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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수를 얻다.
“우워어어어어어.”
단검을 든 여성의 뒤로 수십 마리의 좀비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여성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좀비가 멀어질 거 같으면 천천히 걷기도 하는 여유를 보였다.
“김지혜! 이쪽이야!”
“가고 있어요!”
그녀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검과 창, 방패 등으로 잘 무장한 유저들이 바로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바로 그녀의 동료였다.
“지금이다! 공격해!”
파티의 리더, 이한성의 지시로 한국인 유저로 이루어진 파티가 좀비 무리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질 좋은 장비로 동시에 공격을 가하자, 좀비 무리는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레벨 업이다!”
“축하해요!”
“와, 벌써 10레벨 찍었냐? 대박!”
잡은 좀비가 워낙 많다 보니 레벨 업 하는 유저도 나왔다.
모두 동료였기에 유저들은 전혀 질투하지 않고 레벨 업한 동료를 축하해주었다.
“역시 사이코 좀비가 가장 잡기 편한 거 같아. 경험치도 많이 주고.”
이한성의 말에 유저들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5층엔 다양한 변종 좀비가 있었다.
하지만 이한성의 파티가 잡는 좀비는 오직 하나.
사이코 좀비라 불리는 변종 좀비였다.
그리고 이한성 파티는 이 사이코 좀비만 잡으며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인에게 화염 마법사 카드를 판 건 최고의 선택이었어.’
직업 카드의 소중함은 이한성이라고 모르진 않았다.
그 역시 전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으니.
하지만 그는 직업 카드보다 정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결과를 보면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4층에서 그저 그런 파티였던 이한성의 파티는 5층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파티가 되었다.
공략법을 알고 있다는 건 그만큼 엄청난 이점을 주었다.
“몰이사냥할 수 있다는 게 크지. 여자 냄새만 맡으면 미친 듯이 따라오니까.”
“예쁜 건 알아 가지고.”
“예뻐서가 아니라 냄새 때문이라잖아.”
“뭐예요. 지금 저 보고 냄새 난다는 거예요?”
“킁킁. 안 나진 않지. 내가 좀비였으면 달려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망쳤을 냄새야.”
그렇게 잡담을 나누던 중, 파티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이한성에게 말하였다.
“우리도 이제 슬슬 6층으로 가보는 게 어때?”
그의 말에 다른 유저들도 동조하였다.
“저도 그 생각했었는데. 솔직히 이제 5층은 쉽잖아요?”
“그렇긴 합니다. 다른 파티도 다 6층 가고 있는데 늦어지면 또 뒤처지게 될 거 같아서 걱정입니다.”
5층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어렵다지만, 그렇다고 이한성 파티가 독보적인 파티인 것은 아니었다.
이미 3층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한성 파티였다.
그들이 민건우를 통하여 전력을 보강할 때, 다른 파티는 한참 앞서 나갔다.
“6층에서는 몰이사냥할 수가 없어. 그리고 고렙 파티들이 다 6층으로 갔으니 경쟁도 빡셀 거야.”
하지만 이한성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6층의 정보가 있기에 5층에서 사냥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였다.
사냥의 효율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5층 좀비는 몰이사냥이 가능하였다.
어떤 좀비가 후각에 예민하고 어떤 좀비는 청각에 예민한지 그런 정보도 다 있었다.
그중에 사이코 좀비라는 여성의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좀비만 잡으면 레벨 업 하는 게 무척 쉬웠다.
반면 6층은 사냥이 비효율적이었다.
좀비와 거의 비슷한 경험치를 주는 고블린은 지능이 높아서 몰이사냥이 어려웠다.
매복, 기습이 특기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한성은 좀비를 더 사냥하기로 하였다.
“무엇보다 상인을 기다려야 하잖아.”
“아!”
상인은 이한성 파티의 은인이라 할 수 있었다.
상인과 거래하기 전에는 생존조차 어려워하던 이한성 파티가 지금은 다른 유저들과 경쟁할 생각을 할 정도로 강해졌으니까.
