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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서 나 혼자 재벌-5화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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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빠르게.

퍽! 퍽!

하윤은 좀비가 나타나자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삼촌이 준 목검을 휘둘렀다.

한 방으로 좀비를 넘어뜨린 뒤, 확실하게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좀비를 잡는 그녀의 모습은 노련한 여전사를 보는 듯했다.

카르마가 오르는 것까지 확인한 하윤은 문뜩 자신의 삼촌을 떠올렸다.

그러자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느꼈다.

‘뭘 하는 건지 설명이라도 해줬으면 답답하지 않을 텐데.’

그녀의 어머니는 늘 말했다.

삼촌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윤 역시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녀의 삼촌은 볼 때마다 새로웠다.

어떨 때는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치열하게 살았다.

또 어떨 때는 한량이 따로 없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기껏 좋은 대학에 갔더니 자퇴하기도 했고, 힘겹게 대기업에 취업했더니 바로 퇴사하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퇴사한 뒤로는 백수처럼 지내는가 싶더니 어느 날 갑자기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 사업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접고는 지금은 집에서 주식 투자자로 활동했다.

‘뭔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 즉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지, 삼촌은.’

아마 그 생명의 샘인지, 뭔지 하는 곳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거다.

탑에서의 활동에 도움이 되기에 그런 행동을 선택한 것이리라.

하지만 문제는 그 같이 행동한 이유를 하윤에게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거기! 잠깐 서봐!”

그때 갑자기 뒤에서 일본어가 들렸다.

하윤은 일본어를 할 줄 모르지만, 상대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었다.

탑에서는 언어의 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리에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왜소한 체격의 낯선 사내가 갑자기 그녀에게 무언가를 날렸다.

휘이익!

그 무언가는 다름 아닌, 단검이었다.

하윤은 잠깐 당황했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단검이 그녀의 머리 바로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호오. 피해?”

“뭐, 뭐죠? 지금? 저를 죽이려 한 건가요?”

“네놈은 인간이 맞겠지? 인간이라면, 내게 맛있는 비명을 들려줬으면 좋겠어.”

순간, 하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다짜고짜 단검을 날린 걸 보고 예상하긴 했었다.

하지만 말하는 꼴을 보니 살인으로 쾌락을 느끼는 미친놈처럼 보였다.

‘도망쳐야 해.’

마침 미친놈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윤은 그 모습을 보고 바로 등을 돌렸다.

[정하윤 – 삼촌 도와줘! 미친놈이 나를 공격하고 있어!]

삼촌에게 귓속말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왜 아무런 대꾸가 없는 거야!’

연달아 귓속말을 보내도 대답이 없었다.

“구어어어어!”

좀비만이 쓸데없이 나타날 뿐이었다.

퍽!

목검으로 좀비를 쓰러뜨리고는 더욱 속도를 내서 달렸다.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죽이겠다!”

거리가 점점 멀어지자 짜증이 났는지 멀리서 남성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 말을 듣고 다리를 멈출 하윤이 아니었다.

체력은 아직 여유가 있었기에 더욱더 힘을 내서 달렸다.

하지만 이곳은 미로였다.

거의 대부분의 길은 벽으로 막혀 있었다.

그녀가 선택한 길 역시도 끝에는 벽이었다.

‘어떡하지?’

막다른 길에 몰린 그녀는 절망감을 느꼈다.

더는 도망칠 수 없었다.

[민건우 – 도망치지 말고 싸워. 네가 이겨.]

그때 삼촌의 귓속말이 왔다.

하윤은 입술을 깨문 채 인벤토리에서 목검을 꺼냈다.

살기 위해서라도 삼촌의 말을 들어야 했다.

“호오? 무기가 있다고?”

감탄하듯 탄성을 내지르던 상대는 마치 발도술 하듯, 엄청난 속도로 검을 뽑았다.

그러자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린 뒤, 왼손으로 그녀의 목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그 목검, 내 검에 부딪히면 바로 부서질 거 같은데?”

누가 봐도 그렇게 보였다.

사내가 꺼낸 검은 진검이었고 반면에 하윤이 든 검은 목검이었다.

