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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왔으면 업적부터.
친한 친구가 웹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나는 말리지 않았다.
그 친구는 금수저였으니까.
작품이 인기 없어서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런 친구를 나는 응원해주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재미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실종되었고.
그 친구가 썼던 소설은 현실이 되었다.
***
[탑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탑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예/아니요.]
이 문구가 떴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예를 눌렀다.
그러자 밝은 빛이 내 눈을 파고들었다.
잠깐 눈을 감고 뜨니 내 눈에 펼쳐진 광경이 확 달라졌다.
‘여기는 어디야?’
처음 보는 장소였다.
어두컴컴한 것이 마치 동굴 같았다.
‘진짜로 그 녀석의 소설 속에 들어온 건 아니겠지?’
문뜩 떠오르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오늘은 1월 25일이었다.
친구 녀석이 쓴 소설에서도 1월 25일에 처음 탑이 생겨났다.
그래서 잠시 녀석이 쓴 소설 안으로 들어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탑이라는 것부터 비현실적이었다.
그냥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최초로 ‘탑’에 입장하였습니다.>
<업적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작게 ‘상태창’을 외쳤다.
이것이 꿈이 아닐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최초로 ‘상태창’을 열람하였습니다.>
<업적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진짜 업적을 달성하다니.
만약 이게 꿈이 아니라면 나는 엄청난 어드밴티지를 갖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소설에 나오는 시스템 기능이 또 뭐가 있었더라?’
생각나는 대로 아무 기능이나 외쳐보았다.
그러자 세 개의 업적을 더 달성할 수 있었다.
<최초로 ‘카르마 상점창’을 열람하였습니다.>
<최초로 ‘인벤토리창’을 열람하였습니다.>
<최초로 ‘스킬창’을 열람하였습니다.>
하나만 얻어도 초대박인데, 최초 보상만 벌써 다섯 개였다.
최초 보상으로 올라간 스탯을 보니 MMA 선수와 싸워도 이길 거 같았다.
‘이게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이 강해진 것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시금 상태창을 외치니 내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사용자 정보>
이름 : 민건우
레벨 : 1
성별 : 남성
직업 : 없음
잔여 포인트 : 10
보유 카르마 : 0
[근력 : 21] [내구 : 22] [민첩 : 21]
[체력 : 22] [마력 : 17] [감각 : 23]
[행운 : 25]
프로 격투기 선수라도 나를 이길 수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MMA 선수라고 해도 10을 넘는 스탯은 없을 거다.
설정상 성인 남성의 평균 스탯이 5라고 하였으니.
‘1레벨당 3의 추가 포인트가 주어지니, 내 스탯은 3~40레벨의 스탯과 비슷한 수준인 건가?’
이것만 해도 엄청난 보상이었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보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상태창을 열었을 땐 보너스 스탯 10개가 주어졌고, 스킬창을 열었을 땐 스킬 포인트 3개가 주어졌다.
스킬 포인트는 스킬 레벨을 올릴 때 필요한 포인트인데 세 개나 주어졌으니 3레벨을 올린 거나 다름없었다.
또한 인벤토리창을 열었을 때 인벤토리 확장권을 얻었고 카르마 상점창을 열었을 땐 ‘50% 할인권’을 얻었다.
하나만 얻어도 남들보다 크게 앞서나갈 수 있는 보상들이었다.
그런 보상을 여러 개 얻었으니 탑의 랭커가 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당신들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What the fuck!”
“这里是哪里?”
갑자기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방금까지만 해도 공터였던 자리에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
초대장은 전 세계 모든 이에게 동시에 보내졌다.
그리고 가장 먼저 초대에 응한 10만 명 만이 1차로 탑에 들어왔다.
물론 1차라고 말했듯, 10만 명이 끝은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10만 명의 유저가 들어올 예정이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겠어.’
탑의 정보가 없었다면 사람들을 보고 기뻐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탑의 정보를 아는 나에게 있어 인간은 경쟁자에 불과하였다.
