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서 나 혼자 재벌-34화 (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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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족과 만나다.

“포탈 근처에다 도시를 만들라고?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이런 지하 속에서도 도시를 만들었는데 평원에서 도시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시그마는 미간을 좁혔다.

왜 당연한 이야기를 하느냐는 얼굴이었다.

“아까 라그나가 말한 거 같은데···. 우리 드워프 족은 말박이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이야.”

“사이가 좋지 않은 게 아니라, 원수 관계 아닙니까?”

“···잘 아는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세계의 끝으로 밀려날 정도였으니 원한이 상당할 거라는 사실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말박이, 바투루 왕국을 무찔러드리지요. 물론 여러분과 함께 말입니다.”

어차피 바투루 왕국과는 적대 관계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왕의 장남을 죽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드워프의 마음도 얻을 겸, 바투루 왕국을 무찌르는 것은 내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애초에 도시를 세우려면 바투루 왕국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기도 해야 하지.’

21층으로 향하는 포탈 근처에 병력을 주둔시킨 바투루 왕국이었다.

도시를 세우려면 바투루 왕국을 밀어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뜻.

“자네의 도시를 세우기 위해 우리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것인가!”

시그마가 노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장인 종족이 아니라, 전사 종족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그마를 향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제가 아는 드워프 종족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종족인데, 그깟 말박이 따위가 그리 무섭습니까?”

님쫄?

내 한마디에 시그마는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자존심이 강한 종족이니 참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 리가!”

“그렇다면 저희와 함께 말박이와 싸우시지요. 제가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

시그마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준다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내가 드워프를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였다.

나와 함께 하면 결국에 잃어버린 영토와 영광을 되찾지 않겠는가.

물론,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드워프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

바투루 왕국과 전쟁하기로 했지만, 바로 드워프들을 데리고 바투루 왕국으로 쳐들어가지는 않았다.

왕을 죽인다고 끝날 전쟁이 아니었다.

상대를 멸족시킬 각오로 치를 상남자들의 전쟁이었다.

드워프의 전력이 상당히 부족하였으니, 이를 채울 필요가 있었다.

‘마침 내가 마도 공학자이지.’

처음 드워프를 봤을 때 품은 생각이 맞았다.

내 직업과 장인 종족의 시너지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아직 내가 쓸 수 있는 마력회로 중 쓸만한 마력회로는 폭발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드워프의 조력을 받으면 이 폭발도 굉장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이 스킬을 잘만 활용한다면, 화약을 대신할 수 있겠군.”

“그러고 보니 화약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척박한 곳이니까.”

총은 화약을 폭발시켜 얻은 에너지로 탄환을 발사하는 원리를 가졌다.

이 원리를 내 마력회로에 그대로 이입할 수 있었다.

폭발이 새겨진 마력회로에 마나를 사용하여 폭발을 일으킨 뒤, 그 폭발의 힘으로 탄환을 발사하는 것이다.

이른바 마총이었다.

‘사용자의 마나에 따라 화약을 사용하는 총보다 훨씬 강한 위력을 보일 수 있겠군.’

물론 총신이 폭발의 위력을 견딜 수 있을지가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드워프가 괜히 장인의 종족이겠는가.

“우리를 믿게. 그 정도 내구성을 가진 총을 금방 개발해낼 테니.”

“그렇다면 저는 드워프 종족에 부족한 자원을 모아오겠습니다.”

10층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네시아 왕국에서 각종 자원을 얻고 전쟁에 도움이 될 새로운 룬 문자까지 수집하고 오면 금상첨화이리라.

물론 우리가 그러는 동안 드워프들은 마총을 개발함과 동시에 우리를 위한 아이템들을 만들어줄 것이고 말이다.

***

‘이제 원현이도 준비가 끝났겠지?’

지구에 갔을 때 내가 만난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누나, 그리고 기원현.

기원현은 나에게 있어 중요한 인재였다.

바로 모험가 거리에 들어설 환전소에서 지구 파트를 담당할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10층에 가자. 바로 환전소 사업을 시작할 거야.”

