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이혼 추진 (50/144)


50화. 이혼 추진
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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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라니에로는 ‘쓸모가 있어진’ 글로리아를 수인들에게 넘겨줄 생각 따위 없었다.

글로리아는 제 딸이니 처음부터 제 것이었다. 그 아이가 세계수의 성령들과 계약해 얻은 그 힘, 그것은 반드시 아인스턴 왕국을 위해, 그리고 국왕인 자신을 위해 쓰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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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크, 거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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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라니에로의 부름에 그의 충직한 심복, 가리크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렸을 때 라니에로에게 거두어져 그의 신하로서 철저히 교육받은 가리크는 한 마리의 충견처럼 오직 라니에로만을 따르고 있었다.

오죽하면 가리크의 별칭이 ‘라니에로의 개’이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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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새벽이 되자마자 인세구원회의 시설을 인멸하도록 해라. 방화를 해도 좋고 마법을 써도 좋다. 세낙에게는 짐이 미리 말해 두도록 하지.”

세낙은 라니에로의 직속 마법사로, 가리크와 마찬가지로 라니에로에게 매우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그 충성심은 가히 병적이라 할 수 있었다. 라니에로의 명령이라면, 그것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일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실행에 옮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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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받들겠습니다. 모든 것은 폐하의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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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만 임무를 수행하러 가 보아라. 그리고 나가는 길에 루시를 불러 알현실로 들어오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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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가리크가 나간 후, 라니에로 혼자 남겨진 적막한 알현실에 한 여인이 쪽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바로 루시, 풀네임은 루시 언스워트. ‘인세구원회’를 설립하고 운영해온 장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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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셨습니까,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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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소식은 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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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솔즈베리 공작령에 있는 인세구원회의 시설 중 하나가 발각되었다고요.”

루시의 말에 라니에로가 쯧, 혀를 찼다. 불태우라고 명하였으나 그 시설은 인세구원회가 운영해온 것 중 가장 큰 시설이었다.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대정령을 잡아두기까지 한 시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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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어. 쓸모라고는 왕족의 피가 흐르는 그 몸뚱이뿐이던 내 딸이, 나를 방해하는 바람에.”

인세구원회를 설립한 것은 루시 언스워트. 그리고 인세구원회의 모든 시설을 설계한 것은 세낙. 정보 요원의 역할을 한 것은 가리크.

그러나 그 모든 일의 배후에는, 아인스턴의 국왕 라니에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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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일이지 않나? 설마하니 글로리아에게 방해를 받게 될 줄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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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몹시 뜻밖입니다. 얼마 전에 글로리아 왕녀 전하께서 나비의 형태를 한 정령들을 다루었다는 목격담이 돌긴 했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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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문인 줄로만 알았지.”

라니에로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앞에 서 있는 루시가 아닌, 어딘가 먼 곳을 향해 있는 듯한 그의 눈동자가 어두운 탐욕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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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인 아이들을 이용해 시도해온 실험들은 전부 실패했지. 수인 아이의 몸에서 정령 감응력을 뽑아내 인간에게 옮기는 일은…… 아무래도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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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그들은 인세구원회를 만들어 표면적으로는 사이비 종교인 척하면서 뒤로는 은밀하게 범죄를 저질러 왔다.

수인 아이들을 이용한 실험도 그중 하나였다. 그 실험의 목적은 ‘수인의 정령 감응력을 인간에게 옮기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소원에는 응답하지 않는 정령들. 그 탓에 아인스턴 왕국의 정령 감응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종국에 인간 중에는 정령의 계약자가 단 한 명도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아인스턴 왕국의 마법사들이 강력하다고는 하나, 엘로윈 왕국에 비해 정령사의 수가 현저히 적은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있는 정령사도 전부 수인 노예 출신일 따름이니…… 라니에로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수인 노예는 품격이 떨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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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치 기반과 백성의 지지를 확고히 해줄, 인간 귀족 출신의 정령사를 만들고자 했는데…….’

실험은 실패했고, 시설은 발각당했으며, 어렵게 사로잡은 대정령은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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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그 아이가 세계수의 성령들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라니에로는 글로리아를 다시 아인스턴 왕국으로 불러와야 했다.

글로리아에게 붙은 솔즈베리의 이름을 지우고, 다시 자신의 딸이자 아인스턴의 왕녀로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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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턴 왕족이 축복받았다는 증거로서 살게 해야지.’

라니에로는 머릿속에 차곡차곡 계획을 세워나갔다. 일단, 첫 번째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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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를 솔즈베리 공작과 이혼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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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을 하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루시가 웃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라니에로의 지략가인 그녀는 그의 방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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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글로리아가 솔즈베리 공작과 원만히 지내는 듯이 보이지만…… 글쎄, 그 아이도 결국에는 아인스턴 왕궁으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하겠지. 늑대 무리에 끼어 있는 것보다는, 공주이자 성녀로 추앙받는 편이 훨씬 나을 테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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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취!”

……왜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고 난리? 누가 내 욕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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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리아를 욕할 사람은…… 세상천지에 셀 수도 없이 많겠지…….’

나는 머쓱하게 코를 문지르며 안나가 건네준 숄을 어깨에 둘렀다. 3월 말까지 계속 추울 예정이라니 끔찍하다……. 봄과 여름은 언제 오는 것일까. 얼른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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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마님! 오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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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 이 요리를 좀 맛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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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 김에 만찬장의 장식도 좀 봐주시면…….”

수인 아이들을 구해낸 이후로, 솔즈베리 성의 사람들은 나에게 무척 살가워졌다.

