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 독식할 거, 부동산도 독식합니다.
매 층에는 최소 하나 이상의 새로운 몬스터가 출현했다.
10층에도 당연히 새로운 몬스터가 나왔는데, 고블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몬스터였다.
그 몬스터의 이름은 바로 오크.
2m에 달하는 신장을 가진 오크는 그야말로 타고난 전사였다.
설령 근력만 찍은 채 10층에 도달한 유저라도 오크의 완력을 이겨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꾸에에에엑!”
하지만 그 엄청난 완력을 가진 오크가 죽어가는 돼지처럼 비명을 질렀다.
놀랍게도 오크를 비명 지르게 만든 상대는 인간, 그것도 맨손의 인간이었다.
“역시 양주르 공작님!”
“오크를 압도하는 근력이라니!”
온몸을 갑옷으로 중무장한 병사들이 그런 사내를 보며 환호하였다.
놀랍게도 사내는 귀족이었다.
그것도 ‘공작’이란 고귀한 신분을 가진 귀족.
10층에는 탑의 주민들이 거주하였다.
단순히 수십, 수백 명 정도의 작은 인원이 마을 형태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려 왕국.
왕국을 표방하는 거대한 세력이 10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왕국의 이름은 바로 네시아였다.
양주르란 이름의 사내는 네시아 왕국에서 공작의 작위를 가졌다.
왕 다음으로 지고한 신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품위란 것이 안 보였다.
“하하하! 이놈 참 약하구나! 힘이 이렇게 약해서 사내구실이나 하겠나!”
마치 어린애 다루듯 오크를 데리고 장난치는 그의 모습은 전혀 고귀한 신분의 귀족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망나니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다.
그의 곁에서 웃고 떠드는 사병들의 모습도 그랬다.
무장은 왕실의 근위병보다 더 철저했지만, 하는 행동은 시정잡배나 다를 게 없었다.
“알고 보니 암컷 아닙니까? 아랫도리에 뭐가 안 달린 거 같은데, 크크!”
“저 얼굴이 암컷이라니. 생각만 해도 욕이 나오는데요? 푸하하!”
그렇게 양주르 공작은 평소처럼 사병들과 웃고 떠들며 몬스터 사냥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사냥을 마치고 소수의 최측근과 회의하는 자리에선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사제의 예언대로라면 곧 유저들이 오게 될 거 같은데, 그들을 영입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놓은 게 있나?”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한 양주르 공작의 모습은 사병들과 함께 몬스터를 사냥할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이것이 그의 본모습이기도 했다.
국왕의 견제, 정확히는 국왕의 친위 세력 중 하나인 대사제의 견제를 피하고자 망나니의 모습을 연기해왔다.
“유저는 오직 힘을 숭상하는 자들. 그들을 회유하기 위해 가장 좋은 수단은 질 좋은 장비를 지원하는 겁니다.”
“질 좋은 장비라.”
“최소 희귀급 장비는 풀어야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 정도는 양주르 공작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네시아 왕국에서 손에 꼽히는 부호 중의 한 명이었으니.
“사실 어떻게 회유할지보다 누구를 회유할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일종의 참모 역할을 하는 하멜이란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그 같이 말했다.
양주르 공작은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장 중요하긴 하지. 어중이떠중이를 용병으로 영입해봤자, 대사제가 실력자들을 영입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될 테니.”
문제는 바로 그 ‘진짜’를 가려내는 방법이었다.
유저가 탑의 주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듯, 탑의 주민들 역시 유저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누가 얼마나 강하고 어떤 잠재력을 가졌는지 전혀 몰랐다.
“실력자를 가려내는 방법은 간단할 거 같습니다.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한 유저들. 그들이 진짜 실력자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그것보다 확실한 건 없군.”
누구보다 빨리 10층에 도달했다면, 적어도 중간 이상은 한다는 뜻.
실력자라고 판단하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만약 압도적으로 빨리 도착한다면···.’
그런 자들이 있다면 반드시 회유해야만 했다.
