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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하다.
가정용에서 쓰이는 작은 금고.
이 금고 안에 강남파의 비자금이 보관되어 있었다.
물론 많고 많은 비자금 중 일부일 뿐이었다.
그것도 일개 중간 간부가 관리하는 금고.
‘하지만 그래도 강남파 정도면 액수가 상당하겠지.’
나는 금고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감각 스탯이 워낙 높아서, 자주 사용된 번호가 무엇인지 한눈에 보였다.
1, 7, 8, 9.
이렇게 네 개의 숫자였다.
물론 숫자를 네 개로 좁혔어도 여전히 경우의 수는 많았다.
꼭 네 개의 숫자가 정답이란 법도 없었고.
띠리링~
‘어?’
하지만 금고는 의외로 세 번의 시도 만에 열렸다.
내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아무래도 행운 스탯이 이런 곳에서도 영향이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강 검으로 부수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잖아?’
이따위 싸구려 금고쯤은 내 근력과 5강 검이면 부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요란하다는 게 문제이긴 했다.
누가 봐도 탑 등반자의 소행으로 보일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비밀번호를 따낸다면 훨씬 더 조용히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금고 안을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금괴였다.
1kg 크기의 골드바 수십 개가 한쪽에 쌓여 있었다.
그다음은 오만 원권 지폐와 달러, 엔화 등이 눈에 보였다.
하나하나 살필 시간은 없었기에 빠르게 훑고는 가방에 집어넣었다.
‘100억은 족히 넘을 거 같은데.’
부동산이나 무기명 채권까지 합하면 100억은 무조건 넘었다.
실제로 거사를 마치고 안전한 곳에서 계산해보니, 모두 합해 184억이란 돈이 나왔다.
겨우 중간 간부가 관리하는 금고에서 200억에 가까운 돈을 구한 것이다.
“엄청나군.”
이래서 귀환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음지부터 노리는 거 같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듣보잡 소리를 듣는 한국의 조폭조차 이런 큰돈을 만지니 말이다.
‘이 정도 돈이면 환전소를 운영하기에 부족함이 없겠어.’
탑에 모든 걸 건 내가 지구의 재화를 탐내는 이유.
그 이유를 굳이 따져보자면 탑에서의 자본 독점을 위해서였다.
흔히 현질이란 말이 있다.
현금으로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을 구매하는 행위를 말하였다.
유저들 중에는 자산가도 있었고 이런 자산가들은 대개 현질에 대한 욕구가 컸다.
물론 반대로 탑의 아이템을 팔아 현실의 재화를 얻고 싶어 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유저들이라고 탑에 올인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탑 등반에 목숨을 건 사람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은 탑의 삶보다 지구의 삶을 중시하였는데, 만약 이들에게 탑의 재화와 지구의 재화를 바꿀 기회를 제공한다면 무조건 바꾸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탑의 재화와 지구의 재화를 바꾸는 유저가 있을지 몰랐다.
‘그런 유저들을 위해 환전소를 만든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겠지.’
탑의 재화든, 지구의 재화든.
환전소를 만들기만 한다면 천문학적인 수익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말해라.”
나는 지구에서 분신을 소환하였다.
다행히 분신은 문제없이 소환되었다.
아마 내가 탑에 가서도 유지가 될 것이다.
지구에 있을 때도 탑의 분신은 멀쩡히 유지되었으니까.
“네가 할 일은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과 귀환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야.”
분신에게 많은 일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기원현이라고 환전소의 지구 파트를 담당할 인력을 이미 뽑았기 때문이었다.
분신은 바로 그 기원현이란 자를 감시하면 됐다.
물론 주된 임무는 감시보단 정보 수집 쪽이었다.
검술도 수련시킬 생각이지만, 그보다 인터넷을 하는 시간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만큼 정보는 중요했다.
“만약 귀환자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필요에 따라 살인도 각오해야 해.”
탑이 등장한 시점부터 귀환자가 속속 등장하였다.
그중 법이 존재하지 않는 야만의 세계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귀환자도 있었다.
