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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으면 어쩔 건데?
13층에 처음 나타났던 리자드맨은 14층에도 꾸준히 나왔다.
“이놈 진짜 성가시네. 그냥 스킬 써서 잡으면 안 돼?”
“참격은 피라미 잡을 때 써야 해.”
몬스터는 리자드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곤충 몬스터부터 원숭이처럼 나무 위를 날아다니는 몬스터, 그리고 강에는 피라미 몬스터도 있었다.
참격은 광역 스킬이었기에 한 마리를 잡는 데 사용하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주로 피라미 떼를 잡을 때 사용하였다.
내가 벌써 2,000에 가까운 카르마를 모은 것도 바로 참격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짜 성가시긴 해.’
모든 리자드맨이 검을 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검을 든 리자드맨은 유독 성가셨다.
검을 워낙 잘 쓰기 때문인데,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더 검사 같았다.
지금도 하윤의 공격을 흘려내며 계속해서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휘니가 타이밍에 맞춰서 화살을 쏘자 그제야 빈틈이 생겼고 하윤이 그 빈틈을 찌름으로써 간신히 잡아냈다.
“그래도 잡을 때마다 무기가 드랍되긴 하잖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어차피 몇 번 싸우면 또 검이 망가질 텐데.”
하윤이 꽤 답답했는지,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나는 그런 하윤에게 음료를 건네주며 나중에 무기를 강화하면 될 거라고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사실 이때는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하윤과 나는 레벨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스탯 차이가 났다.
내가 어느 순간부터 참격 원툴이 된 채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내 스탯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랬다.
어떤 몬스터도 상대가 안 됐으니 내가 싸우는 것보단 하윤과 휘니의 전투 경험을 늘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다 15층에서 리자드맨 여럿이 덤벼들자 어쩔 수 없이 나도 참전하였는데, 여기서 의외의 상황을 마주하였다.
서걱, 서걱!
선두에 섰던 두 마리의 리자드맨을 순식간에 베었다.
실력 있는 검사들답게 내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나는 그들과 검격을 교환하지 않았다.
그들이 오른쪽을 막으려 하면 나는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꿔서 왼쪽을 공격하였다.
리자드맨의 검은 그저 허공을 의미 없이 가를 뿐이었다.
반면 내 검은 정확하게 리자드맨의 급소를 갈랐고.
하지만 마지막 한 마리의 리자드맨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다른 리자드맨을 상대할 때처럼 똑같이 공격했다.
검을 좌에서 우로 휘두르는 척하다가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막을 거 같으면 바로 방향을 바꾸었다.
민첩의 속도가 워낙 우월해서인지 리자드맨은 나의 이런 기지에 반응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대장으로 보이는 리자드맨은 처음으로 내 공격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분명 리자드맨의 검은 왼쪽으로 움직였는데, 갑자기 검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움직이더니 사선으로 치고 오는 내 검을 막아냈다.
‘스킬인가.’
유저에게만 스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몬스터에게도 스킬이라 부를 만한 특수 능력들이 존재하였다.
리자드맨 대장도 아마 ‘가로베기’니 ‘세로베기’니 이런 스킬들이 있었을 것이다.
서걱!
물론 스킬의 유무는 압도적인 스탯 앞에 빛을 보지는 못하였다.
단지 ‘검술’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을 뿐이다.
“등반은 여기서 멈추는 게 좋겠어.”
리자드맨 대장을 처치한 나는 일행에게 그와 같이 말하였다.
그러자 하윤도 기진맥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 잘 생각했어. 얘네들, 너무 세. 템이라도 정비하고 와야 해.”
“나, 활 필요하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위기였다.
우리도 내실이란 걸 갖춰야 했다.
물론, 이 정도를 위기라 말하면 진짜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었을 다른 유저들이 황당해하겠지만 말이다.
“전이 스킬 찍어. 내 카르마도 줄 테니까.”
“응.”
10층으로 돌아갈 방법은 현재로선 그녀의 스킬을 사용하는 거뿐이었다.
마침 카르마는 모였다.
전이 스킬의 가격은 3,000 카르마.
내가 모은 카르마와 그녀가 모은 카르마를 합치면 전이 스킬을 살 수 있었다.
“남은 카르마로 너는 지구 갔다 와.”
“지구?”
“누나에게 설명해줘야지. 벌써 우리가 여기로 온지 벌써 나흘 째야.”
“···알았어. 삼촌.”
***
10층으로 귀환해서 바로 미트 골렘부터 잡았다.
리자드맨을 상대하고 와서 그런 것일까?
미트 골렘이 더 시시하게 느껴졌다.
움직임이 원체 굼뜨기도 했으니까.
“신도님들!”
지하 던전을 나와 신전으로 다시 올라가니 사제들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모습을 안 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사냥 좀 열심히 하느라고 그랬습니다.”
15층까지 갔다 왔다고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테리블 거리는 어떻게 됐습니까?”
솔직히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부동산은 유동성이 나쁜 자산이었다.
주식처럼 언제든 쉽게 샀다가 팔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테리블 거리를 서둘러 사려는 것도 유저들이 오기 전까지 거래를 마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신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능한 조직이었다.
“테리블 거리 전체를 8만 6천 카르마에 사들였습니다.”
“벌써 거리 전체를 매입하였단 말씀입니까?”
놀라서 물으니 사제가 별거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빈민가로 전락한 그곳의 땅을 누가 들고 싶겠습니까. 그곳의 거주자조차 매입 의사를 밝히니 바로 응했습니다.”
미래를 아는 내가 봤을 때는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1년 안에 최소 수십만의 유저가 네시아 왕국에 정착할 터.
