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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여주의 새엄마가 되었다-100화 (100/144)

##  100화. 데뷔탕트 무도회

데뷔탕트 무도회는 3일 동안 이어지는데, 수도 아발론은 그 주 내내 사교 시즌이다.

말인즉, 데뷔탕트 무도회가 끝나고도 여기저기서 무도회나 파티 등을 열 거란 뜻이었다.

바로 그 사교 시즌을 기회 삼아 자녀의 약혼 상대를 물색하는 부모들이 종종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단 에이프릴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놔둘 생각이었다.

‘사교 시즌을 어떻게 보낼지는 에이프릴 마음대로!’

그런 내 뜻을 그레이안에게 밝히자,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에이프릴은 아직 어리니…… 굳이 지금부터 약혼 상대를 물색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렇죠.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그와 나는 뜻이 잘 통하는 편이었다.

“주인님, 마님. 에이프릴 아가씨께서 준비가 다 되셨다고 합니다.”

거실에 나란히 앉아 기다리는 우리를 향해 에이프릴의 시녀가 고했다.

‘드디어……!’

나는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명치에 손을 얹었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에이프릴의 예장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지금이 10시니까…… 2시간쯤 걸린 셈인가.’

2시간 동안이나 시녀들의 손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예장해야 했으니…… 에이프릴 성격에 몹시 괴로웠을 듯싶다.

고생한 에이프릴에게 잘 참았다며 격려해 줘야지.

이윽고 문이 열렸고, 그 사이로― 오늘 데뷔탕트 무도회의 주인공인 에이프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숨이 멎었다.

‘허억…….’

내 앞의 이 소녀가…… 실존 인물은 맞나?

진짜 말도 안 돼……. 도대체 뭘 먹고 이렇게 예쁜 거지? 우리 에이프릴은?!

단정하게 빗어 내린 하얀 머리카락은 반만 묶어 보석 핀으로 고정했고, 붉은 리본으로 장식한 크림색 드레스는 마치 그린 듯이 에이프릴에게 잘 어울렸다.

피존 블러드의 루비 귀걸이가 에이프릴이 살짝 움직일 때마다 귀에서 달랑거리며 반짝였고, 마찬가지로 붉은색인 루비 목걸이와 팔찌도 완벽한 하모니를 이뤄 냈다.

그야말로…… 부족할 데 없이 완벽한 예장.

약간 쑥스러워하는 듯한 에이프릴의 모습은 또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이러다 온 세상 사람이 우리 에이프릴에게 반하면 어쩌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오늘의 에이프릴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어떡해……! 너무 예쁘다! 어떡해!”

나는 공작 부인의 품위고 뭐고 잊은 채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떡해’를 연발해댔다.

그런 나를 보며 에이프릴은 머쓱하게 웃더니, 드레스 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넌지시 물었다.

“저…… 이상하지 않아요? 너무 화려하게 꾸민 거 같아서 좀…….”

“아니야! 전혀 안 이상해! 최고로 예뻐! 정말이야!!”

나는 고개를 격하게 가로저으며 지금 에이프릴이 얼마나 예쁜지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에이프릴은 내 말을 반신반의하는 기색이었지만,

“무척 예쁘구나, 에이프릴. 오늘 너에게 첫눈에 반하는 자제들이 많겠어.”

라고 그레이안이 부드럽고 묵직한 어조로 한마디 하자, 대번 자신감을 얻은 표정이 되었다.

역시…… 에이프릴이 인정받고 싶은 상대는 그레이안인가 보다.

나는 좀 뭐랄까, 사랑받고 싶고, 어리광 부리고 싶은 상대?

여하튼 그레이안이 거들어준 덕분에 에이프릴이 자신감을 얻은 듯 보였으므로, 나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추가 공세를 해나갔다.

“정말이야, 에이프릴. 난 온 세상 사람이 우리 에이프릴에게 반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니까?”

“그건…… 과장이에요, 공작 부인.”

“과장은 무슨! 제이드랑 로드리도 그렇게 생각할걸? 안 그러니, 얘들아?”

뒤를 홱 돌아보자, 거실 한편에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제이드와 로드리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저 녀석들……. 어쩐지 조용하더니만. 에이프릴에게 홀려서 정신 못 차리는 중이었군!

‘제이드는 원래 에이프릴 발닦개니까 그렇다 쳐도, 로드리마저 저런 표정이라니…….’

