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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으로 레벨 업.
나는 바로 분신 스킬을 사용해보았다.
참격을 썼을 때처럼 마력이 소모되는 게 느껴지며 내 앞에 무언가가 소환되었다.
‘진짜 나잖아?’
분신답게 나와 똑같이 생겼다.
뭔가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다.
“너, 말도 할 수 있냐?”
“말할 수 있다.”
놀랍게도 분신과 대화가 가능하였다.
이는 분신에게도 지능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스킬은 못 쓰지?”
“못 쓴다.”
“인벤토리는?”
“못 쓴다.”
다른 건 예상대로였다.
스킬은 물론이고, 인벤토리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활용도는 대폭 늘어났다.
안 그래도 10층에서 너무 많은 일을 벌려놓은 상태였다.
탑의 주민을 상대하는 일을 분신에게 맡긴다면 나는 다시 고층 공략에 집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전투력이었다.
내 스탯의 30% 수준이라는데 과연 실질적인 전투력은 어떨지 궁금하였다.
‘그 전에 일단 옷부터 입혀야겠어.’
나는 혹시 몰라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하윤은 생명의 샘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휘니는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분신의 특정 부위를 빤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내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빨리 이거 입어.”
휘니의 시선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 분신은 당당하게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인벤토리에서 여분의 옷을 꺼내 분신에게 입혔다.
그러자 휘니의 입에서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휘니야.”
“으, 응?”
내가 부르니 휘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화들짝 놀랐다.
헛웃음이 나오는 걸 느끼며 손으로 분신을 가리켰다.
“얘 좀 상대해줘.”
“상대? 무슨 상대?”
“실력 좀 확인해달라는 거야.”
내 스탯의 30%라면 휘니의 스탯과 엇비슷하였다.
둘이 대결을 붙이면 분신의 실력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휘니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을 꺼냈다.
그녀도 나와 같이 피보르에게 검술을 배워서 그런지, 검을 든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휘니는 활을 들 때가 가장 강하지.’
활을 들 때는 나도 마냥 방심할 수 없는 상대가 휘니였다.
아마 위기에 처하면 활을 들게 되리라.
파바박!
분신은 눈치가 빨랐다.
내가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차렸다.
옷을 넘겨줄 때 같이 넘겨준 검을 든 채 휘니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야? 왜 삼촌이 두 명이야?”
그제야 눈을 뜬 하윤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광경이 나와 똑같이 생긴 분신이 휘니에게 달려드는 장면일 테니, 굉장히 당황스러울 거 같았다.
심지어 두 사람의 싸움은 치열하였다.
가장 먼저 공격을 날린 건 내 분신이었다.
검을 배우기 전이라면 일단 공격을 피하고 봤을 휘니였다.
하지만 휘니도 이제 어느 정도 검을 배운 상태.
자연스럽게 맞받아쳤다.
캉! 캉!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의 검이 여러 차례 부딪쳤다.
내 눈으로도 누가 우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
“삼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니까? 저게 도대체 뭔데? 삼촌이 언제 나뭇잎 마을의 닌자가 된 거야!”
“내 스킬이야. 성좌 룬이 나왔어.”
하윤에게 분신 스킬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들은 그녀는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무슨 그런 사기적인 스킬이 다 있어!”
“내가 써서 사기인 거야.”
“···.”
하윤이 얼굴로 말했다.
재수 없다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두 사람, 아니 분신과 한 사람의 대결을 마저 지켜봤다.
박빙의 승부를 보여주었던 둘의 싸움은 휘니가 활을 꺼냄과 동시에 끝이 났다.
맹공을 퍼붓는 척, 분신을 몰아붙이던 휘니는 분신이 잠시 주춤할 때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등에 메고 있던 활을 꺼냈다.
휙! 휙!
정면에서 총알처럼 날아오는 화살을 막을 능력이 분신에게는 없었다.
