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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딴 게 랭킹 2위?
중국인 유저들로 이루어진 한 파티가 방금 막 10층에 나타났다.
9층에서 10층으로 넘어온 중국인 파티의 리더는 천자쥔이란 사내였다.
그는 대단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였다.
탑의 유저가 되고 나자, 이 같은 생각은 더욱더 확고해졌다.
모두가 겁에 질려있을 때, 그는 저돌적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수많은 업적을 얻어냈다.
업적 덕에 많고 많은 유저 사이에서 가장 앞서나갈 수 있었다.
“이번 시즌의 유저들은 실력이 낮은 건가? 예언이 있고 거의 2주 가까이 지나고서야 들어오다니.”
“심지어 겨우 여덟 명이야.”
“처음 민건우란 자를 봤을 땐, 이번에 오는 유저들이 가장 특별할 줄 알았는데···.”
“그냥 그자와 그자의 파티만 특별했던 거지.”
천자쥔의 파티는 10층에 올라와서 탑의 주민들을 봤을 때 매우 놀랐다.
그들 앞에 나타난 탑의 주민들은 하나로 통일된 복장을 한 네시아 왕국의 군대였다.
탑에서 군대는 당연히 본 적이 없었고 애초에 유저 말고 탑의 주민을 본 적도 처음이었으니 놀람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왕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더 놀랐다.
이건 마치 게임의 장르가 바뀐 거나 다름없었다.
극한의 서바이벌 게임에서 MMO RPG 게임으로 말이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살짝 놀라기만 했을 뿐, 천자쥔은 기분이 나쁘거나 초조함 같은 걸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거란 생각에 그답지 않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병사들의 잡담을 몰래 엿듣던 그는 충격적인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처음이 아니라고? 이미 먼저 온 유저가 있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거북했다.
아니, 거북한 것을 넘어 언짢았다.
최초가 아니라니.
그는 당연히 자신의 파티가 최초라고 생각했다.
10층으로 오면서 어떤 파티에게도 뒤처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파티가 그들보다 한참 전에 10층에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심지어 최근에 온 것도 아니라는 거 같은데?”
“미친! 그게 말이 돼?”
천자쥔의 파티원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파티가 안 그렇겠냐마는, 그의 파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위기를 이겨냈다.
죽을 고비도 수도 없이 넘겼다.
아니, 그의 파티에서만 열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들이 죽인 사람의 수까지 센다면 두 자릿수를 넘길 것이리라.
이렇게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들이었기에 자신들이 최고라는 믿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믿음이 철저하게 배신당한 지금, 분노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반드시 죽인다!”
으드득!
지금, 이 순간 경쟁자였던 조던 매런이란 자의 이름은 천자쥔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조던 매런을 밀어내고 그의 머릿속에 강력히 박힌 존재는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민건우란 자였다.
***
한편, 10층에 막 도착한 그들을 예의주시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국왕의 삼촌이자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양주르 공작이었다.
“천자쥔과 그의 파티는 민건우란 자가 처음 네시아 왕국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는 훨씬 무장이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양주르 공작은 천자쥔의 파티에 관해 많은 것을 파악하였다.
직업 구성은 어떻고 평균 레벨은 몇이고 장비 수준은 어떤지까지.
그리고 양주르 공작은 천자쥔 파티의 수준을 파악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랭커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면에서 출중하였다.
‘내실을 다지고 오느라 이렇게 늦었던 모양이군.’
양주르 공작은 천자쥔 파티가 10층에 늦게 도착한 이유가 그들이 신중해서라고 생각했다.
반면 민건우는 요행으로 10층까지 빠르게 올라왔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달랐다.
천자쥔 파티는 내실을 다지는 쪽보다 위험을 감수하고 무리하게 탑을 공략하는 쪽이었다.
그 덕에 어떤 파티보다 빠르게 10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잘 갖추어진 그들의 장비는 주로 약탈의 성과였고 말이다.
그가 요행이라 치부하는 민건우는 오히려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안전하게 10층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양주르 공작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했다.
이미 민건우는 그의 적이 된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놈이 더 강해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그가 신전에 갔을 때, 일반 사제는 물론이고 대사제까지 민건우를 옹호하였었다.
분위기로 보아 민건우는 신전의 세력에 합류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는 유저가 신전의 세력에 합류한 상황.
양주르 공작은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회유책도 모두 수포가 되었으니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파티의 리더 이름이 천자쥔이라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그자에게 제안하도록. 민건우를 제거하는데 협조한다면 왕실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주겠다고 말이야.”
이는 두 가지를 노리는 수였다.
천자쥔이란 자는 아직 네시아 왕국의 내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터.
민건우가 신전의 편에 섰다는 사실은 당연히 모를 것이다.
‘놈을 제거하는데 협조한다면 천자쥔이란 자는 신전이 두려워서라도 나의 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몸속에서 거대한 마나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피라니아를 복용하고 얻은 마나였다.
하지만 그 거대한 마나는 요란하게 꿈틀거리며 돌아다닐 뿐, 내 몸에 정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주 약간만 체내에 흡수될 뿐이었다.
대부분은 체내를 한 바퀴 돌고는 그대로 체내를 빠져나가려고 하였다.
‘나가게 둘까 보냐!’
체내의 마나를 건드리는 건 위험하였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마나가 몸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마나가 빠져나가는 출구를 단단히 틀어막았다.
꽤 위험한 도박이었다.
나 역시 순간 아차 하였다.
무아지경 상태라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저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나가 아깝다고만 생각했을 뿐.
그런데 의외로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체외로 빠져나가려던 마나는 다시 체내를 한 바퀴 순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부 마나가 재차 몸속에 흡수되었다.
