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서 나 혼자 재벌-28화 (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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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에 황금 문이?

“2차 전직하고 오겠습니다.”

“조금만 더 해보면 안 돼? 잘하면 될 거 같은데···.”

“전직하면 더 강해질 테니, 그때 오는 게 더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이 합리적으로 들렸는지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2차 도와줄게. 마정석이 있다고 했지? 나에게 줘. 내가 영웅급 아이템을 만들어줄게. 영웅급 아이템이 있으면 보스 몬스터 잡기 더 쉬워질 거 아니야?”

황금 문을 부수고 난 뒤에 아이템을 제작해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외였다.

“그러면 저야 좋습니다만···.”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

그러면 그렇지.

아무 이유 없이 호의를 베풀 리는 없었다.

“저 안에서 뭐가 나오든 하나는 나에게 줬으면 좋겠어.”

그녀의 말을 들으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18층에서 있었던 토브칸과의 일이 떠올랐던 것.

물론 옛 기억이라고 해봐야 며칠 전의 일이었다.

“좋습니다.”

“시원해서 좋은데?”

“정보를 줬는데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리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냉정한 계산을 하였다.

‘만약 아이템이 하나만 나온다면 그때는···.’

온갖 고생을 하고 황금 문을 뚫었는데 보상을 못 얻는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땐 당연히 아이템을 내가 독점할 것이다.

하나가 이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보상을 해주던가, 아니면 죽일 수밖에.

“검을 만들어주십시오.”

“알았어. 크고 단단한 검을 만들어줄게.”

“단단한 건 좋지만 그렇게 클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잡은 몬스터 중 가장 강했던 몬스터, 빅웜.

빅웜의 마정석을 하나에게 주었다.

크고 단단한 것보다 어떤 옵션이 달릴까 그게 기대되었다.

‘이왕이면 공격 스킬이 달렸으면 좋겠는데···.’

방어력이 부족해서 낭패를 본 경험은 없었다.

반면 외뿔 독수리를 상대할 때도 그렇고 빅웜을 상대할 때도 그렇고 공격력이 부족해서 낭패를 본 경험이 많았다.

기사가 된다면 달라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기사가 된다고 공격력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검사는 기본적으로 공격과 방어가 적절하게 밸런스 맞추어진 직업이었다.

그건 기사 역시 마찬가지.

아이템으로 공격력을 보완한다면 내 입장에선 최고였다.

“그런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거 같습니까?”

“넉넉하게 이틀 정도는 잡아야 하지 않겠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유저인 내게 이틀은 너무 길었다.

하지만 다그친다고 시간이 줄어들 리는 없는 일.

이틀 동안 어떤 걸 하는 게 좋을까?

바로 보스를 잡으러 가고 싶지만 휘니와 하윤이 10층에 있었다.

검술은 분신이 꾸준히 수련하고 있었으니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사냥으로 레벨 업 하는 것도 별로 메리트가 없었다.

‘할 게 없다면, 잠깐 지구의 상황을 보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이제는 지구의 일도 신경 쓸 때가 됐다.

탑이 열린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갔다.

그 말은 즉, 다음 기수 유저들이 곧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유저란 고객이자 라이벌이니 그들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슬슬 ‘귀환자’들이 등장할 시기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귀환자가 갓 지구로 귀환할 때를 노린다면, 어떤 귀환자든 내가 죽일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야.’

아직은 그런 위험한 시도를 할 생각이 없었다.

아직은.

***

마스다 켄타로.

그는 애니와 만화를 좋아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본 청년이었다.

그리고 어느 일본 청년이 안 그렇겠냐마는, 새로운 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갓세계물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확신하였다.

꿈과 희망이 넘치는 판타지 세계.

마왕의 침략을 받은 세계는 용사를 원하고 있었다.

켄타로로서는 지구에서 소환된 자신이 바로 그 용사가 될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그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생에 처음 배워보는 검술을 엄청난 속도로 체득하였다.

남들은 10년 배울 것을 그는 1년 만에 체득할 정도였다.

“겨우 그런 실력으로 우리의 파티에 끼고 싶다고? 100년은 이르다, 애송이.”

