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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층의 구세주가 되다.
쾅!
양주르 공작은 책상을 내리치며 노기를 드러냈다.
“그래서 아무런 벌을 내리지 않은 채 놈을 보내줬단 말이냐?”
민건우가 수도 한복판에서 스킬을 사용했을 때부터 그는 이미 분노했다.
이건 왕실에 대한 모독이었다.
왕실을 존중한다면 수도 한복판에서 스킬을, 심지어 광역 스킬을 쓰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양주르 공작이 더 분노하는 것은 국왕이 이런 민건우에게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민건우란 자를 절대 그냥 보내지 않았을 거다.
무릎을 꿇려 사죄하게 만들었을 터.
“이래서야 앞으로 올 유저들이 우리 네시아 왕국을 어찌 보겠나!”
“···송구합니다.”
탑의 역사에서 주민과 유저의 기선 다툼은 늘 있었다.
처음엔 탑의 주민이 우세를 띄다가도 유저가 강해지면 동등한 관계로 돌아가고는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이렇게 초창기부터 유저와의 기선 다툼에서 밀린 적이 없었다.
“하멜 남작. 놈이 이런 무도한 짓을 저질렀는데도 남작은 여전히 놈을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예, 제 생각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뭐지?”
“대사제에게 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민건우와 대사제가 모종의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은 양주르 공작의 파벌에도 알려졌다.
신전이 테리블 거리를 대신 매매한 것만 봐도 모종의 관계를 맺은 게 확실하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양주르 공작 입장에서는 심히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민건우는 최초의 유저였다.
심지어 단 하루 만에 10층의 보스인 미트 골렘을 잡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처음 이 소문을 들었을 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민건우는 너무도 간단하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였다.
참격이란 스킬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규격 외의 무력을 가졌음을 증명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무력을 가진 민건우였기에 그가 대사제와 연결되는 걸 막아야만 했다.
“그 이야기는 다른 유저를 영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나? 꼭 유저가 민건우라는 자,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니.”
“하나 아직도 10층에 올라온 유저가 없습니다.”
다른 유저를 통해 민건우를 견제하려고 해도 민건우는 독보적으로 빨랐다.
민건우가 10층에 올라오고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 한 명의 유저도 10층으로 올라오지 않았을 정도였다.
“사흘 정도만 더 기다려보도록 하지.”
“사흘 말입니까?”
“이왕이면 그 시건방진 놈 말고 다른 유저를 영입하고 싶다.”
유저가 민건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민건우보다 더 잠재력 있는 유저가 있을지 몰랐다.
히든 직업의 소유자가 있을 수도 있었고.
단, 양주르 공작의 인내심 한계는 사흘이었다.
사흘 안에 단 한 명의 유저도 10층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양주르 공작도 민건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뒤처진다는 건 재능 차이가 압도적이라는 뜻이니.
“하지만 늦으면 늦을수록 그에게 주어야 할 대가는 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남문 바깥의 땅을 준다면 충분히 설득이 가능하겠지. 땅을 유독 좋아하는 거 같으니 말이야.”
남문도 본래 수도 지역에서 확장되어 새로 지어진 일종의 외성이었다.
많은 유저가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외성을 못 지을 이유도 없었다.
물론 그 외성 지역의 땅을 유저에게 주는 건 논란이 있을 일이었지만 말이다.
***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궁을 나올 수 있었다.
물론 마지막에 ‘소동을 일으킨 빈민은 어떻게 할 거냐?’라며 내게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책임론을 나는 회피하지 않았다.
“그 문제는 제가 잘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히끅!”
그러자 국왕이 겁을 먹었다는 듯, 또 딸꾹질하였다.
잘 처리할 거라는 내 말을 듣고 뭔가 엉뚱한 생각을 한 거 같았다.
‘나는 인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싸이코패스가 아닌데 말이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사람을 죽일 생각 따윈 없었다.
당연히 빈민들의 소동은 그런 피할 수 없는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애초에 네시아 왕국에서 가치 없는 사람 취급받는 빈민들이라도 나에게까지 가치가 없는 건 아니지.’
빈민들이 원하는 건 단순했다.
빵과 잠자리.
그리고 이는 일자리 하나만 해결하면 충족할 수 있었다.
일자리를 해결하는 건 나에게 있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각종 건물을 건축할 예정이니, 당분간은 건설 노동자로 쓰면 됐다.
건설이 끝난 뒤에는?
유저를 상대하는 서비스 분야로 고용할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이 성실하게 일할지 그게 의문이긴 했지만, 빈민이라고 게으른 건 아니었다.
빈민들은 사실 적합한 ‘특성’이 없다는 이유로 빈민이 된 경우가 많았다.
전투 관련 특성이라던가, 행정 또는 상업 관련 특성이 없어서 빈민이 됐다는 뜻이다.
성격이 게으르거나 하지는 않으니 고용해도 문제 될 건 없으리라.
‘무엇보다 네시아 왕국에서는 쓸모없는 취급받는 그 특성들이 나에겐 오히려 유용할 수 있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남문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여관 근처에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테리블 거리도 무너졌으니 돌아갈 곳도 없어서 방황하는 거 같았다.
“저, 저놈이 왜 벌써 나타났지?”
“뭐야. 벌주려고 끌고 간 거 아니었어?”
멀쩡히 돌아온 내 모습을 보고 반가웠는지 모여있던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소란을 피웠다.
그중에는 아까 나와 말다툼을 벌였던 사내도 있었다.
“너 이 새끼, 어떻게 된 거냐? 왜 벌을 받지 않은 거야!”
“죄를 지은 게 있어야 벌을 받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벌을 받아?”
“미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였는데 그게 죄가 아니라고?”