오늘 에이프릴이 무진장 사랑스럽긴 한가 보다.

우후후훗. 이번에야말로 로드리도 에이프릴을 여동생 이상으로 생각하게 될지도?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공녀님.”

하지만 어김없이 나의 착각이었던 모양인지, 에이프릴에게 찬사를 건네는 로드리의 태도는 사심 없이 담백할 따름이었다…….

반면에 제이드는 사심이 200% 느껴졌다.

“에이프릴……. 아, 정말, 미치겠네.”

말을 하다 말고 제이드가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귀 끝까지 붉어진 걸로 보아, 에이프릴을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하는 게 분명했다.

잠시 후 얼굴을 드러낸 제이드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미 반했지만, 또 반할 것 같아요, 에이프릴.”

진심일 것이 분명한 제이드의 그 말을, 연애 눈치가 티끌만큼도 없는 에이프릴은 웃으며 넘길 따름이었다.

보나 마나, 제이드가 농담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 테지.

‘이쯤 되니 제이드가 조금 불쌍해진다…….’

힘내라, 소년! 에이프릴은 인기쟁이라서 너에겐 라이벌이 많을 거란다.

뭐, 가장 큰 장벽은 연애에 단 1g도 관심이 없는 에이프릴일 테지만…….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할까? 아, 맞다! 사진 찍고 가자!”

여하튼 우리는 에이프릴의 사진을 잔뜩 찍은 뒤, 데뷔탕트 무도회가 열리는 왕궁으로 출발했다.

* * *

데뷔탕트 무도회가 열리는 플로라 궁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있었다.

3월 초, 봄의 초입을 알리는 꽃나무가 하얀색으로, 분홍색으로 가득 피어난 궁전의 경치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니 솔즈베리 공녀가 올해 데뷔한다면서요?”

“어떤 아가씨일지 궁금하네요. 솔즈베리 공작이 금지옥엽 아낀다던데…….”

“게다가 그 새엄마가…… 소문의…….”

“아…….”

사람들은 올해 데뷔하는 솔즈베리 공녀를 궁금해하는 한편, 그 ‘새엄마’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원래는 악독하기로 소문이 자자했지만,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다른 평가가 들려오는 바로 그 여자.

글로리아 아인스턴 솔즈베리 공작 부인에 대해서.

“저는 사실 솔즈베리 공작 부부가 금방 이혼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목격담에 의하면 부부 사이가 좋아 보인다더라고요. 신기한 일이죠. 솔즈베리 공작 부인은 수인을 지독하게 혐오하기로 유명했는데…….”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로맨스가 있었기에 솔즈베리 공작이 글로리아 왕녀의 마음을 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몹시도 궁금해했다.

“게다가 듣기론 솔즈베리 공작 부인이 공녀를 무척 아낀다고 하더라고요. 친딸처럼 싸고돈다던데.”

“그것도 정말 신기해요. 솔즈베리 공녀는…… 공작의 친딸도, 혈연도 아니잖아요? 완전히 남이라고 들었는데…….”

“오늘 이 무도회장에서 토끼 수인은 그 공녀 한 명뿐이지 않을까요? 토끼 수인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으니…….”

관심은 다시 솔즈베리 공녀에게로 쏠렸다.

희귀한 토끼 수인, 사교계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정보가 별로 없는 에이프릴 솔즈베리는 수수께끼나 다름없었다.

“정말 궁금하네요, 소문대로 무척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레이디일지.”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이 무르익어 가던 중―

“솔즈베리 공작 각하, 솔즈베리 공작 부인, 그리고 솔즈베리 공녀께서 오셨습니다!”

마침내 소문의 주인공들이 무도회장에 당도했다.

* * *

‘와~ 사람 진짜 많다…….’

라는 것이 나의 첫 감상.

‘그리고 우리 진짜 유명하구나…….’

라는 것이 두 번째 감상이었다.

무도회장에 입장하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확 쏠렸고, 그 시선들에 담긴 호기심이 어찌나 노골적인지 불편할 지경이었다.

‘유명인의 삶이란 이런 거였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네.

“저 어린 레이디가 솔즈베리 공녀인가 보네요.”

“크면 아주 미인이 되겠는데요?”

“아직 열세 살인데도 저렇게 예쁘니…….”