‘어쩌면 이 마나 전체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마나는 다다익선이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나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였다.
마나가 체내를 한 바퀴 순환하고 나가려고 하면 출구를 틀어막은 것이다.
그러자 마나가 몸속을 계속 순환하였다.
‘후우. 여기까지인가.’
의지로 출구를 막는 건 엄청난 심력이 소모되는 행위였다.
조금 과장하면 수명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
마지막으로 힘을 내서 출구를 막으려 하였으나 구멍이 송송 뚫려 마나가 빠져나갔다.
더는 출구를 막는 게 의미가 없으리라.
체내의 마나가 모두 빠져나간 것을 본 나는 정신을 일깨웠다.
이제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삼촌. 걱정했잖아!”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하윤의 얼굴이었다.
썩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기에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왜?”
“뭐가 왜야. 지금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알아?”
당연히 몰랐다.
다만 두 사람의 행색을 보니 꽤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삼촌, 도대체 이상한 자세로 뭘 한 거야? 삼촌 죽을병 걸린 사람처럼 땀 엄청나게 흘렸었어!”
“그런 거치고는 냄새가 안 나는데?”
“휘니가 다 닦아줘서 그래. 나는 휘니가 삼촌 와이프인 줄 알았다니까? 아주 지극정성이었어!”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휘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너희는 영약 복용하고 뭔가 느낀 거 없었어?”
“느낄 게 뭐 있어. 복용하면 그냥 그거로 끝나는 거 아니야? 난 바로 마력 10 오르고 끝나던데.”
휘니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나처럼 피라니아의 마나와 기 싸움을 벌이는 짓은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아무런 의미 없는 짓을 한 건 아닌 모양이야.’
체내의 마나가 크게 불어난 것이 느껴졌다.
겨우 10 정도 올랐다면 이렇게 강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실질적으로 마력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는 상태창을 보는 게 가장 확실하였다.
상태창을 열어 마력 스탯을 보자 영약을 복용하기 전보다 25나 오른 것이 눈에 보였다.
10과 25.
무려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내 정신력이 더 강했다면···. 아니 그보다 무공을 배웠다면 두 배가 아니라 세 배 이상도 차이 났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아쉬웠다.
과연 이 정도의 영약을 언제 또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쩌면 기연을 놓친 게 아닐까?
인제 와서 아쉬움을 느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말이다.
“근데 삼촌. 우리 더 강해지고 소환수까지 얻었으니 20층까지는 순식간에 갈 수 있겠지?”
하윤이 묻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전에 10층부터 다시 갔다 오자.”
“10층은 왜?”
“손님이 찾아왔거든.”
***
한편 그 시간, 건우의 분신인 건일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 괴물 같은 새끼!”
“오크 투사는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젠장!”
“유저가 왜 이렇게 강한 건데!”
여덟 명의 중국인 유저가 그를 둘러쌌다.
그들은 처음엔 말로 시비를 걸었다.
가오리방쯔라며 어떤 꼼수를 부려서 10층까지 온 거냐며 강하게 비난했다.
물론 분신인 건일은 그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철저하게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그러자 분노한 중국인 유저들은 다짜고짜 건일을 공격하였다.
자신들을 도발했다며 가짜 명분을 만들었으나, 누가 봐도 억지였다.
하지만 가짜 명분까지 만들어서 공격한 게 무색하게도 건일은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방패 든 전사가 힘으로 밀면 그도 마찬가지로 힘을 줘서 방패를 밀어냈다.
암살자가 뒤를 노리면 그는 마치 기만하듯 암살자의 단검을 맨손으로 뺏었다.
궁수의 화살도 고개를 젖히는 것만으로 쉽게 피해냈고 검사의 공격은 더 쉽게 검으로 막아냈다.
중국인 파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보스 레이드와 다를 게 없었다.
10층 보스인 미트 골렘을 잡는 난이도도 이보다 높지는 않으리라.
실제로 건일은 혼자서도 미트 골렘을 잡는 실력자이기도 했다.
다만 이런 건일에게도 엄청난 페널티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살인하면 안 된다는 엄청난 페널티였다.
‘상관없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건일은 검술을 익힌 몸이었다.
피보르가 가르친 검술은 단순히 살상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를 무력화하는 기술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스탯이라면 상대를 무력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탑의 주민이나 일반 유저에게나 현재 건일의 스탯은 과히 괴물이나 다를 게 없었으니까.
퍽!
가장 먼저 뒤에서 성가시게 구는 암살자의 복부를 발로 찼다.
암살자는 억 소리를 내며 멀리 날아갔다.
그나마 뒤로 날아가는 중에 스킬을 써서 피해를 감소하여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 역시 건일이 노리던 바였다.
암살자 다음에 노린 적은 전사였다.
방패 든 전사를 이번에는 힘이 아닌 테크닉으로 농락하였다.
전사는 힘을 주어 건일을 밀다가 건일이 갑자기 힘을 빼자 순간적으로 자세가 무너졌다.
그 틈에 건일은 전사를 옆으로 밀어내고 전사의 뒤에서 활을 쏘던 궁수를 공격하였다.
“컥!”
내구가 약한 것은 궁수 역시 마찬가지.
궁수는 단 한 방 맞고는 그대로 무너졌다.
회피 스킬인 백대쉬를 썼음에도 건일의 공격은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약한 놈들! 같은 유저라면서 여덟 명이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는가!”
그렇게 건일이 중국인 유저들을 하나씩 무력화시킬 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NPC, 정확히는 네시아 왕국의 장수였다.
고록만이란 이름을 가진 그는 무려 100명의 병사를 동원하였다.
이 100명의 병사는 네시아 왕국의 유일한 공작 가문, 양주르 가문의 사병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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