그나마 민첩과 감각이 좋아서인지 급소에 공격이 닿는 걸 피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분신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 거 같군.’
100% 파악 완료였다.
분신은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의 스탯 30%뿐만이 아니라, 검술 실력까지 활용하였다.
만약 내가 무공 같은 걸 배운다면 무공까지 활용할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확인할 건 기억 이전인가.’
휘니에게 공격을 멈추라 한 다음, 분신을 소환 해제하였다.
그러자 누군가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야말로 완벽했다.
분신의 기억과 경험이 내게 이전되다니.
이제 검술 수련 같은 건 분신에게 맡겨도 될 거 같았다.
***
우리 파티는 다시 10층으로 돌아왔다.
“하윤이도 마나 감응에 성공했으니, 이제 탑 공략을 재개할 거야.”
탑 공략을 재개하겠다는 나의 말에 하윤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나 감응을 못 해서 계속 미적댄 거라면 진작 말하지! 알았다면 내가 바로 성공해버렸을 텐데!”
“미적댄 건 아니야. 저층을 오간 덕에 성좌 룬도 얻었잖아?”
“아무튼! 빨리 가자. 나 20층도 가보고 싶어.”
20층은커녕 아직 15층도 공략을 못 끝낸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 파티의 실력이라면 20층도 못 갈 것은 없었다.
‘그래도 준비는 최대한 하고 가야겠지.’
우리 파티는 바로 재정비에 들어갔다.
가장 시급한 것은 강화였다.
저층에서 룬뿐만이 아니라 강화석도 제법 얻은 상태.
모든 장비를 5강까지 맞추기로 하였다.
사실 그 이상도 가능했지만, 희귀급 아이템밖에 없는 상황에서 6강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실패라도 한다면 강화석이 너무 아까울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강화 효과가 정확히 뭐야? 어차피 급소에 맞으면 죽는 건 똑같아서 강화를 하나 안 하나 다 똑같아 보이는데.”
“위력도 늘고 내구성도 늘어. 방어구는 반대로 방어력이 늘고.”
강화 효과는 원작 주인공이 사용하는 검기랑 비슷하였다.
부상으로 끝날 공격을 즉사로 만들었다.
방어구 강화는 반대의 효과를 낳았다.
하윤의 말처럼 급소를 찌르면 어차피 죽는 건 똑같지만, 고층으로 갈수록 그 미세한 차이가 생사를 갈랐다.
트롤처럼 생명력이 높은 몬스터의 경우, 강화가 안 됐으면 죽이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물론 원작 주인공은 강화 같은 거 필요 없이 검기로 다 쓸어버렸지만 말이다.
아무튼, 강화까지 마무리하자 나는 우리 파티의 검술 스승인 피보르를 불렀다.
“엇! 왜 민건우 유저님이 두 명입니까?”
피보르는 내 분신을 보고 경악하였다.
그의 눈에는 내가 두 명처럼 보였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 친구는 건일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건일이요?”
“앞으로 이 친구에게 저 대신 가르침을 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탑 공략도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나는 검술도 계속 배우고 싶었다.
미트 골렘도 꾸준히 잡고 싶고.
그래서 내린 대책이 분신을 10층에 놔두는 것이다.
어차피 탑 공략할 때 분신의 힘은 크게 필요 없었다.
반면 10층에서는?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미트 골렘도 분신 혼자서 잡는 게 가능하였다.
워낙 경험이 쌓여서 미트 골렘의 공략법을 완전하게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지능이 높아서 검술을 배우는 것도 문제없었고 말이다.
피보르에게 분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적어도 검술 스승인 그만큼은 내 분신의 존재를 알아야 했다.
“분신이라니. 허어.”
“그리 놀랄 건 없습니다. 그냥 스킬일 뿐입니다.”
“실력은 어떻습니까?”
“하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피보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모험가 학교의 검술 교관이 되기로 했는데 분신이라고 검술을 가르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을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분신까지 피보르에게 맡기고 나자 더는 10층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분신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는 하윤에게 말했다.