“마스다 씨. 당신은 천재가 아니에요. 그냥 배움이 남들보다 조금 빠를 뿐이죠.”

하지만 정작 그는 진짜 ‘용사’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용사 파티의 소속 멤버들은 그야말로 천재 중의 천재였다.

켄타로가 남들보다 몇 배 빨리 배운다면, 용사라 불리는 이들은 수십 배, 수백 배 빨리 배웠다.

그야말로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들이었다.

심지어 그는 용사 파티의 성녀에게조차 검술로 밀렸다.

그리고 그 말은 사제조차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내 재능은 검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이런 상황 속에서 켄타로는 포기하지 않았다.

검사로서 인정받지 못하자, 그는 마법사가 되기로 하였다.

여전히 그는 자신이 주인공이란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단지 검사의 재목이 아니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로서 그는 더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들보다 빨리 익히는 것은 여전했지만 불의 마법이든, 물의 마법이든 그 어떤 마법에서도 특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모든 마법을 다 잘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모든 속성이 어중간하였다.

마법사가 되었을 때는 용사 파티를 만날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검사 겸 마법사 즉, 마검사인데도 그랬다.

용사 파티는 그동안 더 성장했지만, 그의 실력은 마법 몇 개 배운 거 빼고는 정체했기 때문이다.

‘검도 마법도 안 된다면 사제를 해보자.’

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의 직업으로 가장 적합한 건 사제였다.

이세계로 그를 부른 게 누구겠는가.

신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신이 그를 총애한다는 뜻과 다를 게 없었다.

사제는 신의 총애를 받을수록 강해졌다.

신의 총애를 받은 그가 사제가 된다면 성자로 불리게 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같은 그의 기대는 또다시 배신당하였다.

그는 신에게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였다.

신에게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건 다른 의미로 놀라웠다.

온갖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조차 티끌만큼의 관심은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류를 배신하여 마왕의 졸개가 된 인간에겐 분노, 연민 등의 형태로 관심을 표출하였다.

그런데 신은 그에게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악플보다 두려운 것이 무플이라는 말처럼, 그는 이 세계에서 신의 무관심을 받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빌어먹을! 왜 나에게만 이러는 거야!”

화가 났다.

자신을 이세계로 불렀으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닌가.

신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던 그는 이내 흑화하였다.

‘이렇게 된 김에 마왕의 세력에 합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하지만 그는 마왕의 졸개가 되는 것도 실패하였다.

그가 여기저기에서 헤매는 사이 용사 파티는 켄타로 없이 마왕 사냥에 성공하였다.

세계는 켄타로의 개입 없이도 평화를 되찾은 것이다.

켄타로는 절망에 빠졌다.

용사 파티는 각국의 초청을 받아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켄타로에게 100년은 이르다며 굴욕을 주었던 전사는 한 나라의 건국 왕이 되었다.

반면 켄타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중간한 검술, 어중간한 마법···.

어디 가서 무시당할 실력은 아니었으나 그는 야망이 너무 컸다.

계속해서 이곳저곳 배회하며 어떤 곳에도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녔으니 그의 실력은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였다.

‘아, 회귀 마렵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다를 거 같았다.

자신을 무시하던 전사를 꺾는 건 힘들겠지만, 적어도 100년은 이르다는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 상냥하다는 성녀의 입에서 ‘마스다 씨, 당신은 재능이 없어요.’라는 말이 나올 일도 없으리라.

그리고 그는 당당한 용사 파티의 일원으로서 마왕을 쓰러뜨린 영웅으로 불리게 될 터.

어쩌면 켄타로도 나라를 세우거나 제국 황녀와 결혼하여 변경백 같은 고위 귀족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과거로 회귀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다른 형태의 기적은 일어났다.

“익숙한 천장이다.”

그가 평소에 사용하던 침실과 비교하면 층고가 대단히 낮았다.

곳곳에 거미줄과 곰팡이가 핀 것도 보였다.

A급 용병의 침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침실이었다.

노예들이나 살 법한 작고 허름한 곳이다.

하지만 켄타로는 이 침실이 낯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 시절 그가 살던 원룸의 천장이었다.

“여기는 설마, 지구?”

