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내 사위 후보가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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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내 사위 후보가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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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내 사위 후보가 굉장하다
2022.04.02.
견습기사 삼인방은…… 의외로 잘했다.
‘……저 녀석들도 제법인데.’
자존심만 높은 녀석들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셋 다 실력이 우수한 편이었다.
‘그러니까 실력에 근거한 자존심이다, 이거로군.’
삼인방은 아주 의기양양한 태도로 퇴장하며 로드리를 흘겨보았다.
자신들의 실력이 로드리보다 뛰어나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흐으음, 그건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저 삼인방도 모두 늑대 수인이었는데, 로드리와 비슷한 또래였다. 그래서 더 로드리에게 경쟁심을 느낀 모양이었다.
‘뭐, 경쟁심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닌데.’
그걸 남을 괴롭힌다든지 하는, 비딱한 방향으로 표출하면 안 되지.
이번 일이 저 녀석들에게도 교훈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다음 차례는…… 제이드로군. 빠르네.’
제이드처럼 대단한 녀석은 보통 맨 뒤에 편성된다고 들었는데, 이번 달부터 규칙이 바뀌기라도 한 건가?
연무장 중앙으로 나온 제이드가 기사단장과 마주 보고 섰다. 실력 평가는 단장과의 대련으로 이루어지지만, 그레이안이 직접 나서는 일도 가끔 있다고 들었다.
나는 그레이안을 흘끗 곁눈질했다. 조용히 있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는 나설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흐음, 그레이안이 제이드와 로드리의 실력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해지는걸.’
제이드와 기사단장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 제이드의 동작은 날렵하면서도 힘이 있었고, 무엇보다 완벽했다.
떠돌이 검사 소년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정석적인 검술.
제이드를 보는 그레이안의 눈이 일순 날카로운 빛을 발했다.
‘……역시.’
그도 은연중에 의심하고 있던 게 틀림없다. 제이드의 출신 배경에 대해서.
‘이럴 줄 알았지만, 제이드가 정체를 들키는 건 시간문제라니까.’
어찌 됐든 제이드는 높은 점수를 받고 평가를 통과했다. 자신만만한 기세로 이쪽을 보며 씩 웃는데, 에이프릴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것 같았다.
뒷발로 귀를 긁고 있던 토끼가 앞발을 들더니 샥샥 갈채를 보내 주었다. ……예의상 해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아무튼 간에 실력 평가 대회는 이후로도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마지막 순서는…… 뜻밖에도 로드리였다.
‘왜 로드리를 마지막 순서로 배정한 거지?’
이상한 일이었다. 마지막 순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언제나 부기사단장이었다고 들었는데…….
‘설마, 로드리의 실력이 부기사단장보다 뛰어난 건…… 아니겠지……?’
아니, 그건…… 그건 너무 대단하잖아! 검술을 익힌 지 얼마나 됐다고? 그야 로드리가 본능적으로 싸움을 잘하는 적호 수인이기는 하지만……!
‘검술의 정석을 단기간에 완벽하게 익히기란 불가능할 텐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두 손을 꽉 움켜쥔 채였다. 내 무릎에 앉은 토끼도 조금 지루해하던 태도가 대번 달라져서는 진지한 눈빛으로 연무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로드리가 연무장 중앙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보다 훨씬 긴장한 기색이었다. ……괜찮을까.
‘편성표를 짠 사람은 대체 왜 로드리를 마지막 순서에 배치한 거지?’
생각해 보니 편성표를 짠 사람이 누구인지 듣지 못했다. 혹시 그레이안일까? 그를 슬쩍 훔쳐보자니, 그 순간 내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그레이안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언제나처럼 여유롭고 온화한 미소가 걸린 채였다.
“편성표를 누가 짰는지 궁금하십니까?”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귀신인가? 내 생각이 표정에 다 드러나기라도 했나? 당황해 눈을 빠르게 깜박이는데, 그레이안이 설핏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야 부인에 대해서라면, 저는 늘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요.”