선점해야 할 업적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추가 스탯이나 다른 정보에 관한 건 나중에 생각하고 업적부터 수집하는 게 먼저였다.
다른 이들에게 업적을 빼앗기기 전에 말이다.
그때였다.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삼촌!”
고개를 돌리니 조카 정하윤이 보였다.
“네가 왜 여기에 있냐?”
“몰라. 갑자기 눈앞에 뭐가 뜨길래 눌러봤는데 여기로 와졌어. 근데 삼촌은 여기가 어딘지 알아?”
뒷머리를 긁적이는 하윤을 보며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하윤이 탑에 들어올 줄이야.
‘이럴 때가 아니지.’
업적은 1등만 주는 것이 아니었다.
2등부터 10위까지도 업적을 챙길 수 있었다.
“상태창이라고 외쳐. 빨리!”
“뭐?”
“상태창이라 외치라고!”
“상태창을 왜 외쳐? 어? 이거 뭐야?”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하윤은 이내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와! 나 게임 속에 들어온 거야?”
“업적은?”
“응? 업적? 그건 또 뭔데?”
업적은 받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바로 주변에서도 상태창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게임의 영향인지, 낯선 곳에 오면 사람들은 일단 상태창부터 외쳤다.
“스킬창 외쳐봐. 인벤토리창도.”
나는 하윤에게 다른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업적도 얻어내지 못했다.
단 몇 초 지체했을 뿐인데 이미 업적을 모두 뺏겼다.
“이거는?”
“어? 또 이상한 거 떴어.”
지금 그녀의 눈앞에는 ‘파티 초대를 받았습니다.’란 문구가 떴을 거다.
내가 그녀에게 파티를 초대한 것.
“빨리 수락 눌러.”
그녀는 얼결에 수락을 눌렀다.
그러자 내 시야로 세 개의 문구가 떠올랐다.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최초로 ‘파티’를 결성하였습니다.>
<업적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삼촌, 업적이란 게 떴는데?”
파티 결성에 대한 보상이었기에 이번에는 그녀 또한 업적을 받았다.
그것도 최초 보상을 말이다.
‘운이 좋았다.’
파티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하윤을 만나서 파티 결성 업적까지 챙길 수 있었다.
지금 시점에 내가 얻을 만한 업적은 모두 챙겼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내가 본 웹툰에서도 이런 상황이 나오던데···. 우리 진짜 게임 같은 곳에 들어온 거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따라오기나 해.”
“또 어디 가는데?”
“설명할 시간 없다.”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모인 공동을 조금 벗어나면 길이 보였다.
그것도 여러 개의 길이.
‘그 녀석이 쓴 작품을 안 봤으면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다른 사람들처럼 가만히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알았다.
2층으로 가려면 저 미로를 뚫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저 미로 안에는 나를 위협할 존재가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
“사람들은 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거야?”
“어두우니까. 미지의 공간이기도 하고.”
어둠 속을 걷는 건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에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어두운 거 같지는 않은데···.”
“네가 감각 스탯이 높기 때문이다.”
“감각 스탯?”
원래라면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깜깜해야 정상이었다.
작중에서도 주인공의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쓰였으니까.
그런데 나는 전혀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려 26에 달하는 감각 스탯.
이 엄청난 스탯이 어둠을 꿰뚫는 능력을 주었다.
아마 올스탯 3을 얻은 하윤이도 주변 형체 정도는 보일 거다.
원래도 눈이 좋은 녀석이었으니.
‘하지만 이런 특전을 가지고 시작한다 해도 원작 주인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아무런 특전이 없어도 주인공은 강했다.
주인공은 무려 귀환자.
그것도 무협지 세계에서 귀환한 초절정 고수였다.
밸런스 패치를 받아 처음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지만, 그조차 지금의 나보다는 강했다.
‘그나마 주인공이 늦게 탑에 들어오는 게 다행이야.’
