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서 나 혼자 재벌-26화 (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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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을 굴복시키다.

“다시 안 볼 것처럼 구시더니, 저를 왜 찾아오신 겁니까?”

“의뭉 떨지 마. 승리의 검이 자네에게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

피식.

왕족이라 그런지 허술한 면이 있었다.

협상 시작부터 자신이 바라는 걸 바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하지만 나로선 나쁠 게 없는 태도지.’

잔머리 굴렸으면 괜히 짜증만 났을 터.

저리 나온다면 나야 좋았다.

“이 검을 승리의 검이라 부르나 봅니다.”

인벤토리에서 칼바테인이란 아이템을 꺼냈다.

그러자 양주르 공작이 침음을 삼키며 물었다.

“무엇을 원하지?”

“일단, 땅을 원합니다. 제가 네시아 왕국에서 사업을 하려는데 지금 가진 땅만으로는 너무 작아서 말입니다.”

모험가 거리의 부지는 일개 개인이 보유한 부동산치고는 엄청난 넓이였다.

숙소 시설만 네 개였고 그 숙소 시설에 포용할 수 있는 인원이 수백 명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유입될 유저 수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었다.

이것에 몇 배.

아니 수십 배는 필요하였다.

“남문 외성의 땅을 주지.”

“시원시원하군요.”

“원하는 건 그게 끝인가?”

나는 그에게 칼바테인을 건네주었다.

영웅급 아이템이라면 돌려주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저 검은 네시아 왕국에서나 가치 있지, 나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러면 이만 일어나겠네.”

나와 같은 곳에 있다는 사실이 불쾌하였는지, 협상이 끝나자 그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붙잡았다.

“사병도 주십시오.”

“뭣이?”

“양주르 공작 가문의 사병이 탐나던데, 저에게 주시길 바랍니다.”

“이미 거래가 끝났을 텐데?”

겨우 땅만 받고 끝내는 건 섭섭하였다.

땅은 어디까지나 칼바테인을 주고 얻은 것뿐이니.

“목숨값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고는 나를 도발하듯, 이와 같이 말하였다.

“사병들을 자네에게 준다고 해서 사병들이 자네의 명령을 따를 것으로 생각하나?”

“여전히 오만하군요. 당신의 명령은 무조건 따랐는데 왜 저의 명령은 따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맹목적인 충성심 같은 건 나도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저 용병으로 고용하려는 것이다.

돈이라면 누구도 싫어하지 않을 테니까.

“···100명의 소속을 자네에게 옮겨주지. 물론 그들은 노예가 아니니 그 이후는 자네의 역량에 달려있다.”

“협상 타결이군요.”

“다시는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양주르 공작은 그리 말하더니 이내 휙 몸을 돌렸다.

마치 나를 싫어하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싶었다.

***

“이곳이 10층···!”

조던 매런은 감탄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인간의 문명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물론 6층부터 인류의 문명이 있었던 ‘흔적’은 찾을 수 있었다.

통나무집이 간혹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전에 보았던 집들은 전부 폐허였다.

사람 한 명 살지 않는 폐허.

반면에 지금 그들의 눈에 보이는 10층의 집들은 사람으로 빼곡하였다.

“여기부터 모험가 거리입니다.”

“곳곳이 공사 중이군요.”

“예. 모험가분들이 사용할 건물들을 새로 건축하고 있습니다.”

포탈에서 수도까지 조던 매런 파티를 안내하였던 병사는 모험가 거리를 소개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대로 돌아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여관부터 찾자.”

“식사가 먼저지! 고기 좀 먹어보자, 고기!”

“여관에서 식사도 나오잖아요. 리더 말처럼 여관부터 찾는 게 맞죠.”

조던 매런은 잠시 방황하다가 숙소를 찾았다.

간판이 있었기에 숙소를 찾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숙소는 유럽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중세풍 여관이었다.

“시설은 기대해선 안 되겠지?”

“서비스도 기대하지 마. 인사도 안 해줄 가능성이 크니까.”

건물 형태만 중세인 것이 아니었다.

네시아 왕국 자체가 중세에 머물러 있었다.

현대식 서비스는 기대할 수 없으리라.

“모험가님들 어서 오세요. 휘니 여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여관 주인으로 보이는 여인은 활기찬 인사로 조던 매런 파티를 반겨주었다.

심지어 여인은 현대인인 조던 매런 파티가 보기에도 엄청난 미인이었다.

“하루 묵고 싶은데, 방 있습니까?”

