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해탈한 토끼와 눈치 보는 호랑이 (38/144)


38화. 해탈한 토끼와 눈치 보는 호랑이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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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피 튀기는 혈전…… 은 아니겠지?’

둘 다 목검이니 피가 튈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목검도 쓰기에 따라…… 충분히 위험해질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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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다 둘이 대련하게 된 거지? 로드리가 먼저 제안했을 리는 없고…… 에이프릴이 하자고 한 건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에이프릴은 자신과 로드리 중에, 누구의 실력이 더 뛰어난지 궁금해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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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력이 보통이 아니네, 우리 토끼.’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나는 잠자코 대련을 지켜보았다.

로드리와 에이프릴, 둘은 막상막하로 보였다. 게다가 둘 다 매우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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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끼가 호랑이와 싸우다니. 정말 대단하다……. 최고로 용맹한 토끼…….’

나는 검술에 문외한이었지만, 그레이안이 설명해 주어 대충은 아는 바가 있었다.

이를테면, 에이프릴의 검은 힘과 무게가 부족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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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지. 토끼 수인이니까.’

토끼 수인들은 다른 종족에 비해 힘이 약한 편이었다. 대신 매우 민첩하기 때문에, 빠르고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에이프릴은 바로 그런 장점을 살려 자신만의 검술을 만들어 낸 거였다.

검으로 내려치거나 찌르는 힘은 약해도, 상대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기에 속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나, 뭐라나……. 그레이안이 설명해 준 바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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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정말 빠르네. 내 눈으로는 전혀 못 따라가겠어.’

에이프릴이 휘두르는 검의 잔상만 시야에 남을 뿐이었다. 저렇게 빠른 공격을 막아 내는 로드리도 대단했다. 고양이라 그런가? 토끼 못지않게 민첩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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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엇……!’

로드리의 자세가 흐트러진 순간, 에이프릴이 잽싸게 기습을 가했다.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공격이었다.

로드리는 가까스로 그 공격을 받아쳤지만, 그 한 번의 동작으로 자세가 더욱 흐트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에이프릴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에이프릴의 목검이 다시 한번 더 로드리의 급소를 노렸다.

로드리가 그 공격을 막기 위해 움직인 순간, 에이프릴이 변칙적으로 동작을 바꾸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아니, 그보다 더 빨랐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눈만 깜박거릴 따름이었다.

비틀거리며 주저앉은 로드리의 목에, 에이프릴이 목검을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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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탄식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에이프릴의 압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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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진짜인가?’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로드리가 초심자이기는 하지만, 에이프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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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은…… 토끼인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가, 다음 순간에 바로 멈칫했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도 에이프릴에 대해 편견을 지니고 있나 보다.

<토끼 공녀의 은밀한 밤> 속에 나오는, 연약하고 순진한 토끼 여주인공.

그 이미지가 여전히 내 머릿속을 떠돌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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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이프릴은, 그 에이프릴과는 완전히 달라.’

나는 원작의 그림자를 머릿속에서 얼른 치워 버렸다.

눈을 꾹 감았다가 뜨고서, 내 앞에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에이프릴을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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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은 정말로 굉장해. 이제는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다…….’

짐짓 비장하게 독백하며 허리를 곧게 펴고 한 발 내디뎠다.

바로 그 순간, 에이프릴이 이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분홍빛 두 눈과 시선이 엉켜들었다. 에이프릴은 나를 멍하니 응시하며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반가운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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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그러자, 여태 나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확 쏠렸다.

특히 기사단장은 유령이라도 본 듯 깜짝 놀라서는 허둥지둥했다.

급히 경례하는 그와 다른 기사들을 만류하며,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에이프릴의 앞으로 다가갔다.

에이프릴은 나를 위아래로 빤히 훑어보았다. 마치, 내가 멀쩡한지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에이프릴의 의심을 확실히 거두어 주고자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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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 나았어, 에이프릴. 봐, 멀쩡하지?”

생긋 웃으며 에이프릴의 손을 꼬옥 잡았다. 에이프릴은 말없이 나를 응시하더니, 이내 엷게 미소를 지었다.