“가자. 15층으로.”
하윤은 신난 표정을 짓더니, 바로 전이 스킬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15층으로 향하는 포탈이 열렸다.
이 포탈을 타고 넘어가면 15층으로 갈 수 있으리라.
‘더 강해진 지금이라면 리자드맨은 쉽게 잡을 수 있겠지?’
2차 전직할 생각으로 스킬까지 여러 개 배워둔 상태였다.
물론 분신을 계속 소환 유지해야 해서 마나가 넉넉하지만은 않지만, 장비도 훨씬 좋아졌고 검술 실력까지 더해졌으니 리자드맨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
***
한편, 10층에 혼자 남겨진 건우의 분신, 건일은 건우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였다.
건우가 그에게 내린 지시는 두 가지였다.
피보르에게 검술을 배우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트 골렘을 잡아 자격의 증표를 계속 모으는 것이었다.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갔습니다. 보폭도 조금 더 줄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알았다.”
“······.”
검술을 배우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그가 반말로 대답할 때마다 피보르가 황당한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건우에게 받은 명령은 검술을 배우는 것이지, 피보르에게 스승 대접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피보르가 돌아간 이후로도 건일은 혼자서 검술 수련에 매진하였다.
가로 베기 천 번.
세로 베기 천 번.
똑같은 자세를 천 번씩이나 반복하면 제아무리 검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지겨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분신이었다.
지루함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미리 정해둔 훈련 일정을 마친 건일은 신전으로 갈 준비를 하였다.
그때 마침 건우의 지시가 내려왔다.
[이제 미트 골렘 잡으러 가.]
약간의 마력을 사용하면 본체와 분신은 멀리서도 소통할 수 있었다.
아예 서로의 시야를 공유하는 것도 가능했다.
건우는 건일의 시야를 확인하고 미트 골렘을 잡으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마력이 아까웠기에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 건일은 장비를 챙긴 채 신전으로 향하였다.
그의 장비는 건우 파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혼자서 미트 골렘을 잡아야 했기에 철저하게 장비를 맞춘 것이었다.
“유저님. 어서 오십시오.”
신전에 도착하니 전담 사제가 그를 마중하였다.
당연하겠지만 사제는 그가 분신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오늘은 혼자 오셨군요. 하하.”
“던전으로 가겠다.”
말투가 달라진 걸 느꼈는지 사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웃으며 길을 열어주었다.
“잠깐 나와 이야기 좀 하지.”
그러던 그때였다.
누군가가 건일의 어깨를 잡으며 말을 걸었다.
“양주르 공작 각하! 각하께서 신전에는 어쩐 일입니까?”
“내가 그걸 자네에게 이야기해야 하나?”
건일을 붙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양주르 공작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본체에게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본체의 시야를 공유해보니 한창 리자드맨이라는 몬스터와 전투 중이었다.
전투하면서 소통까지 하는 건 지금의 건우 실력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건일 역시 그 정도의 판단력은 있었기에 건우를 보채지 않았다.
‘본신의 명령은 미트 골렘을 잡는 것. 그렇다면 다른 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는 양주르 공작을 무시하고 지하 던전으로 향하였다.
그러자 양주르 공작이 노기 서린 목소리로 외쳤다.
“잠시 이야기 좀 하자고 했을 텐데!”
“양주르 공작님. 저희 신전의 손님에게 이 무슨 무례한 행동입니까.”
“무례한 행동은 지금 저놈이 하고 있지 않은가! 감히 공작의 말을 무시하다니!”
양주르 공작이 소란을 일으키자 신전의 높은 사람들이 전부 튀어나왔다.
대사제까지 튀어나오며 대사제가 상황을 정리하려 했을 때, 건일은 이미 지하 던전에 도착한 이후였다.
“이방인 주제에 감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건일에게 완전히 무시당한 양주르 공작은 치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일은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그건 본체인 건우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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