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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직업?
‘이 탑이란 곳은 정말 천국이나 다를 게 없단 말이지.’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을 때, 타쿠마 세이토는 오히려 기회를 엿봤다.
탑에는 CCTV도 없었고 경찰도 존재하지 않았다.
낯선 장소에서 두려움에 떠는 온실 속 화초들만 가득하였다.
기회를 엿보던 그는 미로 한복판에서 여성 한 명을 조우하자, 고민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교살하였다.
그게 ‘탑’에서의 첫 살인이었다.
그리고 여성을 살해한 순간, 그는 업적을 얻었다.
최초로 유저를 살해했다며 올스탯 3을 그에게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르마란 것도 얻었는데, 이는 카르마 상점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화폐였다.
다른 유저들은 보통 몬스터가 나오는 3층에서 처음 카르마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유저를 살인함으로써 엄청난 양의 카르마를 얻어냈다.
‘뭐야, 또 업적을 준다고?’
유저를 살해하고 얻게 된 카르마.
그는 이 카르마로 단검 하나를 구매하였다.
그러자 탑은 그에게 또 하나의 업적을 선물해주었다.
최초 아이템 구매에 대한 업적이었다.
이로써 그는 남들보다 압도적인 스탯을 갖게 되었다.
덤으로 무기까지 손에 쥐었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최대 세 명이 모인 파티까지 공격하며 그는 거침없이 탑을 올랐다.
그러다 2층 끝자락에서 마침내 그는 원하는 양의 카르마를 모았다.
“크큭. 단단하군.”
대략 120cm 정도 되는 길이의 장검을 손에 쥐었다.
2kg에서 3kg 사이의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 검의 이름은 Rare Long sword.
희귀한 장검이었다.
그가 처음에 산 단검은 한눈에 봐도 보잘것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 장검은 달랐다.
마치 전쟁 영화에 나오는 장검처럼 굉장히 멋있었다.
물론 검을 볼 줄 모르는 타쿠마 세이토는 그저 이 생각만 하였다.
‘더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겠어.’
일반급 무기도 갖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그는 무려 희귀급 장검을 가졌으니 사람 죽이는 것도 더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3층에 있는 놈들 싹 잡아보자고.’
***
3층에 오자 예상했던 대로 업적을 받았다.
열세 번째 업적이었다.
물론 레벨 업은 덤이었다.
<사용자 정보>
이름 : 민건우
레벨 : 7
성별 : 남성
직업 : 검사
잔여 포인트 : 38
보유 카르마 : 0
[근력 : 48] [내구 : 49] [민첩 : 48]
[체력 : 49] [마력 : 44] [감각 : 50]
[행운 : 52]
‘벌써 레벨이 7인가.’
사실 레벨보다는 괴물 같은 스탯이 더 눈에 들어왔다.
평균 스탯이 40대 중후반이라니.
심지어 잔여 포인트로는 찍을 수 없는 행운 스탯이 50이 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레벨 업으로 오른 18과 업적으로 오른 20.
이렇게 무려 38의 잔여 포인트가 남아있었다.
“삼촌! 나 레벨 6 됐어!”
“꽤 올랐네.”
하윤 역시 레벨이 많이 올랐다.
직업을 얻은 게 레벨 업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다.
“스탯은 뭐 찍을까?”
“안전하게 근민 위주로 찍어.”
“나 법사 캐인데 근력과 민첩을 찍으라고?”
“마력이야 어차피 업적으로 충분히 채워지니까.”
파티원으로 만약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있었다면 마력 위주로 찍는 게 좋았을 거다.
하지만 우리 파티는 단 두 명뿐.
내가 모든 상황에서 그녀를 지킬 수는 없으니 그녀 역시 전투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대규모 전이가 아니라면 마력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도 않지.’
파티원이 나뿐이라면 그녀가 마력 부족에 허덕일 일은 없었다.
아니, 업적만 계속 따낸다면 오히려 다른 마법사보다 더 마력이 넉넉할 거다.
