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서 나 혼자 재벌-10화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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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왕 독식할 거, 부동산도 독식합니다.

    “정확히 어느 정도 크기의 땅을 원하십니까?”

    “왕궁으로 오면서 보니, 남문 주변에 빈민가 거리가 있더군요.”

    “테리블 거리를 말씀하시는 거 같습니다.”

    “저는 그곳 전체를 원합니다.”

    하멜이란 자가 헛웃음을 지었다.

    아마 내 제안이 황당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테리블 거리의 크기를 아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어차피 빈민들이 사는 땅으로 보였는데, 땅값은 저렴하지 않겠습니까.”

    잠깐 본 거지만, 상태가 지구의 난민보다 심해 보였다.

    건물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판잣집이었고.

    공권력을 사용한다면 아예 돈이 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곳에 거주하는 빈민들이야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을 테니.

    ‘주거지를 잃은 그 사람들을 내가 고용해주면 서로 윈윈이지.’

    어차피 앞으로 유저들을 상대하려면 직원 고용은 필수였다.

    주거지를 잃은 빈민이라면 이보다 적임자가 없었다.

    “그 땅을 주시면 제가 양주르 공작님의 부탁을 한 번 들어드리겠습니다.”

    땅을 받는 대신, 어떤 부탁이든 한 번은 들어주겠다.

    내가 생각해도 오만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였다.

    만약 양주르 공작이 적절한 시기에 내 손을 빌린다면?

    이 나라의 왕이 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네시아에서 내 참격을 막아낼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었다.

    “···일단 공작님께 민건우 님의 제안을 전한 뒤,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멜은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물러났다.

    아마 내가 유저, 그것도 최초로 10층에 도달한 유저가 아니었으면 단단히 화를 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정도로 황당한 제안이었으니.

    “제안이 먹힐까?”

    “안 먹힐 거야.”

    “안 먹힐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 거야?”

    “못 먹는 감이라도 찔러는 봐야지.”

    지금이야 안 먹혀도 나중엔 또 어떻게 될지 몰랐다.

    앞으로 10층에서 활동하다 보면 탑의 주민들도 나의 실력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물론 다른 유저들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도 알게 될 터.

    내 몸값을 정확하게 알게 된다면 그때 내 제안이 생각나겠지.

    양주르 공작도 그때는 내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렇게 큰 부지가 왜 필요한 거야? 우리 숙소로 쓸 거면 그냥 국왕한테 저택 하나 달라고 하면 되지 않아?”

    “잡화점부터 여관, 대장간, 경매장, 룬 감정소까지. 지어야 할 건물이 많아. 그 정도 부지는 꼭 필요해.”

    탑의 부동산은 최대한 독식해야 했다.

    그래야 유저들이 생산하는 자원을 독점적으로 제어할 수 있으니까.

    ‘룬과 강화석, 그리고 히든 직업까지. 그 모든 걸 독점한다면 귀환자에게도 비벼볼 만해.’

    ***

    양주르 공작은 헛웃음을 지었다.

    “테리블 거리를 달라고 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하멜이 큰 죄를 지었다는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대답하였다.

    “몸값 하나는 역사에 기록된 고렙 랭커들 수준이군. 겨우 11레벨 짜리가 말이야.”

    11레벨이라면 그의 사병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니, 그의 사병들이 일반급 장비로 풀무장 했단 걸 생각하면, 민건우란 사내는 그의 사병 하나만도 못한 무력을 가졌다.

    “잠재력 하나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전례에 없는 속도이지 않습니까? 사흘 차에 10층까지 당도한 것은?”

    “유저에게 잠재력이 뭐 그리 중요하지? 결국 운이지 않은가. 어떤 업적을 선점했는지, 그거에 갈리는 거니까.”

    네시아 왕국의 역사는 짧지 않았다.

    당연히 유저에 관한 정보도 상당히 축적되어 있었다.

    왕실 주요 인물들은 특히 더 많은 정보를 가졌는데, 유저가 어떤 식으로 성장하고 강해지는지도 다 알았다.

    그래서일까?

    양주르 공작은 민건우의 가치가 그리 크지 않다고 여겼다.

    민건우는 그저 선구자일 뿐이었다.

