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56/144)


56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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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부분은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에게 치명적인 진실은 감춘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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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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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시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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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 영혼의 색이 어쩌다…… 바뀐 건지.”

말을 마치며 어색하게 웃자니 로드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녀석은 15세에 불과한 어린 소년일 따름인데, 눈빛만큼은 여느 어른보다도 첨예했다. 어리다고 얕봤다간 비밀을 다 들켜 버릴 것만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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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공작 부인?”

몇 분째 침묵하던 로드리가 넌지시 물어왔다. 나는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리 녀석이 과연 무슨 말을 할지……. 심장이 빠른 속도로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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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공작 부인의 영혼이 바뀐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예 다른 존재인 게 아닐까 하고요.”

저, 정곡이다. 뜨끔하는 바람에 눈꺼풀이 살짝 떨리긴 했지만, 티는 안 났을 것이다. 나는 표정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한 표정. 이 상황에선 가장 적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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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이고……. 공작 부인께 답을 구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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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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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든, 지금 제 눈앞에 계신 ‘당신’은―.”

로드리의 얼굴에 작은 데이지 꽃처럼 여린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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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구해주셨으니까요. 그 은혜는, 평생,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죽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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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는 하여간 과하게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다. 원래 좀 진지한 성격이라 그런가. 나는 손을 휘저으며 로드리를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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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거운 마음 가질 필요 없어. 내가 널 도운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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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겐 처음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런 식으로, 공작 부인처럼, 손을 내밀어 준 적은…….”

로드리의 눈동자가 물기 어린 채 반짝거렸다. 그 눈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뭐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이 녀석은 계속 내 편일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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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얘가 내게 가진 감정은 호의 이상이야.’

그 감정에 나는 어렵지 않게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바로 ‘충성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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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의 기사면서 에이프릴이 아니라 나한테 충성하면 어쩌자는 거야, 이 녀석아.’

여러모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당장은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었다.

로드리의 충성심이 불안정한 자아와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막무가내로 빼앗는 것은 혼란을 불러일으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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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나는 로드리의 머리를 잠자코 쓰다듬어 주었다. 보들보들한 감촉이 꼭 솜털 같았다.

* * *

성으로 돌아와 보니, 나를 보는 집사와 안나의 표정이 왜인지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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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레이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퍼뜩 든 생각에, 나는 두 사람 앞으로 후다닥 다가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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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어요? 둘 다 안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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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마님…….”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달싹이던 집사는 안나와 잠시 시선을 교환하더니, 나에게 웬 양피지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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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받아들었다. 개인적인 편지 같은 것일 리 만무한 그 양피지 두루마리에는, 아인스턴 왕가의 화려한 인장이 찍혀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단순한 인장이 아닌― 왕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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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거…….’

두루마리를 내려보다 홱 고개를 들자, 집사가 당혹감이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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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이십 분 전에 아인스턴 국왕께서 보내오신…… 명령서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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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두루마리를 가져온 칙사는 지금 응접실에 있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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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꼭 마님을 뵙고 가겠다며 고집을 피워서…….”

집사가 10년은 더 늙은 듯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아인스턴 국왕에게서 온 명령서의 내용은, 다름 아닌 그레이안과 나의 이혼에 관한 것이었다.

국왕인 자신이 나와 그레이안의 이혼을 원하니 군말 없이 따르라, 한 달 내로 모든 절차를 마쳐라― 대충 요약하자면 그런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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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 버리듯 치울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날 다시 아인스턴으로 불러들이려는 이유가 대체 뭐야?’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당연히, 나는 국왕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레이안과 이혼하고 싶지도 않고!

벌컥!

