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문 너머의 비밀 (44/144)


44화. 문 너머의 비밀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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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나를 배신하다니!”

올리비에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절규했다. 어느샌가 나타난 카인이라는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거 참, 눈빛 한번 흉흉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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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배신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추궁하는 표정으로 그레이안을 쳐다보자, 그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이 인간, 대체 식당에서 올리비에한테 뭘 어떻게 했길래? 설마…… (유사) 아들인 척이라도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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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즈베리 공작 각하. 개인이 운영하는 종교 시설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침입하시다니요. 이건 엘로윈 왕국의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까?”

올리비에와는 달리 비교적 제정신으로 보이는 카인이라는 남자가 그레이안에게 따져 물었다.

계속 ‘그레이, 그레이.’ 어쩌고 하는 올리비에와는 달리, 저 카인이라는 남자는 그레이안을 똑바로 알아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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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들이 수인 아이들을 납치하고 유괴해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방 안에 가둔 건? 그거야말로 엘로윈의 국법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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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레이안이 차디찬 목소리로 받아치자, 카인이라는 남자는 당황한 듯 입을 달싹거렸다. 설마하니 하얀 방에 대해 눈치챘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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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은…… 치료 목적으로 축조된 것입니다. 이 시설 전체가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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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의 헛소리를 들어줄 여유 따윈 없어. 카빌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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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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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너희가 막아라. 놀러 나온 게 아니니 실력 발휘 좀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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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받듭니다!”

위풍당당하게 소리친 카빌과, 뒤이어 우렁차게 대답한 기사들이 경비병들을 향해 검 끝을 겨누었다.

카인이라는 남자는 이를 뿌드득 갈며 이쪽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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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 너머는 성역이다! 너희 같은 잡종들이 함부로 침범할 곳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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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이로다. 게다가 잡종이라…….’

수인을 두고 잡종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수인 혐오자가 분명하다. 그럴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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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잡종이라는 멸칭 쓰는 놈들은 나중에 다 패망하더라!”

라고 카인을 향해 소리쳐 준 후, 그레이안의 손을 잡고 재빨리 내뺐다. 아르윈은 벌써 저만치 가 있었다. 뱀이라서 그런가 빠르네…….

바삐 걸음을 옮기는데, 옆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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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웃어?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레이안을 곁눈질했다.

그가 아주 재미있어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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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패망한 놈들은 어디서 보셨습니까?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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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게.”

《해× 포×》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그 사람이라고 혹시 들어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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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소설 같은 데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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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을 좋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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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죠. 이야기라면 다 좋아해요.”

라고는 해도, 웹소설 마니아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밝힐 순 없었다. 이런 얘기를 할 상대가 없다는 게,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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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없어? 우리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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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우리한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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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얼마 전에 《천재 아이돌은 SSS급 무한 회귀자》라는 걸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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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들 진짜 뭐야?

나는 진짜, 진심으로 나비들이 너무 수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웹소설 제목을 안다는 건 진짜로 너무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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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이니 뭐니 나불댔지만 구조상으론 그냥 평범한 복도입니다. 문제는 복도 끝의 저 문인데, 아주 강력한 마법의 힘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자신의 근처에 도착하자 아르윈이 차분한 어조로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가 믿음직해 보인다는 사실에 약간의 괴리감을 느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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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마법인가요? 아까처럼 성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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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이 마법은…….”

아르윈은 별안간 자신의 머리끈을 풀더니 그것을 문 너머로 툭 던져 넣었다.

그렇다. 말 그대로 ‘던져 넣었다.’ 머리끈은 문을 그대로 통과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얼떨떨하게 눈을 깜박이는데, 아르윈이 이쪽을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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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 너머에는 분명 중대한 기밀이 감춰져 있을 겁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문을 넘은 것은 모조리 증발시켜 버립니다.”

 

* * *

로드리는 맨 처음 글로리아를 보았던 때를 떠올렸다.

아인스턴 왕궁의 노예 경매장에서 만났던 때보다 훨씬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 당시, 로드리는 글로리아를 먼발치서 스치듯 보았었다.

그때 그녀의 영혼은 아주 기괴하고 섬뜩한 핏빛을 띠고 있었다.

그 순간 로드리가 느꼈던 감정은 극렬한 공포였다.

아득하리만치 두려운 것, 감히 저항할 수 없는 것, 눈이 마주친 순간 피식(被食)의 대상이 되고야 마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극한의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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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괴물이다.’

자연히 그런 생각을 떠올렸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공주를 주인으로 섬기는 일만큼은 피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랬는데…….

그 후로 몇 년 후, 아인스턴 왕궁의 노예 경매장에서 다시 만난 글로리아는―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아예 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혼의 빛이 180도 뒤바뀌어 있었다.

분명 전에는 끔찍한 핏빛이었는데…… 다시 보게 된 그녀는 새파란 하늘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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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걱정돼요……. 하아……. 로드리 경도 그렇죠?”

