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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서 나 혼자 재벌-37화 (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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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를 얻다. 덤으로 노예도.

네시아 왕국에서 현상 수배범이 되는 건 유저에게 있어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였다.

숙소, 음식점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건 사실,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금 불편한 곳에서 자고 조금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

랭커쯤 되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전력을 강화할 때 엄청난 손해를 본다는 점이었다.

일단 아이템부터 가성비 떨어지는 카르마 상점의 아이템을 구매해야 했다.

같은 품질의 아이템을 다른 유저들과 비교했을 때, 두세 배 비싸게 구매하는 격.

룬이나 강화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치명적이었다.

보통 파티에서 룬 감정 스킬을 가진 유저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고 카르마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은 강화 제한이 걸려 있었다.

희귀급 아이템조차 2강 때부터 파괴 확률이 생길 정도였다.

룬과 강화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니 선두권 경쟁이 될 리가 없었다.

그것은 한때 최강의 파티라 불리던 천자쥔 파티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사냥터에 호주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대형, 어떻게 할까요?”

“여기까지 오다니. 개 같은 놈들. 수도에서 여기까지 몇 시간 거리인데···.”

“죽이죠. 우리가 누구인지 저 신참 놈들한테 똑똑히 보여줍시다.”

“한 명이라도 도망친다면? 그 한 놈이 토벌단을 불러올 거다. 일단 여긴 포기하고 다른 사냥터를 노리는 게 나아.”

심지어 천자쥔의 파티는 현상 수배범이었기에 몬스터 사냥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냥터에 다른 파티가 나타나면 초식동물처럼 피해 다녔다.

당연히 동선이 낭비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렇게 된 거 진짜로 범죄자가 되는 건 어떻겠습니까?”

“범죄자가 되자고?”

“예. 마을이든, 유저 파티든 공격해서 아이템과 카르마를 약탈하는 겁니다.”

천자쥔의 파티는 이미 살인의 경험이 있었다.

파티 내에서 내분도 몇 번 겪었고, 다른 파티와 격렬하게 다투다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던 것.

카르마나 아이템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살인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살인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남을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면, 당연히 남을 죽여서라도 생존하는 게 맞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천자쥔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도 남을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잃는 건 오직 행운 스탯뿐입니다.”

살인하면 행운 스탯이 하락했다.

이제 그들도 룬의 존재를 알고 강화 시스템도 알기에 행운 스탯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인으로 얻는 어드밴티지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같은 유저를 죽이면 몬스터를 잡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양의 경험치와 카르마를 얻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탑의 주민을 죽일 때도 마찬가지일 터.

즉, 오크 백 마리를 잡는 것보다 사람 몇 명 죽이는 게 훨씬 이득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행운이 하락하는 게 걱정이라면 살인은 저 혼자 담당하겠습니다. 파티를 깨고 살인하면 대형의 행운 스탯은 하락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얻은 카르마는 공용으로 쓰고?”

“물론입니다. 대형.”

심복의 말에 천자쥔은 귀가 솔깃한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답이 없는 상황.

아예 산적이 돼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며 빠르게 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런 천자쥔의 파티 앞에 갑자기 어떤 소년이 나타났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입고 있는 옷을 보면 유저처럼 보였다.

“너 이리 와봐.”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산속을 천진하게 돌아다니던 소년은 천자쥔의 무리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몬스터는 안 무서워도 천자쥔의 험악한 얼굴은 무서웠던 모양이다.

“왜, 왜 그러세요?”

“너 유저지?”

“그런데요?”

“몇 가지 좀 물을 게 있다.”

천자쥔은 가장 먼저 유저들의 현재 상황을 물어보았다.

10층의 유저 수는 몇 명인지.

11층까지 진출한 유저가 있는지.

그리고 민건우란 유저는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저는 잘 몰라요. 파티도 없어서 그냥 솔로 플레이하고 있어요.”

하지만 소년을 통해 얻은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오죽하면 도망자 생활하는 천자쥔보다 아는 게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솔플? 레벨이 몇인데?”

“그건 말해줄 수 없고요.”