“그런데 그 상인이라는 사람, 5층에도 올까요?”
“올 거야. 4층까지도 왔는데 5층이라고 오지 못할 이유는 없어.”
사실 이한성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민건우란 사람은 의문투성이였다.
그 엄청난 자금력도 자금력이지만, 정보력이 특히 의문스러웠다.
4층에 있으면서 6층, 아니 그 이상의 고층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소문처럼 NPC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지.’
NPC든 뭐든 그는 여전히 민건우의 존재를 필요로 하였다.
그러니 민건우가 올 때까지 5층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
***
한편 그 시간.
9층의 끝에 도달한 파티가 있었다.
그것도 한 파티가 아닌, 두 개의 파티였다.
“꺼져! 오크 투사는 우리 파티가 잡았어!”
“누가 뭐라고 했냐? 아이템을 뺏은 것도 아닌데 왜 난리야?”
“오크 투사를 상대하지 않고 10층으로 올라갈 속셈인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그게 뭐가 문제인데? 너희들도 꼼수로 9층에 올라온 주제에.”
다만 두 파티는 사이가 좋지 않은지 서로 으르렁거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포탈 앞에 선 파티는 천자쥔이란 리더가 이끄는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파티였다.
반면에 보스 방 입구에서 방황하는 파티는 조던 매런이라는 미국인 유저가 리더로 있는 파티였다.
미국과 중국의 사이가 안 좋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두 파티도 서로 적대하였다.
사실 인종, 국적 때문이 아니더라도 두 파티는 서로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두 파티는 민건우 파티를 제외한 모든 파티를 통틀어 1위, 2위를 다투었고, 자연히 선두권 경쟁이 벌어졌다.
6층에서부터 줄곧 충돌해왔을 정도였다.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이러고 있을 시간에 10층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조던 매런은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중국인 파티를 향해 차분한 분위기로 말하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이었다.
“어차피 우리가 1등인데 급할 게 뭐가 있겠어? 너희들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게 우리 입장에서는 훨씬 더 이득이야!”
“1등인지 어떻게 확신해? 우리보다 먼저 10층까지 간 파티가 있을 수도 있어.”
“푸하하하! 겁쟁이 놈들이 1층에서 머뭇댈 때, 단 하루 만에 3층까지 돌파했던 우리야. 우리보다 빠른 놈이 있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확실히 중국인 파티는 처음부터 독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 층에서 이틀 이상 시간을 쓴 적이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가장 조심해야 할 3층조차도 하루 만에 돌파했으니 독보적이라고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저놈들이 오크 투사를 잡을 때 어떻게든 방해해야 했어요.”
“그러면 진짜 전쟁하자는 건데?”
“저놈들은 이미 우리와 전쟁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내 말이.”
조던 매런 파티는 언제나 최소한의 선을 지켰다.
하지만 중국인 파티는 늘 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중국인 파티는 오크 투사가 리젠되는 것까지 지켜본 뒤에 포탈을 탔다.
포탈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었기에 조던 매런 파티는 오크 투사와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이놈, 왜 이렇게 안 죽어!”
“제기랄. 벌써 몇 분을 쓴 거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딜이나 넣어! 자칫하면 몇 시간 걸릴 수도 있으니까.”
오크 투사는 끈질겼다.
분명히 조던 매런 파티가 시종일관 압도하고 있는데도 오크 투사는 죽지 않았다.
‘빌어먹을.’
조던 매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인 파티는 이미 10층에서 재미를 보고 있을 텐데, 겨우 몬스터 한 마리에 막혀 시간이 지체되고 있으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조급하게 군다고 몬스터를 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애써 조급함을 억눌렀다.
그러자 길이 보였다.
히든 직업, 재규어 전사.
보통은 근거리에서 싸우지만 중거리 스킬이 하나 있었다.
창을 소환하여 던지는 스킬이었는데 오크 투사가 마침 무방비 상태였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조던 매런이 창을 던지자 오크 투사는 더 버티지 못하였다.
단말마를 지른 채 그대로 아이템만 남기고 사라졌다.