안도감이 어린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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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이따 뵈러 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찾아와 주실 줄은 몰랐어요. 다 나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공작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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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말로, 네가 로드리와 대련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어떻게 된 거야?”

둘이 어쩌다 대련하게 되었느냐는 시선을 에이프릴과 로드리에게 번갈아 보내자, 둘은 왜인지 어색해하며 딴청을 피웠다.

호오……? 둘의 사이가 묘하게 괜찮아 보였다. 뭐지? 내가 병석에 누워 있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서 말해 줘!’라는 뜻이 담긴 열렬한 눈빛으로 응시하자니, 에이프릴이 못내 부담스러워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힐끔힐끔 살피더니, 나를 향해 넌지시 제안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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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일단 다른 곳으로 가시지 않을래요? 로드리 경도 함께요.”

그렇게 해서 우리 세 사람은 기사단 본부의 1층 휴게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기사들이 묘한 눈으로 우리를 힐끔거렸다. 음, 흔치 않은 조합이기는 하지. 심지어 난 악명 높은 ‘글로리아 아인스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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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차를 내어 왔습니다.”

심지어 차 시중을 드는 하녀는 손을 벌벌 떨며 다과를 차렸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는데……. 걱정스레 하녀를 응시하다가, 순간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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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녀가 손을 삐끗하더니 찻물을 조금 흘렸다. 곧 하녀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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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공작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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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괜찮아. 신경 쓰지 말렴.”

짐짓 인자하게 말했으나, 하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거듭 사과할 따름이었다. 정말로 괜찮은데…….

하녀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다과상을 마저 차리고는, 허리를 깊이 숙인 채 뒷걸음질 쳤다.

슬쩍 엿본 얼굴에, ‘난 이제 죽은 목숨이다.’ 하는 생각이 고스란히 떠올라 있었다.

저기, 안 죽일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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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이 몸의 악명이란…….’

잊고 살다가도 이렇게 실감하게 된다니까.

하녀가 나간 후, 휴게실에는 우리 셋만 남겨졌다.

먼저 느긋하게 차를 홀짝인 나는, 곧이어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상자를 본 에이프릴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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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이게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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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으응, 이게 뭐냐면…….”

나는 에이프릴의 눈치를 보며 상자의 뚜껑을 슬쩍 열었다. 모습을 드러낸 은색 브로치가 실내등에 은은한 빛을 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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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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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로드리에게 줄 선물이야. 실력 평가 대회를 통과한 기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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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역시 사려 깊으시네요, 공작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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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의 반응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로드리에게 선물을 주는 거냐며 질투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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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지? 우리 토끼가 갑자기 너그러워졌다……?’

혹시 묘격이 아니라 인격이라 그런 건가? ……아니지, 그렇다기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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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해졌나 본데.’

도대체 내가 병석에 누워 있던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너무 궁금해 미치겠다!

당장 묻고 싶어 입이 간질거리지만, 일단은 로드리에게 선물부터 주도록 하자.

나는 상자를 로드리 쪽으로 쭉 밀었다. 상자가 자신의 앞에 도달하자, 로드리는 왜인지 작게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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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서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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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드리는 선물을 받아들지 못하고 조금 머뭇거렸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내 선물이 로드리를 부담스럽게 한 걸까? 심경이 조금 복잡해지려 하는데, 로드리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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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귀한 물건을…… 제가 감히 받아도 될까요?”

얘가 뭔 소리람. 별것도 아니고, 그냥 은으로 만든 브로치인데.

보석도 안 박혀 있고, 아주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이 정도는 다른 기사들도 다 하고 다닐 거다. 가족이 준 것이거나, 혹은 연인이 준 것이거나…….

소중한 사람이 자신의 무탈함을 기원해 주는, 그런 물건이 로드리에게만 없으면 서럽지 않겠는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브로치를 낚아챘다. 내 돌발행동에 로드리가 깜짝 놀라거나 말거나, 소년의 앞으로 다가가 망토에 직접 브로치를 달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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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좋아. 이제 제법 기사다워졌군.’

……이 녀석, 가만 보니 허리에 진검을 차고 있잖아? 더욱 기사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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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 진검? 설마, 벌써 기사 서임식을 치른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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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공작 부인.”

