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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외전 : 한여름의 공포 특집(3) (140/144)


140화. 외전 : 한여름의 공포 특집(3)
2023.04.05.



 
이 별장에 숨어 있는 게 뭘까. 후보를 추려보자.

1. 겁나 빠른 쥐…… 또는 벌레……. (바퀴벌레? 으악!)

2. ……새? 새가 어디 둥지를 튼 걸까?

3. 귀신…….


“…….”

3번은…… 솔직히 내가 초자연적인 존재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유령보단 바퀴벌레가 더 무섭지.’

이미 유령(벨루인)을 본 적이 있기도 하거니와, 그보다 무서운 거(포식자)와도 싸웠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당장 귀신이 내 앞에 나타난다 해도 전혀 무섭지 않…….


“흐아악!!”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자빠진 나는, 쩍 벌어진 입을 달싹이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귀, 귀…….”

진짜 귀신이잖아!

그렇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내 눈앞에…… 진짜 귀신이 나타났다!


‘뭐, 뭐, 뭐야……! 갑자기 웬 귀신이야!’

이 전×의 고향 같은 전개는 뭐냐고! 심지어 이 귀신…….


‘목이…… 없어…….’

그 순간 까무룩 기절할 뻔했으나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자세히 보니, 이 유령은 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왼쪽 가슴 부근에 제법 큰 상처가 나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 주변과 목깃이 전부 피투성이……. 흐아아악…….


‘의, 의식이 아찔하다.’

잠시 비틀거린 나는 똑바로 서려 애쓰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반투명하고 푸르스름한 형체의 유령은 나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 같았다.

……목 위로는 아무것도 없어서…… 내가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귀신……이니까…… 볼 수 있지 않으려나…….’

그럼 말도 할 수 있으려나?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용기를 쥐어짠 내가 막 입을 연 순간이었다.


“부인……? 무슨 일이십니까?”

“끼웅……?”

마침 잠에서 깬 그레이안과 토끼가 눈을 비비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둘의 눈이 보름달만 해졌다.


“뭐…….”

“끼아웅?!”

먼저 움직인 쪽은 토끼였다. 재빨리 침대에서 뛰어내린 토끼는 이쪽으로 후다닥 달려와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흡사 나를 지켜주듯이.


“캬웅!”

게다가 유령을 향해 우렁차게 호통치기까지! 정말 용감한 토끼다. 나보다 훨씬 대범하군…….


“부인,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당하신 건…….”

토끼에 이어 곁으로 온 그레이안이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하려는 차, 메아리처럼 울리는 목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해치려던 건 아니었어요……. 정말입니다…….}

이건…… 저 유령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역시, 목이 없어도 의사 전달을 할 수 있구나…….


“캬아웅―.”

토끼가 유령을 향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앞발로 삿대질했다. 개수작 부리지 말라는 것 같았다.

난 일단 토끼를 안아 들고 진정시켰다. 손으로 등을 토닥여 주니 씩씩거리던 토끼가 점차 얌전해져 갔다.


‘……유령을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니까, 하나도 무섭지 않아. 진짜야.’

그리고 나도…… 침착하려 애쓰는 중이었다. 여전히 심장이 콩닥거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포식자까지 겪은 내가 유령을 무서워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래! 지금은 다, 단지 조금 놀란 것뿐이야! 나는 눈을 부릅뜬 채 유령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죠? 왜 우리 앞에 나타난 거예요?”

{……저는…….}

유령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래전, 이 목장에서 일하던 목동이었습니다.}

“아, 네……. 그런데요?”

‘머리는 왜 없는 것이냐.’ 하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꾹 참았다. 아무리 상대가 유령이어도 초면에 그런 예민한 질문을 하는 건 실례일 테지…….

그리고 이 유령이 생전에 목동이었다는 건 예상 범위 안이었다. 소매를 걷어 올린 낡은 셔츠에 갈색 바지, 편한 가죽 신발. 곳곳에 묻은 양털에, 나무를 깎아 만든 지팡이까지. 누가 봐도 ‘나 목동이오!’하고 광고하는 복장이었으니까.


{……긴 이야기입니다만, 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목동의 유령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청해 왔다. 우리가 거절할 것도 염두에 둔 듯이.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알겠노라 대답했다. 거절하면 꿈에 나올 것 같았으니까. 밤마다 목 없는 귀신의 악몽을 꾸는 것은 절대로 사양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목동은 기쁜 듯 살짝 상기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란, 다음과 같았다.

.

옛날 먼 옛날에……는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그때도 이 일대는 양떼목장이었고, 이 별장도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목동은 이 별장 관리인의 아들이자 양치기 일을 하는 순박한 시골 청년이었다.

나이는 19세로, 성년을 지났으니 좋은 짝을 만나 사랑에 빠지기 딱 좋은 나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지방 영주의 딸이 별장에 휴가를 보내러 왔고…….

목동은 고귀한 아가씨인 그녀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이런 사랑 이야기가 늘 그렇듯, 두 사람은 신분이 높은 쪽의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당장 그 목동과 헤어져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가문에서 제적하겠다!’

 
영주는 금지옥엽 키운 딸을 어떻게든 목동과 떨어트리려 했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멀었던 아가씨는 ‘그럼 그렇게 하라’며 집을 뛰쳐나와 목동이 있는 별장으로 도망쳤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영주는 대로하여 기사들을 동원해 목동을 잡아 오게 하였고…….

아가씨와 목동은 야반도주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기사들에게 발각당해 영주의 앞으로 붙잡혀 오게 된다.

영주는 딸을 탑 꼭대기에 가두었고, 목동의 목을 베어 죽인 후 심장을 뽑아냈다.

그리고 목동의 머리와 심장을 은쟁반에 담아 딸에게 보냈다.