“후우. 후우.”
“드디어···.”
“역시 대장이야. 투창 공격 멋있었어요.”
“어떻게 할까? 바로 넘어갈까?”
“체력 조금만 채우고 넘어가요. 어쩌면 포탈 앞에서 천자쥔이 대기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체력을 완전히 회복하고 10층으로 향하는 포탈을 탄 그 순간, 민건우의 파티는 18층으로 향하는 포탈에 발을 내디뎠다.
***
“이제 초원도 지긋지긋하다.”
18층으로 올라오자 하윤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초원이 싫다기보다는 몬스터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것일 거다.
16층과 17층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는 켄타우로스와 외뿔 독수리였다.
하윤은 조금도 활약할 여지가 없었다.
그저 어울리지 않는 탱커 역할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키아아아아악!
하늘에서 괴성이 들렸다.
이제는 익숙한 독수리 몬스터의 괴성이었다.
“아니 무슨 오자마자 독수리가 튀어나와! 이 개 같은!”
스트레스가 꽤 쌓였는지 하윤이 대뜸 욕설을 날렸다.
물론 그런 하윤의 모습은 너무도 익숙하였기에 우리는 전혀 반응하지 않은 채 전투를 준비하였다.
휘니는 활에 화살을 끼웠고 나는 하늘을 향해 검을 내뻗었다.
‘각’이 나온다면 지체 없이 공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독수리가 하강하지 않고 하늘에서 날갯짓을 한 채 우리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뭐 하려는 거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유저들 맞지?”
“지금 어디서 사람 목소리 들리지 않았어?”
“독수리가 말하고 있다.”
“에이. 몬스터가 어떻게 말을 해?”
휘니가 독수리를 가리키며 하는 말에 하윤이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정하였다.
하지만 휘니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독수리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독수리에 사람이 올라타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젠장!”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딘가 신나 보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를 대단히 반기는 분위기였다.
“탑의 주민인 거 같은데?”
“NPC라고? NPC가 왜 여기서 나와?”
“글쎄.”
탑의 주민이 20층도 아니고 18층에서 나타난 것도 신기했다.
그것도 저런 식의 요란한 등장이라니.
원작을 읽은 나로서도 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뭔가 나쁘지 않은 징조인데?’
휘니를 힐끔 바라봤다.
그녀는 일종의 히든 NPC였다.
우연히 만난 그녀 덕에 우리 파티는 엄청난 이득을 봤다.
꼭 사냥에 도움 된 것만 이득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6층의 원주민이었던 그녀는 6층에 숨겨진 히든 피스를 모두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는 히든 피스 같은 정보가 거의 나오지 않았기에 그것만으로 실로 엄청난 도움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휘니의 특성 중에는 실시간으로 주변을 탐색하는 특성도 있었다.
이 특성 덕에 6층뿐만이 아니라, 다른 층에서도 많은 이득을 챙겼다.
숨겨진 보상, 숨어있는 몬스터 등을 얻거나 잡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의 잠재력은 10층 이전에 만난 탑의 주민 중 독보적이었으니 장래도 기대되었다.
‘저 독수리 하나 때문이라도 영입할 수 있으면 반드시 영입해야겠어.’
전투 능력이 어떨지는 몰랐다.
하지만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저 소환수.
외뿔 독수리라는 소환수 하나만으로도 파티에 영입할 가치는 충분하였다.
기동력이 보강되기 때문이었다.
‘검사가 전직하면 기사가 되지. 그리고 기사의 스킬 중엔 전투마 소환이란 게 있고.’
한 명은 내 등에 태운다고 해도 다른 한 명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공중 몬스터를 소환수로 사용하는 동료가 함께한다면?
파티 기동력이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어쩌면 몇 시간 수준이 아니라, 한 시간 안에 다음 층 포탈로 도착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자네들 혹시 우리 집에 오지 않겠는가? 내가 아주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겠네!”
집 초대라니.
휘니가 그랬듯, 그의 첫 반응도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왠지 영입 가능성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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