    지금은 유저 중에 가장 강해도 언젠가 따라잡히게 될 선구자.

    물론 가장 강하다는 지금도 그의 사병 하나만도 못한 게 현실이었고 말이다.

    “애초에 땅을 매입하려는 의도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아. 땅을 산다는 건 네시아에 완전히 정착하려는 의도이지 않은가?”

    유저는 어디까지나 사냥개였다.

    사냥개로 한번 쓰고 버리려는 유저가 계속 네시아에 남는다면 결코 좋을 게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더 상대할 필요도 없는 자야. 적당히 정보만 빼 오고 다른 유저를 상대하는 게 좋겠어.”

    양주르 공작은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욕심이 큰 민건우보다는 고분고분한 다른 유저를 영입하는 게 낫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대장간이었다.

    10층까지 올라오면서 인벤토리가 가득 찬 상태.

    인벤토리도 비울 겸, 대장간에서 새로운 장비를 구매할 계획이었다.

    “이번에 새로 왔다는 유저들인가?”

    대장간에 가자, 작업복을 입은 중년인이 대뜸 그리 물었다.

    그는 한눈에 봐도 대장장이로 보였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냥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서 한 번 찍어본 건데?”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장비를 맞추려고 온 모양이지?”

    “예. 팔고 싶은 것도 좀 있습니다.”

    “보여줄 수 있겠나?”

    내가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꺼내자 그가 작게 감탄하였다.

    탑의 주민은 인벤토리 기능을 쓸 수 없으니, 그것 때문에 놀란 거 같았다.

    “이건 이가 다 나간 싸구려 단검이군. 이 창도 마찬가지야. 오크도 이런 창을 안 쓰겠어.”

    “최초의 유저인 저에게 값을 제대로 안 쳐주면 앞으로 올라올 유저들이 이 대장간을 찾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호구가 될 생각은 없었기에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대장장이는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소탐대실하려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싶었다.

    “흠흠! 그런 걱정은 하지 말게. 네시아에서 우리 대장간보다 값을 잘 쳐주는 대장간은 없을 테니.”

    그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가진 잡템들을 무려 185 카르마로 측정해주었다.

    인벤토리만 채우는 아무 짝에도 없는 잡템들 치고 가치가 상당하였다.

    “이 검은 얼마인가요?”

    “50 카르마일세.”

    “이 검은요?”

    “보면 알겠지만, 꽤 비싸. 적어도 80 카르마는 줘야 할 걸세.”

    잡템을 정리하고는 구매할 아이템을 살폈다.

    “삼촌, 여기서 사는 게 카르마 상점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은 거 같은데?”

    하윤이 작은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확실히 아이템의 가격이 높지 않았다.

    카르마 상점과 비교하면 오히려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치는 이게 더 높을 텐데···.’

    대장장이 직업을 가진 이가 직접 만든 무기는 강화석 회수에 제한이 없었다.

    카르마 상점의 아이템보다 수제 아이템이 더 좋은 이유였다.

    그런데 정작 실제 가격은 수제 아이템이 더 저렴하였다.

    같은 희귀급 아이템이라도 2배 가까이 차이가 날 정도였다.

    ‘땅을 살 게 아니라, 아이템을 먼저 사재기해야 하나?’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유저들이 10층에 오면 대장장이가 생산하는 아이템의 가격도 껑충 뛸 수밖에 없었다.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는 넘쳐날 테니 말이다.

    아이템을 사재기하면 최소 두 배 이상 남는 장사였다.

    ‘아니, 그건 너무 단기 이익만 좇는 행동이야.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공급자를 손에 넣는 게 훨씬 나아.’

    그냥 아이템만 사는 것은 잠깐 이득 보고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템을 생산할 대장장이를 내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계속해서 이득을 볼 수 있으리라.

    아예 길드 같은 걸 만들어서 대장장이 직업을 가진 유저들까지 내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혹시 수입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음? 내 수입을 왜 물어보는 거지? 그건 국가기밀인데···.”

    되지도 않는 농담을 무시하고 그에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제 밑에서 일해볼 생각 없으십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코웃음을 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유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빨리 10층에 도달한 유저라는 사실도.

