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토끼 여주의 새엄마가 되었다-109화 (109/144)

##  109화. 경매장을 뒤집어 놓으셨다

“100만 골드.”

벌써 56번째.

객석은 얼어붙다 못해 빙하가 되었다.

경매에 나오는 노예마다 100만 골드를 부르고 있는 저 미친 여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콧잔등까지 푹 눌러쓴 검은 후드 때문에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으며, 해골 모양 브로치나 지팡이 따위가 굉장히 기괴했다.

혹시…… 금지된 마법을 행하는 흑마법사 같은 거 아니야?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그녀를 힐끔거렸다.

어쩌면 수인 노예들을 데려다 잔인한 실험을 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저 여자가 입찰한 수인 노예에 상위 입찰하면…… 저주받을지도 몰라!’

‘감히 내가 입찰한 노예에 상위 입찰을 해?’라며 저주를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두려움 탓에 경매 참가자들은 정체불명의 여자가 수인 노예들을 100만 골드에 쓸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디든 반항적인 사람은 있기 마련.

“다, 다음 상품은…… 드디어 101번째 상품이로군요……! 이제부턴 상품의 가치가 확 올라갑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101번째 상품인, 하얀 머리칼을 지닌 아름다운 백조 수인이 나타나자―

“110만 골드!”

눈이 돌아간 누군가가 흑마법사(추정) 여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110만 골드를 부른 이는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으로, 경매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기에 몇몇 참가자들은 그를 알아보았다.

‘맨날 예쁜 수인 노예만 사 가는 변태…….’

그는 다름 아닌 리더퍼드 자작으로 본래 상인이었지만 돈으로 작위를 산 졸부였다.

그리고 변태적 취향을 지닌 것으로 유명했다. 수인 노예의 얼굴이 예쁘장하면 남자든, 여자든,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그 노예들을 데리고 그가 저택에서 뭘 하는지는 그의 사용인들만 알았다.

“110만 골드 나왔습니다! 다음 입찰까지 3, 2……!”

“200만 골드.”

숫자를 세던 사회자는 물론이고, 선 입찰했던 리더퍼드 자작도 입을 쩌억 벌렸다.

200만 골드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가격을 부른 그 여자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고는 리더퍼드 자작을 업신여겨 보았다.

부르르 떨던 리더퍼드 자작이 풀썩 주저앉았다. 완벽한 패배였다.

“3, 2, 1……! 이, 이백만 골드에 낙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똑같았다.

누군가 애써 높은 금액을 부르면, 미친 흑마법사 여자는 그보다 훨씬 높은 경매가로 뻥튀기해 불렀다.

다들 수인 노예에 200만씩, 300만씩 쓰고 싶진 않았으므로 좌절한 채 물러날 뿐이었다…….

그렇게 절망적인 분위기가 경매장에 감돌던 와중…….

“……드디어 151번째 상품이로군요! 이제부터는 정말로 최상급 상품들이 나옵니다! 자……!”

참가자들이 고대하던 시간이 왔다. 희귀하고 값비싼 최상급 수인 노예! 수집욕이 있는 참가자들의 눈에 화르륵 불이 붙었다. 그러나―

“100만 골드.”

희귀한 백여우 수인이 나오자마자, 예의 흑마법사 여자가 또 100만 골드를 불렀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참가자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150만 골드!!”

“160만 골드……!”

“165만!!”

풍성한 귀와 꼬리가 달린 백여우 수인을, 어떻게든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런 참가자들을, 흑마법사 여자는 어김없이 비웃어 주고는…….

“200만 골드.”

또 200만 골드로 올려 불렀다!

‘미쳤나?! 저 여자는 돈이 썩을 만큼 남아도는 거야 뭐야?!’

도대체 저 여자가 오늘 경매에 쓴 돈이 얼마인지…… 참가자들은 대충 암산해 보았다가 아찔함을 맛보았다. 미, 미쳤다. 완전히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물론 대귀족 중에 그만한 재산을 가진 가문이야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은 돈을 수인 노예를 사는 데 탕진하는 미친 사람은 없었다!

‘저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야, 확실해.’

‘도대체 어느 가문의 사람이지?’

‘혹시 왕족인 거 아니야……?’

‘아무리 왕족이어도 그렇지…….’

‘수인 노예 151명을 데리고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설마 진짜로 수인 노예들을 이용해서 금지된 실험을…….’