원작에서는 악역이 될 등장인물들이었다.
‘한국은 하필 주인공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악당 천지가 될 나라지.’
귀환자가 많다는 건 축복일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 귀환자 대부분이 빌런이라는 사실이었다.
테러리스트, 연쇄살인마, 사이비 교주, 마약왕까지.
온갖 빌런은 다 등장할 예정이었다.
원작 주인공이 나타나면 다 처단될 테지만, 그 사이에 한국이 입게 될 피해는 엄청날 터.
기회가 생길 때 처단하는 게 좋았다.
***
분신, 건일에게 일을 맡긴 뒤 다시 탑으로 돌아왔다.
휘니와 하윤을 부른 뒤, 두 사람과 함께 하나의 대장간을 찾았다.
대장간에 도착하니 마침 하나가 나를 보며 자랑스럽게 검을 꺼내 들었다.
“어때?”
“이겁니까?”
“그래. 황금 문을 부술 검이야. 이름은 아란달. 거인의 검이란 뜻하지. 어때, 멋있지 않아?”
거인의 검이란 이름치고는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물론 외형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옵션이 무엇입니까?”
옵션이었다.
“쳇. 재미없는 성격이네. 이 검을 보고 옵션부터 묻다니.”
그녀는 잠깐 투덜대더니 이내 옵션을 설명해주었다.
“이 검을 쥐면 근력이 상승해. 사용자의 스탯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15 정도 상승한다고 보면 돼.”
“나쁘지 않군요.”
“그리고 스킬이 하나 있어.”
검을 든 하나가 멀리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스킬이란 걸 사용하기 위함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녀의 몸속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더니, 갑자기 검이 고무고무 열매를 먹은 것처럼 쭉 늘어났다.
단순히 길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가 그 거대해진 검을 너무도 쉽게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콰아아앙!
“이게 바로 아란달의 스킬, 거인의 일격이야.”
거대해진 검이 그대로 나무에 떨어졌다.
1차 전직의 스킬이 아니라, 2차 전직의 스킬이라 해도 믿어질 만큼 위력적이었다.
“와, 아이템에 달린 스킬이 이렇게 좋아? 영웅급 아이템은 진짜 필수네!”
“갖고 싶어.”
하윤과 휘니가 크게 감탄하였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하나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검이라면 2차 전직은 어렵지 않겠군요.”
“그래. 어서 2차 전직해서 거창돌격을 배우라고. 너의 스탯으로 이 검을 든 채 거창돌격을 쓴다면 황금 문도 부술 수 있을 테니까.”
거창돌격이라.
하나는 내가 기사로 전직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정작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인데 말이다.
‘슬슬 직업을 정할 때가 되긴 했어.’
세 마리의 보스를 모두 잡기 전에는 결정을 내려야 할 거 같았다.
내가 선택할 최종 직업을.
***
“이제 보스 잡으러 가는 거야?”
“일단 트라이는 해볼 건데, 아마 쉽지는 않을 거야.”
보스들은 하나같이 공략이 까다로웠다.
지금의 나도 공략이 쉽지 않다고 느낄 정도였다.
“왜?”
“공격력이 부족해서.”
우리 파티는 제대로 된 딜러가 없었다.
나조차도 따지고 보면 딜러보단 탱커에 가까웠으니.
휘니는 애초에 유저가 아니어서 공격 스킬이 없었고.
그나마 우월한 스탯으로 지금껏 고난이랄 게 없었지만, 보스 공략은 또 달랐다.
파티원으로 딜러를 받아들이던가, 새로운 직업을 선택해야 확실하게 공략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일단 해봐야지. 이 검이 있으니, 부족한 공격력은 조금이나마 보완이 됐을 거야.’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마경으로 향하였다.
마경은 11층부터 15층 사이의 정글 맵이 떠오르는 대수림이었다.
바로 이 대수림에 세 마리의 보스가 있었다.
이미 보스들의 위치는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기에 오틴의 날갯짓은 거침없었다.
-키아아아악!
