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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동료?
‘유저가 벌써 6층까지 올라왔을 리는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설령 어느 비밀부대의 살인 병기급 요원이라 해도 이렇게 빨리 5층을 뚫는 건 무리가 있었다.
3층에서 살짝 시간을 허비한 것 말고는 거의 쉬지 않고 달려온 나조차 이제 6층이었다.
하물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녀였다.
탑에서 성별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마는, 겨우 이틀 차인 지금 시점에선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우리 집.”
“여기가 당신의 집이라고요?”
하윤의 물음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히든 NPC인가.’
꼭 소녀가 유저라는 법은 없었다.
탑에는 흔히 NPC라 불리는 종족이 살고 있었다.
물론 NPC라 부르는 것은 유저들뿐.
정확하게 말하면 탑의 주민이었다.
보통 이 탑의 주민들은 10층, 20층, 30층 등 0으로 끝나는 층에 거주하였다.
내가 6층에 탑의 주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아주 우연스럽게 다른 층에서 탑의 주민을 만나고는 했다.
그 우연스럽게 마주친 탑의 주민은 당연히 주인공의 동료가 되던가.
아니면 특수 아이템이나 정보 등을 제공하였다.
나 역시 바로 그런 상황에 직면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삼촌,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우리를 적대할 생각이 없는 거 같으니 무기를 내려놓자.”
탑의 주민이 맞는다면 적대해봤자 득 될 게 없었다.
물론 탑의 주민이라고 무조건 우호적인 건 아니었다.
그들 역시 유저와 똑같았다.
게임 속 NPC 같은 게 아닌,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완전히 방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됐다.
“이름이 뭡니까?”
“나, 휘니.”
“저는 민건우라고 합니다. 이쪽은 정하윤.”
“이상해. 널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해.”
휘니라 이름을 밝힌 소녀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뭐야. 이 여자, 뭔가 이상해 보이는데?”
내가 봐도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작 주인공은 이보다 훨씬 비정상적인 상황을 많이 마주하였다.
겨우 이런 일에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오늘 하루 신세를 져도 되겠습니까?”
“나랑 잘 거야?”
당황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녀의 질문을 듣자 저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신세를 지겠다는 말이 이상하게 통역이 된 건가?’
그럴 수도 있었다.
원작에서도 간혹 서로의 말이 잘못 통역이 되어 웃긴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니.
“오늘 하루만 자고 가겠습니다.”
“응. 나도 같이 자.”
“···그러십시오.”
집주인의 허락을 받았기에 이제 집을 사용하는 것에 제약이 없었다.
나는 하윤에게 다시 들어가 자라고 하였다.
그녀는 찝찝한 표정을 하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넌 안 자?”
“휘니.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응.”
그녀가 무엇이든 말해보라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레벨이 몇입니까?”
“레벨? 그게 뭐야?”
탑의 주민에게도 레벨이 존재하였다.
당연히 스탯도 있었다.
단, 직업이 없다는 것과 레벨 업을 해도 보너스 스탯을 받지 못한다는 게 차이였다.
‘그런데 레벨을 모른다고?’
그냥 상태창만 외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간단한 정보를 모른다는 건 그녀가 다른 사람과의 접점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혹시 이곳에 다른 사람은 없어?”
상대가 계속 반말하기에 나도 그냥 편하게 반말로 물었다.
그러자 휘니가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는 나밖에 없어.”
“아무도 없다고? 그래서 레벨이 있는 것도 모르는 건가.”
이례적인 경우였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6층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탑의 주민을 내가 발견한 셈이니까.
“상태창을 외쳐봐.”
“상태창?”
“레벨 몇이라고 떠?”
“29.”
29라고?
꽤 높았다.
아니, 이곳이 겨우 6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레벨이었다.
‘혼자서 사냥을 엄청나게 한 모양인데?’
하기야 혼자서 할 게 뭐 있겠는가.
사냥뿐이었다.
그녀의 등에 활이 메여있는 걸 보면 아마 활로 사냥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파티에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파티?”