“어쨌든 10층에서 솔플할 정도면 레벨이 높겠네?”

천자쥔은 입술에 침을 발랐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이놈의 인벤토리에 템이 한가득 있겠지?’

몬스터를 잡을 때만 아이템이 드랍되는 것이 아니었다.

유저를 잡아도 아이템은 드랍되었다.

정확히는 인벤토리 속에 있는 아이템이 랜덤으로 나오는 것.

“우리가 조금 가난해서 그러는데, 아이템 좀 기부해줄 수 있겠냐?”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왜 그래야 하냐고? 그러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야.”

“좆 까!”

갑자기 욕설을 내뱉고는 등을 돌려 도망치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천자쥔은 헛웃음을 흘렸다.

저런 어린놈에게 모욕당하다니.

랭킹 1위로서 떵떵거리던 왕년(?)이 그리워졌다.

“뭣들 하는 거야! 저놈 잡아!”

그렇게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금방 쫓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소년은 잘 잡히질 않았다.

“이 빌어먹을 고블린 새끼들! 왜 우리한테만 지랄이야! 저 새끼를 잡으라고. 저 새끼를!”

가장 큰 문제는 몬스터였다.

이상하게도 몬스터들은 가장 선두로 달리는 소년을 공격하지 않고 소년을 쫓는 천자쥔 파티를 공격하였다.

“아무래도 저놈, 히든 직업인 거 같습니다.”

“그건 달리는 속도만 봐도 알 수 있어!”

그런 천자쥔 파티의 눈에 어딘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고블린 한 마리가 보였다.

일단 체구가 컸다.

거의 150cm는 되어 보였다.

무엇보다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고블린 같은 몬스터에게 직업이 따로 있겠냐마는, 검을 든 고블린은 날렵하고 방망이를 든 고블린은 조금 더 단단하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지팡이를 든 고블린은?

심지어 그 고블린은 다른 고블린의 호위까지 받고 있었다.

여러모로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저놈 잡아! 보스 몬스터다!”

보스 몬스터라고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천자쥔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 몬스터는 보스 몬스터라고.

그리고 만약 보스 몬스터가 맞다면 지금 유저 따위를 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

“뭐야!”

“모, 몸이 무거워졌어!”

확실히 보스는 보스였던 것일까?

공략하기가 꽤 까다로웠다.

레벨 5짜리 유저도 어렵지 않게 잡는 것이 고블린이었다.

그런데 지팡이를 든 고블린, 일명 고블린 주술사가 뭐라고 외치자, 약하기 그지없는 고블린들이 마치 오크처럼 강인해졌다.

물론 천자쥔 파티는 오크도 쉽게 잡는 파티였다.

고블린이 오크만큼 강해졌다고 난감해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고블린 주술사의 주문이 단순히 고블린을 강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천자쥔은 온몸에 힘을 주었다.

저주가 그의 몸을 옥죄었지만, 그는 악을 쓰며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고블린 한 마리가 그의 주먹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이깟 저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느냐!”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고블린을 처리하고는 그대로 고블린 주술사를 향해 걸어갔다.

느릿하던 그의 발걸음은 어느 순간 빨라졌다.

‘투지’라는 이름의 직업 스킬이 저주를 이기게 해주었던 것이다.

파바박!

천자쥔은 순식간에 고블린 주술사의 바로 앞까지 이동하였다.

고블린 주술사는 다급하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양옆에서는 일반 고블린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천자쥔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발차기를 날렸다.

-키에에엑!

고블린 주술사가 처량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멀찍이 날아갔다.

천자쥔은 마무리 짓기 위해 다시금 달렸다.

그의 양옆에서 달려들던 고블린들은 이미 그의 파티원에 처리된 상태였다.

‘내 질풍각 스킬을 정통으로 맞고도 버틴 걸 보면 보스가 맞긴 하나 본데?’

오크도 그의 스킬을 정통으로 맞으면 빈사 상태가 되고는 했다.

그런데 고블린 주술사는 아픈 기색이긴 해도 여전히 저주를 사용하고 있었다.

무력화조차 못 시켰다는 의미.

