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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서 나 혼자 재벌-24화 (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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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딴 게 랭킹 2위?

양주르 공작 가문의 사병까지 동원되자 전투는 일방적으로 전개되었다.

병사 수십이 크게 다쳤지만, 대세에 큰 영향은 없었다.

마침내 보스, 건일이 쓰러지자 천자쥔은 자신의 파티를 확인하였다.

파티원들은 기진맥진하여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입고 있는 장비도 누더기 그 자체였다.

10층까지 오면서 어렵게 모았던 장비를 거의 다 잃은 셈이었다.

그는 파티의 상태를 확인하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강하단 이야기는 없었잖아!”

민건우란 자가 이렇게까지 강한 줄 알았다면 이런 식으로 공격하지 않았을 거다.

물론 공격을 아예 안 했을 거란 이야기는 아니었다.

천자쥔은 자기 위에 다른 유저가 있는 걸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단, 이런 식의 무모한 공격은 하지 않았을 터.

어차피 상대는 한 명이니 철저하게 준비한 뒤에 공격하려 했을 거다.

하지만 그와 동맹을 맺은 양주르 공작은 민건우를 과소평가하였다.

직업은 검사에 레벨이나 아이템 수준은 형편없다는 식으로 깎아내린 것이다.

“지금 성낼 사람이 누군데! 네놈들이 이렇게 약한 줄 알았으면 공작 각하는 네놈을 이용하려 하지도 않았을 거다!”

천자쥔이 소리를 지르자, 고록만이란 사내가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탑의 주민인 고록만이 보기에 민건우나 천자쥔이나 똑같은 유저였다.

단지 민건우가 열흘 정도 일찍 10층에 도착했을 뿐.

하지만 그 열흘이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불러일으킬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다.

‘양주르 공작 각하님께 이 일을 어찌 보고한단 말인가!’

그러던 중 갑자기 병사들 쪽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건일을 포박하던 병사들이 소란을 일으킨 것.

“헉!”

“뭐, 뭐야? 이놈 어디 갔어!”

고록만이 신경질을 내며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의 부관이 말하였다.

“놈이 사라졌습니다!”

“뭐, 뭣이?”

그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부관이 가리킨 곳을 보니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매우 어렵게 사로잡았던 민건우란 유저가 갑자기 뿅 하고 사라진 것이다.

‘이 무슨 개 같은 일이야!’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양주르 공작의 사병을 무려 100명이나 동원하였다.

사망자는 없었으나, 부상자가 스무 명이었다.

무엇보다 수도 바로 근처에서 사병을 동원한 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일이었다.

양주르 공작도 엄청난 각오를 하고 작전을 개시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작전이 실패했다니?

“민건우, 그 자식 어디 갔어?”

천자쥔도 민건우가 사라진 걸 확인했는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고록만이 양주르 공작의 힐책을 걱정했다면 아마 그는 민건우의 보복이 두려웠을 것이다.

혼자서 그들 파티 전체를 압도하던 민건우다.

병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를 게 없으리라.

당연히 그의 보복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록만은 천자쥔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마침 양주르 공작이 현장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물었잖아! 입이 있으면 빨리 대답해보라고!”

천자쥔은 인내심도 없고 눈치도 없었다.

그는 양주르 공작이 등장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실력도 없는 자가 그리 구니 더 얄밉게 느껴졌다.

“이놈이 감히! 누구 앞이라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 새끼 어디로 사라진 거냐고!”

그 광경을 바라본 양주르 공작은 속으로 혀를 찼다.

‘유저 놈들. 하나같이 건방지기 짝이 없군.’

민건우란 자만 유별난 줄 알았다.

하지만 천자쥔이란 자의 태도를 보면 그게 아니었다.

유저라는 놈들은 왕족을 대하는 예절을 모르는 듯싶었다.

“그래서 놈은 어떻게 되었나. 당연히 죽었겠지?”

천자쥔의 태도 따위는 당장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지금 알아야 할 것은 민건우의 생사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처구니없었다.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 그게 무슨 소리지?”

양주르 공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 잡은 거면 못 잡은 거지, 사라졌다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유저가 유저를 잡으면 시체가 사라진다고 들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런 이유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적어도 민건우를 확실하게 죽였다는 뜻이니.

“아이템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은 걸 보면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애초에 마무리를 지은 건 저희입니다. 유저들은 체력이 다해서 마지막에는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양주르 공작의 얼굴에 서서히 노기가 띄어졌다.

“그래서 결론이 뭐라는 거지?”

“귀환석이나 특수 룬을 사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같은 말을 듣자 양주르 공작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유저 여덟 명에, 사병 백 명을 동원하였어! 그런데 고작 유저 한 놈을 어쩌지 못했다고?”

상대가 2차 전직까지 한 유저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상대는 고작 1차 직업, 그것도 검사라는 지극히 평범한 직업의 유저였다.

설령 상대에게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고 해도 100명의 사병은 각자 특성도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막는 게 정상이었다.

사병들이 막지 못했다면 유저들이라도 무언가 해줬어야 했다.

“저놈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레벨도 터무니없이 낮고 스킬도 거의 없었습니다.”

“지랄! 우리가 유저 중에서 가장 레벨이 높아! 애초에 스킬이 없었던 건 놈도 마찬가지였어!”