하늘에서 괴성이 들렸다.
물론 오틴의 괴성은 아니었다.
마경의 세 지배자 중, 동쪽 숲을 지배하는 왕, 와이번이었다.
이 와이번이 내가 잡아야 할 보스 몬스터이기도 했다.
“엄청나게 강해 보이는데?”
“저게 그나마 쉽게 잡을 수 있는 보스 몬스터야.”
하윤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로선 도저히 와이번을 공략할 수 없었으니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나도 오틴이 없었으면 별의별 창의적인 공략법을 생각했어야 했겠지.’
주로 유인책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함정이 설치된 곳까지 유인하여 함정으로 비행을 못 하게 막은 뒤에 처리하는 그런 공략법 말이다.
하지만 우리 파티의 은인, 토브칸이 남겨준 오틴 덕에 그런 공략법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그냥 공중전을 치르면 됐으니까.
휘니가 먼저 화살을 날렸다.
푹. 푹.
그녀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큰 타격은 주지 못해도 지속적인 데미지를 주었다.
-크아아아악!
무엇보다 저 분노한 모습을 봐라.
상대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 자체만으로도 휘니의 공격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쾅!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와이번에게 참격을 날렸다.
정통으로 참격을 맞자 크게 분노하는 와이번.
분노한 와이번은 오틴의 날개를 공격하려 했으나, 이때 하윤이 방어막을 펼쳤다.
성좌의 수준이 낮지는 않은지, 와이번의 공격도 효과적으로 막아주었다.
그렇게 하윤이 와이번의 공격을 봉쇄할 때, 나는 재차 참격을 날렸다.
마나가 늘어나서 이제는 참격을 세 번까지 날릴 수 있었다.
연달아서 세 번의 참격을 날리니 와이번이 피를 철철 흘렸다.
-크아아악!
입은 데미지가 컸기 때문일까?
와이번이 다시 이성을 차리고 뒤로 물러나려고 하였다.
사실 바로, 이 패턴 때문에 와이번을 공략하기가 까다로웠다.
게임으로 치면 기껏 반피까지 깎았더니 멀리 도망친 뒤에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공격하는 셈이니.
하지만 나에게는 오틴이 있었다.
“둘 다 내려가. 내가 쫓을게!”
이미 약속된 공략법이었기에 둘은 내가 지시를 내리는 즉시 오틴의 등에서 땅으로 뛰어내렸다.
두 사람 다 내구 스탯이 상당하였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아래에 나무가 많아서 크게 다칠 일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지금이다!’
참격을 사용할 양의 마나는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내겐 아이템이 있었다.
아마 최초일 것이 분명한 영웅급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 영웅급 아이템에 담긴 거인의 일격은 쿨타임이 긴 대신 마나 소모량이 적었다.
마나가 반의반도 남지 않은 지금 상태에서도 사용이 가능할 정도.
-깨애액!
내 거대해진 검은 그대로 정면을 내리찍었고, 정면에 있던 와이번은 미처 그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떨어지는 와이번의 처량한 모습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확실히 죽었다.’
이런 내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와이번이 땅에 떨어지며 큰 소리가 나더니 내 앞에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최초로 ‘와이번’을 처치하였습니다.>
그렇게 와이번은 거인의 일격을 맞고 죽었다.
‘확실히 아이템이 좋긴 좋아.’
새삼 아이템의 중요성을 실감하였다.
강화는 이제 겨우 6강에 불과하였다.
그런데도 이런 엄청난 위력이라니.
만약 10강까지 가면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삼촌, 생각했던 것보다 쉬운데?”
하윤이 다가오더니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와이번을 처음 봤을 때는 막막한 얼굴을 하더니, 막상 쉽게 끝나니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겁을 주었다.
“다음 보스는 어려울 거야. 이것보다 훨씬 더.”
“어떤 몬스터인데?”
“트롤이라고 하면 알 거다. 아주 생명력이 강한 놈이지.”
우리 파티가 다음에 잡을 몬스터는 그 유명한 트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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