나는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갑작스럽게 문이 열리자 안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일부러 거만하게 턱을 치켜세운 채 상대를 노려보면서 천천히 걸음을 뗐다. 아인스턴 국왕의 칙사인 이자를 향한 내 감정은 적대심뿐. 친절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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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 크흠……. 글로리아 왕녀 전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분노는 오히려 머리를 맑게 하기도 하나 보다. 속에서 불이 나는데도 그 불은 뜨겁기보다는 시퍼런 얼음 같았고, 싸늘히 식은 이성은 맑고 차가운 물처럼 오래된 기억을 투영했다.

나는 이자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었다. 글로리아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깊이 가라앉아 있다가 수면 위로 떠오른 그 기억은, 그다지 좋은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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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쯧……. 저런 천출도 왕녀랍시고 왕궁에 머무니 지고한 아인스턴 왕가의 격이 훅 떨어지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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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계집애는 신경 쓰지 말거라. 어차피 저것의 어미도 저것도 전부 부왕의 예쁜 수집품에 불과하니.’

당시 나를 두고 에반젤린과 대놓고 그런 대화를 나눴던 이자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에반젤린의 최측근 중 하나였다.

오늘 이 자리에 칙사로 온 이유도 이혼 명령에 대한 내 반응을 에반젤린에게 시시콜콜 전해주기 위해서겠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나는 오만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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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서피크 자작. 그대는 할 일이 없나? 볼 때마다 하는 짓이라곤 시답지도 않은 가십거리를 물어다 주인에게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치는 것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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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 그 무슨― 왕녀 전하, 말씀이 심하십니다!”

에반젤린의 최측근으로서 체서피크 자작이 주로 하는 일은, 온갖 새로운 소문과 정보를 그녀에게 물어다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솔즈베리 성까지 온 이유도 알 만했다. 국왕의 이혼 명령에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서 에반젤린에게 전해주기 위함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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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 마나, 칙사 역할도 자진해서 맡은 거겠지.’

국왕은 체서피크 자작이 에반젤린의 까마귀 노릇을 하든 말든 별 관심이 없으니 대충 맡겼을 테고.

나는 똑바로 서서 팔짱을 낀 채로 체서피크 자작을 향해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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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대와 할 말이 없으니 이만 가보시게. 여기서 나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껏 다과를 즐긴 모양인데, 대접은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설마 식사까지 요구할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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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 어찌……! 너무 무례하십니다, 왕녀 전하! 저는 국왕 폐하의 명을 받들어 이 자리에 사명을 다하고자―.”

이 간신배가 더 건방지게 굴기 전에, 나는 나비들을 불러내 그에게 확 날려 보냈다.

갑작스러운 나비 떼의 습격에 체서피크 자작이 놀라 자빠졌다.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린 채 주저앉아 있는 그를 향해, 나는 차갑게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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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에반젤린을 놀라게 할 이야깃거리로 충분하지. 안 그런가? 체서피크 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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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 나비들은…….”

체서피크 자작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판사판. 이 정도쯤 막 나가도 상관없을 것이다. 나는 보란 듯이 나비들을 내 곁으로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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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께서 나를 다시 아인스턴으로 불러들이려는 이유를, 이제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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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눈이 화등잔만 해진 체서피크 자작이 앉은 자리에서 주춤거렸다. 이해가 빠른 걸 보면 역시 멍청이는 아니다. 나는 고압적인 태도로 그를 흘겨보며 천천히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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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으면 이만 떠나게. 이 성의 사람들을 더는 곤란하게 하지 말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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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턴 국왕이 나를 되찾으려는 이유가 뭔지, 가만 생각해 보니 확실히 알겠어.’

체서피크 자작이 떠난 후, 나는 안나와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에이프릴이 방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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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앙!”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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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그만 토끼가 내 품으로 폴짝 뛰어들자, 그때까지 잔뜩 날서 있던 기분이 사르르 풀렸다.

