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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그만 핥아! (60/144)


60화. 그만 핥아!
2022.06.29.



 
나의 이 ‘만져 보고 싶어’ 병은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할 듯싶다.

귀여운 동물을 볼 때마다 만져 보고 싶으니, 원……. 그렇지만 역시 참을 수 없다고! 너무 보송보송하고 귀여워 보이잖아!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늑대 꼬리를 덥석 잡았다. 그 순간 화들짝 놀란 늑대가 재빨리 몸을 틀었다.


“……!”

풀숲 사이로 불쑥 머리를 내민 늑대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늑대와 시선을 마주쳤다. 늑대의 눈은 그레이안과 똑같은 은회색이었다.

그리고 털은 검은색이었는데, 하얀색과 회색이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심지어 앞발은 마치 우유에 담갔다 빼낸 것처럼 완벽하게 하얀색이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엄청나게 귀여운 늑대였다.

엄청 크지만 크니까 더 귀엽다! 왕크왕귀라고 들어봤니? 너무 귀여워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는 늑대를 두 팔로 와락 껴안아 버렸다.


“……!!”

“흐아아, 너무 귀엽다~!”

내 품에 가득 찰 정도로, 아니, 내 머리를 한입에 삼킬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늑대였다.

그렇지만 그냥 커다란 대형견처럼 느껴졌고,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이 늑대가 그레이안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그레이안 맞죠? 이 모습을 왜 여태 숨겼어요? 이렇게나 귀여운데!”

“끼잉, 깽…….”

왜인지 안절부절못하던 늑대가 내 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나는 늑대를 꼭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히히…… 못 도망가!


“깨앵……!”

늑대는 정말로 곤란하다는 듯이 울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래도 나는 늑대를 끌어안고 마구 쓰다듬었다.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따뜻했다.


“너무 귀엽고 좋아…….”

“…….”

무언가를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처럼 파들파들 떨던 늑대가, 별안간 고개를 홱 들어 올렸다. 그에 움찔하기도 잠시, 길고 매끄러운 뭔가가 내 얼굴을 쓱 훑고 지나갔다.

……늑대가 내 얼굴을 혀로 핥은 것이었다!


‘으악!’

매우 미끈거리고 축축했다……! 기분이 나쁘진 않은데, 뭔가 설명하기 어렵고 요상한 이 기분……! 으아악, 또 핥고 있어!


“그, 그만……!”

그러나 늑대는 멈출 기미가 없어 보였다. 어느새 전세는 역전되어,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린 내 위에 늑대가 올라탔다. 역광에 잠긴 늑대의 은회색 눈이 오묘한 빛을 발했다.

……이상한 기분이다. 뭐라 해야 할지, 느낌이…….


“아, 저, 저기……. 히익.”

내 얼굴을 또 쓰윽 핥은 늑대가 다음으로는 목덜미를 핥아 올렸다. 나는 마치 잡아먹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거 설마 맛보는 거 아니지? 그렇지?

늑대는 한참이나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앞발 하나를 내 왼쪽 가슴 위,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댔다. 마치 도장이나 낙인을 찍듯이.


‘……이거…….’

이거 뭔가 심상치 않다고, 위험하다고,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쿵쿵쿵, 빠르게 뛰었다. 가파른 절벽을 내달리듯이.

이윽고 왼쪽 가슴에서부터 따스한 온기가 서서히 번져 나갔다. 온몸으로, 손과 발끝까지.


“아읏…….”

동시에 찌릿하고 살짝 고통스러운 감각이 덮쳐 왔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다가 한꺼번에 터뜨리자, 늑대가 나를 위로하듯이 뺨을 핥아 주었다.


“끼잉…….”

마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알 수 없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나한테 뭘 한 거지?

내 왼쪽 가슴에서 앞발을 떼어 낸 늑대가 옆으로 비켜 주었고,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두 손을 쥐락펴락해보자 다행히 멀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분명 뭔가…… 뭔가 이상했는데.

이 늑대가 나한테 무슨 짓인가 했다고!

나는 두 손을 홱 뻗어 늑대의 양쪽 귀를 덥석 잡았다.


“이보세요, 공작님. 방금 나한테 뭘 한 거예요?”

“끼잉, 깽…….”

젠장, 통역이 안 되니 뭐라 하는지 1도 모르겠다. 이 고물 귀걸이 같으니라고. 진짜로 아르윈에게 수리를 맡겨야 하나……. 그렇지만 그 미친 블랙맘바에게 개인적인 부탁은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늑대를 붙들고 계속 추궁했다.


