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저주를 풀 방법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망연히 입만 달싹일 따름이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레이안도 언젠가는…….’
지하의 늑대들처럼 된다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채로, 어둡고 쓸쓸한 지하에 갇히게 된다니…….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믿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이 그런 결말을 맞이할 운명이라니.
“……부인, 울지 마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
그레이안의 손이 내 뺨에 닿아온 순간에야,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눈물을 닦아주며 그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체념한 듯한 그 얼굴을 보자 마음이 너무 답답해져서, 나는 대뜸 쏘아붙이고 말았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한참 어릴 적부터 다 알고 받아들인 지 오래된 사실이라…….”
“왜 벌써 포기해요! 저주를 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우느라 코맹맹이가 된 탓에 내 목소리는 몹시 형편없이 들렸다.
그레이안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서 계속 내 눈물을 닦아주며 이야기했다.
“저주를 풀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 바, 방법이 있는 거예요? 그게 뭔데요?”
미약한 희망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끼며 허겁지겁 물었으나, 그레이안의 입가에 어린 쓴웃음은 짙어지기만 했다. 이상하게도.
“하지만 실행해서는 안 될 방법입니다.”
“어째서요? 위험하거나 어려운 방법인가요?”
“도의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
이어지는 그레이안의 목소리는 차분하기만 했다. 일상적인 말을 건네는 것처럼.
“지하의 늑대들처럼 저주에 완전히 잠식당하게 되었을 때, 인간을 잡아먹으면 저주가 풀리게 됩니다.”
“……뭐…… 뭐라고요……?”
“그래서 지하의 늑대들이 당신을 공격했던 겁니다. 인간을 먹어야 저주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
“그리고 그것이, 완전한 짐승이 된 솔즈베리의 직계들이 지하에 갇혀 지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한파에 노출된 것처럼 어깨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나는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가…… 너무도 끔찍해서.
“……제가 늑대로 변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저주 때문입니다. 솔즈베리의 피가 흐르는 저는, 늑대의 모습일 때 저주로 인해 쉽게 이성을 잃을 수 있으니까요.”
“…….”
“뭐, 아직까지는 사나워지거나 공격성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니 괜찮습니다만. 저주에 완전히 잠식당하게 되면 위험해질 테지요.”
목이 바짝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심장을 꽉 옥죄는 듯해 숨쉬기도 어려웠다.
가까스로 호흡을 다듬은 후에야, 겨우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낼 수 있었다.
“……밤마다 소극적으로 군 것도, 그래서예요? 이성을 잃으면 안 되니까?”
“……그렇지요. 저는 언제나 이성의 끈을 잘 잡고 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쾌락은 쉽게 이성을 잃게 만들지요. 본능에 충실하게 되는 순간, 저주에는 가속도가 붙게 될 겁니다.”
“…….”
“이성을 잃은 저는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연약한 당신을 상처 입히게 되겠지요. 제 원래 힘이면, 당신의 뼈를 손쉽게 부러뜨리고도 남습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 수인들은 보통의 인간보다 힘이 센 편인데, 솔즈베리 가문의 늑대 수인들은 그보다 훨씬 강한 완력을 지녔다.
그러니 그레이안이 염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여태 나를 거절해온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언제 이성을 잃고 날뛸지 모르는 그 안의 야수로부터.
마음이 착잡해진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웅얼거렸다.
“……미안해요, 난 그런 줄도 모르고…….”
“……? 왜 부인이 사과를 하십니까? 부인 잘못이 아닙니다. 다 제가 결함이 있는 탓이지요.”
결함이라는 말에 발끈한 나는 고개를 홱 쳐들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레이안은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화난 내 얼굴을 보고 당황한 듯이.
“여태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던 거예요? 당신에게는 결함이 있다고?”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게 왜 결함이에요! 그건…….”
적절한 말을 찾느라 입을 달싹이다가 잠시 후 덧붙였다. 그건, 비극이라고요.
“비극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
“혹시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어요? 그 저주 때문에?”
그러자 그레이안이 멍하니 대답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이를 악문 나는 주먹을 꽉 쥐고 그레이안의 가슴팍을 힘껏 때렸다.
그래 봤자 내 손만 아팠지만. 그래도 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계속 때렸다. 당황한 그레이안이 내 손목을 붙잡을 때까지.
“부인, 이러다 손 붓습니다.”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파요.”
나는 조금 울먹거렸다. 나를 보며 멈칫한 그레이안이 내 손목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나는 그의 가슴팍에 힘없이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당신 잘못이 아닌 일을 왜 미안해해요? 당신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를 대했다는 게, 나는…… 정말 너무 속상해요.”
“…….”
길고도 기이한 침묵이 우리 사이에 흘렀다. 그레이안은 계속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읽을 수 없이 깊은 눈빛으로.
그러다 먼저 정적을 깨트린 쪽은 그레이안이었다.
“부인……. 제가 그랬었지요. 이런 저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저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생각입니다.”
“…….”
“다시 한번 더, 이런 저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미하게 웃는 그의 눈동자에는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가 초조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야기를 시작한 때부터, 그는 계속해서 내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된 내가 그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끔찍하게 여기게 될까 봐, 아마 그런 것들을 염려한 걸 테지.
그럴 일은, 추호도 없는데도.
“……바보.”
“……예?”
“당신 바보예요? 이 멍청이…….”
이 사람으로 인해 나에게는 여태 즐겁고 설레는 일만 있었다.
서로 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도, 내심 그가 내 남편인 게 좋았다.
그가 좋았다. 그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한편으로 두려워했구나.