반응이 꽤 격렬하였다.
생긴 걸 보면 준법정신이 그리 투철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다.
“여러분께 할 말이 있습니다.”
사내를 무시하고 모여있는 빈민들을 향해 말했다.
“할 말이 뭐가 있어, 이 미친놈아!”
“우리 집 돌려내!”
“내 돈도 다 잃었다고!”
뭐가 그리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다.
무슨 월세로 산 것도 아니고 내 집을 불법 점거했으면서.
하지만 나는 대인배였다.
또한 선량한 고용주가 되겠다는 목표도 있었다.
“저는 테리블 거리가 있던 곳에 여러 건물을 건축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건물에서 근무할 직원을 찾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런 선의를 몰라 주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갖 욕설로 돌아온 것만 봐도 그랬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누가 네 밑에서 일해!”
“닥치고 집이나 돌려주란 말이다!”
이대로는 대화를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눈물을 삼키며 어쩔 수 없이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냈다.
어쩌면 지금이 ‘피를 볼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검을 꺼내 들자, 시끄럽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역시 이들은 예의를 몰랐던 게 아니었다.
그저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제가 찾는 직원은 특성을 가진 직원입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특성을 가지신 분은 일당으로 최소 5 카르마 이상 드리겠습니다.”
내가 고용했던 대장장이 장하룬은 처음 나에게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 일당으로 10 카르마를 제시했었다.
난 솔직히 이 10 카르마도 아주 적다고 생각하였다.
작정하면 하루에 수천 카르마도 벌 수 있는 나였으니 작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당으로 10 카르마는 네시아 왕국에서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갑옷 기술자나 목공 등, 나름 고수입자조차 하루에 5 카르마 벌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내가 5 카르마를 제시하자 사람들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바뀌었다.
“5 카르마를 준다고? 하루에?”
“말도 안 돼!”
“제, 제가 하고 싶습니다!”
“저도요! 저도!”
아직은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많았으나, 대부분은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역시 돈이 최고였다.
“어떤 특성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 강화 실패 확률 감소와 파괴 확률 감소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좋은 특성들이군요. 강화소를 만들면 일당 7 카르마로 영입하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7 카르마? 진짜 7 카르마를 준다고요?”
“물론입니다.”
“하겠습니다! 아니, 하게 해주십시오!”
처음에 얻은 인재는 강화 관련 특성을 가진 인재였다.
강화석이란 게 탑의 주민은 구할 수 없다 보니 일자리를 구할 길이 없어서 빈민이 된 거 같은데,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물론 이 사람 말고도 내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인재는 수도 없이 많았다.
“저, 저는 유저의 직업을 알 수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직업을? 그럼 제 직업은 뭔지 아십니까?”
“검사이시지 않습니까?”
“채용하겠습니다. 모험가 길드나 학교에서 일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유저의 신상을 알아내는 특성도 존재하였다.
카르마라던가.
직업이라던가.
유저가 없던 시절에는 인정받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렇게 인재가 많을 줄이야.’
인재들의 수준을 보니 더 아낌없이 투자해도 될 거 같았다.
***
하윤은 1,500의 카르마를 투자하여 지구로 귀환하였다.
그녀가 다시 집으로 이동했을 때, 마침 그녀의 어머니가 보였다.
“하, 하윤아···? 이게 어떻게 된 거니?”
순간 하윤은 울컥하고 말았다.
30대 초반, 아니 20대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동안이었던 그녀의 어머니다.
그런데 겨우 며칠 사이에 거의 본인 나이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마음고생이 그만큼 심했다는 증거이리라.
“내가 너무 늦었지?”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에 그녀도 눈물을 흘렸다.
겨우 진정이 되자 그녀는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지금까지 탑이란 곳에 있었다고.
삼촌인 민건우도 바로 그곳에 있다고 말이다.
당연히 어머니는 믿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누구라도 믿기 어려운 말이리라.
하지만 하윤은 쉽게 자기 말을 증명하였다.
‘이게 진짜 되네?’
양손에 힘을 줘서 숟가락을 구부렸다.
마치 마술하듯 자연스럽게 숟가락이 반으로 접혔다.
인벤토리 능력도 보여주었다.
이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기에 어머니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탑의 이야기를 전해준 그녀는 삼촌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가 인터넷을 확인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였다.
전 세계에서 갑자기 10만 명이 실종되었으니 조용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탑에 관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구로 귀환한 이가 없거나 아니면 그녀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듯 보였다.
‘더 볼 게 없겠네.’
민건우가 알아내라는 것도 귀환자의 유무였다.
그는 말했다.
만약 인터넷으로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귀환자가 드물다면 아직 유저들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은 거라고.
그리고 그녀가 인터넷을 확인한 결과, 탑의 정보는 하나도 풀린 것이 없었다.
이 말은 귀환자의 수가 적거나 아예 없다는 뜻.
아직은 유저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으리라.
“나, 이제 돌아갈게.”
다음 날.
그녀는 정확히 24시간 지난 시점, 어머니에게 말했다.
탑으로 돌아가겠다고.
당연히 어머니는 반발하였다.
왜 위험한 곳으로 돌아가는지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윤은 거듭 설득하였고 마침내 허락을 받아냈다.
그렇게 탑으로 다시 돌아오자 그녀의 파티원인 휘니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반겨주었다.
“보고 싶었어. 휘니야.”
“응.”
“그런데 삼촌은?”
“건물 짓고 있어.”
하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건물을 짓는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의아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휘니는 설명 대신 창문을 열고 한쪽을 가리켰다.
“뭐, 뭐야? 저기 원래 빈민가 아니었어?”
겨우 하루.
단 하루 만에 테리블 거리는 말도 안 되게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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