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료를 얻다. 덤으로 노예도.
하지만 천자쥔은 여전히 주제 파악이 안 됐는지, 엉뚱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럼 너를 죽이면 되는······, 컥!”
퍽!
나는 그가 주제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천자쥔을 때려눕혔다.
물론 천자쥔 파티의 의리를 생각해서 그의 동료들도 공평하게 때려눕혀 주었다.
“멍청한 놈들. 병사들 데리고도 죽이지 못한 주제에 그 상태로 나를 죽이겠다고?”
천자쥔의 파티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하긴 성장했어도 내 눈엔 그대로처럼 보였겠지만 말이다.
“너희들이 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양주르 공작처럼 내게 굴복하는 것.”
“지금 나보고 너의 개가 되라는 거냐?”
“개가 되라고는 안 했는데, 뭐 말리지는 않겠다.”
“지랄하지···, 커억!”
역시 말로 해서는 못 알아듣는 모양이다.
다시금 그를 때려눕히고는 새로운 공포를 선사해주고자 오틴을 불렀다.
-키야아아아아악!
“히, 히익! 저건 뭐야!”
오틴은 실로 거대하였다.
작은 버스만 할 정도.
그런 엄청난 크기의 몬스터가 입을 크게 벌리며 달려드니 제아무리 유저라고 해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죽지 않을 거 같아 안심하는 모양인데, 너를 죽일 방법은 많아. 내 소환수를 이용해서 죽일 수도 있다고.”
“소환수? 저 최종 보스처럼 생긴 몬스터가 소환수라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겨우 오틴 보고 최종 보스라니.
“살고 싶으면 내게 굴종해라.”
“···내가 뭘 하면 되지?”
“일단 꿇어. 사과부터 하는 게 맞는 거잖아?”
잠시 망설이던 천자쥔은 이내 무릎을 꿇었다.
천자쥔이 먼저 무릎을 꿇자 그의 파티원들도 이를 악물며 내게 무릎을 꿇었다.
‘역시 목숨 앞에서는 자존심도 뭐도 없군.’
그래서 좋았다.
노예처럼 굴리기에는 자존심만 강한 것보다는 생존 욕구 강한 쪽이 더 나았으니까.
***
‘이놈들은 중간 보스를 계속 잡게 하는 것이 좋겠어.’
고블린 주술사를 죽이고 얼마나 많은 아이템이 드랍되는지 알게 되었다.
심지어 마정석도 드랍이 되었으니 버리기엔 아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먼 거리까지 오가며 10층 중간 보스나 잡을 정도로 한가한 몸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천자쥔은 유용한 존재였다.
이들을 이용하여 중간 보스를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음? 누구지?’
갑자기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조금씩 접근하고 있었는데,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는지 나무 뒤에 몸을 엄폐하고 있었다.
사실 이자가 누구일지는 뻔했다.
천자쥔에게 쫓기던 유저이리라.
‘멀리 도망칠 것이지, 겁이 없는 건가?’
나는 헛웃음을 짓고는 그 사람이 숨은 나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자쥔은 오틴 때문에라도 움직일 수 없으니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도망쳐봐야 부처님 손안이었고.
“거기 누굽니까?”
“······.”
“나무 뒤에 숨어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 나오시죠.”
내가 싸늘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나무 뒤에 숨어있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감각 스탯이 높나 보네요. 제가 있는 걸 또 어떻게 알았데요?”
역시 맞았다.
숨어있던 자는 천자쥔 파티에게 쫓기던 아이였다.
“왜 저를 쫓아왔습니까?”
“궁금해서요. 멀리서 중국인들을 쓰러뜨린 모습을 봤거든요.”
호기심이 많은 모양이다.
탑에서 호기심이 많은 건 그리 좋지만은 않을 텐데 말이다.
“아저씨, 혹시 파티 있으세요?”
“그건 왜 물으시는지?”
“그 파티에 저도 들어가고 싶어서요.”
당돌한 말이었다.
내 실력을 보고도 나의 파티에 들어오겠다고 말하다니.
보통은 실력 차이를 인정하고 깔끔하게 포기할 텐데, 남다른 성격을 갖긴 한 거 같았다.
“그리고 제 이름은 최재영이에요. 연배 있으신 거 같은데, 편하게 말씀하세요.”
연배 있어 보인다는 말이 썩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기에 나는 그에게 레벨과 직업 등을 물었다.
레벨은 딱 예상했던 대로였다.
17.
거의 평균이라 할 수 있는 레벨이었다.
그래도 혼자서 움직이는 유저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직업이 채집가라고?”
“예. 채집가예요.”
레벨은 평범했지만, 직업은 평범하지 않았다.
“약해 보이는 직업이죠?”
나는 눈을 빛냈다.
채집가라.
얼핏 듣기에는 재영의 말처럼 약해 보이는 직업이긴 했다.
‘하지만 원래 히든 직업이란 게 다 그렇지.’
네크로맨서는 장의사.
드루이드는 장원사.