    “말하는 걸 보니 아예 이 대장간도 인수할 기세로군.”

    “얼마입니까?”

    “호오, 정말 인수하겠다고?”

    “적정가만 제시한다면 인수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이템의 상태가 하나같이 좋아 보였다.

    내가 무기를 알면 얼마나 알겠냐마는, 감각 스탯이 워낙 높아져서 그런지 대충 만져만 봐도 느껴졌다.

    이 검의 내구성이 어떻고, 날카로움은 어떤지.

    그를 고용하면 결코 손해는 나지 않으리라.

    “나를 고용하려면 하루에 10 카르마는 줘야 할 걸세.”

    “한 달이면 300 카르마군요.”

    “쉬는 날까지 쳐주면 나야 좋지.”

    “대장간은 얼마입니까?”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나는 순간 3만 카르마를 이야기하나 했더니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3,000 카르마 이상 주지 않으면 팔 생각이 없네.”

    꽤 비쌌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천정부지로 뛸 미래의 가치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하였고.

    “인수하겠습니다.”

    “진심인가? 아니, 그보다 3,000 카르마가 있기는 한 거야?”

    “물론입니다.”

    내가 가진 카르마는 총 1,800.

    하윤은 1,300 정도 들고 있으니 합하면 3,000이었다.

    ‘이틀 사냥하고 번 돈으로 수도의 대장간을 사면 남는 장사지.’

    심지어 앞으로의 사냥 수익은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 않았다.

    훨씬 더 강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반면 대장간의 가치는?

    3,000 카르마가 아니라 30,000 카르마로도 사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질 거다.

    한 달에 10만 명씩, 1년에만 120만 명의 유저가 탑에 유입될 테니까.

    그중 많은 수가 위험하지 않은 10층에 정착할 가능성이 컸고 말이다.

    “저에게 대장간을 매각하시겠습니까?”

    “고용까지 해준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안 그래도 점점 늘어나는 이자 때문에 골치였는데 말이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대장간도 대장간이지만 실력 있는 장인을 고용했다는 사실이 특히 만족스러웠다.

    ***

    앞으로 나와 함께 일하게 될 대장장이, 장푸린과의 대화가 끝이 나자 하윤이 내게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스킬부터 구매하기로 하지 않았어?”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본래 그녀의 직업 스킬, ‘전이’를 사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전이를 배우기만 하면 10층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카르마는 어차피 금방 벌 거야.”

    “그래도 3,000은 조금 큰 거 같은데.”

    “바로 보스를 잡으면 돼.”

    “보스를?”

    10층 보스, 미트 골렘.

    나는 지금 바로 그 몬스터를 잡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참격 쓰면 한 방에 죽을 텐데 시간을 끌 필요는 없지.’

    다른 유저는 10층에서 최소 며칠의 시간 동안 재정비 시간을 가져야 할 거다.

    방어구도 맞춰야 하고 스킬이나 룬도 맞춰야 할 테니.

    하지만 우리 파티는 사정이 달랐다.

    룬도 부족하고 검 빼고는 무장도 빈약했지만, 엄청난 스킬이 하나 있었다.

    이 스킬이라면 미트 골렘 정도는 순식간에 죽이는 것이 가능하였다.

    “근데 보스 잡는다고 카르마를 많이 줘?”

    “보스만 잡아서는 얼마 안 주지. 하지만 보스를 잡고 나오는 아이템을 판다면 최소 수백 카르마는 벌 수 있어.”

    “한 번 잡을 때마다 수백 카르마를? 도대체 무슨 아이템이 드랍되기에 그래?”

    휘니도 모처럼 궁금했는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자격의 증표. 11층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아이템이야.”

    11층은 아무나 갈 수 없다.

    단순히 위험해서 못 간다는 뜻이 아니었다.

    특별한 아이템을 소지한 자만이 11층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특별한 아이템이 바로 자격의 증표였다.

    ‘탑의 주민에겐 드랍되지 않는 아이템이지.’

    휘니가 6층에서 벗어나 10층까지 온 것처럼, 네시아 왕국의 사람 중에서도 11층으로 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 거다.

    당연히 그런 자들에게 있어 자격의 증표는 천만금을 줘서라도 사야 할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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