180도 변한 분위기가 영 적응이 안 돼서 낯간지러울 지경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피해 다니며 무서워하던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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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마님!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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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구해주신 수인 아이들 중 한 명이 말입니다, 사실 제 친척의…….”

뭐 이런 식으로, 나에게 먼저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거는데, 나로선 매우 얼떨떨할 따름이다. 좋은 변화라 봐야 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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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맛있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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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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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장식은 안 하는 편이 좋겠군……. 너무 요란한 느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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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당장 치워 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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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 오늘 만찬에 이 근방에서 유명한 악공과 시인을 초빙할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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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 은촛대가 좋으십니까? 아니면 이 금촛대가…….”

덤으로 내가 할 일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원래 이런 것들이 다 안주인의 역할이기는 한데, 갑자기 이렇게 몰려드니까 감당하기 힘들다,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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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촛대보다는 은촛대가 좋을 것 같군. 악공과 시인을 초빙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다만 치정 문제가 없는 이들이어야 하네. 이왕이면 점잖은 이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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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렇습죠! 마님의 말이 다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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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내가 무슨 지시를 하면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그 깐깐한 밀턴 부인조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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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계셨군요, 마님. 만찬 준비를 감독하는 중이셨습니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때마침 슬그머니 나타난 밀턴 부인이 나에게 말을 건네왔다. 사뭇 정중한 태도에, 나를 향한 고마움이 역력한 눈빛으로.

으아악, 진짜 적응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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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조카, 티베리를 구해주신 것에……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마님.”

벌써 21번째 감사 인사였다. 아니, 이젠 좀 그만하셔도 되는데요. 당신이 이러니까 부담스러워 미치겠다고요.

어찌 됐든 건네온 말에 답은 해야 했기에, 나는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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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는 건강하게 잘 있나요? 그날 이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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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돌아오자마자 말썽을…… 아니,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밀턴 부인이 황급히 말을 바꿨다. 티베리 녀석, 어른들 속 깨나 썩이는 장난꾸러기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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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티베리가 눈토끼들을 화나게 했던 일은…….’

……어떻게 된 거지? 당시 에이프릴이 알아서 잘 해결한 듯싶었는데, 전부 토끼어로 이루어진 대화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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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눈토끼들의 화가 풀렸으면 된 거지. 무슨 대화를 나눴던 건지는 나중에 에이프릴에게 물어봐야지.’

우리 토끼는 참 대단하다. 그런 것도 알아서 척척 다 해결하고. 오늘은 토끼를 발견하자마자 꼭 끌어안고 마구 칭찬해 줘야지. 맨날 하는 거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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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회에 티베리도 참석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녀석, 정령의 미로에서 참 용감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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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님. 티베리는 제가 지금부터 찾아보도록 하지요. 또 어딜 갔는지…….”

푹 한숨을 쉰 밀턴 부인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곤 티베리를 찾으러 갔다. 마침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탈출한 나는 만찬장에서 도망쳐 나와 정원으로 향했다.

사방이 탁 트인 정원 한복판에 서 있자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추워.

결국 얼마 못 가 다시 본관으로 돌아가려는데, 멀리서 내게 다가오는 한 인영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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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그레이안의 심부름꾼이었다. 그는 나를 향해 공손히 두 손을 모으며 다가와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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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 공작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긴히 논의할 일이 있으시다고…….”

긴히 논의할 일? ……인세구원회에 대한 거려나? 아르윈이 놈들과 그 시설을 계속 조사하는 중이라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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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네. 공작 각하께선 어디 계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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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회의실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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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바로 가도록 하지.”

그리하여 다시 본관으로 들어서자, 화사한 축제 분위기가 어김없이 나를 반겼다.

오랫동안 엘로윈 왕국인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던 수인 아동 납치범을 검거한 것에, 그리고 납치된 아이들을 되찾은 것에 사람들은 무척이나 기뻐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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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 산책을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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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수프가 다 되었는데 한번 맛보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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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 이 리본으로 만찬장 의자를 장식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질리지도 않고 나에게 달라붙어 오는 사람들을 대충 상대하며, 나는 최대한 서둘러 회의실로 향했다.

내가 갑자기 이렇게나 인기인이 될 줄이야…….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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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십시오.”

회의실 문에 대고 노크를 하자, 그레이안의 목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 나는 머리와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가다듬은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그레이안과 아르윈, 그리고 기사단장이 있었고, 분위기가 사뭇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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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그레이안이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그는 나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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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착석하자 아르윈은 예의상의 미소 같은 것을 지어 보이더니, 다분히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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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혹시 아인스턴 국왕에게서 연통이 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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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국…… 아니, 부왕 폐하께서 내게 무슨 일로 연락을 하시겠어요? 난 버린 자식이나 다름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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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걸 왜 묻느냐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하자, 나를 보는 아르윈의 눈빛이 오묘해졌다. ……그나저나 이거 왠지 취조당하는 느낌인데. 이 사람, 혹시 나를 의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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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실례했군요. 지금 기분이 매우 안 좋아서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인스턴 왕족인 당신을 향한 의심이 저도 모르게 싹트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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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조사는 순조롭다고 들었는데? 나는 설명을 요하는 눈으로 그레이안을 쳐다보았다. 그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무겁게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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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윈의 무례를 모쪼록 너그럽게 양해해 주십시오, 부인. 몇 시간 전에 사고가 일어난 탓에 계속 날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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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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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다름이 아니라…… 인세구원회의 시설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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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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