“…….”
……아니, 그 플러팅 만렙 같은 대사는 대체 뭔데……. 다 노리고 하는 대사인가? 아니면 무자각인가? 어느 쪽이든 두렵다. 진짜 너무 위험한 늑대야!
“편성표를 구성한 사람은 기사단장입니다. 실력 평가 대회에 앞서 일주일 전부터 그가 견습기사들을 비롯해 모든 기사를 감독하며 점수를 매기는데, 평가 대회의 순서는 바로 그 점수로 정해집니다.”
“……?”
그레이안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아하, 그렇구나.’ 하기보다는 의문이 깊어졌다.
점수를 매긴다고? 그건 또 무슨 기준인데? 무예 실력으로 점수를 매기는 거라면…… 제이드의 순서가 뒤에 있어야 맞지 않나?
“이번에는, 점수를 매기는 기준이 궁금하시겠지요?”
“……네.”
이쯤 되니 뇌를 해킹당하는 듯한 기분이다.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그레이안은 작게 소리 내어 웃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점수를 매기는 기준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입니다. 꽤 복잡하지요. 무예 실력을 보는 것은 당연하고, 그 외에도…… 태도나 성품, 충성도, 그리고 발전 가능성을 보기도 합니다.”
“발전 가능성……?”
이거 꼭 신입 사원 평가 제도 같잖아? 솔즈베리 공작가의 인력 관리는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앗, 그러고 보니 로드리를 괴롭혔던 삼인방이 첫 번째 순서였잖아?’
그 녀석들도 무예 실력은 제법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순서라는 것은…… 다른 면에서 점수를 크게 깎였다는 뜻일 터.
‘그리고 제이드도.’
눈을 반짝이며 그레이안을 쳐다보자, 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설명해 주었다.
“제이드의 경우에는, 솔즈베리에 대한 충성심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점수를 크게 깎였죠.”
“…….”
예상대로다. 제이드 녀석, 충성하는 태도를 꾸며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지만, 기사단장의 눈을 속일 순 없었던 모양이지.
“그리고 제이드는 검술에 자신만의 고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충고를 귀 기울여 듣지 않지요. 제이드의 그런 면을 기사단장은 좋지 않게 본 모양입니다.”
“아하…….”
그럼 로드리가 맨 마지막 순서인 이유는? 답을 구하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데, 날 보며 귀엽다는 듯이 웃은 그레이안이 고갯짓으로 연무장을 가리켰다.
난 그가 날 보며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는 점에서 잠깐의 인지 부조화를 겪다가, 연무장 쪽으로 겨우 시선을 옮길 수 있었다.
로드리와 기사단장의 대련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오, 드디어……!’
나는 물론이고 내 무릎 위의 토끼도 잔뜩 긴장해서는 앞발을 꼭 움켜쥐었다. 나는 토끼의 귀를 두 손으로 꼬옥 붙잡았다. 과연 로드리의 실력은 얼마나 발전해 있을까?
‘마지막으로 봤을 땐…… 조금 불안정한 느낌이었는데.’
마침내 대련이 시작되자 사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로드리도, 기사단장도 섣불리 거리를 좁히기보다는 신중하게 서로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나는 긴장감에 손에서 땀이 배어날 지경이었다.
‘괜찮아, 로드리! 실수만 안 하면 돼!’
동작이 조금 어설픈 것 정도는 기사단장도 이해해 줄 것이다. 로드리는 검술을 익힌 지 얼마 안 된, 그야말로 초심자라 할 수 있으니.
그러니 실수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핀잔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로드리를 괴롭힌 견습기사 삼인방? 그 녀석들도 오늘 로드리를 보고 나면…….
‘헉……!’
생각은 급히 중단되었다. 로드리와 기사단장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기 때문이다. 둘은 두세 번 검을 부딪치더니 다시 거리를 벌렸다. 진검 대련이 아닌데도 둘 다 몹시 진지했다.