이세계로 갔을 때도 모든 게 갑작스러웠다.

아무런 조짐도 없이 눈을 뜨니 이세계였다.

지금도 그랬다.

어떤 조짐도 없었건만, 지구에서 눈을 떴다.

‘나쁘지 않아.’

딱히 지구 생활이 그립거나 했던 건 아니었다.

지구에서 좋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약자였다.

가족에게조차 푸대접받았었다.

반면 이세계에서는 어디에서든 눈치 보지 않을 정도의 실력은 갖췄다.

용사 파티에서만 무시당하였을 뿐, 귀족이 아니라면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가 오히려 좋다고 한 이유는 지금 그에겐 이세계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도 더는 약자 취급을 당할 일은 없었다.

약자 취급은커녕 누구도 그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으리라.

여기는 용사도 마왕도 없는 세상이었으니까.

‘이번만큼은 반드시 주인공이 되어주마.’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무시당하는 삶은 이제 끝이었다.

지구에서만큼은 반드시 주인공이 되리라.

모두가 주목하는 그런 주인공이.

‘문제는 내 힘이 완전히 초기화되었다는 건데.’

일단 휴대폰으로 날짜부터 확인하였다.

시간은 겨우 3개월이 지난 상태였다.

그가 이세계에서 보낸 시간이 10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지구의 시간은 거의 멈춰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근데 이건 뭐지?”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한 그는 이질감을 느꼈다.

이상한 단어가 너무 많이 보였다.

귀환자라던가. 탑이라던가. 능력자라던가.

무슨 게임 사이트도 아니었다.

평범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심지어 뉴스에서조차 이런 단어가 흔히 보였다.

“탑이라.”

켄타로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불리게 될 무대.

그 무대는 바로 탑이었다.

***

“다시 돌아왔군.”

“깜짝이야. 삼촌인 줄 알았네.”

전이 스킬을 타고 10층 포탈로 다시 돌아온 하윤은 갑자기 말을 건 사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녀의 삼촌과 똑같은 외형의 사내였기 때문이다.

물론 사내의 정체는 건우의 분신인 건일이었다.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보스 잡고 있었다.”

“리젠 될 때마다 잡는 거예요?”

“그렇다.”

하윤은 혀를 내둘렀다.

분신이라지만, 매일 보스 사냥만 하는 게 불쌍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그녀와 대화하는 이 상황에서 검을 휘두르며 검술까지 수련하고 있었다.

‘근데 그새 검술 실력이 엄청나게 는 거 같네. 검이 현란하잖아?’

24시간 수련이 효과가 있기는 한 거 같았다.

건우의 재능이 뛰어나서 분신에게까지 그 재능이 이어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도 빨리 강해져야 할 텐데···.’

고작 분신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건우의 분신조차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분신이 이런데 본신인 건우야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건우를 이길 필요는 없었으나, 건우의 동료로 민폐를 끼치기 싫었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건우가 사냥할 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건우의 실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나는 전이 스킬이 아니라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존재야.’

건우가 황금 문이란 곳을 혼자 간 것도 그 때문이리라.

하윤은 한숨을 내쉬며 지하 던전을 빠져나왔다.

이럴 시간에 수도로 가서 검술이나 수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두 분, 혹시 한국인이신가요?”

신전은 늘 그렇듯,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원래는 탑의 주민들밖에 없었지만, 최근 들어 탑을 찾는 사람이 새로 생겼다.

바로 유저들이었다.

신전을 나온 그녀를 붙잡은 것도 바로 그 유저였는데, 그녀는 그들이 한국인인 걸 단번에 알아봤다.

“저는 한국 유저 랭킹 1위인 신은규라고 합니다.”

“랭킹 1위요?”

하윤은 자신을 붙잡은 한국인 중, 센터에 선 사내가 한 말을 듣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세계 최강의 유저를 삼촌으로 둔 그녀가 듣기엔 그저 황당하게만 느껴지는 말이었다.

‘듣보잡 주제에 랭킹 1위는 무슨.’

랭킹 1위는커녕 2위도 안 될 것이다.

2위는 당연히 그녀일 테니까.

1위야 말할 것도 없이 건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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