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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전직.
콰직!
엄청난 덩치의 트롤은 그 덩치에 걸맞은 엄청난 크기의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 방망이에 닿으면 모든 것이 가루로 바뀌었다.
실로 무지막지한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트롤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또 상처를 회복하고 있어!”
“진짜 성가신 놈이군.”
부우웅.
마치 네놈들이 더 성가시다고 말하는 듯, 트롤이 나를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다.
물론 그렇게 느린 공격에 당할 내가 아니었다.
오히려 거리를 좁혀서 트롤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공격을 피했다.
당연히 공격을 피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서걱!
가랑이에다 칼침을 넣었다.
칼침 넣은 곳에 참격까지 사용하자 트롤이 아주 발작할 정도로 좋아하였다.
-크아아아악!
남자라면 절로 움츠러들 거 같은 비명이었다.
‘이래도 계속 버틸 거야?’
나라면 혀를 깨물어서라도 자진할 거 같은데 트롤은 기어코 버텨냈다.
일반 유저들은 도대체 이 트롤을 어떻게 잡을지 의문이었다.
막강한 스킬을 가진 히든 직업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할 거 같았다.
물론 우리처럼 해도 된다.
참고로 우리가 선택한 트롤 공략법은 단순하였다.
누가 이기냐의 싸움이었다.
아무리 생명력이 강해도 한계는 존재하는 법.
계속 피를 깎다 보면 체력이 다하듯, 생명력도 그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즉, 우리의 체력이 먼저 한계에 닿을지, 아니면 트롤의 생명력이 먼저 한계에 닿을지.
그 둘을 가리는 싸움이었다.
“삼촌, 회복이 조금 더뎌지는 거 같지 않아?”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긴 해.”
그리고 우리의 공략법은 사실상 성공을 눈앞에 두었다.
트롤은 누가 봐도 지친 기색이었다.
얼굴은 여전히 흉악했지만, 움직임이 둔해졌다.
상처 역시도 바로바로 봉합되지 않고 점점 더뎌지고 있었다.
“하지만 방심은 하지 마. 페이즈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들은 게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처럼 페이즈마다 엄청난 변화는 없었다.
아예 페이즈란 게 없는 몬스터도 많았다.
트롤 역시도 피가 깎였다 해서 공격 패턴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보스 몬스터인 만큼 방심은 금물.
나는 모든 감각을 집중하여 트롤의 반격을 대비하였다.
하지만 다행히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영악하게도 체력이 다한 척하며 우리의 방심을 유도하고는 회심의 공격을 날리기도 했지만, 그런 건 통하지 않았다.
감각 스탯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트롤의 반격을 모조리 파훼하였고 머지않아 트롤은 시체나 다를 게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말 그대로 ‘막타’만 날리면 되는 그런 상태였다.
휘이익!
내가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는 그 상황에서 화살 한 대가 트롤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왔다.
처음에는 휘니의 화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내 눈에 보인 화살의 생김새가 내가 알던 휘니의 화살이 아니었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트롤의 심장을 향하고 날아온 화살을 검으로 튕겨낸 것이다.
그러고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트롤의 목을 갈랐다.
서걱!
원래는 검이 중간에 막혔는데 이번에는 두부 가르듯 쉽게 베어졌다.
빈사상태에 빠진 거 같다고 느꼈던 게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최초로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트롤의 숨통이 마침내 끊어졌다는 것이.
하지만 우리는 기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아까 트롤의 심장을 노렸던 정체 모를 화살이 이번에는 우리를 향해 쏘아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니었다.
무려 열 대의 화살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보호막 써!”
하윤에게 다급히 지시를 내리고 나는 검을 휘둘러 화살을 튕겨냈다.
다행히 공격은 나에게 집중되어서 두 사람은 피해를 보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멀쩡하였다.
화살에 꽤 강한 힘이 담겨있었으나, 거인의 검은 무려 6강 검이었기에 나에게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호오, 잘 막는데?”
