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서 나 혼자 재벌-16화 (16/59)
  • ────────────────────────────────────

    저층의 구세주가 되다.

    “삼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하윤이 내 바로 뒤에 다가왔다.

    “왔어?”

    “그동안 도대체 뭘 했던 거야?”

    하윤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겨우 하루.

    단 하루 만에 많은 것이 바뀌었으니까.

    “돈을 좀 썼지.”

    “돈을 쓴다고 이렇게까지 바뀌어?”

    테리블 거리가 있던 자리에 여러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빈민들이 머물 숙소는 거의 다 완공이 된 상태.

    학교나 잡화점 역시도 어느 정도 건물의 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탑이잖아.”

    탑의 주민들은 특성이란 걸 갖고 있었다.

    이 특성은 가히 초능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구의 건설 중장비가 부럽지 않았다.

    꼭 특성이 아니라도 사실 건축 속도는 빠를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 정도 되는 청소년도 스탯으로 따지면 지구의 성인 남성보다 더 높았다.

    그 말은 체력이든, 근력이든 탑의 주민이 훨씬 세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인원이 이렇게 많으니.’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빈민들은 나를 적대하였었다.

    참격으로 테리블 거리를 무너뜨리고 난 이후에는 적대하는 수준을 넘어 나를 증오하였다.

    하지만 내가 인부를 모집하며 일당 3 카르마를 제시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돈의 힘은 탑에서도 유효했다.

    빈민들은 언제 나를 싫어했냐는 듯, 열성적으로 내 지시에 따라주었다.

    무려 500명의 넘는 숫자가 한마음 한뜻으로 건축을 시작했으니 진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벽돌로 건물을 세우는 거라 시간이 오래 걸릴 이유도 없었고.

    “아마 유저들이 올 때쯤이면 웬만한 건물들은 다 완공이 될 거야.”

    “진짜 말도 안 되게 빠르네.”

    “이게 카르마의 위력이지.”

    “근데 짓는 것도 짓는 거지만, 철거를 어떻게 이렇게 빨리했어?”

    “참격으로 한 방에 부쉈는데?”

    “···그래도 돼?”

    “안 될 건 없지.”

    하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대책 없이 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보다 너희 어머니는 어땠어. 걱정 많이 하시든?”

    누나는 여장부였다.

    하지만 동생과 딸이 실종된 상태에서 제아무리 여장부라도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으리라.

    “많이 걱정했지. 엄마가 그렇게 초췌한 얼굴을 한 건 처음이었어.”

    “그래?”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진 거 같아. 내가 잘 이야기했거든.”

    “다시 탑으로 돌아올 때는 뭐라 하고 왔는데?”

    솔직히 나는 하윤이 다시 탑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위험하기도 했고 현대문물이 없어서 생활하는 데 있어서 불편함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삼촌이 나 없으면 위험하다고 했더니, 어쩔 수 없다고 허락해줬어.”

    “잘했어.”

    설마 그런 말로 허락을 받았다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 하윤이 없으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건 맞으니까.’

    이 시기에 전이술사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만약 하윤이 없으면 나는 10층의 기반을 모두 포기하거나, 아니면 탑 등반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하윤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다시 와줘서 고맙다.”

    “뭘. 나는 겁쟁이가 아니라고.”

    “그런데 뉴스나 인터넷 반응은 어땠어? 탑에 대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풀린 게 있었어?”

    “아니. 아직은 조용하던데. 그냥 이상한 음모론만 퍼졌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지금 시점에 1,500 카르마를 모은 유저는 극소수일 터.

    물론 그 극소수의 유저는 지구로의 귀환보단 카르마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매하는데 카르마를 썼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면 직업 상점을 이용할 수도 있었고.

    “다른 유저들은 뭘 하기에 10층도 안 오고 지구로도 귀환을 안 하는 거야?”

    하윤이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하지만 나라고 유저들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알 수 없었다.

