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외전 : 한여름의 공포 특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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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외전 : 한여름의 공포 특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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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외전 : 한여름의 공포 특집(1)
2023.03.29.
“아, 덥다…….”
7월의 솔즈베리 공작령은 더웠다. 대륙 북쪽이라, 남쪽에 자리한 아인스턴 왕국보다는 덜 더운 편이지만.
“여름 휴가라도 떠날까…….”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내 옆에 늘어져 있던 토끼가 귀를 쫑긋 세웠다.
저 녀석도, 그레이안도, 여름인데 덥지도 않은지 털 뭉치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털 뭉치일 때 내가 귀여워해 주는 게 좋아서.
‘진짜 웃긴 털 뭉치들이야.’
나는 마법으로 차갑게 식힌 손수건을 토끼 등에 올려 주었다. 그러자 토끼가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더니 손수건을 꼭 껴안고 뒹굴뒹굴 굴렀다. 시원해서 기분 좋은가 보다.
“휴가를 떠난다면, 역시 피오렌 공작령이 좋겠지? 비앙카도 볼 수 있고, 바닷가도 갈 수 있으니까.”
“꺄웅!”
벌떡 일어난 토끼가 적극 찬성이라는 듯이 폴짝 뛰었다. 나는 손을 스윽 뻗어, 차가운 손수건을 토끼 목에 스카프처럼 둘러 주었다.
“꺄항.”
“시원해?”
“웅꺗!”
아유, 귀여워. 나는 참지 못하고 토끼를 마구 쓰다듬었다. 뭘 먹고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니까.
“그럼 그레이안한테 얘기해 봐야겠다. 너도 같이 갈래?”
“꺙!”
폴짝 뛰어오른 토끼가 내 어깨에 찰싹 달라붙었다. 토끼의 껌딱지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워.’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 수인들은 체온이 뜨끈뜨끈한 동물 모습으로도 여름을 버틸만한 모양이었지만, 난 아니었다.
한창 더울 때라 부채질을 해도 덥고, 얼음물을 마셔도 덥고, 아무튼 뭔 짓을 해도 더웠다. 그런데 뜨거운 털 뭉치들이 찰싹 달라붙으니 더욱 더웠다!
“에이프릴……. 안 덥니? 우리 좀 떨어져서 걷는 게 어때? 아님 네가 사람 모습을 하든가…….”
“캬앙.”
눈치 보며 제안했으나 바로 거절당했다. 나쁜 토끼 같으니라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부채질이나 열심히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햇빛이 가득 들어올 때라 복도는 더 더웠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드디어…… 도착!’
그레이안의 집무실 앞에 도착해 냅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는 노크부터 했지만, 최근엔 그냥 아무렇게나 쳐들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그레이안과 허물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부인?”
마침 휴식 시간이었는지 보좌관과 함께 소파에 앉아 냉차를 마시던 그레이안이 놀란 기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힘없이 쓰러지며 부채를 툭 놓았다.
소파 위에 떨어진 부채를 그레이안이 얼른 받아 들더니, 날 위해 열심히 부채질해 주기 시작했다.
더해서 다른 손으로는 냉차가 든 유리잔을 들고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는 그 잔을 받아들고 냉차를 홀짝였다. 달콤하고 시원한 차가 목을 넘어간다. 하……. 좀 살 거 같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보고 싶어서요.”
“네……?”
농담 삼아 말하며 유리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두 팔로 그레이안의 목을 살짝 끌어안자, 그의 눈빛이 지진 난 듯 흔들린다. 이내 그의 양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크하하. 이 맛에 매번 놀려먹는다니까.
“캬아앙!”
토끼가 제 앞에서 염장 떨지 말라며 성질을 부렸다. 질투쟁이 같으니라고.
질투쟁이 토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을 풀고 그레이안과 떨어져 앉았다.
토끼는 우리 사이에 냉큼 파고들어 앉더니, 매서운 눈초리로 우리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이 녀석, 그레이안이 늑대 모습을 자주 하게 된 후로 질투가 심해졌다니까…….
“에이프릴, 너도 냉차 좀 마셔.”
주의를 돌릴 요량으로 유리잔을 토끼 입에 들이밀자,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은 토끼가 이내 잔에 얼굴을 박고 냉차를 홀짝였다.
그렇게 몇 모금 마시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배를 드러낸 방탕한 자세로 소파에 눕는다.
나는 요즘 따라 살이 올라 더 말랑말랑해진 토끼 배를 마구 만졌다.
촉감이 꼭 마시멜로 같았다.
“그레이안, 우리 다음 주쯤 여름 휴가 겸 여행 가는 게 어때요? 피오렌 공작령으로요.”