처음엔 켄타우로스 무리인 줄 알았는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말을 탄 다섯 명의 인간이었다.
복장을 보니 꽤 신분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 입에서 예의 갖춘 말이 나올 리는 없었다.
나를 공격한 상대이기 때문이다.
“정체가 뭐냐.”
“나? 이 나라의 왕자, 바카르다.”
바카르?
수도에서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왕위 서열 1위의 왕자라던가.
망나니라는 소문도 얼핏 들은 거 같았다.
“우리를 공격한 이유가 뭐지?”
“내 정체를 말했는데도 그딴 태도를 보이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적에게 예의를 차려야 하나?”
“적? 지금 나보고 적이라 한 거냐?”
그는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배까지 움켜쥐며 낄낄거렸다.
마치 네 따위가 내 적이 될 수 있냐는 비웃음처럼 느껴졌다.
호위로 보이는 기병들도 그를 따라 웃었다.
“감히, 내 앞에서 건방을 떨다니. 그래도 웃겼으니 그 아이템들을 두고 가면 용서해주지.”
트롤은 보스 몬스터였다.
와이번을 죽일 때처럼 많은 아이템이 드랍되었다.
귀환석, 룬, 도끼, 전직 증명서 그리고 각종 재료까지.
트롤의 피라는 재료도 드랍되었는데, 이는 회복 포션의 재료였다.
심지어 직업 카드도 떨어진 게 보였다.
무슨 직업인지는 아직 확인 못 했지만 말이다.
“거절한다면?”
“거절? 내가 지금 네놈에게 제안하는 줄 아느냐?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네놈은 그냥 죽을 뿐이야!”
파바박!
나는 대쉬를 사용하였다.
나를 죽일 거라고?
그러면 내가 할 행동도 하나뿐이었다.
“어차피 적이 될 거라면.”
서걱!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최초로 ‘탑의 주민’을 살해하였습니다.>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죽이는 게 최선이지.’
탑의 주민이 가진 특성이 어떤 변수를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일.
그러니 상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죽이는 게 최선이었다.
이런 내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바카르란 자는 나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였다.
물론 그의 호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놈이!”
“감히 왕자님을···. 컥!”
거인의 검을 연달아 휘둘렀다.
행운 스탯이 깎일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이미 각오하였기에 나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서걱, 서걱!
그렇게 바카르 왕자 일행은 순식간에 전멸하였다.
활을 한 번도 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
“삼촌, 이래도 괜찮은 거야?”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내 갑작스러운 기습에 왕자 일행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20층 거주민이면서 실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왕족이라고 무조건 레벨이 높으라는 법은 없었다.
“어렵게 잡아서 얻은 아이템을 뺏길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
하윤도 내 갑작스러운 행동을 이해해주었다.
사람을 죽였지만, 어차피 정당방위였다.
그녀도 여린 성격은 아니었기에 사람을 죽인 일로 큰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를 걱정하였다.
상대는 무려 왕의 아들.
그것도 언제 왕위 계승자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왕자였다.
이번 일이 알려진다면 바투루 왕국과의 전쟁은 필연이었다.
‘왕국과의 전쟁이라. 조금 골치 아프게 됐군.’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탑의 주민들과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10층에서 얻는 매출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걸리지만 않으면 돼. 걸리지만 않으면.”
“하긴, 걸릴 일도 없긴 하겠다. 시체도 사라졌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탑의 주민들이 가진 특성을 생각하면 변수가 많긴 하지만, 당장은 괜찮았다.
“바로 이동하자.”
전리품을 수습한 우리는 조금 더 서둘러서 움직이기로 하였다.
다음 목표는 아나콘다.
20층의 세 마리 보스 중, 마지막 남은 보스였다.
‘공격력이 부족해서 과연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해봐야지.’
지금 수도로 돌아가는 건 동선 낭비였다.
그러니 이왕 마경에 온 김에 아나콘다까지 잡고 가리라.
***
바투루 왕가는 대대로 술을 즐겼다.
현 국왕인 바이칸은 특히 애주가 중의 애주가였다.
