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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서 나 혼자 재벌-14화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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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으면 어쩔 건데?

워낙 자신감이 대단했기에 뭔가 숨겨진 한 수는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험악한 인상의 사내는 생긴 것과 달리 가냘(?)팠다.

“크억.”

불쌍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 사내.

내가 가볍게 찬 발차기도 막지 못한 걸 보면 특성이 허접한 거 같았다.

“넌 뭘 믿고 나댄 거냐?”

“······.”

상냥히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까, 녀석의 뒷머리를 잡아 올리니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있었다.

내구 스탯이 어지간히 낮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왜 깝쳤던 거야?”

10층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레벨이 낮을 거라고 오판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런 거치고 너무 약했다.

설령 다른 유저라도 이 정도 사내쯤은 한 트럭이 와도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죽일까?”

인기척 내지 않고 옆으로 다가온 휘니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죽일 가치도 없는 인물이었다.

행운 스탯을 이런 곳에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죽일 필요는 없지.”

“그러면?”

“그냥 바깥에다 던져 놓으면 알아서 돌아가지 않을까?”

다행히 시끄러운 성격의 여관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퇴근한 건지, 아니면 사내가 용의주도하게 쫓아낸 건지는 몰랐다.

어쨌든 일이 조용히 마무리됐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조용하게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건 내 착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

조용하던 여관 주변이 의문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테리블 거리는 테리블 거리에 사는 사람들의 것이다!”

“유저는 네시아의 것을 뺏지 말고 탑이나 올라라!”

어젯밤 나를 찾아왔던 거한은 싸우는 실력은 없어도 다른 쪽의 실력은 꽤 출중했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저리 많은 사람을 동원한 걸 보면.

‘그래. 애초에 조용히 지내는 건 나도 원치 않았어.’

유저라고 무시 안 받으려면 한 번쯤 실력 행사를 해야 했다.

저렇게 무대를 만들어주면 나야 좋았다.

***

지미는 눈을 뜨자 보이는 광경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의 동료와 부하들이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몇 시간 기절했었냐?”

“세 시간을 꼬박 기절했었습니다. 형님!”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미친놈이었어.”

다짜고짜 폭력을 행사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물론 그도 상대보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졌다면 주먹으로 해결하지 굳이 말로 해결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원래 사람이란 게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한 법이었다.

“어쩔 거냐. 말이 안 통하는 상대 같은데?”

“형님! 애들 다 데리고 담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의 부하들은 그의 말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민건우란 자를 보복할 거 같았다.

지미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피의 보복 대신 다른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꼭 싸우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야.”

절대 두려워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괜히 배가 아팠지만, 그냥 배알이 꼴려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사람들을 모아. 놈에게 테리블 거리의 선진 문화를 보여줘야겠어.”

야밤인데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사람들을 모아 온갖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다.

민건우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세계에서 온 유저라며, 식인과 살인을 즐긴다는 그런 소문이었다.

테리블 거리를 사들인 이유도 빈민들을 잡아먹기 위해서라고.

사실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문인 건 빈민들도 알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명분이었다.

과격 시위해도 죽지 않는 그런 명분 말이다.

테리블 거리의 사람들은 원래도 시위를 곧잘 하였다.

네시아 왕국은 오직 특성만으로 일거리가 주어지는 나라였다.

특성이 없거나 보잘것없다는 이유로 테리블 거리까지 쫓겨난 그들이었으니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명분이 생길 때마다 시위하며 일자리나 식량을 달라고 외쳤다.

이럴 때 왕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신전을 동원하여 무료 급식을 주거나, 병사들을 보내 무료 검술 교육을 해주거나.

물론 빈민들이 원하는 쪽은 전자였다.

아무리 검술을 배우고 싶어도 이승에서 쓸 수 없다면 의미는 없었다.

명분이란 게 그래서 중요했다.

귀족들도 인정할 만큼 합당한 명분이 있다면 적어도 죽지는 않았다.

그리고 ‘유저’와 관련된 것이라면 명분으로 충분하였다.

탑의 주민이라고 유저를 마냥 좋게 보지는 않았으니까.

“왕궁의 반응은 어때?”

“병사들의 태도를 보니까, 방관할 것처럼 보이는데?”

“흐흐. 역시!”

지미는 자기 생각대로 판이 돌아가자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쯤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겠지? 크크.’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민건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유저 놈이 나왔다!”

“뭐야, 저놈. 어딜 가는 거야?”

“테리블 거리 쪽으로 가는데?”

민건우가 여관에서 나오자 테리블 거리의 빈민들은 그의 움직임에 주목하였다.

몇몇은 욕설을 내뱉거나 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검을 뽑자 빈민들은 입을 급히 다물었다.

그리고 그의 검에서 스킬이 뿜어져 나오자 빈민들은 눈을 부릅뜨며 경악하였다.

콰콰콰쾅!

“···저 새끼, 그냥 미친놈이 아니었잖아?”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던 테리블 거리가 박살이 났다.

민건우가 사용한 단 한 번의 스킬에 빈민들이 거주하던 허름한 집들이 모두 부서진 것이다.

***

수백 명의 사람이 나를 아연한 눈으로 바라봤다.

분명히 방금까지만 해도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붓던 무리였다.

그런 그들이 한순간에 입을 다무는 모습을 보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콰콰쾅!

워낙 보기 좋은 광경이라 참격을 한 번 더 써주었다.

“꺄아아악!”

“미, 미친놈이다!”

“안 돼! 저긴 내 집이라고!”

폐허들로 가득했던 난잡한 빈민가 거리가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저런 폐허도 누군가의 거주지였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난 그저 땅이 필요했다.