***
네시아 왕국 남쪽 곳곳에는 작은 초소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초소는 평시엔 아예 사용되지 않았다.
병사가 단 한 명도 주둔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저들이 도래할 거라는 대사제의 예언이 있자 상황이 달라졌다.
백여 명의 병사가 곧바로 각 초소에 파견되었다.
이들의 임무는 단 하나.
포탈을 타고 넘어올 유저들을 수도로 안전하게 데려오는 것이었다.
“유저가 뭐라고 귀족 대하듯 대하라는 건지. 쯧.”
30대 이상 되어 보이는 병사가 혀를 찼다.
그러자 그의 후임으로 보이는 병사가 물었다.
“이상할 게 있나요? 유저는 용사나 다를 게 없는 존재들이잖아요.”
“용사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놈들이 나타날 때마다 왕국에 얼마나 혼란이 왔는지 몰라?”
탑의 주민이라고 마냥 유저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선임 병사처럼 유저를 싫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역사가 말해주었다.
유저가 탑의 주민들에게 끼친 해악을 말이다.
“두고 봐. 놈들이 탑에 오고 무슨 짓을 저지를지 말이야.”
당분간은 조용할 거다.
아직 레벨이 낮고 장비도 부족할 테니.
하지만 그들이 강해진 이후에는?
그땐 제 세상인 것처럼 굴 게 분명하였다.
땡-! 땡-!
그러던 중 갑자기 종소리가 들렸다.
“유저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다른 초소의 병사가 전하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듣고 선임 병사와 후임 병사는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벌써···?”
“아니, 예언이 있고 며칠이나 지났다고···.”
오늘로 사흘 차였다.
시간으로 따지면 60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것.
탑의 역사에서 이렇게 빨리 유저들이 10층까지 도착한 적은 없었기에 병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최초로 ‘10층’에 도달하였습니다.>
휘니와 파티를 맺은 이후, 우리는 엄청난 속도로 탑을 올랐다.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7층, 8층, 9층을 모두 돌파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업적을 챙긴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10층에 올랐을 때도 업적 하나를 챙겼다.
무려 올스탯 3이나 올려주는 희귀급 업적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지만 또 하나 얻은 게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레벨이 올랐네.’
새로운 층에 오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레벨이었다.
이미 레벨이 높아서 그런 것일까?
9층에 올랐을 때처럼 아예 레벨이 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레벨이 올랐다.
물론 내 레벨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윤은 보통 나랑 1~2 레벨 정도 차이가 나서 운이 좋으면 두 번 레벨 업을 할 때도 있었다.
휘니의 경우 운 좋으면 30이 될 수도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층에 올라오면 가장 먼저 서로의 레벨부터 확인하였다.
“삼촌, 이 사람들 뭐야?”
“···글쎄. 일단 바로 공격하지 않는 걸 보면, 적은 아닌 거 같은데.”
하지만 10층에서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사로 보이는 낯선 사람들이 창을 든 채 우리에게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10층에 오신 유저 여러분, 환영합니다.”
병사 중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는 사내가 정중하게 인사하였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올 걸 어떻게 알고 여기서 대기하셨습니까?”
“대사제께서 예언하였습니다. 곧 유저들이 탑에 올 거라고. 물론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저희도 몰랐지만 말입니다.
예언이라고 말하니 뭔가 거창하게 느껴졌다.
아마 예언은 아니고, ‘성좌’가 얘기해준 게 아닐까 싶다.
상대가 대사제를 거론하였으니 아마 틀림없으리라.
“국왕 폐하께서 여러분을 왕궁으로 초대하셨습니다. 부디 응해주시길 바랍니다.”
왜 포탈 앞에서 대기했나 했더니 왕이 우리에게 흥미를 보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최초의 유저인데 흥미가 안 생길 수는 없었다.
“어떡해?”
“일단 가보자.”
“위험하지 않을까?”
“저들이 우리를 공격할 이유는 없어.”