오죽하면 국정을 돌보는 시간보다 술을 마시는 시간이 훨씬 길 정도였다.
“으하하하!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오늘따라 유독 술맛이 좋구나!”
“더울 때는 더워서 술맛이 좋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원래 술은 마실 때마다 더 좋아지는 법이야. 하하하!”
오늘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바이칸은 그저 술만 마셨다.
그런 바이칸을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바이칸은 왕이었다.
이 나라의 절대 군주였기에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폐하!”
하지만 단 한 명, 예외적인 존재가 있었다.
그를 말리지는 못해도 조금이나마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왕후, 무슨 일이오?”
바이칸을 부른 사람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미녀였다.
분위기만으로도 신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바로 이 미녀가 바투루 왕국의 왕후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어서 장수들을 불러야 해요!”
“장수를 부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요?”
“지금 당신의 아들이 죽었어요! 바카르와의 연결이 끊어졌다고요!”
갑작스럽게 바이칸의 침실을 찾은 왕후는 놀라운 말을 하였다.
왕자, 바카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
이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크게 경악하였다.
바카르는 사실상 왕위 계승자로 인정받던 왕자였다.
그런 왕자의 죽음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쾅!!
바이칸은 의자의 팔걸이를 내려쳤다.
그 역시 아들의 죽음에 초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이칸은 이 나라의 왕이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마냥 놀라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던 것.
그는 바로 궁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찾아라! 내 아들을 해한 자, 누구든 용서치 않으라.”
***
우리 파티 기준에서 아나콘다는 와이번, 트롤보다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강해서 까다롭다는 말이 아니었다.
“안 보여.”
“진짜 뭐야. 왜 이렇게 잘 숨어?”
아나콘다의 특기는 몸통 박치기와 은신이었다.
그리고 은신의 경우, 거의 완벽 그 자체였다.
내 감각으로도 쉽게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금도 거의 30분을 찾았는데 움직임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마치 유령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뒤다!”
물론 아무리 잘 숨어도 공격할 때만큼은 확실하게 감지되었다.
아나콘다의 크기가 워낙 거대하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이 내 몸을 덮쳤다.
18층의 빅웜이 돌진할 때보다 충격이 컸다.
‘하지만 패턴은 의외로 단순하다.’
막기만 하면 됐다.
막기만.
내가 아나콘다의 돌진을 막으면 휘니와 하윤이 공격했다.
빅웜을 상대했을 때와 똑같았다.
내가 탱커를 맡고 두 사람이 딜러를 맡는 셈.
두 사람은 공격 스킬이 따로 없지만 절대 무시 못 할 공격력을 자랑하였다.
강화가 무려 6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윤은 내 검을 빌린 상태였다.
“뒤져! 좀 뒤지라고!”
하윤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냥 검이 아니었다.
거인의 일격을 사용하여 5m 가까이 길어진 검이었다.
쾅! 쾅!
검이 아나콘다에 닿을 때마다 무슨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거인의 검을 사용할 때의 하윤은 어떤 딜러보다도 강해 보였다.
다만 아나콘다를 끝장낼 정도는 아니었다.
“또 도망치려 한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잡을 테니까!”
아나콘다는 일정 피해 이상 입으면 정글이나 늪으로 도망갔다.
이때 색깔이 주변 환경에 맞게 변하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아나콘다가 도망칠 낌새를 보이자,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였다.
확실히 두 사람의 공격력보다 내 공격력이 강하긴 한 건지, 피가 훨씬 많이 튀었다.
‘이놈은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미트 골렘처럼 리젠 될 때마다 잡는 건 힘들 거 같군.’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그래도 무슨 30~40층 보스도 아니고 20층 보스였다.
결국, 한계를 맞이하였다.
즉, 죽었다는 뜻이다.
아나콘다는 죽으면서 마정석과 함께 각종 아이템을 드랍하였다.
물론 그 아이템 중에는 ‘전직 증명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직에 필요한 모든 자격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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