    ‘슬슬 저층도 가봐야겠어. 유저들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까.’

    탑의 주민들만 유저를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나 역시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에 유저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룬, 강화석, 직업 카드···.

    유저들이 아직 탑에 관해 모르는 것이 많은 이 시점에 거래해야 더 쉽게 원하는 물품을 구매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10층에 올라오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저들은 깜깜무소식이었다.

    이럴 때는 잠깐이라도 저층에 내려갔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내일, 전이 스킬을 사용해보자.”

    “전이를 사용하자고? 몇 층이 가고 싶은 건데?”

    “3층.”

    내가 생각하기에 유저의 수가 가장 많은 곳은 3층이었다.

    처음으로 몬스터가 나오는 층이 바로 3층이기 때문이었다.

    ***

    저벅저벅.

    어디에선가 발소리가 들려오자 이한성은 바짝 긴장하였다.

    온 신경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하는 것을 느끼며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좀비든, 사람이든 아무것도 나타나지 마!’

    맹목적인 공격성을 보이는 좀비도 물론 두려웠다.

    하지만 좀비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었다.

    그가 지금 맨발을 질질 걷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쭈그리고 자는 도중에 누군가가 그의 신발을 뺏어가서 맨발이 된 것이었다.

    우스운 것은 잠에서 깨어난 그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발을 빼앗겼을지언정 목숨은 지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사람이 같은 사람을 죽이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소리로는 더 많이 들었다.

    미로 속에선 청각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데 몇 시간에 한 번씩 살려달라는 비명이 들리고는 했다.

    좀비에게 목숨을 구걸할 리는 없으니,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게 분명하였다.

    “휴우.”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이한성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빨리 상자를 찾고 쉘터로 돌아가야 하는데···.’

    다행히 그에게도 동료는 있었다.

    같은 한국인 유저들이었는데, 그들을 위해서라도 보물 상자 하나 이상은 찾아야 했다.

    그의 동료 중에는 벌써 이틀 넘게 굶은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금 걸음을 옮긴 그는 코너를 돈 순간 놀라서 숨을 헉 삼켰다.

    바로 정면에 어떤 형체가 보였다.

    어두웠지만 그의 눈도 이제 미로에 적응한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지금 보이는 형체는 사람의 형체가 분명하였다.

    ‘그런데 왜 앉아있는 거지?’

    사람 형체인 그것은 길목 한복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언제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미로에서 저렇게 여유롭게 앉아있다니.

    지금껏 이런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에 이한성은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혹시 필요하신 거 있습니까?”

    “예, 예?”

    그때, 가만히 앉아있던 사람이 그에게 불쑥 물었다.

    이한성은 상대의 태연한 반응에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다, 당신은 누굽니까?”

    “저는 상인입니다.”

    “상인이라고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상인이라니.

    벌써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그리 특별할 것도 없겠구나. 우리 파티도 서로 물물교환은 꾸준히 하고 있으니.’

    5인 파티인데도 거래가 활발하다면, 대규모 파티를 결성한 다른 유저들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상인이 출현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으리라.

    “제가 팔 물건들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상대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자, 이한성은 경계하는 표정을 지은 채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정작 상대가 꺼낸 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가까이 와서 보시지요. 생수도 있고 고기도 있고 사과도 있습니다. 불이 필요하다면 부싯돌도 싸게 드립니다.”

    꿀꺽.

    오랜만에 고기를 보자 이한성은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물론 이것 말고도 여러 물품이 더 있습니다. 당연히 무기도 판매합니다.”

    본인을 상인이라 밝힌 이가, 무기 이야기까지 꺼내자 이한성은 그답지 않게 흉악한 생각까지 하였다.

    그 흉악한 생각이란, 상대를 힘으로 제압해서 상대가 가진 모든 물건을 약탈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만큼 이한성은 상인의 물건이 미치도록 갖고 싶었다.