‘나는 뭐를 찍는 게 좋을까?’
원래 검사라면 힘체민을 찍는 게 맞았다.
즉, 근력과 체력, 민첩을 찍어야 한다는 뜻.
하지만 나의 선택은 힘체민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지.’
[마력 : 82(+38)]
잔여 포인트 전부를 마력 스탯에 찍었다.
참격이란 스킬을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전투 상황에서 아까처럼 스킬 한방 쓰고 헐떡였다간 개죽음당할 게 뻔했으니 말이다.
***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좀비였다.
그리고 3층에서 출몰하는 몬스터가 좀비였는데, 나는 미로에 들어간 순간 느꼈다.
죽은 자에게서 나는 특유의 악취를.
‘감각이 높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2층에서는 듣지 못했던 발걸음 소리도 연신 들렸다.
내가 3층에 최초 입장했으니, 이 발걸음 소리는 모두 좀비 소리였다.
“구어어어어어.”
미로의 모퉁이에서 갑자기 좀비가 튀어나왔다.
감각 스탯이 낮은 유저들이라면 아마 깜짝 놀라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멀리서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이쯤 오면 좀비가 튀어나올 거란 사실을.
‘그래도 좀비의 실물을 보니 조금 당황스럽긴 하네.’
구역질 날만큼 역겨운 외모를 가진 좀비였다.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의 외형이 오히려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좀비야? 생각보다 별거 없네.”
하윤이 오히려 나보다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담이 크기는 큰 거 같았다.
좀비가 다가오자 나는 목검을 크게 휘둘렀다.
살면서 한 번도 목검을 휘둘러본 적이 없는데도 내 목검은 정확하게 좀비의 머리를 가격하였다.
콰직!
단단한 좀비의 머리가 단 한 방에 박살이 났다.
이게 바로 스탯의 힘이었다.
좀비의 시체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설령 몬스터라 한들, 무언가를 죽이는 감각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해져야 해.’
탑에서는 별의별 몬스터가 다 튀어나왔다.
아니, 몬스터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인간도 언제든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탑이었다.
그러니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지금 당장 살인을 해야 한다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최초로 ‘좀비’를 처치하였습니다.>
탑은 늘 그렇듯 최초로 한 행위에 보상해주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에 얻은 업적은 가장 낮은 등급이라는 점이었다.
올스탯은 겨우 1, 부가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예 없었다.
‘하지만 이런 1도 수십, 수백 개가 모이면 엄청나지.’
4층부터 출몰한 몬스터들 역시 내가 최초로 처치할 가능성이 컸다.
탑의 몬스터는 그 종류가 실로 어마어마하였다.
그렇게 많은 종류의 몬스터를 최초로 처치한다면 내 스탯은 더욱더 괴물처럼 바뀔 거 같았다.
***
“합!”
하윤이 기합을 내지르며 좀비에게 일격을 가했다.
겉으로만 봐서는 연약해 보였지만, 그녀는 현재 시점에서 탑 랭커였다.
내 덕에 업적을 많이 챙겼고 레벨도 6으로 올렸기에 상당히 강했다.
좀비가 그녀의 공격을 한 대 맞고는 그대로 움직임이 멈추었다.
내가 때렸을 때처럼 얼굴이 박살 나지는 않아도 즉사시킬 수준은 되었다.
“하아. 하아.”
“더 못 잡을 거 같으면 내가 잡고.”
“아니, 삼촌. 내가 할 수 있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도 그녀는 나에게 목검을 돌려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내게 증명하려는 거 같았다.
자신도 파티원으로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차피 전이술사 스킬만 얻어도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인데 말이지.’
나로서는 그녀가 기특하게만 느껴졌다.
어쨌든 그렇게 하윤을 앞장세워서 미로를 탐색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좀비가 나타나지 않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멀리서 연못 같은 게 보였다.
“삼촌, 저게 뭐야?”
하윤도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로 한복판에 연못이라니.
누가 봐도 이상했다.