“예, 1인실, 2인실, 4인실 이렇게 있습니다.”

“4인실은 얼마죠?”

카르마를 최대한 아껴야 해서 그나마 가장 저렴할 거 같은 4인실을 물었다.

“1박에 5 카르마입니다.”

“5 카르마요? 한 방에 5 카르마라는 거죠?”

조던 매런은 눈을 크게 떴다.

놀라웠다.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라, 너무 싸서 놀랐다.

그들은 현재 따뜻한 잠자리가 너무도 그리운 상태였다.

1박에 각자 5 카르마씩, 아니 10 카르마씩 든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4명이 5 카르마니, 저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1인실은 얼마입니까?”

“2 카르마입니다.”

“하루에 2 카르마라.”

정말 저렴했다.

그들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카르마를 생각하면 2 카르마는 그리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각방 쓰자. 별로 비싸지도 않잖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같이 자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곳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딱 봐도 안전해 보이는데 뭐가 그리 걱정이야.”

“지금까지 탑에서 우리가 겪은 일들을 벌써 잊은 거예요?”

누구도 비싸다는 이유로 4인실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만큼 여관의 숙비는 저렴한 편이었다.

다만 그들은 ‘치안’을 걱정하였다.

탑의 경험으로 사람에 대한 불신이 쌓인 상태였기에 안전을 걱정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였다.

결국, 2인실 세 방을 잡고 파티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조던 매런이 1인실을 쓰는 거로 정해졌다.

그렇게 조던 매런 파티는 휘니 여관이 개관하고 첫 이용자가 되었다.

***

“와, 진짜 행복해서 미칠 거 같아요.”

“나도. 그냥 여기서 살고 싶을 정도야.”

“스튜도 맛있지 않나요? 심지어 양까지 많아!”

조던 매런 파티는 휘니 여관에 푹 빠졌다.

사실 지구의 호텔 아니, 모텔 정도만 되도 휘니 여관보다 훨씬 시설과 서비스가 좋았다.

침대도 딱딱하였고 방은 비좁았다.

목욕조차 무려 4 카르마나 주고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건 상대적인 법이었다.

지구에서는 돈을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받아도 묵지 않았을 여관이지만, 2주 동안 생지옥을 경험한 조던 매런 파티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계속 이러고 있고 싶다.”

“저도요. 여기 있으면 지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할 거 같아요.”

“1,500 카르마나 주고 지구에 가느니 여기서 쉬는 게 낫긴 하지.”

“일단 하루 아니, 이틀만 쉬어요. 아직도 피로가 안 풀렸어요, 저.”

10층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던 조던 매런 파티였다.

오랜만에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자 한없이 늘어졌다.

리더인 조던 매런조차 침대에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 역시 지친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보는 좀 구하긴 해야 할 텐데.’

하루를 꼬박 쉬고 10층에서 보내는 두 번째 날이 되자 조던 매런은 설렁설렁 움직였다.

10층을 공략할 정보를 얻어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정보는 의외로 쉽게 구하였다.

NPC들에게 물으니 곧바로 정답이 나왔던 것이다.

“11층으로 가고 싶다고요? 그러면 자격의 증표라는 아이템을 구하시면 돼요. 자격의 증표를 들고 신전에 가시면 11층으로 갈 수 있답니다.”

“자격의 증표? 그건 어디서 얻는지 알 수 있을까요?”

“신전에 가셔서 자격을 증명하면 자격의 증표를 얻을 수 있어요.”

“자격이라.”

여관 주인의 말을 듣던 조던 매런은 속으로 생각했다.

자격을 증명하라는 말이 마치 퀘스트처럼 느껴진다고 말이다.

‘괜히 NPC들이 있는 게 아니었군.’

확실히 10층은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공략해야 할 거 같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판 관리겠네요.”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NPC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시아 왕국의 사람들과 사이가 나빠지면 그들만 손해였으니까.

“근데 천자쥔 그놈은 어디서 뭘 하는 걸까요?”

“그놈이라면 이미 11층까지 갔을 수도 있다.”

“에이. 설마 그러려고요?”

조던 매런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생각하였다.

10층의 난이도가 어떻고 간에 인간적으로 2주 만에 평화를 맞이하면 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천자쥔이라면 혹시 몰랐다.

“당장 11층에 가지 않았더라도 신전의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안 보일 리 없잖아?”

정보를 얻겠다고 수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런데도 천자쥔은커녕 그의 수하인 중국 유저들조차 단 한 번을 마주치지 못했다.