“환전소? 진짜 하려고?”

“가만히 앉아서 돈 벌 수 있는데 안 할 이유는 없지.”

“근데 과연 카르마를 현실의 돈을 주고 살 사람이 있을까?”

하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당분간은 그러겠지. 하지만 곧 반대로 바뀔 거야.”

지금은 카르마를 돈으로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곧 반대로 바뀔 거라는 사실을.

너나 할 것 없이 카르마를 돈으로 사려고 할 것이다.

심지어 개인뿐만이 아니라, 대기업과 정부까지 나서서 말이다.

그에 따라 카르마는 비트코인처럼 가치가 급상승할 테지.

‘나는 가만히 앉아서 중개만 해도 돼.’

환전소가 들어설 곳은 10층이다.

10층의 유저 수는 아직 200명이 조금 안 됐다.

즉, 거래량이 적을 거라는 뜻.

하지만 유저 수가 수천 명, 수만 명이 된다면?

거래량이 실로 엄청날 게 분명하였다.

수수료 5%만 떼도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 수 있으리라.

카르마든, 현실의 돈이든 말이다.

수수료 말고도 돈을 벌 방법은 많았다.

바로 암호화폐.

현실의 재화를 특정 코인으로 준다면 엄청난 수익을 벌 수 있으리라.

그 특정 코인을 미리 사재기한다면 가치가 크게 오를 테니까.

‘이렇게 벌어들인 카르마로 룬도 사들일 수 있겠지.’

저층과 10층을 오가며 룬을 사들이는 노가다도 더는 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10층에 가만히 있어도 룬을 쉽게 수집할 수 있으리라.

***

“야, 짐꾼.”

“짐꾼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이연재는 울컥했다.

그도 엄연한 파티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짐꾼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뭐, 짐꾼이 별로면 겁쟁이라고 불러줄까? 아니면 찌질이?”

빈정대는 동료를 보며 이연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겁쟁이니, 찌질이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와 정반대의 개념을 가진 별명이 그에게 어울렸다.

상남자라던가, 인싸라던가. 뭐 그런 별명 말이다.

하지만 탑에 오면서 그는 단 하루도 안 돼서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사람이 되었다.

온갖 잘난 척을 해놓고 막상 3층에서 좀비를 마주한 순간, 가장 먼저 도망쳤기 때문이다.

비명까지 지르며 도망친 덕에 그는 겁쟁이로 낙인찍혔다.

그 뒤로 아무리 솔선수범해도 의미가 없었다.

처음 이미지란 게 그만큼 중요했다.

‘제길. 10층에 오면 뭐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10층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생각이었다.

그를 모르는 파티에 들어가서 새 출발을 하려고 했던 것.

하지만 탑은 좁았고 상위권 유저들의 세계는 특히 좁았다.

누구는 A급, 누구는 B급, 누구는 C급.

이런 평가가 이미 각 파티의 리더에게 전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연재의 경우 C급을 넘어 D급 취급을 받았다.

검사 주제에 겁이 많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심지어 스탯도 잘못 찍고 전리품도 제대로 못 받아서 전투력 자체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에 대한 평가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잔말 말고 가방 들어. 이 짐꾼 새끼야. 오크 잡으러 갈 거니까.”

이연재는 이를 악물며 다시 파티를 따라나섰다.

자존심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었다.

탑에선 그 법조차 없었고.

그날 하루, 이연재는 온갖 수모를 당하며 파티의 짐꾼 노릇을 하였다.

인벤토리가 있었지만, 그는 가방을 들었다.

어떤 아이템이 신전 퀘스트 아이템으로 뜰지 모르기에, 자잘한 아이템도 전부 수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크 사냥을 마치고 다시 수도로 돌아온 그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안 그래도 환전소 같은 거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딱 생기네.”

“카르마 팔려고?”

“미쳤냐. 내가 거지도 아니고. 오히려 카르마를 사야지. 최빈국 출신의 유저들이 싸게 팔아주지 않겠어?”

“근데 모험가 거리 만든 사람은 진짜 누구일까? 유저인 건 맞는 거 같은데.”