아마 하윤은 함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 연못을 보고 환희하였다.
이 연못은 일종의 히든 피스였다.
작품에서는 ‘생명의 샘’이라 불렀다.
거창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샘의 물을 마시거나 바르면 상처가 급속도로 치료됐다.
만약에 2층이나 3층에서 상처를 입었다면 이곳에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다.
덤으로 굶주림이나 목마름, 피로도를 개선하는 효과도 가졌다.
‘하지만 이 샘이 진정한 히든 피스인 이유는 마나를 수련하기에 최적화된 장소라는 점 때문이지.’
이 정보는 한참 지나서야 알려질 정보였다.
초입인 3층에서 마나를 수련할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
원작 주인공 같은 귀환자들이 탑에 들어오고서야 이 연못의 진정한 쓰임이 알려졌다.
“하윤아. 너는 잠시 혼자서 좀비들 사냥하고 있어.”
“어?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나는 이왕 여기 온 김에 마나를 익히고 갈 거야.”
상태창에 마력 스탯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이 마력 스탯은 내가 오롯이 사용할 수 없었다.
그저 스킬을 사용할 때만 마력이 저절로 소모될 뿐이었다.
이유야 간단하였다.
아직 마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나를 느끼지 못했으니 마나를 사용하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하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랭커는 모두 마나를 다룰 줄 안다지?’
작품에서는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장치로 쓰였다.
약자로 알려진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에게 무공을 배워 랭커가 되는 에피소드도 자주 나왔다.
그렇기에 나도 강자로 군림하기 위해선 마나를 다룰 줄 알아야 했다.
마침 생명의 샘이 나왔으니 지금이 기회였다.
“마나를 익힌다니? 삼촌, 갑자기 더럽게 옷은 왜 벗어?”
나는 웃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온천에 몸을 담근 것처럼 따뜻하면서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실시간으로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가하게 목욕하러 물속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업적까지도 포기하고 시간을 투자하였다.
마나를 느끼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편한 자세로 앉아있으면 되는 건가?’
영상이나 그림을 본 게 아니었다.
글로 배운 것이기에 사실 마나를 어떻게 느껴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생명의 샘 안에서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이 제자를 가르칠 때는 호흡을 중요시하였었지.’
그래서 일단 호흡에 집중하기로 했다.
물론 주인공처럼 내공심법 같은 건 없었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할 뿐이었다.
“후우. 하아.”
잡념을 털어내고 온 세포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워낙 감각 스탯이 높았기 때문일까?
집중이 잘 안됐다.
청각과 후각이 나를 방해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하윤이의 시선도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더는 좀비가 걸어 다니는 소리도, 지하 특유의 꿉꿉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하윤에 대한 생각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소설에서 나오는 무아지경이란 게 이런 것일까?
어떤 잡념 없이 호흡에만 집중하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든 나는 그저 호흡에만 집중하였다.
체감상으로는 열흘 이상 지난 느낌이었다.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최초로 ‘마나’에 감응하였습니다.>
설령 열흘 이상 지났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랭커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을 누구보다 먼저 얻어냈으니까.
‘이것이 마나라는 건가.’
작품에서는 마나를 느끼는 과정이 그리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았다.
주인공은 소설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초절정 고수였기 때문이다.
마나, 아니 기라는 것을 한참 전에 느꼈었다.
탑에서 마나를 느꼈을 때, 자세한 묘사를 넣을 이유가 없었다.
그저 자신이 있던 이세계와 탑의 마나 농도가 어느 정도 차이 나는가만 설명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처음 알았다.
마나를 느끼는 것이 이렇게 벅찬 감동을 선사할 줄은.
마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아.’
물론 당장 마나를 느낀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는 무공이나 마법, 그 외에 마나를 사용하는 그 어떤 것도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저 오감이 조금 더 예민해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하였다.
한층 더 예민해진 오감 덕에 지금 하윤의 상황을 알 수 있었으니까.
‘하윤이가 위험하다.’
누군가가 하윤을 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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