“흐악…….”

{……제 머리와 심장을 본 아가씨께서는…… 충격을 받아 그만…… 제정신이 아닌 채로 탑에서 투신하셨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 모두 슬프고 잔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게…… 이 이야기의 결말.


{유령이 된 저는 아가씨의 무덤을 몇 번이고 찾아가려 했지만…… 아가씨께서 묻힌 묘지에는 외부의 사특한 것들이 침입할 수 없도록 주술이 걸려 있어 저 역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죽어서도 연인을 그리워하던 목동은 언젠가 아가씨의 무덤가에 갈 수 있길 고대하며 이 근처를 떠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50년 동안이나.


“꾸우웅…….”

언제부터인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던 토끼가 앓는 소리를 냈다.

목동의 이야기가 몹시 가슴 아팠나 보다. 감수성 풍부한 토끼.

나는 착잡한 기분이 드는 한편,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아니, 영주란 놈이 영지민을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해도 되는 거야? 완전 미친놈이로구만!’

그레이안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의아한 투로 목동의 유령에게 물었다.


“그대를 죽인 그 영주의 처사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하네만…… 이후 왕가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나?”

{그게……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영주님께서도 목숨을 잃으셔서…… 영주 자리는 그분의 동생이 물려받게 되었죠.}

“아……. 그랬군.”

도의적으로 문제 삼아야 할 상대가 죽어서 왕가에서도 흐지부지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목동의 이야기 속 영주 가문은, 아무래도…….


‘피오렌 공작가…… 아닌……?’

이번에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떠올린 듯한) 그레이안이 재차 물었다.


“그 영주 가문은, 혹시 피오렌 공작가인가?”

{아, 네. 당연히요.}

역시.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이 근방을 50년 이상 다스려 온 가문은 피오렌 공작가뿐이었으니까.


‘피오렌 공작가에 이런 비설이 있었다니…….’

그레이안도 난생처음 듣는다는 기색인 걸로 보아, 여태 피오렌 공작가에서 필사적으로 숨겨 온 모양이었다.


‘하긴, 알려져서 좋을 게 없는 이야기지.’

……잠깐, 그럼 이야기 속 아가씨는 참수리 수인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 목동은 무슨 수인이지……?


‘물어보면 실례이려나…….’

“그대는 개 수인인가?”

{아,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 어쩐지 친근감이 느껴지더라고. 내가 늑대 수인이라.”

{하하, 네.}

하지만 그레이안이 거침없이 물어봤고 목동의 유령도 별로 대수롭지 않아 하며 시원스레 대답했다.

……나만 괜히 신경 쓴 거였군.


‘개 수인과 참수리 수인이라…….’

특이한 조합이긴 하다…….


“꺄아앙?”

토끼가 목동의 유령을 향해 뭐라고 물었으나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당연하다. 토끼 울음소리니까.

그래도 대충 뭘 묻는지 알 거 같긴 했다. 나는 토끼를 대신해 목동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 앞에 나타난 이유가……?”

그러자 목동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아가씨의 무덤가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럴 줄 알았다.

벨루인의 경우에도 그렇고, 유령들은 한이 남아 성불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게 되는 모양이었으니까.

이 목동에게 남은 한은, 연인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것.

그 한을 풀어주면 성불할 수 있겠지.


“웅꺗!”

내가 뭐라 대꾸하기 전에 토끼가 냉큼 승낙하고 나섰다.

목동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린 모양이었다. 감성 토끼 같으니라고…….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목동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그를 데리고 피오렌 공작성까지 오게 되었다.

당연히, 피오렌 공작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피오렌 공작은 ‘무슨 헛소리야?’ 하는 표정이었으나,


{아, 안녕하세요…….}

“……?!”

목동의 유령을 보고 나자 까무러치게 놀라고는…… 머지않아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있었군. 유령이라는 게…….”

화룡점정은 비앙카의 반응이었다.


“와! 당신은 왜 머리가 없나요?”

해, 해맑아도 너무 해맑다. 나만 당황한 게 아닌지 다들 나와 같은 표정이었다. 단 한 사람, 피오렌 공작만 제외하고.

그는 제 부인이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천 년이 지나도 안 벗겨질 콩깍지다, 저건.’

 

 
여하튼, 목동의 유령은 피오렌 공작 부부에게도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고…….


“어쩜…… 세상에 그런 비극이……!”

그 사연에 크게 감화된 비앙카가 목동을 돕는 데 적극 찬성하고 나서 준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묘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문제는…… 묘지 입구에서 벌어졌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뜻밖에도, 죽은 영주의 유령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

벌써 30분째.


“어르신, 좀 비켜 주시면…….”

{썩 꺼지지 못할까!}

우리는 영주의 유령을 설득하는 데 빈번히 실패하고 있었다.


‘망할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죽어서도 성격이 고약하구만.’

나는 내심 영주를 욕하며 몰래 노려보았다. 그러다 딱 걸려,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지만.


“어르신, 어차피 전부 지난 일이 아닙니까. 죽은 사람이 한을 풀고 싶어 할 뿐이니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지요.”

반면 그레이안은 연신 진중한 자세로 영주의 유령을 설득하는 데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후……. 역시 내 남편이야.’

그에게 다시 한번 더 반했다.

저 흠 없이 고상하고 품위 넘치는 모습! 상대에게 간절히 부탁하면서도 비굴하진 않으며, 눈빛은 흔들림 없이 올곧고, 상대가 화를 내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평정심……!


‘아……. 너무 멋지다…….’

내 남편이 최고야. 귀엽고 멋지고 다정하고 다해. 오늘 밤에 칭찬해 줘야지. 물론 토끼가 우리 방에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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