네시아 왕국의 모든 자산이 급격히 상승하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9층 포탈과 연결된 남문 인근의 땅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건 원작을 본 나니까 하는 생각이었다.
유저라고는 아직 세 명(실제로는 두 명)밖에 등장하지 않은 이 시점에 벌써 그런 미래를 예상하는 이는 없었다.
있어도 인식이 안 좋은 테리블 거리보단 다른 곳을 노릴 게 분명했다.
“그럼 테리블 거리는 이제 완전히 제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렇게 되면 계획을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선두권으로 내 뒤를 쫓고 있을 유저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가능하겠어.’
여관 정도는 그들이 오기 전에 건설하는 게 가능했다.
잠자리만 해결해줘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터.
진짜 인재다 싶은 유저라면 더 많은 걸 줘서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남은 1만 4천의 카르마는 어떻게 배분할 겁니까?”
“신도님께서 따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비약을 얻고 싶습니다.”
비약.
이건 유저가 아닌 탑의 유저에게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잠재력의 한계를 뚫어주는 아이템이었던 것.
그리고 이 비약은 주로 신전에서 생산하였다.
“물론 그냥 현금으로 주셔도 좋습니다.”
카르마는 많을수록 좋았다.
특히 스킬과 장비를 사야 하는 지금이라면.
“으음. 비약과 현금을 모두 준비하겠습니다.”
둘 다 준비해주면 나야 좋았다.
“그리고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실력 좋은 검술 교관을 소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검술 교관이라면 혹시 학교 때문입니까?”
“학교 때문이기도 하고, 저 역시 검술을 배우고 싶기도 합니다.”
지금 나는 무지막지한 스탯을 가졌다.
하지만 이곳, 탑에서는 스탯만 높다고 만능이 아니었다.
즉, 피지컬보다 테크닉이 중요하였다.
이건 리자드맨 대장과의 결투에서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사제에게 부탁했다.
실력 좋은 검술 교관을 소개해달라고.
네시아 왕국 전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사제에게 있어 이 정도 부탁은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알겠습니다. 피보르 경이라고 과거에 네시아 왕국의 천재 검사라 불리던 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원작에서 피보르란 이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천재 검사쯤 되는 이라면 배울 점이 많을 거다.
탑의 주민이니 괴물 같은 신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고.
***
지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신전에서 여기 땅을 다 사갔다고?”
“그렇다는데?”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네시아에서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이 테리블 거리였다.
그의 조직이 테리블 거리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필 네시아 왕국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가진 신전이 테리블 거리의 땅을 매매하다니.
“정확히는 신전 이름으로 산 게 아니라, 민건우란 사람의 이름으로 산 거래.”
“그건 또 누구야?”
“이번에 들어온 유저 중의 한 명이라는데?”
“아, 역대급 유저라던 그놈을 말하는 건가.”
민건우.
수도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었다.
최초의 유저로 왕의 초대까지 받은 사람이었으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놈이 왜 이곳의 땅을 사려는 거지?”
“소문으로는 집들을 다 밀어버리고 유저를 위한 시설물을 만든다나?”
지미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여기를 다 밀어버린다고? 그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이곳은 그의 조직, 로타스 패밀리의 본거지였다.
본거지를 밀어버린다는데 화가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뭐 그냥 소문인 거 같기는 한데, 만약 소문이 아니라면 어쩌지?”
동료의 물음에 지미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어쩌긴 뭘 어째. 여기가 누구의 것인지 똑똑히 알려줘야지.”
상대가 유저라고 순순히 따라줄 생각은 없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은 이곳엔 없지만, 적어도 테리블 거리에서는 뜻이 통했다.
귀족이든 사제든 유저든 간에.
테리블 거리에 왔으면 테리블 거리의 법을 따라야만 했다.
***
“그런 나는 갈게. 삼촌, 내일 봐.”
“누나에게 잘 말해.”
“응.”
하윤이 손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1,500 카르마를 들여 구매한 아이템, 지구 귀환권을 사용한 것이다.
‘카르마가 아까워서라도 내가 가는 게 맞기는 한데···.’
나는 1,500 카르마를 사용하지 않고 무료로 지구 귀환이 가능했다.
하지만 24시간 동안 지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하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보다는 내가 탑에 남는 게 더 효율적이었으니까.
신전에서 비약 약간과 함께 1만의 카르마를 받아와서 1,500 카르마 정도는 감당할 수 있기도 했고.
쾅쾅!
우리가 있는 곳은 여관이었다.
남문 근처에 가장 시설 좋은 여관이었는데, 지금까지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노크 소리가 지나치게 시끄러운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누구십니까?”
“네가 민건우란 놈이냐?”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다짜고짜 시비조로 말했다.
“넌 뭔데?”
상대가 시비조로 구는데 예의를 차려줄 이유는 없었다.
내가 삐딱하게 되묻자,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테리블 거리를 매매했다고 들었는데, 거길 왜 샀는지 말해.”
“내가 그걸 왜 너한테 알려줘야 하지?”
대화하면 할수록 웃기는 놈이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국왕도,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양주르 공작도, 네시아 왕국 제일의 권력자인 대사제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근데 이놈은 뭔 자신감으로 이러나 싶었다.
“테리블 거리를 망칠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외지인 따위가 테리블 거리를 망치는 걸 두고 볼 내가 아니니까.”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던가.”
“이 새끼가···.”
“근데 이것부터 막아보지?”
날 방해할 놈이라면 굳이 말로만 협박하고 돌려보낼 이유는 없었다.
실력도 확인할 겸, 그를 향해 발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