내 옷자락에 뺨을 비비적거리는 토끼의 보들보들한 털을 쓰다듬자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 좀 진정할 필요가 있지. 이 분노 중 일부는 글로리아의 것일 텐데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아니, 하지만 글로리아의 감정이라기에는 너무나 선명하다.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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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웅잇?” (무슨 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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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 명령에 관한 것을 어린아이에게 말하기는 좀 그렇다. 괜한 걱정이나 불안감이 들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에이프릴은, 마냥 평범한 아이는 아니지. 에이프릴에게도 알 권리가 있고. 그리고 언젠가는 에이프릴의 귀에도 들어가게 될 이야기였다.

그러니 그냥 지금, 내가 직접 알려주는 편이 낫겠지.

나는 솜사탕 같은 토끼 꼬리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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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턴 국왕이 나더러 네 아빠랑 이혼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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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찔한 토끼가 코를 마구 벌렁거렸다. 작은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듯하더니, 이내 극대노해 캬악거리며 토끼어를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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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애앵 꺄웅! 끄앵 꺗! 캬웅!” (자기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짜증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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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동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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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앵 웅꺄웅? 꺄앙 끼아웅…….” (당연히 안 할 거지? 엄마는 우릴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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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울컥한 것은 어째서일까. 에이프릴이 내 애정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한편으론 그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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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레이안과 이혼할 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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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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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에이프릴을 못 보게 되는데. 이혼이라니, 절대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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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앙……!” (응……!)

에이프릴이 두 앞발로 내 옷자락을 꼬옥 잡으며 품으로 더욱 파고들어 왔다. 나는 토끼의 조그마한 몸을 쓰다듬으며 재차 확신을 담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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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는 네 엄마가 아니게 될 일은 절대 없어. 그랬다가는,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더는 살기 싫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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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앙꺄웅……!” (나도 그래……!)

그렇게 한참을 서로 꼭 껴안고 있자니, 영혼의 온도마저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온기를 잃을 순 없었다. 이제는 내 전부이니까.

설령 국왕이 나를 강제로 이혼시키려 한대도, 나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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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공작 각하께서 돌아오시려면 한 달쯤 더 걸리실 것 같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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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이면 이런 때, 이런 좋지 않은 상황이라니.

소식을 전해 준 안나는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복잡한 기분으로 한숨을 내쉰 나는 애써 담담한 목소리를 자아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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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니 이만 나가 봐. 뭐……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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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님.”

꾸벅 고개를 숙인 안나가 내 안색을 흘끔흘끔 살피며 방을 나섰다.

나는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를 손가락 끝으로 두드리며 화병에 꽂힌 노란 달맞이꽃을 바라보았다. 온실에서 키워낸 꽃을 에이프릴이 꺾어다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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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아인스턴 국왕.’

그 작자만 아니었어도 기분이 이렇게 저조할 일은 없었을 텐데.

아인스턴 국왕이 그레이안과 나를 이혼시키려는 까닭은 내가 세계수의 나비들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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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세구원회의 배후는 그 자인 게 분명해.’

인세구원회를 털면서 내가 나비들의 힘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국왕은 자신의 정보원을 통해 들은 것이겠지.

그래서 체서피크 자작이 왔을 때, 나도 이판사판으로 막 나간 거였다. 원래는 최대한 조심하며 이 힘을 숨길 생각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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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순히 이용당해 줄 내가 아니라고.’

아인스턴 국왕은 나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질 도구로 이용할 모양인데, 어림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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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이쪽에서 먼저 선수를 쳐야겠어.’

마침 그럴 명분도 있고, 상황도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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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지방.’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곳에서 벌어진 문제는 내 힘으로 해결 가능할 듯싶다.

그레이안은 내가 또 무리하다 쓰러질까 봐 나에겐 알리려 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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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부부는 원래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야 하는 거 아니겠냐고. 내 힘이 필요할 땐 얼마든지 도움을 받으란 말이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안나를 불렀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내 결심은 이미 확고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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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안을 만나러 알폰스 지방으로 내려가야겠어.’

그가 한 달 넘게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내가 그를 만나러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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