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반란의 시작
시위대는 족히 백 명은 넘는 인원으로, 생각보다 많은 수였다.
자국민을 해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군대는 혼란에 빠졌다. 이대로라면 출정에 차질을 겪을 것이었다.
‘이를 어쩐다…….’
이번 전쟁의 지휘를 맡은 총사령관, 르누아르 백작은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시위대를 바라보았다.
본래 권세에는 관심이 없는 변경백인 그가 이번 전쟁의 지휘를 맡기로 한 것은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였다.
더해서 대대로 충심이 깊은 기사 가문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르누아르 백작이 충성하는 대상은 아인스턴이라는 나라 그 자체였고, 국민들은 그 근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전쟁을 멈춰 주십시오!”
“폐하, 간곡히 청하옵니다!”
국민들이 원치 않는 전쟁을, 반드시 치러야만 하나?
우직한 무인이라 세상 물정은 잘 모른다는 평가를 듣곤 하는 르누아르 백작이었지만, 이번 전쟁으로 누가 득을 얻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전쟁으로 이득을 얻는 자들은 소수의 대귀족들과 라니에로 왕의 측근으로 있는 간신배들뿐이었다.
그밖에 다른 이들은, 특히 일반 국민들은 득을 보기는커녕 지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국왕이 정복 전쟁을 벌이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국민은 어차피 가축만큼 많으니 그 일부가 희생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에서일 터.
르누아르 백작은 그러한 사상에 내심 반대했기에 이번 전쟁의 총지휘를 맡으면서도 고민이 컸다.
그런데 이제는 심지어 이런 상황이라니…….
지금이라도 전쟁을 재고해 주시옵소서 하고 국왕 폐하께 간청해야 하는 것일까.
르누아르 백작의 심적 갈등이 크게 부풀어 가던 차,
마침 국왕의 뜻을 전하러 온 칙사가 왕의 명령이 담긴 스크롤을 펼치며 외쳤다.
“총사령관 르누아르 변경백은 들으라! 불경한 무리들이 출정을 훼방하며 시위를 벌이는바, 그자들을 모조리 즉결 처형할 것을 명하노라!”
‘뭐라고……? 즉결 처형……?!’
놀란 르누아르 백작이 말고삐를 꽉 움켜잡으며 눈을 크게 떴다.
즉결 처형이라니, 이들을 모두 죽이란 말인가?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이들은 이 나라의 국민들인데!’
르누아르 백작은 희게 질린 시위대와 그런 그들을 보며 당황해 있는 군대를 한차례 훑어보았다.
군사들 중에서도 자국민을 죽일 마음인 자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군인이니 명령에 따라야 할 것이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신하 된 몸으로 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도리일 테니…… 하지만…….
‘무장조차 하지 않은 이들을…… 어떻게 폭력으로 탄압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발목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애초에, 이 정복 전쟁부터가 옳지 않은 일이었다.
“…….”
르누아르 백작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납덩이가 가득 들어찬 듯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자신의 가문과 지켜야 할 식솔들을 생각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이 시위대를 희생시켜야 할 터. 그렇지만…… 그것이 과연 나와 내 가문의 긍지인가?
르누아르 백작은 오래전 별세한 부친의 말을 떠올렸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길러온 힘이, 국민을 해치는 데 쓰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 아버지의 말씀이 옳다.’
한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한 그의 마음이 점차 단단하게 굳어졌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르누아르 백작이 입을 열었다.
“전군 들으라! 행군을 중단하고 조속히 초소로 귀환하라!”
“뭐라고……?”
왕의 칙사가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르누아르 백작의 말이 이어졌다.
“군대가 국민을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보시오, 르누아르 변경백! 이건 명령 불복종이오! 폐하께서 그대를 신임하여 총사령관의 지위를 주었건만, 어찌……!”
칙사가 기막혀하며 펄쩍 뛰거나 말거나, 르누아르 백작은 군사들을 물러나게 했다.
군인들은 ‘이게 맞나? 괜찮으려나?’ 싶은 표정이었지만, 총사령관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따랐다.
그렇게 정예 대군의 진군이 총사령관의 배반으로 한차례 좌절된 와중,
그 소식이 라니에로 왕의 귀에 들어감과 동시에, 칼윈 공작이 이끄는 반란군이 웨일스 성 북문에 다다랐다.