학교와 여관, 대장간 등 여러 건물을 세울 나만의 땅이.

‘이렇게 정리하니 부지가 꽤 넓긴 하네.’

생각보다 건물을 많이 지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그래봤자 앞으로 올 유저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훨씬 더 넓은 부지가 필요했지만.

“너 이 새끼,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어젯밤에 나를 찾아왔던 놈이 다시 얼굴을 들이밀었다.

“테리블 거리를 망치는 걸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근데 어쩌나. 이미 테리블 거리는 사라졌는데.”

“이이···!”

당혹감, 분노, 혼란.

그는 온갖 감정이 혼재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나는 이름도 모르는 그가 무슨 마음을 품든 관심이 없었다.

“모두 동작 중지!”

갑자기 정예병처럼 보이는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근위병일 것이다.

“어명이요. 유저 민건우는 지금 즉시 왕의 부름을 받으시오!”

“좋습니다.”

만약 물리적인 힘으로 나를 끌고 가려 했다면 진짜 물리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근위병들은 현명했다.

아니, 현명하지 않아도 이때만큼은 현명하게 굴어야 했다.

테리블 거리가 폭삭 무너져있는 광경을 봤다면 말이다.

근위병들은 정중하게 나를 왕궁으로 ‘초대’하였다.

나 역시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다.

유저의 인식을 땅에 떨어뜨려 네시아 왕국이 다른 유저를 견제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나는 그리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자유민주주의 사람으로서 내 권리를 수호하는 사람일 뿐이지.’

조금 과격했지만, 어차피 죽은 사람도 없지 않은가.

죽은 사람이 있었다면 오히려 내가 더 곤란했을 거다.

쓸데없이 행운 스탯만 떨어진 셈이니.

“착용하고 있는 모든 무기를 주십시오.”

왕궁에 도착하니 근위병이 내게 정중하게 요구하였다.

위험인물인 나를 무장한 채로 국왕 앞에 데려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무기를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유저에게 무기를 뺏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인벤토리에서 뽑으면 되는데.”

“···부디 왕궁 안에서는 인벤토리를 사용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굳이 할 필요 없었다.

수틀리면 왕궁에서 인벤토리뿐만이 아니라, 스킬까지도 사용할 나였다.

“남문에서 소동을 일으킨 범죄···. 크흠! 유저 민건우가 입장하였습니다!”

문 근처를 지키던 시종이 나를 범죄자라고 소개하려는 거 같아서 살짝 째려보니 유저로 정정하였다.

“국왕 폐하를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근위대의 보고를 듣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소.”

어린 왕이 진짜 당황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내가 테리블 거리를 망가뜨린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지난 상황.

아무리 통신 계열 특성을 가진 이들이 현장의 상황을 미리 보고했다고 해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왕은 눈을 크게 떴다.

사죄할 것으로 생각했지, 이렇게 태연히 대꾸하리라고는 예상 못 했던 모양이다.

“저, 저자가!”

“무엄하도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국왕 대신, 귀족들이 나를 질타하였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저를 무슨 죄인 취급하시는 거 같은데, 저는 제 소유의 건물을 철거했을 뿐입니다.”

“사람이 거주하는 집을 그딴 식으로 철거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오!”

“이 나라에 스킬 써서 건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나를 지적하던 귀족은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다물었다.

뭐 표정을 보니 할 말이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기보다는 어처구니없어서 말문이 막힌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전 범법자가 아닙니다. 법을 어길 생각이 있다면 애초에 그 큰돈 들여서 땅을 사들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내 돈을 들인 적은 없지만, 어쨌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조금 더 강했다면, 2차 직업이라도 있었다면 법 따위 무시하고 더 막 나갔을 것이다.

왕이 되지 못할 것도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 나의 무력은 귀환자들 같은 천상계 수준은 아니었다.

탑의 주민은 그냥 평민조차 지구의 일반인보다 강했다.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아이라도 쓸 만한 특성이 하나라도 있다면 지구의 성인 장정을 일대일로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

병사 백 명을 상대로는 당연히 이겼다.

일당 천도 아마 가능할 거 같았다.

하지만 만 명이라면?

네시아 왕국 전체가 나를 죽이려 든다면 어떨까.

어떤 특성으로 나를 괴롭힐지 모르니 구태여 모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법을 지켰다.

테리블 거리도 합법적으로 사들이지 않았던가.

“저는 그저 새집을 짓기 위해 낡은 집을 허문 것이니, 괜한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는 소인배를 설득하는 것엔 별다른 재주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고귀한 신분을 타고나면 대인배가 될 수밖에 없는지, 내 거듭된 설명에 귀족들의 구겨진 표정이 펴지는 게 보였다.

물론 귀족들이라고 대인배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에 지적질하던 유교 탈레반 같은 귀족이 다시금 나를 지적하였다.

“낡은 것을 허물고 새것을 세운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네시아 왕국을 허물고 유저들의 새로운 왕국을 세우겠다는 뜻이 아니겠사옵니까.”

내 말을 듣고 어떻게 저런 결론에 도달하는지 의문이었다.

과대망상도 저 정도면 병이었다.

“그거 참 매력적인 이야기군요.”

“뭐, 뭣이?”

“확실히, 법을 지키는 것보다 어기는 것이 더 이익이 크다는 생각이 들면 경의 말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이는 협박이었다.

날 자극하면 네가 걱정하는 ‘반역’을 진짜 해버릴 수도 있다는 협박.

“히끅!”

조용해진 어전에서 왕이 딸꾹질 소리만 들렸다.

살면서 협박이란 걸 처음 경험해서 그런지 두려움에 젖은 표정이 딱 그 나이의 아이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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