심지어 사내의 검은 그냥 진검도 아니라, 절삭력이 남다른 ‘희귀’급 진검이다.

하윤의 목검은 바로 잘릴 거다.

[민건우 – 걱정하지 마. 쪼렙이 아무리 좋은 아이템 가지고 덤벼봐야 나뭇가지 든 초고렙을 못 이겨.]

그때 그녀의 삼촌이 귓속말을 해주었다.

마치 상황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기적절한 조언이었다.

‘가까이에 있으면 삼촌이 직접 싸울 것이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삼촌의 의도를 알 거 같았다.

이번 기회에 실전 경험을 쌓으라는 의도일 터.

물론 삼촌의 의도가 무엇이든 하윤으로선 기분이 좋을 순 없었다.

“벙어리처럼 구는군. 과연 팔이 없어져도 조용할지 보자고!”

그녀가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상대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하윤은 당황하지 않고 상대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폈다.

‘꽤 빠르다.’

전문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빠른 거 같았다.

프로 출신이 아니라면 업적을 딴 게 분명하였다.

그것도 최소 두 개 이상.

하지만 하윤은 당황하지 않았다.

분명 빠르지만,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타이밍에 맞춰서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바로 목검을 휘둘렀다.

퍼억!

두 사람이 한 차례 충돌한 후에 피가 튀었다.

이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악!”

남자가 자기 왼팔을 부여잡고 고통에 찬 괴성을 질렀다.

방금까지 멀쩡했던 그의 팔이 기괴하게 꺾여있었다.

목검에 가격당해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이 개자식! 감히 내 팔을 이렇게 만들어? 가만두지 않겠다! 네년을 갈가리 찢어 죽여주마!”

그런 남자의 모습에 하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악의에 가득 찬 시선을 받는 것.

그녀는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하지? 그냥 도망쳐야 하나?’

당장 상대가 위협되지는 않았다.

길이 넓으니 최대한 거리를 벌린다면 사내에게 잡히지 않고 골목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후환이 걱정이었다.

그녀를 죽이겠다는 사내의 외침이 마냥 허세로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

타쿠마 세이토는 이를 갈았다.

고통보다 분노가 그를 괴롭혔다.

‘무조건 복수할 거다! 무조건! 사지를 갈가리 찢어 죽여주마!’

그는 다짐했다.

반드시 복수해주겠다고.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두 팔이 멀쩡했을 때도 압도적인 패배를 당했었다.

외팔이 신세인 지금이라면 상대가 안 될 게 뻔했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강하기는 해. 아마 스탯이 미친 듯이 높은 거겠지.’

10대인지, 20대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앳된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 힘은 100kg 넘는 거구보다 강했다.

타쿠마 세이토는 여인과 멀쩡한 상태에서 다시 붙는다고 이길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찰나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잠깐 충돌했을 뿐인데도, 그는 상대와의 실력 차이를 명확하게 파악하였다.

다른 스탯은 몰라도 근력과 민첩은 최소 5 이상 차이가 나리라.

그리고 지금 수준에서 스탯 5 차이는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크게 다친 그를 앞에 두고 머뭇대고 있는 모습만 봐도 그랬다.

만약 자신이었으면 적대적인 존재를 절대 살려두지 않았을 터.

‘이렇게 나약한 성격이라면 언젠가 죽일 기회는 반드시 생긴다!’

다친 팔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구하면 됐다.

이 탑이란 곳은 죽은 자를 살린다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신비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의 부상 정도는 충분히 치료할 수 있으리라.

그러던 중 여인이 움직였다.

혹시 자신을 공격할까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여인은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며 자리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래. 도망쳐라. 지금은 놓아주마.’

타쿠마 세이토는 조소를 흘렸다.

알아서 도망쳐준다면 그도 나쁠 게 없었다.

“지금 뭐 하냐?”

“삼촌! 왜 이제 와!”

하지만 그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여인과 가족 관계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파티가 있었던 건가.’

변수였다.

하필 동료라니.

심지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근데 저건 또 뭐야?’

새로 나타난 사내는 무언가를 질질 끌고 있었다.

