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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여주의 새엄마가 되었다-132화 (132/144)

##  132화. 위기는 기회

더, 더, 더 많이 먹고 싶다.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배 속의 이 허기짐은 도저히 채워지지 않았다.

세계 하나를 삼켜야 비로소 완전한 만족감이 들려나? ……아니, 그럴 리 없지. 여태껏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세계를 먹어치웠음에도 계속 배고프지 않았던가.

이 허기짐은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숙명.

그러니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영원히 배고플 것이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 사람 살려!”

“괴물이야!!”

영혼을 먹으면 먹을수록, 자신을 담고 있는 몸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시야가 높아지고, 팔과 혀가 길어졌다. 손톱은 날카로워지고 이빨은 뾰족해졌다.

좀 더 많이 사냥할 수 있도록, 좀 더 빠르게 먹어치울 수 있도록, 탐식하고자 하는 욕망이 육체에 점점 반영되어 갔다.

“아직…… 아직 부족해…….”

겁에 질려 도망치는 인간들은 더욱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으로 보였다. 공포는 영혼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좋은 조미료였다.

그렇기에 지금, 인간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은 매우 기괴하고 공포스러울 것이다.

인간이 더욱 두려워하도록 변모해, 에반젤린 아인스턴의 원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겠지.

“저, 저게 뭐야?!”

“괴물! 괴물이다!”

“도망치지 말고 공격해!”

“안 돼! 공격이 안 먹혀!”

“다들 물러서라!”

“마법사님……!”

나이 지긋한 마법사 하나가 제 앞을 가로막았다. 다른 이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 주려는 요량인 듯하지만…….

“윽……!”

“마법사님!!”

어차피, 평범한 인간이 지닌 힘으로는 자신을 막을 수 없었다.

늙은 마법사의 영혼을 뽑아낸 포식자는 그것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이 영혼은 별로 맛이 없었다. 죽기 직전까지 만용을 부린 것인지…….

“이…… 빌어먹을 괴물이!!”

누군가 분노를 터뜨리며 포식자에게 달려들었다. 방금 죽은 마법사와 두터운 사이인지, 눈가에 물기가 가득 차오른 채로.

포식자는 개미만도 못한 인간의 무모함을 비웃으며 손을 뻗었다. 모조리 먹어치울 것이다.

이제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으리라. 세계수는 나름 보험을 들어둔 모양이지만…….

“컥……!”

자신에게 달려든 인간의 목을 콱 틀어쥔 포식자가 샐쭉 웃으며, 이번에도 어김없이 영혼을 뽑아내려던 차였다.

파앗―!

“……!”

느닷없이 파마의 힘이 들이닥쳤다.

지난번 노예상의 섬에서 상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정결하고 강력해진 힘이었다.

붙잡고 있던 인간을 놓친 포식자가 몸을 움츠리며 주춤 물러났다.

시야를 가득 채운 빛이 서서히 걷히고, 그 중심에 선 인간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흩날리는 금빛 머리카락, 그리고 새파란 눈이었다.

그리고 몸의 실루엣을 감싸고 있는 영혼의 빛.

저 맑은 파란빛은…… 언제나 봐도 불유쾌했다.

‘글로리아 아인스턴…….’

새롭게 선택된 세계의 조율자……. 그리고…… 옆의 저 소년은…….

‘400년 전의 조율자…….’

세계수가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마련해둔 보험.

그게 바로 저 둘.

포식자는 단지 흥미로워하며 웃었다.

그래, 과연 너희가 나를 막을 수 있을지, 어떨지…….

지금부터 시험해 보면, 알 수 있겠지.

* * *

반란군 쪽으로 도망쳐 온 병사들은 분명 ‘에반젤린 왕녀를 봤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저 형체에…… 에반젤린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포식자가 사냥을 시작하면서 변모한 거야. 그릇이 포식자의 영향을 받아 변하게 된 거지……. 지금도 계속 변하는 중이고.}

원래 에반젤린 아인스턴이었을 저 몸뚱이는 이제 완전히 포식자의 것이 되었다.

꾸물거리며 부풀어 오르는 근육과 살덩이, 피부를 뚫고 자라나 뾰족하게 튀어나온 뼈들, 전체적인 형체는 검붉은 빛이었고, 그와 같은 색깔의 연기가 주변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모습을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자면, 그래…….

“괴, 괴물……!”

“괴물이다!”

“글로리아 님, 저 괴물은 대체 뭡니까……?!”

‘괴물’이라고,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었다.

“……모두 진정하세요. 저 괴물을 물리칠 방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반란군, 그리고 이쪽으로 도망쳐 온 왕의 군사들을 향해 말하자, 모든 이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다들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내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어쩐지 어깨가 무거워져 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저건 영혼을 잡아먹는 괴물이에요. 간단히, 포식자라고 하죠.”

“포식자……? 어디서 들어본 거 같기도…….”

포식자에 대한 전설이나 괴담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왔으니, 대강 들어본 사람이 있을 법도 했다.

그리고 나는 사실에 거짓을 더해서…… 포식자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저것은, 수인을 배척하는 여러분의 죄악에서 태어나, 증오와 혐오를 먹고 자라난 괴물입니다.”

“우, 우리의…… 인간의 죄악에서……?”

“저 괴물이 죄의 대가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저 괴물은 세계수 님이 우리를 벌하시기 위해서 내린 시련입니까?”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냈다.

저 수많은 사람 중에는, 수인을 혐오하는 이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이도, 혐오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한 이도, 혐오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웠던 이도 있겠지.

……인간의 본질이 악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사람들이 결국엔 이기적이지 않은, 타인을 배척하지 않는, 선한 선택지를 고를 거라는 희망.