그리고 내가 아는 게 맞다면 채집가란 직업의 3차 직업은 연금술사였다.
연금술사는 생산직 중에 1티어의 직업이었다.
아니, 꼭 생산직과 비교하지 않아도 1티어였다.
괜히 히든 직업이 아니었던 것.
‘나도 만약 연구원 대신 채집가가 있었다면 채집가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연금술사 역시도 자본을 들인 만큼 강해지는 직업이었다.
영약과 포션으로 스탯을 늘리는 게 가능했던 것.
나는 이미 영약이란 걸 경험해봤기에 왠지 그가 탐이 났다.
“내 파티에 들어오고 싶다고 했지?”
“파티요? 아저씨 파티에 저를 끼워주실 거라고요? 아니, 왜요?”
“네 직업이 마음에 들어서.”
숨길 이유가 없었기에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최재영은 뭐가 그리 기뻤는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도 제 직업의 특별함을 느끼셨나 보군요! 역시 괜히 랭커가 아니었네요!”
아무래도 직업 때문에 여기저기서 무시를 당했던 거 같았다.
하긴, 아무것도 모른 상태라면 채집가란 직업은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질 것이다.
“단, 파티의 리더는 나다.”
“당연하죠. 아저씨는 레벨도 저보다 훨씬 높아 보이시는데.”
“그리고 파티에 여성 인원 두 명이 더 있다.”
“여성이요? 예쁜가요? 나이는 어떻게 되는데요?”
레벨이나 직업을 묻는 게 아니라, 외모와 나이부터 묻다니.
아무리 어려도 남자는 남자인 모양이었다.
‘과연 두 사람이 이 녀석을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군.’
사실 나도 직업 말고는 판단이 안 섰다.
뭐 그 직업이 워낙 좋아서 대안이 없었지만.
***
“새로운 파티원이라고? 갑자기?”
수도로 가서 두 사람을 부른 뒤, 재영을 소개하자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재영은 추레한 몰골에 인상도 어딘가 순해 보였다.
동료로서 썩 믿음이 안 간다는 뜻.
하지만 재영의 됨됨이야 앞으로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됨됨이가 괜찮은 아이라면, 부족한 실력쯤은 내가 키워주면 됐다.
“그렇게 됐다.”
“아니 엄청나게 약해 보이는데? 왜 하필 이런 약한 놈을 파티로 받아들여?”
하윤의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재영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저 그렇게 약하지 않은데···.”
나는 그런 재영의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였다.
실력만 봤을 때, 우리 파티에 끼지 못할 실력인 것은 분명했으니까.
“잠재력이 있어. 얘, 히든 직업이야.”
“히든 직업? 무슨 히든 직업인데?”
“채집가라고. 미래가 보장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지.”
반대하는 분위기였던 하윤은 히든 직업이라는 한마디에 태도가 바뀌었다.
자신도 히든 직업의 일종인 전이술사이기에 히든 직업의 중요성을 잘 알았던 것이다.
“재영이라 했지? 내가 너보다 두 살 연상이니, 누나라고 불러라.”
“저, 파티로 받아주는 겁니까?”
“이미 삼촌이 너를 받아줬는데 내가 반대해서 뭐 해? 휘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난 건우 말이면 다 좋다.”
그렇게 재영은 우리 파티의 일원이 되었다.
물론 아직은 일종의 객원 멤버였다.
언제든 탈퇴할 수 있는 멤버였던 것.
“휘니가 재영의 사냥 좀 도와줘.”
“내가?”
“미트 골렘이 리젠 될 때마다 잡으면 레벨을 쉽게 올릴 수 있을 거야.”
분신을 지구에서 소환한 뒤로 미트 골렘을 잡을 사람이 없어졌다.
이미 20층의 보스들을 잡은 상태였기에 미트 골렘의 중요성이 이전 같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미트 골렘을 잡으면 얻는 자격의 증표가 내게 필요했다.
이 자격의 증표를 모아야 유저들을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드도 만들어야 하니, 자격의 증표는 많을수록 좋지.’
내가 괜히 모험가 아카데미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모험가 아카데미의 용도는 오직 하나.
유망한 인재를 내가 세울 길드로 포섭하기 위함이었다.
자격의 증표를 모으는 것도 유망한 인재를 포섭할 때, 결정적인 키 카드가 될 수 있어서였다.
그저 길드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11층에 갈 수 있다면, 웬만해서는 우리 길드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알았어. 내가 막내 도울게.”
“미트 골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휘니 누나랑 둘이 사냥하는 거면 저도 나쁘지 않네요.”
그렇게 휘니와 재영에게 미트 골렘 사냥을 맡겼다.
휘니가 피를 다 깎은 뒤, 재영이 막타를 때리는 식으로 미트 골렘을 잡는다면 레벨도 올리고 자격의 증표까지 얻을 수 있으리라.
“삼촌, 나는 뭐할까?”
“뭐하긴. 이제 20층 갔다 올 차례 아니야?”
“···재미없어.”
하윤에겐 교역을 담당시켰다.