생명체처럼 보이는 그 무언가는 연신 꿈틀거렸다.

“왜 마무리하지 않았지?”

“마무리? 무슨 마무리를 말하는 거야.”

“저놈, 저대로 둘 생각이었냐?”

타쿠마 세이토는 흠칫하였다.

무감정한 눈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사내의 모습을 보자 왠지 불안해졌다.

“그럼 어떡해. 사람을 죽일 수도 없잖아.”

“좀비는 그리 쉽게 죽이더니, 사람을 죽이는 건 힘든가 보지?”

“당연한 거 아니야?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죽여.”

“그래.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득 될 게 없긴 하지. 행운 스탯만 떨어지니 말이야.”

뜬금없이 행운 스탯을 운운하는 사내의 모습에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행운 스탯이 갑자기 왜 떨어져?”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행운 스탯이 떨어진다. 아마 저 사람, 행운 스탯 마이너스일걸?”

흠칫!

그러고 보면 그가 사람을 죽일 때마다 행운 스탯이 하락하였었다.

지금은 이미 –30을 찍은 상태.

‘저놈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거지?’

그 역시 세 사람을 죽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업적에만 몰두하여 행운 스탯이 내려갔다는 걸 늦게 알았다.

“크크. 그럼, 네놈도 나를 죽이지 못하겠군. 행운 스탯이 떨어지는 게 두려울 테니까.”

타쿠마 세이토는 태연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알면 안 되는 정보를 아는 사내의 정체가 신경 쓰였다.

하지만 살인의 부작용을 알기에 오히려 그를 죽일 수 없으리라.

“내 손으로 직접 죽이는 건 아무래도 꺼려지지. 근데, 내 손으로만 죽이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뭐?”

타쿠마 세이토가 의아함을 느낄 때, 사내가 무언가를 질질 끄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거칠게 그 무언가를 타쿠마 세이토 쪽으로 밀었다.

***

“구어어어어어.”

내가 민 좀비가 일본인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미, 미친!”

“삼촌. 지금 뭐 하는 거야?”

하윤이 당황한 얼굴로 내게 소리쳤다.

느닷없이 좀비를 사람에게 밀었으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 정도로 당황했다면, 당사자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사내는 예상했던 반응을 보여주었다.

깜짝 놀란 듯, 뒤로 넘어진 것이다.

쿵!

좀비는 바로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런데 사내는 포기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검 쪽으로 멀쩡한 왼손을 내밀었다.

물론 그가 검을 쥐는 걸 가만히 지켜볼 내가 아니었다.

좀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다가가 검을 툭 발로 찼다.

그러곤 그의 왼팔을 붙잡았다.

“이 손 놔! 빌어먹을, 놓으라고!”

“구어어어!”

두 팔을 쓸 수 없는 상태였기에 그의 최후는 정해져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끼아아악!”

좀비가 사람을 뜯어먹는 광경은 썩 유쾌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 처절한 비명까지 실시간으로 듣는다면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하지만 이게 확실하지.’

눈앞에서 죽음을 확인하지 않으면 후환이 남을지 몰랐다.

실제로 원작에서도 죽은 줄 알았던 악역이 툭하면 되살아나고는 했다.

탑은 그만큼 변수가 많았다.

그렇기에 나는 사내가 좀비의 손에 죽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물론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좀비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설정처럼, 사내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좀비로 변하였다.

“구어어어어!”

콰직!

좀비가 된 사내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발을 내리찍었다.

수박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의 머리가 박살 났다.

물론 사내를 좀비로 만들었던 좀비 역시 검으로 확실히 처리하였다.

‘이러면 후환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유저로 죽었다면 혹시 몰랐다.

하지만 일본인 사내는 좀비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건 깎이지 않은 행운 스탯이 증명하였다.

이러면 원작의 악역들처럼 바퀴벌레같이 되살아나는 일은 없으리라.

“그나저나 벌써 3층까지 올라온 사람이 있을 줄이야.”

시시한 상대였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진도였다.

아무리 내가 딴짓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지만, 나와 진도가 비슷하다니.

앞으로도 여유 따위는 부려선 안 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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