서로가 서로를 탓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모습은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놈들을 믿고 일을 벌였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굴욕을 감수해서라도 민건우를 회유했을 터.

양주르 공작은 막심한 후회를 하였다.

하지만 이미 쏘아진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었다.

후회할 게 아니라 대책을 생각해야 할 때였다.

“공작 각하! 신전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민건우 유저 일행이 지하 던전에서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 젊은 영애들을 말하는 거냐?”

“민건우 본인도 그 자리에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

민건우 일행이라 해서 휘니와 하윤을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설마 민건우 본인도 두 사람과 함께 있다니?

‘놈이 자신의 파티까지 동원해서 나를 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그럴 일이 있을까 싶지만, 상대는 유저였다.

왕족을 상대로 감히 복수를 결심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

천자쥔은 눈치가 빨랐다.

처음엔 자신의 무능과 책임을 고록만에게 돌리는 것에 집중하였다.

이는 본심이기도 했다.

고록만이 정보를 제대로 주었다면 훨씬 더 잘 싸웠을 거다.

완벽한 준비를 갖추었다면 그리 무능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상황의 심각함을 느꼈다.

민건우가 사라진 게 양주르 공작 측의 의도가 아닌 걸 그도 알아차린 것이다.

‘만약 놈에게 순간이동 같은 스킬이 있어서 이 자리를 벗어난 것이라면?’

그의 생각이 맞는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앙심을 품은 민건우가 그를 보복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도 자신보다 한참 나약한 상대라면 두말할 것도 없으리라.

“모두 이동한다.”

“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얌전히 나를 따라.”

천자쥔의 파티는 조용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양주르 공작과 그의 최측근은 상황이 심각해서인지 천자쥔에게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어딜 가는 겁니까?”

“놈이 알지 못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 한다.”

당분간은 도망자 생활을 해야 할 거 같았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던 그도 민건우의 보복만큼은 두려웠다.

‘어차피 놈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 곧 10층을 떠날 거야.’

민건우가 10층에 정착할 의도로 엄청난 크기의 부동산을 매매했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그래서 천자쥔은 도망자 생활이 금방 끝날 것으로 생각하였다.

물론 그렇게 도망자 생활을 하는 동안 랭킹 1위, 아니 2위라는 기록을 다른 파티에게 뺏기게 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양주르 공작은 천자쥔 파티가 도망치는 걸 보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천자쥔 같은 피라미가 아니었다.

신전에서 나타나 수도로 오고 있다는 민건우의 존재만 신경 쓰였다.

“내가 유저 놈이 두려워서 도망쳐야 한다는 말이냐?”

사태의 심각함은 양주르 공작도 인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평생을 왕족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유저 따위의 보복이 무서워 도망치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하, 그자의 실력은 일개 유저 수준이 아닙니다.”

“심지어 그자는 저희를 상대할 때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스킬이 없는 자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측근들이 거듭해서 그와 같이 권유하자, 양주르 공작은 더는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어딜 급하게 가십니까?”

“네놈은!”

그가 자신 소유의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익숙한 얼굴의 세 사람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물론 그 세 사람은 민건우와 그의 일행이었다.

“네놈이라···. 지금 그런 태도를 보일 때가 아닌 거 같은데,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된 거 같습니다.”

민건우가 조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양주르 공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자의 목을 베어라!’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목이 효수될 사람이 양주르 공작, 본인이 될 수도 있었기에 그는 성격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감히 내게 이런 모욕을 주다니!’

분노에 치를 떨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함을 가장한 그의 모습은 실로 분노 조절 잘 해의 표본이 아닐까 싶었다.

***

양주르 공작과 그의 수하들이 나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된 건 확실해 보였다.

나는 양주르 공작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사과는 할 생각이 없는 거 같았다.

“당신을 따르는 고록만이란 자가 병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똑똑히 봤는데 발뺌을 하시려는 겁니까?”

내 말을 들은 양주르 공작이 뒤를 돌아보더니 누군가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을 받은 사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사내가 바로 사병을 지휘하던 장수, 고록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양주르 공작은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더니, 뻔뻔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계속 발뺌을 하시겠다?”

“자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네. 나는 이 나라 왕위 서열 1위의 왕족이야. 국왕 폐하조차 내게 무례를 저지르지 못한다는 걸 알아뒀으면 좋겠군.”

나는 조소를 흘렸다.

양주르 공작이 국왕의 삼촌인 것?

그건 네시아 왕국의 사람들에게나 중요한 문제였다.

“쉽게 갈 수 있는 걸 어렵게 가려고 하시니, 저로서도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사과한다면 용서해줄 의향도 있었다.

물론 말로 사과한다고 용서해준다는 뜻은 아니었다.

진실한 사과라면 응당 ‘물질’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양주르 공작의 태도를 보니 용서해줄 가치도 없어 보였다.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물론 그를 당장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난 그렇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직접 죽이지 않아도 복수할 방법은 많았다.

“마치 나를 협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군.”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님을 곧 알게 될 겁니다.”

양주르 공작이 눈썹을 부르르 떨었다.

겉으로 봐서는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나는 그에게서 분노 말고 다른 감정을 느꼈다.

바로 ‘두려움’이란 감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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