“방금 뭔가 찌릿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요! 뭘 한 거예요! 자백해!”

“깨갱……!”

늑대가 발라당 드러누워 배를 보였다. ……동물이 배를 보인다는 건, 대체로 복종의 의미이다.

자백하라니까 배를 보여? 뭐 하자는 거야?

나는 어이없어하며 멈칫해 있다가, 이내 냉큼 손을 뻗어 늑대의 배를 마구 쓰다듬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배의 털은 하얀색이었다!


“말도 안 돼! 이렇게나 귀여운 설정이라니!”

“깽!”

“여우처럼 울지 마! 늑대 주제에!”

“와오올…….”

늑대는 내가 배를 마구 만지거나 말거나 풀밭 위를 뒹굴거리며 애교를 떨었다.

헥헥거리며 꼬리를 붕붕 흔들고, ‘깽.’이나 ‘낑.’ 같은 소리를 냈다. 가끔은 앞발을 파닥거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완전히…….

개 같았다.


“늑대가 아니라 순 개로구만…….”

“깽……!”

“긍정하는 거예요?”

“끼잉―.”

물고기처럼 헤엄치듯 몸을 양옆으로 움직이던 늑대가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나에게 달려들어 내 얼굴을 마구 핥기 시작했다!


“으악! 그만 핥아!”

“헥헥헥……!”

기립한 늑대가 두 앞발을 내 양 어깨에 척 올려놓았다. 그리고 역시나 열심히 핥는다. 내 얼굴과 옷이 단숨에 축축해졌다.

……씻고 싶어.


“왜 이렇게 침을 발라놓고 난리예요……!”

부들거리며 묻자, 늑대가 또 발라당 누워 배를 보이며 “깽.” 하고 울었다. 어디서 귀여운 척을……! 그러나 내 손은 너무도 솔직하게 늑대의 배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내 배에 닿은 손이 보드랍고 하얀 털에 폭 파묻혔다. 완전히 솜사탕이었다……! 그레이안 솔즈베리가 이렇게나 귀여운 생명체였다니, 인지 부조화가 오려 해!


“언제 사람 모습으로 돌아올 건데요? 우리 대화 좀 하자고요. 귀걸이가 고장 나서 당신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끼잉, 깽.”

“……좀 늑대처럼 짖어 보시죠?”

“컹!”

말은 잘 듣는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늑대의 보송보송한 배를 더욱 격하게 쓰다듬었다. 늑대는 무척 좋아하며 주둥이를 벌리고 뒹굴뒹굴했다.

그래, 뭐가 어찌 됐든 드디어 그레이안을 만났으니 족하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늑대와 풀밭에서 뒹굴며 놀았다.

* * *



“끼앵.”

“왉.”

“꺄앙!”

“왉왉……!”

……이런 그림이 펼쳐질 거라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늑대와 토끼는 자신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둘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저, 공작 부인…….”

그때, 기사 한 명이 머뭇거리며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의 뒤편에 서 있는 기사들도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눈빛들이 묘했다. 내가 그레이안을 데리고 온 뒤부터 계속 저 상태다.


“그, 공작 각하께서 뭔가 수상한 행동을 하진 않으셨습니까? 아, 앞발로 공작 부인의 몸을 낙인찍듯 누른다든가……!”

“……?”

“호, 혹은, 공작 부인의 목덜미에 잇자국을 남겼다든가!”

말은 왜 더듬어? 게다가 뭐 이렇게 내용이 구체적이야?

나는 의아함에 눈썹을 찌푸리며 팔짱을 끼고선 대답했다.


“내 목에 잇자국을 남기진 않았는데, 핥긴 했어요.”

“허억…….”

이유는 모르겠으나 기사는 숨넘어갈 듯이 놀랐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의문이었지만, 나는 잠자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앞발로 내 왼쪽 가슴을, 그러니까 심장 부근을 꾹 누르더라고요.”

“……!!”

질문을 건네온 기사를 비롯해, 뒤편에 서 있던 기사들까지 까무러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쯤 되니 그 이유가 너무도 궁금해져, 따져 묻기 위해 막 입을 연 순간이었다.


“크르릉…….”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늑대가 기사들을 향해 위협하듯 이를 드러냈다.


“……?”