“나의 동료가 되어 달라는 말이야.”
내 말에 휘니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응! 나, 너랑 함께하고 싶어.”
***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 나갔다.
물론 잡담을 나눈 건 아니었다.
그녀는 6층에 거주하는 유일한 탑의 주민.
알아내야 할 정보가 한둘이 아니었다.
휘니 개인에 대한 궁금증도 많았다.
장기가 무엇인지.
전투력은 어느 수준인지.
그리고 대화를 이어 나갈수록 나는 확신하였다.
휘니를 영입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는 사실을.
‘특성만 여섯 개라.’
만약 유저를 파티원으로 받아들인다면 주로 직업과 스탯을 볼 거다.
반면 탑의 주민을 파티원으로 받아들인다면 주로 봐야 할 건 특성이었다.
휘니가 가진 특성의 개수는 여섯 개.
이중 사격의 명수는 S급 특성이었다.
원딜로 영입한다면 이보다 좋은 특성은 별로 없으리라.
“그렇게 됐다.”
“아니, 뭘 그렇게 돼? 나랑 얘기도 없이 파티원을 받아들이겠다고?”
잠에서 깬 하윤은 휘니를 동료로 영입하겠다는 내 말을 듣고 당혹감을 내비쳤다.
“딱 봐도 이상한 여자인데, 뭘 믿고 파티로 받아?”
“실력이 좋아.”
“무슨 실력?”
“나, 활 잘 쏴.”
휘니가 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하윤은 여전히 불신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고, 실력을 봐야겠어.”
그녀가 억지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만 듣고 휘니를 영입하는 것에 찬성했다면 나는 오히려 혼냈을 거다.
‘나도 궁금하긴 해.’
내가 봤을 때, 휘니는 굉장히 뛰어난 인재로 보였다.
일단 특성부터 범상치 않았으니.
하지만 그 실력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확신은 금물이었다.
그럴 린 없겠지만, 내게 거짓말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휘니의 실력을 볼 기회는 곧바로 찾아왔다.
다섯 마리로 구성된 고블린 무리를 마주하였다.
고블린 무리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휘니야. 실력을 보여줘.”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그녀는 활을 들어 올린 상태였다.
활시위를 당기던 그녀는 순식간에 세 발의 화살을 쏘았다.
휙!
첫 번째로 쏜 화살이 마치 섬광처럼 날아갔다.
“키에에···. 켁!”
“켁!”
일렬로 오던 고블린 두 마리가 동시에 쓰러졌다.
화살 한 방이 선두에 선 고블린의 머리를 관통하더니 그대로 뒤에 따라오던 고블린의 머리까지 관통한 것이다.
나머지 두 발의 화살도 타이밍 맞게 날아왔다.
역시 이번에도 화살은 고블린을 적중하였다.
남은 세 마리 고블린 역시 두 발의 화살에 즉사하였다.
“휘니야. 난 처음부터 네가 우리 파티에 들어오길 바랐었어.”
하윤이 언제 그랬다는 듯, 휘니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넸다.
단 한 번의 실력 행사로 그녀를 인정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운이 좋아. 이렇게 원딜을 얻다니.’
이 정도면 원작 주인공보다 운이 좋은 게 아닌가 싶었다.
원작 주인공은 온갖 수고를 다 하고 간신히 동료를 얻고는 했는데 말이다.
어쨌든 나로선 나쁠 게 없었다.
***
“여기로 가면 있어. 새로운 몬스터.”
고블린을 사냥하는 건 더는 의미가 없었다.
업적도 주지 않았고 겨우 다섯 마리 정도로는 경험치 벌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나는 휘니에게 새로운 몬스터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역시 원주민인 휘니는 모르는 게 없었는지 바로 길을 안내하였다.
“저기 앞에 있어.”
“뭐가?”
“몬스터.”
고블린을 발견할 때도 그랬지만, 휘니의 눈은 무척이나 좋았다.
감각 스탯이 좋다기보다는 특성의 영향일 것이다.
그녀에겐 사냥꾼의 시야라는 특성이 있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에도 몬스터가 보였다.