여론은 ‘역시…… 저 여자는 흑마법사인 거 같다! 어쩌면 왕가가 뒷배일지도 모르는!’으로 흘러갔다.

참가자들은 수군거리며 벌벌 떨었다. 저 흑마법사와 입찰 경쟁하는 미친 짓은…… 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제 명에 죽고 싶다면…….

“그, 그럼, 다음은 194번째 상품입니다……!”

어느새 경매는 막바지에 이르렀고, 참가자들은 침울하게 무대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흑마법사 여자가 또 거액에 낚아채겠지, 뭐…….

“100만 골드.”

흑마법사 여자는 갈수록 가관이었다.

사회자가 이번 상품은 무슨 수인인지 설명하기도 전에 입찰가를 부른 것이다. 당황한 사회자는 버벅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 음, 이번 상품은 종달새 수인입니다. 보시다시피 아주 미인이고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죠……! 노랫소리가 아주 끝내줍니다!”

“150만 골드.”

“배, 백오십만 골드 나왔습니다……! 다음 입찰까지, 10, 9…….”

이쯤 되니 사회자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차라리 이 경매를 얼른 끝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건 참가자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지 않은 용자가 있었으니…….

“200만 골드!!”

어디 해보자는 식으로 누군가 200만 골드를 부른 것이다. 각오를 아주 단단히 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흑마법사 여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고는,

“300만 골드.”

“……!”

대범하게 나선 용자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 버렸다.

그리고 이후로는…… 완전히 그 흑마법사의 독무대였다.

“이번 상품은……!”

“100만 골드.”

“……100만 골드 나왔습니다……. 더 입찰하실 분…… 예, 없으시군요…….”

100만 골드에서 얼마로 올려 부르든, 예의 흑마법사는 상위 입찰가를 훨씬 웃도는 가격으로 상품을 빼앗아 갈 게 분명했다.

‘그냥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경매 참가자들 모두가 포기한 채로 의욕 없이 무대를 응시했다. 하품하며 졸음을 참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가 저 흑마법사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도대체 누구일까?!

도대체 누구길래 저렇게 돈이 많지?!

도대체 왜, 수인 노예들을 쓸어가는 거지?!

의혹이 깊어져 가던 중, 마침내 마지막 상품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회색 머리칼에 검은 눈을 지닌 상품은, 겉으로만 봐선 무슨 수인인지 알 수 없었다.

“드디어 200번째, 마지막 상품입니다!”

사회자가 이렇게 말하면 참가자들이 갈채를 보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그러나 다들 의욕이 없었고, 건성으로 짝짝…… 하는 소리만 희미하게 울렸을 따름이었다.

“하하……. 네, 감사합니다…….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마지막 상품! 무려 토끼 수인입니다!”

‘토끼 수인?!’

객석은 빠르게 혼란에 휩싸였다. 심지어 예의 흑마법사조차 동요하는 것 같았다.

바로 ‘100만 골드.’ 하고 불렀을 위인이 왜인지 조용했기 때문이다.

‘토끼 수인이라니, 진짜 희귀하잖아!’

‘예전에 다 죽거나 어디론가 사라졌으니까…….’

‘그 유명한 솔즈베리 공작의 양녀도 토끼 수인이라던데…….’

‘토끼 수인이라면 마법에 재능이 있겠지? 운이 좋으면 정령과 소통이 가능한 토끼 수인일 수도 있고. 이건…… 이 상품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 많은 참가자가 한마음 한뜻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눈빛이 다시 의욕으로 불타올랐고, 사회자도 확 바뀐 이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어김없이,

“……100만 골드.”

흑마법사 여자가 먼저 입찰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이들도 지지 않았다.

“200만 골드!!”

오오……. 우와……. 참가자들 사이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300만 골드.”

하지만 흑마법사는 여전히 가차없었다. 그래도, 토끼 수인…… 무려 토끼 수인이다.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참가자들은 저 흑마법사의 자금이 다 떨어졌길 바라며 마구 불러대기 시작했다.

“350만 골드!”

“400만 골드!”

“410만……!”

“420만!!”

그야말로 광기의 현장이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토끼 수인의 입찰가가 560만에 다다르던 순간―

“1000만 골드.”

미친 흑마법사가 또 경매장을 뒤집어 놓으셨다.