늑대가, 그러니까 그레이안이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사납게 군 적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꺄웅!”

그때 토끼가 폴짝 뛰어올라 늑대의 머리 위에 착 앉았다. 거, 겁도 없는 토끼. 다행히 늑대는 토끼가 제 머리 꼭대기에 앉거나 말거나 얌전히 있었다.

늑대가 경계하는 것은, 오직 다른 늑대들…….

정확히는 다른 수컷들이었다.


“……?”

그 순간 마치 벼락이 치듯이, 제이드가 들려줬던 소문의 내용 일부가 떠올랐다.


‘솔즈베리 공작의 각인 기간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미혼 여성들 사이에 퍼지는 모양이더라고요.’


‘제가 알기로 늑대 수인의 각인은 절대적이거든요. 한 번 각인하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람만을 사랑하죠. 그러니, ‘어쩌면 나도 공작 부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꿈에 부푼 이들이 꼬이는 거예요.’

맞아……. 그랬지.

그 이야기가 왜 이제야 생각이 났을까? 늑대가 수상한 행동을 보일 때 바로 떠올렸어야 했는데……!


“크르릉…….”

“으악, 주군! 저는 남의 아내를 탐내고 그러는 몰염치한 놈이 절대 아닙니다! 더군다나 주군의 아내를!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레이안은 여전히 기사들을 위협하는 중이었고, 토끼는 늑대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상황을 관전했다.

괜히 쓸데없이 다른 수컷 늑대들을 경계하는 그레이안도 그레이안이지만, 그걸 재미있다며 구경하는 에이프릴도 정말이지…….


‘환장의 부녀 콤비네…….’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는데, 근처로 스윽 다가온 제이드가 은근슬쩍 말을 건넸다.


“각인 기간의 늑대는 자신 외의 수컷을 필요 이상으로 경계한다더니, 확실히 그런 모양이네요.”

……이 녀석, 방금 확언한 거지? 그레이안이 나에게 각인한 거라고.

황당하다는 듯이 흘겨보자니 제이드가 싱긋 웃었다. 뭘 웃어, 이 녀석아. 남은 혼란스러워 미치겠는데.


‘그레이안이 정말로 나한테 각인한 거란 말이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글로리아 아인스턴인 나에게…….’

정황상 확실해 보였다. 어쩐지 찌릿하고 살짝 아픈 것도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니. 그게 저 요망한 늑대가 나한테 각인해서 그런 거였구나!


“공녀님, 주군 좀 말려 주십시오…….”

“캬후웅.”

기사 양반, 걘 말릴 생각이 없다네……. 나는 티벳 여우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나라도 그레이안을 말리는 수밖에.

그리고 물어봐야지. 진짜로 나한테 각인한 거냐고. 진짜라면, 왜 나한테 각인한 거냐고.


“그레이안, 그만하고 이리 와서 좀 앉아 봐요.”

소파에 앉아 옆자리를 툭툭 두드리며 말하자, 나를 바로 홱 돌아본 늑대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재빠르게 다가왔다.

그 꼴을 보며 기사들은 세상 모든 시름을 다 끌어안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모시던 주군이, 위엄 넘치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한 마리의 애완견처럼 굴고 있으니.

늑대는 여전히 머리에 토끼를 얹은 채로 내 옆자리에 살포시 앉았다. 그 모습이 내 앞에선 늘 다소곳이 굴곤 했던 그레이안을 떠오르게 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픽 웃은 나는 늑대의 턱을 살살 긁어주며 말했다.


“물어볼 게 있는데.”

“왉.”

“꺄웅.”

너한테 말한 거 아니다, 토끼. 나는 토끼를 흘끗 일별하고선 말을 이었다.


“당신 정말로 나한테 각인했어요?”

“왉!”

“웅꺄웅 끼앙.”

……토끼야, 네가 통역해 주려 해봤자 난 네 말도 못 알아들어. 한숨을 삼킨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토끼의 머리를 쓱쓱 매만져 주었다.

그리고 재차 물었다.


“왜 나한테 각인했어요? 사람 모습으로는 언제 돌아올 거예요?”

“끼잉……. 깽.”

늑대는 계속 깨갱거릴 뿐, 사람 모습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혹은 돌아오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기사들은 알까 싶어 그들에게 물어보려는데, 느닷없이 별장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

긴 흑발이 허공에 나부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듯 바닥에 착지한 아르윈이, 노란빛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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