공간술사인 그녀에겐 교역이 천직이었다.
‘소환수도 놀릴 수는 없지. 다시 정찰시켜야겠어.’
나는 오틴에게 정찰을 지시하였다.
이미 고블린 주술사란 중간 보스를 발견한 상태.
하지만 중간 보스가 꼭 한 마리만 있으란 법은 없었다.
어쩌면 다른 곳에도 중간 보스가 있을지 모르리라.
물론 겨우 중간 보스 때문에 내가 직접 정찰을 다니는 것은 시간 아까운 짓이었다.
그렇기에 오틴을 이용하였다.
“오틴. 여기서 일직선으로 쭉 가봐. 새로운 몬스터를 발견하면 일단 멈춰. 알았지?”
-키요요요!
오틴은 영리하였다.
나의 복잡한 지시도 곧잘 알아들었다.
‘만약 다른 중간 보스가 더 있다면 천자쥔의 파티를 쪼개야겠지?’
천자쥔을 만난 게 천운이었다.
뭐 아직은 배신 가능성이 있어서 마냥 신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유저보다는 배신 가능성이 작았다.
물론 천자쥔이 의리 있는 성격이라서 배신 가능성이 적다는 말은 아니었다.
성격이 어떻고를 떠나 그의 상황.
즉, 현상 수배범이 되어있는 그의 상황이 나를 배신할 확률을 줄여주었다.
그는 자격의 증표를 가지고도 11층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전에서 범죄자인 그를 신전 안으로 들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애초에 자격의 증표가 어디에 쓰이는지 그 정보를 얻는 것부터 어려웠고.
***
오틴의 정찰을 기다리는 동안, 룬을 까거나 새로운 룬을 감정하며 시간을 보냈다.
검술도 간만에 수련할까 했는데, 그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그사이 정찰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10층이 넓긴 해도 공중 몬스터인 오틴에게는 끝에서 끝을 이동해도 하루가 안 걸릴 정도로 작은 세계였던 것이다.
‘진짜 있군.’
고블린 주술사를 발견한 이후, 또 한 마리의 중간 보스가 발견되었다.
6층에서도 본 적이 있는 그레이트 베어였다.
다른 방향으로도 오틴을 계속 보냈다.
동쪽과 남쪽에서도 중간 보스를 추가로 발견할 수 있었다.
10층에서만 모두 합해 네 마리의 중간 보스가 있었던 것.
설마 중간 보스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알았으면 업적 수집을 위해서라도 진즉에 죽였을 텐데.
‘어쨌든 나쁘지 않아.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하나?’
미트 골렘을 잡으면 마정석이 나오지 않았다.
부서진 골렘의 핵이라는 이름의 재료 아이템만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네 마리의 중간 보스는?
아직 확실하게 나온 것은 고블린 주술사밖에 없었지만, 나머지 세 마리도 나올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만약 내 생각대로 나머지 세 마리의 중간 보스에게도 마정석이 나온다면 이는 호재였다.
안 그래도 마정석이 필요한 상황.
마정석을 얻을 수단이 늘어나는 것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나는 다시 오틴을 불렀다.
그러고는 오틴을 타고 천자쥔이 있을 장소로 향하였다.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는지 천자쥔은 어디로 도망치지 않았다.
내가 지시한 대로 고블린 주술사가 리젠 되는대로 계속 잡고 있었다.
“이제 공략법은 완전히 터득한 모양인데?”
“고블린 주술사 따위, 네가 스틸만 안 했으면 원래도 잡을 수 있었어.”
“그럼, 고블린 주술사를 몇 명으로 잡을 수 있지?”
천자쥔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렸다.
“세 명. 아니, 두 명으로도 잡을 수 있다.”
“그러면 여덟 명씩이나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겠어.”
“또 뭐를 시키려고?”
“중간 보스가 고블린 주술사 말고 더 있다. 나는 이 중간 보스들을 전부 독점하고 싶단 말이지.”
내 말에 천자쥔은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파티가 쪼개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의 생각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두 명 타. 중간 보스가 있는 장소로 보내줄 테니.”
천자쥔 파티에게 네 마리의 중간 보스를 맡기자 이제는 미트 골렘 하나만 남았다.
10층의 최종 보스는 미트 골렘이었기에 당연히 미트 골렘을 독점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분신은 지구에 있었고 하윤은 20층과 저층을 오가며 교역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침 재영이가 파티로 들어왔지.’
휘니만 있을 때는 아이템을 못 얻었는데 재영이가 생기자 아이템 수집이 가능해졌다.
하여 두 사람에게 미트 골렘 사냥을 맡겼다.
“벌써 한 달이 되었나.”
드워프 코인의 가격을 안정시키랴, 룬을 사재기하랴, 그렇게 사재기한 룬을 분해하랴.
여기에 검술 실력을 키우는 것도 일과에서 뺄 수 없었다.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탑에 들어온지 한 달 째가 되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는 말은 곧 2기 유저들이 들어올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이번에는 귀환자도 들어오겠군. 과연 어떤 귀환자가 들어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