그 사실이 너무도 마음 아프다.
“날 봐요, 그레이안. 내가 거짓말하는 거 같아요?”
그의 양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묻자, 그레이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당신이 끔찍하지 않아요.”
“……!”
“당신이 싫어지지도 않았어요, 조금도.”
“…….”
“나는 그냥 슬퍼요. 당신이 왜 그런 저주를 짊어져야 하는지……. 그게 너무 슬프고…….”
“…….”
“당신 스스로 나에게 죄를 진 것처럼 구는 게 슬퍼요. 제발 그러지 말아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보다 자신이 모자라다는 생각은 독이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저주 따위 아무렴 어때요. 어쩌면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 주술사를 찾아 없앤다든가……. 함께 방법을 생각해 봐요. 난 포기 안 할 거예요. 절대로.”
그러자 그레이안은 씁쓸한 듯 웃고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아주 오래, 온기가 깊이 스며들 때까지.
입술을 떨어트렸을 때, 그의 눈에서는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감격일지, 슬픔일지, 안타까움일지 모를.
“……예, 글로리아.”
잠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저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 * *
그레이안은 이야기를 마저 들려주었고, 나는 그에 대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 그의 어머니는 인간이었다는 것.
둘, 인간인 어머니의 피가 저주를 옅게 해주어, 그레이안은 저주에 잠식당하는 속도가 원래보다 느리다는 것.
셋, 앞으로 그레이안에게 남은 시간은 약 15년 정도. 하지만 저주에 잠식당하는 속도가 빨라지면 7~10년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 모습을 계속 유지하는 거로군요? 늑대 모습일 땐, 저주에 잠식당하는 속도가 빨라지니까…….”
“네, 그렇습니다.”
“……당신 어머니께서 인간이셨다니, 정말 뜻밖이에요.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모든 게 적혀 있을 줄 알았던 원작에서도 그런 서술은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원작이라는 것은 백과사전이 아니라, ‘저자가 나에게 보여주기로 의도한’ 정보만 적혀 있는 것은 아닐까.
“제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존재를 은폐하셨지요. 그분을 인간이 아니라, 어느 시골 마을에 살던 늑대 수인으로 신분을 둔갑시키고 아내로 맞이하셨습니다. 아마, 제가 반인반수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함이었겠지요.”
“하지만 솔즈베리의 가신들은 다 알고 있죠……? 전대 공작 부인께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그렇습니다. 다들 충성심이 깊고 입이 무겁지요.”
그 점이 참 다행이라는 듯, 그레이안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곁에 좋은 사람들만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후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나는 좀처럼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간 잠든 체를 하다가, 그레이안의 기척이 옅어졌을 때쯤 슬며시 눈을 떴다.
그레이안은 내 옆에 반듯이 누운 채 잠들어 있었다.
쌔근쌔근, 고른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잠든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솔즈베리 가문의 저주를 풀 방법…… 잘 생각해 보면 있지 않을까? 저자가 나에게 힌트를 줬을 수도 있어.’
나는 작가의 마지막 연중 공지를 떠올렸다.
그때는 뭔 소리인가 싶었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면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보여 드릴 수 없게 됐지만 부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에 축복이 가득하길.]
그건 분명 누군가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당시 그 소설을 읽던 누군가…… 어쩌면, 나에게―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자의식 과잉인가?
‘하지만 난 그 소설을 읽고 이 세계의 글로리아에 빙의했잖아. 그러니까 그 메시지는…… 나에게 보낸 거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작가가 메시지를 보낸 상대가 바로 나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세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1. 작가는 그 소설 내용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2. 작가는 어떤 연유로 소설을 끝까지 쓸 수 없었다. 작가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3. 작가는 나를 축복하고자 했다. 즉, 내가 성공하기를……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거다.
정리하자면, 작가는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그 소설을 집필했지만 무슨 사정이 생겨 완성할 수 없었고…… 그렇게 난 미완의 소설만 읽은 채 글로리아로 빙의하게 되었다―는 것.
‘작가는 내 편인 거겠지. 그렇다면 솔즈베리 가문의 저주를 풀 방법도, 원작 어딘가에 분명 힌트가…….’
{글로리아, 우리가 도와줄까?}
그때, 나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도와줄게. 그 소설을 다시 읽을 수 있도록.}
{다시 차근차근히 읽어보는 거야. 아니면 검색 기능을 써도 돼.}
나는 새카만 허공을 보며 눈을 깜박이다가 물었다.
‘검색 기능……. 본문 검색 말이야? 이북에 있는 그거?’
{응, 우리가 할 수 있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새삼 나비들은 참 쓸모가 많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검색해 줘. 키워드는…… 저주.’
{오케이~. 기다려 봐!}
그리고 잠시 후, 나비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찾았어! 몇 개 나오는데, 네가 찾는 정보는 아마 이거일 거야.}
이어서 푸르스름한 시스템 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가 말을 이었다.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적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제 피에는, 어떤 병도 낫게 하고 아무리 사악한 저주라도 풀 수 있는 강력한 정화의 힘이 깃들어 있죠. 당신도 내 피를 노리고 온 게 아닙니까? 아니면, 내 비늘이나 뿔을 원하십니까? 혹은 내 살과 뼈를 노리고 왔는지도 모르겠군요.”}
‘아, 이거……!’
생각났다.
남주 후보 3이 에이프릴을 오해하는 장면!
‘처음 만나고서 얼마 안 된 시점이었던가…….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덕분에 찾아냈다. 솔즈베리 가문의 저주를 풀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