토끼를 내려보다 고개를 들며 말을 꺼내자, 그레이안이 왜인지 놀라워하는 기색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음 주는 쉴까 생각 중이었는데, 부인과 뜻이 통했군요.”
“피오렌 공작령 괜찮죠?”
“어디든 좋습니다. 부인이 원하시는 대로…….”
“그레이안도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야죠. 에이프릴은 좋대요. 그렇지?”
“꺙.”
귀를 쫑긋거리며 우리 대화를 엿듣던 토끼가 귀엽게 대답했다. 나는 토끼 배를 더욱 격하게 쓱쓱 만져 주었다.
“거긴 해산물이 싱싱할 테니까 먹을 거도 많겠고…… 바다에서 수영도 할 수 있고.”
그리고 유람선을 타고 돌고래 구경을 할 수 있다고 했던가? 심지어 그 관광 이벤트의 사회자가 돌고래 수인이란다. 기가 막히는군…….
“지금부터 계획을 짜 봐요. 시간 괜찮죠?”
“물론입니다.”
“꺄웅!”
그렇게 해서, 우리는 피오렌 공작령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 * *
일주일 뒤.
“이젠 하다 하다 여행 셔틀까지 시키는 겁니까. 제가 아주 동네북이로군요.”
국경 요새에서 날아온 아르에몽…… 아니, 아르윈이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말은 저렇게 해도 몸은 착실하게 셔틀 노릇을 하고 있다. 무거운 짐에 경량화 마법을 걸어 주고, 마차 안이 덥지 않게 냉각 마법을 걸어 준다. 어깨에 올라타 괜히 시비를 거는 토끼와도 놀아주고.
‘역시 최고의 호구…… 아니, 인재…….’
“메이브는 잘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꺄웅……. 웅꺄앙?”
“여행을 떠나는 것보단 방에서 책 읽고 공부하는 게 더 좋다는군요. 어쩔 수 없죠.”
“끼우웅…….”
에이프릴의 토끼 수인 친구, 메이브는 국경 요새에서 아르윈의 직속 제자로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에이프릴과 자주 어울려 놀진 못했으나 종종 아르윈과 함께 솔즈베리 공작성에 방문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에이프릴은 눈에 띄게 기뻐했다.
오늘도 에이프릴은 혹시 메이브가 아르윈과 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메이브가 오지 않았단 사실을 깨닫곤 몹시 실망해서는 괜히 아르윈에게 심술을 부려댔고…….
“공녀님, 그렇게 때리면 아픕니다.”
“캬웅.”
“저에게 화를 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캬아앙!”
“여기, 과자나 드십시오.”
……아르윈은 그런 에이프릴을 아주 능숙하게 다뤘다. 저 정도면 학교 선생님을 해도 잘할 것 같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맛있습니까?”
“꾸웅.”
아르윈이 준 과자를 냉큼 받아먹은 토끼가 먹는데 말 걸지 말라며 구시렁댔다. 과자를 얻어먹고도 까칠하게 구는…… 정말로 문제적인 토끼였다.
여하튼, 오래 걸리지 않아 모든 준비를 마쳤고 곧 출발할 때가 왔다.
“에이프릴, 마차에 타자.”
“꺄앙!”
깡충 도약한 토끼가 내 품에 쏙 안겼다. 나는 토끼를 쓰다듬으며 마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행용 마차의 실내는 늘 그렇듯 넓고 아늑했다.
“공작 부인, 레모네이드를 드릴까요? 샌드위치도 있어요.”
마시고 먹을 것도 준비되어 있고. 크으.
게다가, 무엇보다…….
‘시원하다……!’
아르윈이 냉각 마법을 걸어 준 덕분에, 마차 안은 에어컨을 켠 듯 시원했다.
나는 더없이 흡족한 기분으로 안나가 건네준 레모네이드를 홀짝이며 이 시원함을 만끽했다.
내 옆에선 아르윈이 준 과자를 다 먹은 토끼가 이번엔 샌드위치를 훔쳐먹고 있었다.
‘극락이다…….’
순탄한 여행이 될 듯한 예감이 들었다.
* * *
“도착~!”
“꺄앙!”
“왕!”
워프 포인트를 이용한 덕분에 피오렌 공작령까지는 하루도 안 걸려 도착했다.
날씨 좋고, 바람 좋고, 햇빛 좋고…… 근처가 시장이라 그런가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도 나고…… 다 좋은데…….
“왉!”
“꺄웅!”
토끼×개판…….
개…… 아니, 늑대로 변신한 그레이안 때문에 평소보다 두 배로 정신없었다.
늑대 모습을 하는 게 좋다는데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휴, 모르겠다. 해탈하자. 응, 해탈하면 편해.
“그러고 보니 비앙카가 마중 나온댔는데…….”
아란사의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익숙한 인영을 찾는데, 갑자기 얼굴로 뭔가 홱 날아들었다.