내 예상대로 대다수가 에이프릴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뭐,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다.

우리 에이프릴을 보고도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면, 눈이 발바닥에 달린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저 금발의…….”

“실제로 보긴 처음…….”

“더는 수인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사실일까요?”

“왠지 다가가기 힘든 인상인데…….”

더하여 나에 대한 이야기도 스리슬쩍 들려왔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며 거만한 표정으로 무도회장을 둘러보았다.

사교계에서는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원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천지 차이였으므로.

‘뭐……. 엘로윈 사교계는 아인스턴 사교계와는 다를 테지만.’

아인스턴 사교계는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물어뜯을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하이에나들 천지였다.

이런 사실을 자연스럽게 기억해 내는 걸 보면, 내가 글로리아와 제법 높게 동화된 모양이다…….

“저어……. 솔즈베리 공작 각하, 공작 부인, 그리고 공녀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허스튼 가의…….”

마침 누군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왔고, 그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솔즈베리 공작 각하, 얼마 전에…….”

“처음 뵙겠습니다, 공작 부인. 저는…….”

“공작 부인께서 하시는 사업에 흥미가…….”

“솔즈베리 공녀님께서는 오늘…….”

“춤 신청은 언제까지 받으시는지…….”

“혹시 준비하신 개인기가 있으신가요? 하프 연주라든가…….”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무던히 애를 썼다. 이거 까닥하다간 실수할지도 모르겠는데.

‘사람멀미 있는 사람은 진짜 이런 데 오면 안 되겠다.’

그레이안은 걱정할 필요 없을 테지만…… 에이프릴은 괜찮으려나?

걱정이 들어 에이프릴을 슬쩍 훔쳐보았는데,

“자수에는 흥미가 없지만, 레이스 뜨기는 좋아해요. 그리고 특별히 준비한 개인기는 없지만 하프나 피아노는 조금 연주할 줄 안답니다.”

의외로 엄청 잘하고 있었다. 연신 미소를 띤 채 사람들을 응대하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와……. 뭐야? 제멋대로 안하무인 폭군 토끼 아니었냐고!’

지금 에이프릴의 모습은 사기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다 속고 있다……! 저 요조숙녀 이미지는 가짜야!

“그러고 보니, 솔즈베리 공녀님께서는 검술도 익히신다면서요?”

“어머나, 검술을?”

“아…….”

불쑥 파고든 질문에 에이프릴이 외마디를 흘리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는 겸손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말하길,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리 대단하진 않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솔즈베리의 일원이니 제 한 몸 지킬 만한 무력은 지녀야겠지요. 그런 생각으로 정진하고 있어요.”

“어쩜…….”

“기특해라.”

“솔즈베리 공녀님께서는 아직 어리신데도 생각이 무척 깊으시네요.”

여러분……. 그거 아니에요. 아니 뭐, 반은 진실이지만? 반은 내숭이죠? 우리 토끼는 사실 전투광이라고! 당신들은 속고 있어!

“그럼 솔즈베리 공녀님, 이따 하프 연주를 보여 주시는 게 어때요?”

“맞아요, 저도 공녀님의 연주가 듣고 싶어요.”

“네, 그럼…… 한 곡만 연주해 볼까요? 물론 무도회의 본분을 다한 후에…….”

그때였다.

에이프릴을 둘러싼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지더니, 그사이로 웬…… 미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누구지? 예전에 초상화를 봤던 거 같은데?’

색이 옅은 갈색 머리카락과 그보다 좀 더 짙은 황금빛을 띤 눈동자.

단정한 옷차림과 머리 모양에, 부드러운 미소를 입에 건 소년은 그야말로 화폭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형의 외모였다.

“솔즈베리 공녀.”

“……안드레아 왕자 전하.”

미소년이 에이프릴에게 손을 내밀자, 에이프릴이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했고, 그제야 나는 소년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안드레아 액시스 엘로윈……. 베노아 왕의 아들, 왕자님이잖아!’

파릇파릇한 꽃미남 새싹으로, 어린 영애들의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그런 안드레아 왕자가…….

‘설마 에이프릴에게 춤 신청을……?’

그 설마가 진짜로 일어났습니다.

여전히 에이프릴에게 손을 내민 채로, 안드레아 왕자가 상냥한 어조로 종용했다.

“솔즈베리 공녀, 나와 춤추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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