그들이 신으로 모시는 성좌부터 우리를 적대시하는 걸 원하지 않을 거다.
꼭 성좌가 아니어도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등반자였다.
언젠가 10층을 넘어 고층으로 떠날 이방인인데 서로 얼굴 붉힐 이유는 없으리라.
물론 일부 유저는 10층에서 계속 정착할 테지만 말이다.
***
말이 없었기에 수도까지 꽤 오래 걸어야 했다.
‘몬스터가 한 마리도 안 나올 줄이야.’
몇 시간 동안 걷기만 하니 뭔가 시간이 아까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뒤에서 나를 쫓고 있을 텐데 괜히 시간을 허비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꼭 왕의 초대가 아니라도 다음 층을 가기 위해선 이렇게 오래 걸어야 했다.
11층으로 가는 열쇠는 수도 근처에 있었으니까.
‘사실 지금은 11층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네시아 왕국의 기득권에게 인정을 받는 게 더 중요하지.’
만약 내가 솔로 플레이를 하고 있다면 네시아 왕국과의 관계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을 거다.
어차피 바로 11층으로 넘어갈 텐데, 그들과의 관계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하윤이라는, 전이술사 직업을 가진 파티원이 있었다.
그리고 전이술사의 스킬을 유용하게 쓰려면 탑의 주민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건 필수였다.
유저들도 당연히 생활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 10층에 정착할 테고 그러면 자연히 10층에서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네시아의 궁궐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나는 이 나라의 왕, 미라한이오.”
대략 다섯 시간을 걷고 마침내 도착한 네시아 왕국의 수도.
우리는 바로 왕과 접견하였고 왕의 환대를 받았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민건우라 합니다.”
“정하율이에요.”
“나, 휘니.”
나도 그렇지만, 파티원 전원이 왕을 대하는 예법을 전혀 하지 않았다.
몰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사실 필요성을 못 느꼈다.
만약 왕이 위엄과 카리스마 넘치는 그런 인물이라면 최대한 예의를 갖췄을 것이다.
하지만 왕이란 사람은 1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우리를 바라보는 눈도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게, 위엄이라고는 1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외지인은 유저에게 예법 운운하는 꼰대는 네시아의 궁궐에 없는 모양이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레벨이 몇이시오?”
어린 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런 왕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역시 그게 가장 궁금한가 보군.’
나였으면 직업부터 물어봤을 텐데, 그는 레벨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11입니다.”
“저도 11이에요.”
내가 11이라 밝히자, 하윤도 나를 따라 자신의 레벨을 11이라 밝혔다.
그러자 격정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쩐지! 어떻게 이리 빠른 속도로 올라왔나 했더니, 레벨이 높았구려!”
“경이적입니다. 겨우 사흘 차에 레벨이 11이라니!”
“탑 랭커가 될 인재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일부러 조금 줄여서 말했는데도 이런 반응이었다.
‘진짜는 16인데 말이야.’
진짜 레벨을 밝히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였다.
***
레벨이 높아서인지, 왕의 환심을 확실하게 산 거 같았다.
왕뿐만이 아니었다.
왕과의 접견이 끝나자 네시아 왕국의 실력자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중에는 자신을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양주르 공작의 수하라 밝힌 인물도 있었다.
‘양주르 공작이라.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왠지 원작에 나왔던 인물 같았다.
다만, 주연 인물은 아니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났다.
“저를 용병으로 쓰길 원한다고요?”
“용병이란 말보단 친구가 되길 원한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양주르 공작이 내게 사람을 보낸 이유는 단순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나의 힘을 쓰고 싶은 것이다.
유저는 적어도 10층에 거주하는 탑의 주민보단 월등한 포텐을 가졌으니 말이다.
“제가 원하는 건 땅입니다.”
“땅? 갑자기 무슨 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이 도시의 땅을 갖고 싶습니다. 그러니 저를 용병으로 쓰고자 한다면 땅을 주십시오. 유저 전체를 수용할 정도의 큰 땅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