…….

무거운 정적이 경매장을 훑고 지나갔다. 넋을 놓은 채 흑마법사를 쳐다보던 참가자들은 곧 숨이 막히는 듯한 탄식을 흘려댔다.

‘처, 천만…….’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여태 저 흑마법사가 지불한 경매가를 모두 합산하면…… 아인스턴에서는 영지와 성을 살 수 있었다! 그것도 제법 기름진 영지에 아주 크고 근사한 성을!

‘무슨 수인 노예 따위에 그만한 돈을 써?!’

여기 모인 귀족들, 부유한 상인들에게 수인 노예란 일종의 장난감이었다. 경

매는 돈 쓰기 좋아하는 이들의 유흥에 불과했고, 수인 노예는 갖고 놀다 질리면 버릴 소모품일 뿐.

말인즉, 아무리 대단한 상품이어도…… 막대한 돈을 지불하는 것은 말이 안 됐다…….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처, 천만 골드…… 나왔습니다……! 더, 더 입찰하실 분……? 10, 9, 8…….”

당연히, 아무도 입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지막 상품인 토끼 수인마저, 정체 모를 미친 흑마법사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다.

.

‘후드를 벗고 정체를 공개해 주세요!’

―라는 시선들이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흑마법사에게 꽂혔다.

이제 파장만 남은 경매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주시하였다.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그때까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서 있던 흑마법사가 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후드를 잡았다.

‘……!’

‘드, 드디어……!’

‘정체를 밝히려는 건가?!’

꿀꺽―.

침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의 고요함 속에서,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던 오늘의 최고 악당이, 마침내 후드를 당겨 내렸다.

너도 나도 궁금해 마지않았던, 그 정체는……!

바로……!

“……그, 글…….”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미처 문장으로 완성되지 못한 두 글자.

그럼에도 모두가 알아들었다.

‘글…….’ 다음의 말을.

그 문제적인 이름을…….

‘글로리아 왕녀!’

경매장을 혼돈 속으로 빠뜨린 돈 많은 악당은, 다름 아닌 글로리아 왕녀였던 것이다!

.

글로리아의 악명을 아는 이들은 벌벌 떨며 그녀를 힐끔거렸다. 차마 눈을 마주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비옥한 영지를 살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자금을 수인 노예 200명 사는 데 탕진하기…… 저 미친 악녀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수인 노예 200명으로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 그런데 수인과 결혼했다면서? 아, 몰라! 결혼했다고 사람이 바뀌나? 아무튼 무섭다!

“……흥.”

글로리아 왕녀는 그 특징적인 새파란 눈으로 참가자들을 흘겨보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 태도가 마치 ‘돈도 없는 것들이…….’ 하고 업신여기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런데 글로리아 왕녀가 원래 돈이 저렇게 많았나?

글로리아가 상품을 수령하기 위해 경매 안내자를 따라 사라진 후, 참가자들은 소곤소곤 수군수군 떠들기 시작했다.

“어쩐지 후드를 벗기 전부터 얼굴은 안 보이는데 분위기가…… 무슨 말인지 아시죠 다들?”

“수인 노예 이백 명으로 대체 뭘 할 생각일까요……? 진짜 흑마법 연구라도 하는 건가? 오늘 차림새가 꼭…….”

“그런데 글로리아 왕녀는 늑대 수인과 결혼했다면서요. 그 유명한…… 솔즈베리 공작 말이에요. 부부 사이가 좋다고 들었는데…….”

“그냥 헛소문일 수도 있죠……. 저 성격을 어떻게 죽이고 살겠어요. 그동안 글로리아 왕녀가 저지른 짓만 해도…….”

“아니, 근데 글로리아 왕녀가 원래 저렇게 돈이 많았어요? 무슨 일이람 진짜?”

“제가 듣기론, 그 사진기 사업이 글로리아 왕녀 건데…….”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엘로윈에서 발견한 대규모 마정석 광산이 솔즈베리 공작가의 소유라던데요?!”

“헉, 그럼 그 돈으로…….”

그렇게 참가자들이 글로리아의 심상치 않은 재력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늘어놓던 와중, 그림자 속에 숨어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설마 솔즈베리 공작 부인이 수인 노예 이백 명을 전부 다 쓸어갈 줄이야…….’

그녀는 다름 아닌 테나 위즈벨 박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