“휘니 여관이나 건우 대장간 뭐 이런 거 이름 보면 한국인인 거 같지 않아?”

“신전 앞에서 최진수 쓰러뜨린 여자가 한국 유저라는데 그 여자일 수도?”

그가 접한 놀라운 소식이란 외성 바깥으로 이어진 모험가 거리에 새로 들어설 시설을 말하였다.

환전소.

탑의 카르마와 지구의 돈을 거래할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의 돈으로 탑의 카르마를 살 수 있다고?’

이연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자수성가형 부자였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자산을 50억 이상 모았을 정도.

사실 그래서 그는 1,500 카르마를 모은 순간 지구로 귀환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지구로 귀환하기만 하면 그는 더 이상 고생 같은 걸 하지 않아도 됐다.

반평생 모은 돈으로 현대의 편의 생활을 즐기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진짜 겁쟁이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겁쟁이를 넘어 인생의 패배자가 될 터.

자수성가한 부자로서 자기애가 남다른 그였기에 탑의 패배자가 된 채 지구로 돌아가는 걸 원치 않았다.

무엇보다 그를 무시하던 이들이 그가 지구로 가 있는 동안 끊임없이 성장할 거라는 사실이 불쾌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지구로의 귀환을 미루었다.

오히려 1,500 카르마로 전력을 강화하는 것에 투자하였다.

‘카르마가 얼마든 무조건 산다. 어차피 지금 나에게 현실의 돈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이연재는 탑에 인생을 걸었다.

단순히 자신을 무시했던 이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보았다.

탑의 미래를.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 수십억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고작 게임에도 그렇게 돈을 쓰는데, 탑에 돈을 아낄 이유가 있을까?

돈을 쓰면 쓸수록 더 강해지는데 말이다.

그렇기에 이연재는 환전소에 전 재산을 쏟겠다는 각오를 하였다.

아니, 전 재산도 부족하였다.

그가 가진 모든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백억 이상의 돈을 모아오고 말리라.

‘각오해라. 내가 돈을 처발라서라도 네놈들을 따라잡고 말 테니.’

***

환전소는 아직 건물이 지어지지 않은 상태라 대형 천막에서 임시로 업무를 진행하였다.

“사람이 엄청 많은데?”

“다 카르마를 사러 온 건가?”

“모르지. 팔러 온 사람도 있을지.”

수십 명이 잘 수 있는 대형 천막이었지만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번잡하였다.

환전소 직원들을 제외하면 손님이 전부 유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드리스 파티도 왔다.”

“사무라이 놈도 왔어.”

“둘이 사이 안 좋지 않나?”

“그러니 저리 기 싸움을 하는 거겠지.”

여러 유저가 모이니 당연히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환전소 입구에는 갑옷을 올 희귀급으로 맞춘 병사들이 서 있었다.

유저들은 서로 기 싸움을 벌이면서도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란이 벌어질 때, 환전소 직원이 외쳤다.

“지금부터 업무 시작하겠습니다. 카르마를 구매하실 분들은 이쪽, 판매하실 분들은 이쪽에 서주십시오.”

직원의 통제에 따라 유저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유저들은 어떤 줄에도 서지 않고 뒤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카르마를 사거나 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격.

카르마를 사려는 사람도 가격이 마음에 든다면 오히려 팔 수도 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적용됐다.

“카르마는 오직 드워프 코인으로만 거래됩니다. 1 카르마에 1 드워프 코인입니다.”

“드워프 코인? 그게 뭐야?”

“몰라. 나도 왕년에 코인 투자 좀 했었는데, 완전히 처음 들어보는 코인인데?”

“그러게. 엘프 코인은 들어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 말이야.”

유저들은 웅성거리기 바빴다.

처음 들어보는 코인 이름에 당황한 것이다.

“참고로 드워프 코인의 현재 가치는 20달러입니다.”

직원의 말에 소란은 더욱 커졌다.

드워프 코인의 가치가 20달러라는 말은 1 카르마가 20달러라는 사실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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