    ‘무기 없어서 좀비도 못 잡는 주제에 무슨 약탈이냐. 후우.’

    그는 강해서 혼자 미로를 수색하는 게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언제든 빠르게 도망치고자 혼자 미로를 수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좀비조차 두려워하는 그가 저렇게 많은 파밍을 한 상인을 제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는 카르마가 없습니다.”

    “카르마가 없으셔도 괜찮습니다. 보물 상자에서 나온 것이면 다 받고 있습니다.”

    “아무거나 다 받는다는 말입니까?”

    상인의 말을 듣자 이한성은 솔깃한 것을 느꼈다.

    말이 보물 상자지, 아무런 쓸데없는 아이템도 많이 나왔다.

    그리고 그중에는 지금 상인이 꺼낸 의문의 돌조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혹시 이 돌조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서너 개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첫 고객이니 특별히 이 돌조각 하나에 2 카르마로 취급해드리겠습니다.”

    “2 카르마라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상인을 보며 이한성은 입을 떡 벌렸다.

    저 쓸모없는 돌조각이 2 카르마라고?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상인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무기는 어떤 종류의 것을 팝니까?”

    “검, 도끼, 방패, 웬만한 것은 다 팔고 있습니다. 등급은 일반급과 희귀급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엄청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나의 종류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종류의 무기를 가졌다니.

    그의 파티가 지금까지 겨우 단검 하나밖에 구하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 놀라웠다.

    ‘아니, 근데 인벤토리에 저 많은 물량을 넣는 게 가능한가?’

    잠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한성은 뜸을 들이다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혹시 직업 카드도 파십니까?”

    “물론입니다. 어떤 걸 원합니까?”

    “···그보다 직업 카드는 얼마죠?”

    직업이 정확히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중국인 유저 중 한 명이 직업이란 걸 얻고 갑자기 약자에서 강자로 군림하게 된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을 뿐이다.

    “어떤 직업 카드든, 최소 100개 이상의 돌조각을 주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100개라니.

    파티의 돌조각을 전부 합쳐도 그 정도의 숫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고기는 먹을 수 있으니까.’

    이한성은 인벤토리를 열어 돌조각을 꺼냈다.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오늘은 포식할 수 있을 거 같았다.

    ***

    한 번의 거래를 마치고 다음 손님을 기다리는데 뒤에서 하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얼마 벌었어?”

    “룬 조각 네 개.”

    “에게? 겨우 룬 조각 4개?”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실망하였는지, 다시 고층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거래 한 번에 그 정도밖에 못 번다면 그냥 사냥하는 게 훨씬 낫지 않아?”

    지금 당장만 보면 맞는 말이었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지만, 최하급 룬 조각 네 개 얻겠다고 3층까지 오는 건 시간 낭비였다.

    “하윤아. 네가 보기에 이 3층에 몇 명이 있는 거 같냐?”

    “글쎄? 내가 주변 정찰해보니, 밀집도가 엄청난 거 같긴 하던데. 아마 수천 명은 있지 않을까?”

    “3층에만 최소 만 명 이상의 유저가 있어. 이것도 최소고 2만 명이 넘을지도 몰라.”

    만 명에게 룬 조각 4개씩만 얻어도 4만 개였다.

    아마 이 정도의 룬 조각을 모으면 스킬 룬이든 성좌 룬이든 하나 이상은 나오리라.

    “그리고 2만 명 정도면 그중에 히든 직업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있다.”

    과연 여분의 직업 카드를 가진 유저가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었다.

    직업은 한 사람당 한 개밖에 가지지 못하였다.

    우연히 두 개의 직업 카드를 가진 사람은 그걸 누군가에게 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상인으로서 신용을 쌓은 내가 될 가능성이 크겠지.

    ‘네크로맨서 같은 히든 직업 하나만 얻어도 30층까지는 순식간에 갈 거 같은데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