로 진격시켜야겠어.’

    사실상 바투루 왕국의 주 전력 전부가 나를 쫓고 있었다.

    왕까지 나섰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설마 수도에 병력이 아예 없지는 않겠으나, 그 수가 많지만은 않을 것이다.

    즉, 지금이 빈집 털이하기에 적기라는 의미였다.

    ***

    건우가 바투루 왕국의 주 전력을 마경으로 유인하는 동안, 드워프들은 필사적으로 무기를 만들었다.

    드워프의 모든 전사를 무장하기 위해 필요한 마총의 개수는 5,000정.

    즉, 3,000정의 마총을 추가로 생산해야 했다.

    원래라면 최소 5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아무리 드워프라고 해도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력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었다.

    5일도 경이적인 속도였으니 그 이상 일정을 줄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그야말로 부족의 운명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삼촌이 물어봤어요. 드워프들은 출전할 준비가 되어 있냐고.”

    하윤이 묻자, 시그마는 부족의 대전사인 라그나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라그나는 대답 대신 마총을 들어 올렸다.

    “우와아아아아아!”

    “말박이를 무너뜨리자!”

    “드워프의 영광을 위하여!”

    라그나의 행동을 본 드워프 전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함성을 질렀다.

    그들 역시 마총을 양손 위로 번쩍 들었다.

    마총을 가진 그들에게 두려움은 없어 보였다.

    “대답이 된 거 같은데, 이제 무엇을 하면 되나?”

    전사들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족장인 시그마 역시 감화되었는지, 그 어떤 것도 두려울 게 없는 표정이었다.

    “수도로 진격하시면 돼요.”

    “음? 뭐라고? 수도?”

    하지만 시그마는 하윤의 말을 듣고는 흠칫하였다.

    다짜고짜 적의 수도를 치라는 소릴 들었다면 누구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

    “삼촌이 적의 병력을 마경으로 유인했어요. 수도에는 적의 병력이 얼마 없으니 지금이 기회에요.”

    혼자서 적의 병력을 유인하였다니.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실로 범상치 않은 인물처럼 느껴졌다.

    시그마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라그나에게 말해 출전 준비를 시키도록 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워프 족은 출전 준비를 끝마쳤다.

    출전할 부대는 총 5,000명.

    이번 전쟁에 그야말로 종족의 운명이 걸려있었다.

    ***

    비장한 각오로 바투루 왕국의 수도를 공격한 드워프 족이었으나, 의외로 허무하게 수도를 장악하였다.

    바이칸이 마경 쪽으로 거의 대부분의 군사를 끌고 갔기 때문이었다.

    “허튼짓할 시간 없다! 성을 만들어!”

    “말박이 놈들에게 성의 위력을 보여주자!”

    수도를 장악한 드워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수도 시민을 학살하는 일도, 재산을 약탈하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성을 짓는 것.

    말박이 군대, 즉 바투루 왕국의 군대가 언제 회군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초원 한복판에서 바투루 왕국의 군대를 맞이하면 이기기도 어렵고 이긴다 하더라도 피해가 클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드워프들은 성벽부터 세웠다.

    장인 종족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수도, 울란을 둘러싼 성벽이 겨우 이틀 만에 세워졌다.

    높이는 많이 낮았으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벽이었다.

    그리고 성벽 공사가 거의 끝날 때, 초원에서 엄청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점점 다가오는 먼지구름을 보며 드워프 전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각오했던 일이다.

    하지만 막상 수천 명의 기병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격을 준비해라.”

    “사격 준비!”

    아직 500m 이상 떨어진 거리였다.

    그런데 드워프들은 벌써 사격을 준비하였다.

    마총의 위력이라면 500m가 아니라 그 이상의 거리에서도 살상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저거, 건우다.”

    그렇게 드워프 전사들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건우 일행 중에서 가장 말수가 적은 휘니가 하늘을 가리켰다.

    휘니의 옆에 있던 하윤도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하윤의 눈에도 보였다.

    외뿔 독수리 한 마리가 다가오는 모습이.

    “삼촌은 왜 저기서 나와?”

    “삼촌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시그마가 의아한 듯 묻자, 하윤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그나 씨에게 일단 공격을 멈추라고 해야 할 거 같아요. 저기에 삼촌이 있어요.”

    마침 그때 건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민건우 : 공격하지 마. 저들의 왕이 인질이 되었으니 쟤들도 공격하지 않을 거야.]

    “삼촌이 바투루 왕국의 국왕을 인질로 잡았다는데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러게요.”

    하윤이라고 알았겠는가.

    그녀의 삼촌이 혼자서 그런 미친 짓을 벌일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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