하지만 천자쥔은 그런 고블린 주술사의 모습에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보스가 강한 만큼 보상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떤 사내가 고블린 주술사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모든 갑옷이 삐까뻔쩍한 것이 웬만한 랭커보다 강해 보이는 사내였다.

‘저, 저놈은?’

천자쥔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민건우였다.

민건우의 얼굴을 본 순간, 천자쥔은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때 랭킹 1위였던 천자쥔이 왜 이런 곳에서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을까?

바로 저 민건우란 사내 때문이었다.

저 빌어먹을 한국인이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

‘감히 또 내 것을 빼앗으려 하다니!’

민건우가 고블린 주술사에게 달려드는 이유야 뻔했다.

막타를 빼앗으려는 의도일 터.

다른 누구도 아니고 민건우에게 막타를 빼앗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분노한 천자쥔은 주먹을 불끈 쥐고 민건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달려들려고 자세만 취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건우의 검이 갑자기 엄청나게 커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친! 저게 뭐야!”

“피, 피하십시오!”

콰아앙!

천자쥔은 한때 랭커였던 게 운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민건우의 검을 간신히 피해냈다.

물론 고블린 주술사는 달랐다.

안 그래도 천자쥔 파티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고블린 주술사는 민건우의 검을 맞고 그대로 쥐포가 되었다.

아이템을 떨구고 사라진 고블린 주술사의 모습을 보며 천자쥔은 이를 갈았다.

빠드득!

사냥하면서 가장 기분이 나쁠 때가 다른 파티에게 막타를 빼앗길 때였다.

그런데 천자쥔은 그냥 막타를 빼앗긴 것도 아니고, 가장 싫어하는 상대에게 막타를 빼앗겼다.

그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밖에 없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민건우의 태도였다.

스틸을 해놓고 민건우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이템을 파밍하고 있었다.

값비싼 룬 조각은 물론이고 정체 모를 아이템까지 전부 파밍 하는 민건우의 모습에 그는 참을 수 없었다.

***

중간 보스의 전투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약했다.

그래서 드랍되는 아이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마정석이 나온다고?’

하지만 의외로 젠 되는 아이템이 많았다.

내게 그 어떤 아이템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정석도 드랍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1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격의 증표도 나왔다.

미트 골렘과는 달리 겨우 한 장만 나왔지만, 어쨌든 신전이 아니어도 자격의 증표를 얻을 수단이 생겼다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너 이 자식! 여기는 왜 온 거야?”

그러던 그때였다.

지저분한 몰골을 한 사내가 콧김을 뿜어내며 내게 따졌다.

바로 천자쥔이었다.

“보면 몰라? 사냥하려고 왔잖아.”

“네 레벨이 몇인데 이딴 잡몹을 잡는다는 거야!”

“내가 너에게 그런 거까지 이야기해줘야 하나?”

“이 개 같은 놈이···.”

천자쥔이 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내 뻔뻔한 대답을 듣고 기분이 나빠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너희들, 현상 수배범이었지?”

나는 검을 어깨 위로 올린 채, 천자쥔을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그러자 쪽수가 여덟 명이나 되는데도 천자쥔이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왜, 왜 모르는 척 굴고 지랄이야! 네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나 본데, 내가 수도로 잡아가면 너희는 전부 효수될 거야.”

“효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목을 잘라!”

“나를 공격했잖아?”

천자쥔은 그게 뭐 대수냐는 얼굴이었다.

여전히 그는 나를 일개 유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양주르 공작이 왜 나를 공격했을까? 내가 그의 정적이기 때문이야. 물론 그것도 이제 옛말이지만 말이지.”

“정적?”

“공작은 나에게 완전히 굴복했어. 남문 외성의 땅을 내게 전부 넘기는 조건으로.”

“······!”

눈을 부릅뜨며 경악하는 천자쥔.

그제야 내가 어떤 존재인지 조금은 알게 된 모양이다.

뭐 내 무력이야 진즉에 알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천자쥔을 보며 고민했다.

‘이놈을 죽여야 하나? 뭔가 이용해 먹을 방법이 있을 거 같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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