조던 매런으로선 천자쥔이 그들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천자쥔 파티는 앞서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퇴보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천자쥔 파티는 현상금 수배범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왕족 시해 미수범이라는데?”

“헐. 왕족을 죽이려고 했다고? 진짜 미친놈이군!”

“그런데 그놈이라면 왠지 그래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아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이잖아요.”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

하지만 조던 매런 파티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어쨌든 꼴 좋게 됐어. 왕족 시해 미수범이라면 신전의 퀘스트도 못할 거 아니야?”

“NPC들 지능이 인간처럼 높은 거 같으니, 아마 그러지 않을까?”

“크크. 가장 먼저 10층에 올라온 주제에 가장 늦게까지 10층에 남겠어.”

그들이 그렇게 기뻐할 때, 새로운 유저들이 10층으로 올라왔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인으로 구성된 파티가 수도에 들어오자 조던 매런 파티는 휴식을 끝냈다.

랭킹 1위 파티인, 천자쥔 파티가 낙오되었어도 선두권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

유저들이 속속 들어오자 나는 현재 사업을 시작한 휘니 여관, 하윤 잡화점, 건우 대장간의 관계자들을 불렀다.

매출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민 사장을 보고 느꼈지만, 유저들 씀씀이가 아주 장난 아니야. 하하하!”

“매출이 잘 나왔습니까?”

“오늘 하루 동안 내가 무기를 몇 개 판 줄 아는가? 열 개를 팔았네. 열 개!”

“그러면 대략 300 카르마 정도 나온 겁니까?”

“정확히는 320 카르마 나왔네. 하하!”

대장간을 책임진 장하룬의 보고에 나는 작게 감탄하였다.

320 카르마면 내가 가진 자산에 비교하면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도에 있는 유저 파티의 수는 겨우 세 개뿐이지.’

천자쥔인지 뭔지 하는 중국인 파티까지 포함해도 10층까지 도달한 유저 파티의 수는 4개에 불과하였다.

숫자로 따지면 30명 정도에 불과한 것.

그런데 대장간의 하루 매출이 벌써 수백 카르마였다.

앞으로의 매출이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다른 사업장도 마찬가지였다.

휘니 여관을 책임지는 사라란 이름의 여인이 가슴을 내밀며 자랑스럽게 보고하였다.

“오늘 매출은 300 카르마예요. 어제보다 무려 100 카르마가 늘었어요.”

“세 파티에서 300이라. 한 파티당 거의 100 카르마 정도씩 오르는 셈이군요.”

생각했던 것보다 유저들의 자금력이 대단한 거 같았다.

겨우 여관에서 하루에 100 카르마씩 사용하다니.

우리 파티처럼 바로바로 다음 층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각 층에서 노가다 사냥을 하고 넘어와서 그런 듯싶었다.

잡화점의 성과도 놀라웠다.

잡화점에서는 물건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했는데, 현재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잡화점에서는 오늘 하루 동안 매출이 대략 2,700 정도 나왔습니다.”

270도 아니고 무려 2,700.

다른 사업장과 비교하면 거의 10배에 달하는 매출이었다.

하지만 잡화점이 파는 물건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룬의 인기가 좋았나 보군요.”

“예. 웬만한 유저들은 10개 이상씩 구매했다고 봐도 과장이 아닙니다.”

나는 나 자신을 굉장히 양심 있는 상인이라 자부하였다.

그건 잡화점에서 책정한 룬의 가격만 봐도 그랬다.

저층에서 룬조각을 매입할 때 나는 2 카르마에 매입하고는 했다.

룬조각 9개가 모여야 룬 하나였다.

즉, 룬 하나의 가치가 18 카르마 정도인 셈.

나는 이 룬을 대략 50 카르마에 팔고 있었다.

3배 정도밖에 이윤을 안 챙기고 있으니 이 정도면 양심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벌써 이 정도 매출인데, 앞으로 수백, 수천 명의 유저가 유입된다면 고층에서 사냥하는 것보다 더 엄청난 수익이 벌리겠군.’

심지어 그 유저들은 꽤 오랜 시간 10층에 머물 것으로 보였다.

11층의 난이도는 상당했고, 10층은 질 좋은 사냥터가 많아 레벨 업 하기 쉬운 층이었기 때문이다.

각종 편의 시설을 제공하는 도시가 존재하기도 했고 말이다.

‘유저들이 10층에서 시간을 보낼 동안, 서둘러서 20층을 가야겠어. 20층에도 기반을 마련해놓으면 먼 훗날, 더 압도적인 자본을 갖게 될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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