거실을 초조하게 서성이던 에이프릴이 로드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로드리는 에이프릴과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 예민한 공녀님은 그 섬세한 감수성을 건드리지 않도록 언제나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로드리는 소녀의 앞에선 늘 단답을 하거나 고개만 끄덕이는 등,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었다.

말이란 언제나 오해와 의심의 씨앗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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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가 보는 건…… 역시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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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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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

에이프릴이 땅이 꺼지랴 한숨을 쉬며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삼십여 분 전, 솔즈베리 공작성 별채의 홀에 난데없이 아르윈 리벤티움이 나타났다.

그는 이번 일을 위해 그레이안이 홀 바닥에 그려둔 이동 마도구의 표식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더니, 또 사라져 버렸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이다.

그러고 나서 5분쯤 지나 별채의 홀에 웬 아이들이 대여섯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솔즈베리 성의 사람들은 그 아이들이 바로 납치되었던 수인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동시에 경악하고 말았다.

아이들의 상태가, 도저히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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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그 아이들 중에 밀턴 부인의 조카는 보이지 않았다. 그 애는 찾지 못했던 걸까. 가끔 자신의 말벗이 되어주곤 했던 그 아이를 떠올리는 에이프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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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

차라리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예지의 힘은 언제나 자신을 괴롭게 했다. 이런 힘 따위 없었으면 하고 늘 바랐다.

그렇지만, 글로리아를 알게 된 후로…….

그녀가 자신의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한 뒤로…….

에이프릴은 자신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안도하고 말았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더 확실하게 지킬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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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제발, 이번에도…….”

기도하는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인 에이프릴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로드리는 소녀의 맞은편에 그림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에이프릴의 간절한 바람 속에서, 시간만 째깍째깍 하염없이 흘렀다.

그러기를 얼마나 되었을까?

아무리 애써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결국 포기한 에이프릴이 고개를 들려던 순간이었다.

마치 현실 위에 또 다른 페이지가 겹쳐진 것처럼, 에이프릴의 시야로 미래의 장면이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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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란 에이프릴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소녀의 변화를 알아챈 로드리가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늘 그렇듯, 예지로 보이는 미래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여러 갈래의 미래가 동시다발적으로 보이곤 했다.

그 모든 평행세계를 지켜보는 에이프릴의 손이 덜덜 떨렸다.

잠시 후, 허공을 응시하던 에이프릴의 눈이 초점을 되찾았다.

로드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소녀를 바라보며 입을 달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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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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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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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에이프릴을 올려다보며 로드리가 물었다. 에이프릴은 주먹을 꽉 쥐고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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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에게 경고해야 해요. 그 문 너머로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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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이 문 너머를 살펴보는 건 불가능할 듯싶습니다. 일단은 다른 구역을 수색해 아직 감금된 아이들이 있는지 더 찾아보고, 이 시설을 통제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천하의 아르윈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니, 저 문 너머에는 대체 뭐가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논의를 나누는 그레이안과 아르윈 근처에 서서, 나는 하얀 문 너머를 힐끔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계속 시선이 갔다. 왠지 그리운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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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잠식해 나갔다. 어느새 나는 그 문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 그리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 언제 적인가 꿈에서 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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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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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부르는 그레이안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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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손이…….”

손끝이, 문에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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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 까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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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

그 사실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아이들의 웃음소리 같은 게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곧이어 뿌연 안개가 나를 덮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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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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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뒤에서 다가온 누군가가 내 몸을 힘껏 감싸 안았다. 그 사람은 그레이안이었다. 내 몸에 닿자 그도 덩달아 안개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르윈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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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앙―!”

그런데, 난데없이 토끼 울음소리가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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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당황할 새도 없이, 웬 솜뭉치 하나가 내 품으로 폴짝 안겨들었다.

그 하얀 솜뭉치는…… 당연하게도…… 에이프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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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여기 있어?!’

희뿌연 안개가 우리를 휘감았다.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갔다. 토끼의 까맣고 동그란 눈을 보며 입을 달싹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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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보 토끼가…….’

토끼의 등장에 어이없어 마지못한 채로, 나는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로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 아니, 낯선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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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여기는?’

매우 이상한 장소였다.

틀림없는 낮의 하늘인데도 별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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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가능한 일인가……?’

멍하니 눈을 깜박이는데, 옆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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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정신이 드십니까?”

그레이안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어쩐지 그를 볼 면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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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에이프릴이…….’

토끼에게로 생각이 미친 나는 급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사방이 온통 나무 천지였고, 이 장소는 마치 숲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숲이라기엔 어딘지 이상했다. 나무의 종류가 너무 다양했고,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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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어디 있니?”

아무리 살펴봐도 에이프릴이 보이지 않아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안개 숲에서 에이프릴 혼자 길을 잃기라도 했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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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웅…….”

그때였다.

자그만 토끼가 그레이안의 등 뒤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귀를 착 접은 채, 내 눈치를 보듯 눈꺼풀을 깜박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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