“악!”
정체불명의 털 뭉치(감촉을 보니 그런 것 같았다)에 얼굴을 얻어맞은 나는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꾹 감고 어깨를 움츠렸다.
“컹! 컹컹!”
“캬앙!”
늑대와 토끼도 위협적으로 짖고 울어댔다. 잇따라 무언가…… 조류 같은 생물이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설마…….’
나는 천천히 눈을 떠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삐이이잇―!!”
낯익은 분홍 뱁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내 주변을 빙글빙글 날아다녔다.
그렇다. 나를 습격한 털 뭉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 뱁새…….
피오렌 공작 부인, 비앙카였던 것이다.
.
“삐이이잇!”
“아, 네. 고마워요…….”
“캬우웅……!”
“컹!”
나는 이해를 포기했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미친 상황과…… 수인들의 알 수 없는 머릿속을.
‘왜…… 굳이…… 동물 모습을…… 고집하는 거지……?’
비앙카는 내 얼굴에 박치기한 게 미안한지…… 예쁜 나뭇잎을 물어다 주거나 꽃을 물어다 주거나 했다.
그렇게 비앙카가 물어다 준 잡동사니들이 내 주머니에 가득 쌓였다.
이제 좀 그만 줬으면 하는데…….
“저기, 비앙카?”
“삐잇?”
비앙카가 24번째 들꽃을 물고 왔을 때,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만 물어다 주면 안 될까요? 이제 충분한 거 같은데.”
“삐……!”
노란 민들레를 물고 있는 비앙카의 작은 몸이 파르르 떨렸다.
부리가 열리더니 민들레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것이 땅에 부딪히기 전에 내가 냉큼 받아들었다.
“이 민들레까지만 받을게요. 더 안 줘도…….”
“삐이이잇……!!”
“……?”
갑자기 결연하게 내지른 비앙카가 고개를 뒤로 틀더니, 자신의 꽁지깃을 뽑으려 애쓰기 시작했다.
아니, 설마?
진짜?!
“비, 비앙카? 난 진짜 괜찮고 화 안 났으니까 그만해요……! 꽁지깃은 안 줘도 돼요!”
뽁―.
“…….”
애써 만류했지만, 기어이 꽁지깃을 뽑고야 만 비앙카가 파들파들 떨며 그것을 나에게 건넸다…….
……돌겠다.
이 일은…… 내가 비앙카의 꽁지깃을 받았다는 건 피오렌 공작에게 절대 비밀이다.
그 미친 애처가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잘…… 받을게요……. 고마워요.”
“삐이…….”
“소중히 간직할게요. 무덤까지 가지고 갈게요.”
“삐……!”
그렇게 이 분홍 꽁지깃은 ‘영원한 우정의 상징’ 같은 게 되어버렸다.
그래, 뭐, 나쁠 건 없지……. 비앙카와는 친한 사이이니까…….
꽁지깃을 뽑아서 아픈지 눈물을 글썽이는 분홍 뱁새를 보며, 나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수인들이란…… 왜 이렇게 다 바보 같고 착한 걸까…….
.
도시와 바다 구경은 뒤로 미루고, 먼저 우리는 휴가 동안 머물기로 한 별장에 와서 짐을 풀었다.
푸른 초원과 양떼 목장을 끼고 있는 언덕 위의 별장.
바닷가 별장과 이곳 중에서 심히 고민했는데, 최종적으로 여기로 선택하길 잘한 거 같다.
일단 보송보송한 양들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고.
“메에―.”
“메에에―.”
“왕!”
“꺄앙!”
그 양떼를 몰며 노는 토끼와 늑대를 구경할 수 있어서 나는 더 좋고.
“삐이―.”
피오렌 공작성과 가까워서, 비앙카가 자주 놀러 올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신선한 양젖 치즈도 먹어볼 수 있다는 거 같고…… 양털 깎기 체험도 할 수 있댔지.’
나야 양털 깎기 체험엔 별 흥미가 없지만…… 에이프릴이 좋아할 거 같아서 고려했는데, 정작 토끼 녀석은 양떼 몰이를 더 좋아하는 거 같다.
‘양치기 개냐고…….’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별장으로 먼저 들어갔다. 토끼와 늑대는 알아서 따라 들어올 것이다.
‘흠, 좋네.’
별장 내부는 아늑했고, 퀴퀴하거나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청소를 자주 하는지 먼지 쌓인 곳도 없고 깨끗했다.
‘역시, 잘 고른 거 같아.’
후후 웃으며 실내를 좀 더 둘러보는데, 갑자기 싸늘한 감각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
홱 뒤를 돌아본 나는 크게 뜬 눈을 깜박거렸다.
……방금, 내 뒤로 뭔가 지나간 거 같았는데.
착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