“야수형 몬스터군. 늑대인가?”
“늑대?”
왠지 고블린보다 까다로울 거 같았다.
숫자도 더 많았고.
‘그래봤자 6층에서 나올 몬스터의 수준은 뻔하지.’
지금 내 스탯이라면 ‘양학’도 가능하였다.
당연히 그 양학의 대상에서 몬스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잡을게.”
휘니라면 쉽게 처리하겠지만 그래서야 의미는 없었다.
업적을 받으려면 내가 직접 잡아야 했다.
내가 풀숲을 헤치고 나오자 늑대 무리도 뒤늦게 나를 발견하였는지 특유의 포효를 내질렀다.
여덟 마리가 마치 포위하듯 사방에서 달려들었는데 그 모습만 봐도 확실히 고블린보다 위협적이었다.
서걱!
하지만 양학이 가능하다는 내 말은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늑대는 느렸다.
정확히 말하면, 내 감각 스탯과 민첩 스탯으로 봤을 때, 무척이나 느릿하게 느껴졌다.
어디를 물려고 하는지.
어디를 공격하면 피할 수 없는지.
모든 게 너무도 선명히 보였다.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늑대 한 마리를 잡자 예상했던 문구가 떠올랐다.
너무도 쉽게 올스탯 1을 얻었다.
사실상 레벨을 2개 올린 것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문구를 본 시간은 잠시뿐이었다.
내가 잡은 늑대는 한 마리뿐.
나머지 늑대가 연달아 달려들었다.
서걱, 서걱!
참격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가 나간 검 하나로도 이 정도 수준의 몬스터는 쓸어버릴 수 있었다.
“삼촌, 왜 이렇게 강해?”
“건우, 멋지다.”
두 사람이 나서기도 전에 나는 순식간에 여덟 마리의 늑대를 정리하였다.
휘니까지 감탄시켰으니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
6층에는 일종의 보스 몬스터도 있었다.
바로 그레이트 베어라는 몬스터였다.
말 그대로 거대한 곰이었는데, 3m 이상의 체격을 자랑하였다.
‘다른 유저들은 저 곰을 보는 순간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겠어.’
직업 스킬이 없는 한 잡기 어려워 보였다.
장비라도 제대로 갖춘다면 모를까, 그것도 힘들었다.
가장 앞서나가는 파티인 우리조차 검 두 자루가 끝이었으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파티가 그레이트 베어를 상대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콰콰콰쾅!
숫자도 단 셋뿐이었고 장비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에겐 스킬이 있었다.
참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위력을 자랑하는 스킬 말이다.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원샷원킬이었던 참격 스킬은 역시 그레이트 베어도 한 방에 끝을 냈다.
“나 레벨 업 했어!”
하윤이 옆에서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나 역시 그녀처럼 신나는 기분을 만끽하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다.
무려 두 번이나.
‘역시 보스 몬스터급이 맞긴 한가 보군.’
그레이트 베어는 규격 외의 강함을 가졌다.
우리 파티가 없다면 유저를 100명 이상 데려와도 상대하기 어려웠으리라.
그런 몬스터이니 당연히 경험치도 많이 줄 수밖에 없었다.
“휘니야. 고맙다. 덕분에 레벨 올렸어.”
“응.”
그레이트 베어를 잡은 건 나다.
하지만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휘니였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이 넓은 공간에서 그레이트 베어를 찾아낼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만큼 그레이트 베어는 외진 곳에 있었었다.
“혹시 6층에 다른 몬스터나 특별한 공간 같은 거 있어?”
나는 기대감을 담아 물었다.
6층의 원주민인 그녀이니 이스터 에그 같은 걸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없어.”
“그래?”
“응.”
아쉬웠다.
절세의 보물 같은 게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휘니 덕에 얻어낸 업적만 두 개였다.
더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그럼, 바로 7층으로 가자.”
이스터 에그 같은 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각 층의 업적만 독식해도 나는 누구보다 강해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미련을 버리고 7층으로 향하는 포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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