그때, 내 생각을 끊고 로드리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드리는 진심으로 감동한 듯, 두 손으로 브로치를 꼬옥 감싸 쥔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매우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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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께서 주신 선물,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죽어서는 어떻게 소중히 간직할 건데? 브로치와 같이 묻히겠다는 뜻인가. 아니, 그게 그 정도로 대단한 물건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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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준 건 그다지 좋은 물건은 아니야. 나중에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준 걸 하고 다녀. 그거야말로 무덤까지 간직하고 싶어질걸?”

웃음을 섞어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이렇게나 단순하고 순진한 녀석이 원작의 그 집착남이라니……. 하긴, 순수한 사람일수록 집착을 각성하면 무서운 법이지.

이후로는 로드리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10번 정도 들은 뒤, 며칠 사이 있었던 일을 에이프릴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 토끼는 설명도 똑똑하게 잘했다. 역시 문무겸비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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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로드리 경과 대화해 보니 이야기가 잘 통하고 저랑 공통점도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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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그랬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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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다 보니 조금 친해지게 됐어요.”

에이프릴은 못내 민망한 기색으로 우물쭈물했다. 로드리는 잠자코 앉아 있었는데, 에이프릴을 응시하는 눈이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불꽃이 튀는 제이드와는 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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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가 에이프릴을 좋아하게 된 걸로는 안 보이는데…….’

그러니까, 연애 상대로서 말이다. 둘 사이에 그런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뭐랄까……. 마치 오빠와 동생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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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원작과는 다른 상황에서 만났다는 점이 크게 영향을 끼친 건가?’

원래는 에이프릴이 로드리의 ‘구원자’가 되어야 했지만, 그 역할은 내가 대신해 버렸다.

로드리는 자신의 구원자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그러지 말라고 내가 타일렀다.

그리하여 현재, 로드리는 놀랍도록 건강한 형태로 솔즈베리 가문의 기사가 되었고, 흑심을 품고 비뚤어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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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나…….’

제법 잘했어!

원작을 긍정적으로 파괴하다니! 이런 파괴라면 대환영이지! 아주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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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로드리 경을 질투한 건 사실이지만요…….”

조용하던 에이프릴이 슬그머니 말을 이었다. 나는 속으로 ‘역시 그랬군.’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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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 검술이 더 뛰어나지만, 로드리 경은 앞으로 무서울 만큼 성장하겠죠…….”

로드리를 보는 에이프릴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질투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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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되면 제가 질 테니…… 지금이라도 많이 이겨두려고요.”

그러고는 크게 한숨을 내쉰 에이프릴이 허심탄회하게 웃었다.

……에이프릴에게서 보살의 후광이 보였다. 우리 토끼, 해탈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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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친해졌다니 다행이긴 한데…… 나중에 에이프릴을 좀 위로해 줘야겠는걸.’

너무 풀이 죽지 않도록. 훗날 로드리가 더 강해진대도, 에이프릴도 못지않게 대단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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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부로 로드리 경이 정식 기사로 서임되었고…… 제 직속 호위 기사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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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진짜?”

이어진 이야기에 깜짝 놀라 반문했다. 어쩐지 로드리가 진검을 차고 있더라. 아마 그레이안이 하사해 준 검이겠지.

나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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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친해진 데다 로드리가 정식으로 에이프릴의 호위 기사가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다!”

에이프릴은 예의 ‘해탈한_미소.jpg’를 지어 보였고, 로드리는 힐끔힐끔 에이프릴의 눈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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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든 둘을 좀 더 친해지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 눈치 없는 척 냉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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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으로 우리 셋이서만 몰래 외출할까?”

외출이라면 당연히 좋아라 할 줄 알았는데, 에이프릴은 뜻밖에도 망설이며 입을 달싹였다.

의아해진 내 얼굴 위 미소가 엷어졌다. 에이프릴이 왜인지 심각한 기색으로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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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사실…….”

에이프릴에게 들은 이야기는 나를 몹시 경악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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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수인 아동 실종 사건이 더욱 심각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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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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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솔즈베리 성의 시녀 중 한 사람이 아이를 유괴당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예의 고지식한 가정 교사, 밀턴 부인의 조카이기도 하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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