큰 위기는 때로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번 반란을 계기로, 수인에 대한 아인스턴인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했다.

“저 괴물이 세계수 님이 내린 시련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세계의 시련인 것은 맞죠.”

여기저기서 탄식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긴장한 기색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포식자는 지금 당장 이쪽을 공격할 마음은 없는지, 내가 하는 바를 잠자코 지켜볼 따름이었다.

‘그래, 왠지 그럴 거 같았지…….’

지금 내가 포식자에게 보여주는 이 장면은…… ‘이야기’이다.

영혼을 삼키는 괴물의 출현, 세계의 위기에 맞서 홀연히 나타난 구원자.

그리고 그 구원자에게 희망을 갖는 사람들…….

그 희망이 철저하게 부서지면, 사람들의 영혼은 포식자가 더욱 좋아하는 맛이 되겠지.

“……저 괴물을 무찌를 수 있는 힘이 저와 여기 이 소년에게 있지만…… 여러분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해야…… 저 괴물의 힘이 더는 강해지지 않을 테니까요.”

“잘못이라 하심은…….”

“수인들을 배척하고 차별한 것, 수인들을 노예로 만들어 부리고 학대한 것, 그 외에 수인들에게 행한, 모든 죄악이요.”

내 말에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중 몇몇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하는 눈치였다.

하긴, 평생 옳다고 믿어온 사실을 어느 날 갑자기 부정당하면 혼란스럽겠지.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수인은…….”

“수인은 인간과 섞인 괴물이 아닙니다.”

딱 잘라 단언하는 나를 보며 그 사람이 흠칫거렸다. 소심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용감한 성격은 아닌가 보다.

“수인은, 동물로 변하는 능력을 얻은 인간일 뿐, 보통의 인간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네……?”

“하지만, 수인들은 동물의 특징이 사람 모습일 때도 나타나지 않습니까?”

“게다가 동물이 지닌 완력이나 민첩함, 감각을 지니기도…….”

{그건 세월이 흐르면서 세계수가 최초의 수인에게 준 능력이 심화되었기 때문이야.}

{국물을 오래 우리면 더 깊은 맛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게임에서 레벨 업 하는 것과도 비슷하지!}

나비들이 신나게 설명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국물이니 게임이니 하는 얘기는 빼놓고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뒷받침할 만한 일화도 풀어놓았다.

“이곳에 오기 전, 성지에 갔었어요.”

“예……?! 히페리온에 말입니까?!”

“그곳은 불가침의 성지일 터인데……!”

“난 세계수의 조율자이니까요.”

이의를 제기하려던 사람들이 ‘아, 맞다. 그랬지.’ 하는 생각이 떠오른 얼굴로 시선을 회피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세계수 님이 내게 보여주셨어요. 최초의 수인과 조율자, 예지자가 히페리온에서 맹세한 먼 과거의 일을…….”

나는 내가 본 것을 사람들에게 간략히 설명했고, 모두의 반응은 예상대로 제각각이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놀라워하는 사람, 혼란스러워하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

가만 보니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듯했고, 순수하게 놀라워하거나 신기해하는 사람의 수가 가장 적었다.

의심하는 사람은 6명 중 2명꼴로 있는 듯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희망적인 반응이었다.

“수인은 여러분과 같은 인간이에요. 다만 동물로 변하는 능력과 동물의 특징을 지녔을 뿐이죠.”

사실 수인이 인간과 완전히 다른 종족일지라도 배척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거기까지 이야기할 때가 아니었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그렇군요……. 수인들과 우리는 사실 동족인데…… 같은 인간을 해쳐 왔으니 그 죗값으로 우리에게 시련이 닥친 것이로군요.”

반란군 측의 누군가가 추임새를 넣었다. 어쩐지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게…… 일부러 내 일을 거들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칼윈 가의 문장이 수놓인 옷을 입고 있기도 하고.

‘칼윈 가의 가신들은 가주를 닮아서 하나같이 눈치가 빠르고 요망한 건가.’

어찌 되었든, 덕분에 다수의 사람들이 ‘아, 그런가? 그런가 보다…….’ 하고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나는 손을 들어 포식자를 가리켰다. 엉겁결에 시선을 옮긴 사람들이 기괴한 모습의 포식자를 보며 흠칫거렸다.

“여러분의 선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 자리에서 더는 수인을 배척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다짐하세요. 그럼 세계수 님이 응답해 저와 저 소년에게 더 큰 힘을 내려줄 것입니다…….”

이쯤 되니 사이비 교주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생각을 고쳐먹을 테니까…….

‘여기서 나와 블레셋이 포식자를 무찌르는 데 성공한다 한들, 수인에 대한 인간의 혐오와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세계에 밝은 미래는 없어.’

아인스턴 왕가가 무너져도, 훗날 제2의 라니에로, 에반젤린이 세상에 나타나겠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러니 이 기회에, 더는 수인을 차별할 수 없게 아예 법제화할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세요. 그래야만 이 세상에 미래가 있습니다.”

사이비 교주 대사를 줄줄 읊자니 혹시 이게 천직인가 싶었다……. 블레셋은 무표정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내심 비웃는 것 같았다.

“저, 저는 글로리아 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더는 수인을 괴물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저도요…….”

“제발 저 괴물을 무찔러 주세요, 글로리아 님!”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필사적이었다. 한 명이 운을 떼자 너도 나도 우르르 참회하며 맹세하기 시작했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여러분의 고해와 맹세, 전부 세계수 님이 들으셨습니다. 이를 번복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무, 물론입니다!”

“그럼요!”

애써 정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을 한차례 훑어본 후, 나는 포식자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진흙 덩어리 같은 형체 사이로 번득이는, 괴이한 붉은 눈과…….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를 보며…… 저 괴물이 입맛을 다시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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