* * *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중이라고?”
나와 그레이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에이프릴을 세계수 아래 꽃밭에 안전히 숨겨놓은 후 솔즈베리 성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들려온 소식이 가관이었다. 라니에로 왕이 기어코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
그 탓에 그레이안과 솔즈베리 가문의 기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아르윈은 요새를 점검하러 갔고, 그레이안은 기사들을 소집해 국경 수비대가 있는 다섯 개의 기지에 빠르게 소식을 전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와 기사단도 출정할 준비를 했다.
‘일단은 방어가 최우선입니다. 엘로윈에서 먼저 침략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게 베노아 왕의 뜻이고, 저의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출전 준비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던 와중…….
충격적인 소식이 또다시 전해져 왔다. 칼윈 공작이 이끄는 반란군이 웨일스 성 북문에 다다라…….
“……아인스턴 왕국군과 합류했다고……?! 싸운 게 아니라??”
“아인스턴 왕국군의 총사령관인 르누아르 백작은 올곧고 우직한 인사라서요. 잘은 몰라도 라니에로 왕의 결정에 의혹이 들었던 것이겠죠.”
바지로 갈아입은 모습의 안나가 허리춤에 여러 개의 단검을 꽂아 넣으며 말했다.
싸울 준비가 만만한 안나의 모습이 대단해 보이는 건 둘째 치고…… 아인스턴 쪽의 상황이 그리 흘러갈 줄이야. 정말 뜻밖이었다.
‘역시 세상엔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구나……!’
나는 인류애가 적립되는 것을 느끼며 안나가 이끄는 대로 준비를 해 나아갔다.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묶었다.
그러고 나서 밖으로 나와 말에 올랐다. 나 역시 그레이안과 함께 국경으로 갈 예정이었다.
‘국경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좀 지켜보다가 웨일스로 잠입해야겠어.’
지금은 전시이기에 솔즈베리 공작인 그레이안이 함부로 국경을 넘을 순 없었다. 침략으로 간주될 테니까.
하지만 아인스턴 출신인 데다 세계의 조율자인 나는 예외였다. 출신이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진 블레셋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서두르죠.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것 같으니 한시가 급해요.”
“동감입니다, 부인.”
고삐를 쥐자 말의 머리가 남쪽을 향했다. 아르윈이 미리 설치해둔 워프 포인트가 있으니 국경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을 터였다.
* * *
아인스턴 왕국군(정확히는 그 일부)과 칼윈 공작의 반란군이 합류하고서 4시간이 흘렀다.
르누아르 백작이 가담하여 세력이 더 커진 반란군과, 그 숫자는 적으나 정예로 꾸려진 라니에로 왕의 군대.
양측 어디에도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전란의 파국 속에서, 지성의 별, 아인스턴의 미래라 불리는 왕립 아카데미에도 문제가 터졌다.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해, 위즈벨 박사.”
“…….”
“나라의 위기잖아. 엘리트 마법사인 우리가 가서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어?”
테나는 벌써 한 시간째, 학도들을 데리고 왕의 군대에 합류해야 한다는 동료 교수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왕립 아카데미에서 마도학을 가르치는 일곱 명의 교수진 중 다섯 명이 저쪽. 그리고 두 명이 이쪽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결투를 벌이면 숫자에서 밀린다.
‘하지만…… 그래도.’
테나는 팔짱을 끼는 척하며 망토 속 지팡이를 꽉 움켜쥐었다.
이 복도 뒤에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이 있었다. 다섯 명의 교수가 그 학생들을 꾀어내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테나는 날이 선 목소리로, 그러나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여러분은 정복 전쟁이 진정 옳다고 생각합니까?”
“아인스턴의 발전을 위한 거잖아. 일부의 희생은 피할 수 없지. 그리고 언제까지 에프로사의 북쪽 땅을 수인들에게 빼앗긴 채 있을 건데? 마정석과 천연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북쪽 땅도 우리 인류를 위해 쓰여야 마땅해. 당연한 이야기잖아.”
“…….”
이 사람들과는 말이 안 통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길 자신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설득할 자신이 없다고 해야겠지.
‘매일 연구실에 처박혀서 마도 공학만 붙잡고 있으니 정신머리가 이렇게 되지…….’