딱히 주인공을 적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왕 탑에 들어온 김에 탑의 일인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탑의 일인자가 되려면 서둘러야 했다.
아직 남은 업적은 수도 없이 남았으니까.
“서두르자.”
나는 거의 달리듯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정보가 없다면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탑에서는 인간을 적대하는 생명체가 수도 없이 많았다.
같은 인간이 인간을 적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있는 1층만큼은 위험 요소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찾았다.”
“뭐를 찾았는데?”
“보물 상자.”
몇 분 정도 걸었을까?
벽의 구석에 조그만 상자가 숨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만큼 구석에 있었으니.
물론 나는 감각 스탯 덕에 어렵지 않게 찾았다.
“이게 보물 상자야? 여기엔 뭐가 들어있어?”
“그건 열어보면 알 수 있지.”
“아니, 그냥 열어보게? 상자에서 뭐 나올지 어떻게 알고?”
“위험한 건 안 나오니 걱정하지 마.”
철컥.
바로 상자를 열자 빵 하나와 사과, 이상한 문양이 쓰여있는 돌 조각 하나가 보였다.
빵이나 사과는 식량 대용이었다.
미로에서 따로 식량을 얻을 방법이 없었기에 굉장히 소중하였다.
하지만 나는 빵이나 사과보다는 돌 조각에 더 관심을 두었다.
“이게 룬 조각이라는 거다.”
“룬 조각? 그건 또 뭔데?”
“강해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거.”
룬이란 것은 작품 설정상 엄청난 가치를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룬을 통해 스탯을 올릴 수 있고 스킬도 얻을 수 있었다.
‘룬으로 조합하려면 여덟 개를 더 모아야겠어.’
정보가 괜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 룬 조각을 얻었다면 쓸모없는 돌멩이 취급했을지도 몰랐다.
조합하기 전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으니 말이다.
룬 조각은 정확히 9개 모아야지만 룬으로 조합할 수 있었다.
‘나중에 사람들과 거래해서 룬을 저렴하게 구매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선점해야 할 것들은 꼭 업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나만이 아는 정보들로 주요 재료나 아이템을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였다.
이 룬 조각 역시 그렇게 선점해야 할 아이템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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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바로 2층으로 갈지, 아니면 1층에 남아 보물 상자를 탐색할지.
‘2층에도 보물 상자는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쉽게 찾을 수는 없어.’
보상은 2층이 더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렸다.
보물 상자만 노린다면 1층을 수색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나는 ‘룬’이란 확실한 목표가 있었기에 1층에서 보물 상자를 조금 더 찾기로 하였다.
“삼촌. 삼촌은 회귀자인 거지?”
그때 하윤이 뜬금없는 말을 하였다.
“뭐?”
“나를 속이려 할 필요 없어. 솔직히 너무 티 났잖아. 삼촌.”
내가 모든 걸 아는 듯 행동해서 회귀자로 의심하는 거 같았다.
하기야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윤이가 나처럼 행동했다면 나도 그녀를 회귀자로 의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회귀자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우리 당분간 따로 움직일 거야.”
“따로 움직인다고? 설마 삼촌, 나 버리려는 건 아니지?”
“버리기는. 내가 널 왜 버려?”
“근데 왜 따로 움직여? 내가 몬스터 같은 거에 당하면 어쩌려고?”
“1층에서 몬스터는 안 나오니 걱정하지 말고.”
하윤이를 데리고 움직이면 아무래도 기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윤이는 한쪽 길로 계속 걷게 하였고 나는 따로 떨어져서 미로 곳곳을 뒤지며 보물 상자를 찾기로 하였다.
“사람을 만나면 귓속말부터 해. 2층으로 가는 포탈을 발견해도 귓속말하고.”
내가 안심하고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내게 ‘귓속말’이란 특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파티 결성으로 얻은 특전이었는데 멀리서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였다.
이 기능이 있는 한, 1층에서만큼은 그녀와 떨어져 있어도 걱정할 필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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