이래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몸만 큰 성인이지 ‘어른’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우리 연구생들 중에는 아직 스물도 안 된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전쟁터로 내몰겠다고요? 제정신입니까?”
“전시에는 원래 최소 열셋, 최대 육십 세까지 징집해. 위즈벨 박사.”
“그건 도시가 함락될 정도의 위기 상황에서나 그렇죠! 이건 불필요한 정복 전쟁이 시작이었다고요! 그리고 상황을 좀 보십시오! 라니에로 왕의 뜻에 반대하는 세력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테나는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결국 말로 설득하는 것을 포기한 그녀가 먼저 기절 마법을 날렸고, 다섯 명 중 한 사람의 머리에 명중했다.
이어서 다른 네 명이 반격하려 했지만 테나와 같은 편인 콜린 교수가 재빨리 보호막을 쳤다.
테나와 콜린은 교수 4인의 공격을 피해 학생들이 있는 강의실로 도망쳐 왔다.
문을 단단히 잠그고는 방어 마법까지 몇 겹씩 걸어두는 두 사람을 보며, 학생들은 무언가 깨달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쾅!
콰앙!
강의실 바깥에선 방어 마법을 파쇄하기 위해 교수 4인이 잇따라 공격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학생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교수님들…….”
“……?”
돌아본 학생과 그 뒤의 다른 녀석들의 표정이 자못 비장해서, 테나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이 녀석들, 설마…….
“저희, 반란군에 합류하려고 합니다!”
“……뭐?!”
놀란 테나가 크게 외쳤다. 그와 동시에 쾅! 하고 복도에서 다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저 바깥의 교수님들은 저희를 왕의 군대에 합류시키려는 거잖아요. 두 분은 그걸 막으려는 거고요. 그렇지요?”
“……아니, 그렇긴 하지만…….”
학생들의 눈이 샛별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이미 결심이 선 눈빛들이었다. ……젊음이었다. 젊음의 혈기. 이래서 젊음이 무섭다.
“위즈벨 교수님도 아시잖아요. 저희 모두 알게 모르게 친 수인 성향이라는 거…….”
“그리고 저희 다 반전주의자라서요.”
“솔직히 요즘 같은 시대에 엘로윈과 전쟁이 웬 말이에요. 친선을 도모하는 게 훨씬 더 경제적 이득이 큰데…….”
“엘로윈인들이 수인이라 배척하는 게 당연하다느니 하는 건…… 너무 고리타분한 사상이라고요.”
“교수님들도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었잖아요.”
……그랬지. 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윤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친 건 테나와 콜린이었다.
숫자와 계산, 도형으로만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라 더 넓은 세계를 보길 바랐다.
그리하여 세상을 올바르게 하는 마도 공학자가 되어 주기를. 타자를 존중하는 법을 아는 한 사람의 어른이 되기를 바랐다.
“반란군에 가서 당장 싸우겠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여기 있어 봤자 왕의 군대에 끌려갈 게 뻔해서요. 그것만큼은 꼭 피하고 싶어요, 교수님들…….”
테나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지못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가자. 테나가 항복 자세를 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들은 테나와 콜린이 안 된다고 해도 스스로 문을 박차고 나갈 위인들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왕의 군대보다는 반란군에 합류하는 편이 나았다.
‘……반란군의 세력이 상상 이상으로 커.’
거기에…… 혹시 모를 일이다. 세계수의 성령들과 계약한 글로리아 왕녀가 나타나 명분을 쥐여준다면.
반란군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것이고, 여태 회색을 지켜온 세력마저 흡수할 터였다.
‘그렇게 되면 결말은…….’
왕의 군대의 패배.
왕가의 몰락.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
두 시간 후.
왕립 아카데미의 마법사들까지 합류한 반란군이 웨일스의 성문을 넘어 왕궁으로 진격했다.
왕의 군대와 근위대는 이를 막으려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처절한 패배를 맛보고 최후의 보루까지 퇴각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왕을 제외한 모든 왕족과 일부 측근들이 붙잡혔으며, 왕은 왕궁 북쪽 탑의 꼭대기로 피신해 반란군을 막는 데 급급할 따름이었다.
왕의 참패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이제 반란군에게 필요한 것은 좀 더 확실한 명분이었다.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글로리아 왕녀가 웨일스에 당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