특히 기사단장은…… 로드리가 그보다 훨씬 어린 15세 소년인데도 마치 정식 기사를 대하는 것처럼 진중한 태도였다.
로드리를, 한 명의 어엿한 기사로 인정하기라도 한 듯이.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마른침을 꼴칵 삼켰다. 심장이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뭔가, 뭐랄까…….’
오늘 치러진 수많은 대련과는 달랐다. 볼수록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로드리의 대련이라서?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지금 이 대련 자체가 굉장했다.
매 순간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대련이었다. 보고 있노라면 잡생각이 싹 날아가고 오직 두 사람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앗……!’
기사단장과 거칠게 검을 부딪친 로드리가 살짝 비틀거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로드리가 기사단장의 허를 찔렀다.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정말 굉장하다.’
기사단장과 이 정도로 대련할 수 있다니! 검술을 익힌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텐데……!
‘역시 로드리! 과연 내 사위 후보!’
사람을 제대로 보았다는 뿌듯함에 저절로 의기양양한 미소가 지어졌다. 후후후, 칭찬해, 나 자신!
“우와…….”
“저 녀석, 제법인데?”
“그러게.”
우리 근처에 앉은 기사들도 로드리를 보며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실력주의 기사단답게, 로드리가 제 실력을 보이자 다들 깔끔하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예의 삼인방은…….’
입을 떡 벌린 채, 넋을 놓은 표정으로 로드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급격히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삼켰다. 저 녀석들, 굴욕감이 말이 아니겠구만!
‘그러게, 누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래? 바보 녀석들.’
내기는 나의 승리였다. 나는 실실 웃으며 좀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남은 대련을 관전했다.
로드리와 기사단장의 대련은, 그럴 것 같았지만 역시나 단장의 승리로 끝났다. 이 기사단의 정점에 서 있는 단장을 이기기에는 로드리의 실력이 한참 부족했으므로.
당연한 일이다. 로드리는 이제 갓 태어난 햇병아리나 다름없는걸. 그런데도 기사단장과 제법 멋지게 겨루었으니 발군의 성과를 보여준 셈이었다.
“대단하더군요, 부인이 데려온 그 소년.”
“후후후, 그렇죠?”
그레이안의 말에 대놓고 즐거운 웃음을 흘리며 되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리 적호 수인이라 해도 그렇게 단기간에 성장하기란 어렵습니다. 무예에 특출난 재능을 지녔다고 봐야겠지요.”
“훗, 제가 침 발라 놓은 녀석이니 넘보지 마세요. 로드리는 우리 에이프릴을 위한, 오직 에이프릴만의 호위 기사로 임명할―.”
“끼앵!”
그때, 토끼가 항의하듯이 소리쳤다.
깜짝 놀란 나는 입을 꾹 다물고 토끼에게 시선을 옮겼다. 왜인지 화난 표정의 토끼가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왜…… 왜 이러는 거지? 나는 토끼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물었다.
“에이프릴……? 내가 뭘 잘못했니……?”
“끼아아앙!”
……잘은 몰라도 내가 토끼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인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통역을 구하며 그레이안을 슬쩍 쳐다보았지만, 그도 토끼의 눈치를 살필 뿐, 바로 통역해 주지 않았다.
“끼애웅.”
“음, 통역하지 말라는군요.”
“…….”
이건 뭐 그야말로 폭군 토끼가 따로 없었다.
에이프릴 녀석, 사람일 땐 조심스럽고 소심한 성격이면서…… 토끼가 되면 이렇게나 성격이 달라지다니!
수인들은 원래 다 이런가? 아니면, 에이프릴만 인격과 묘격의 차이가 큰 것일까?
나는 에이프릴의 ‘구겨진 삼각형 눈’을 짐짓 따라하며 말했다.
“에이프릴은 폭군 토끼로구나.”
“……!”
“폭군 토끼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사옵니까. 소신 하나도 모르겠나이다.”
“꺄우웃……!”
극대노한 토끼가 앞발 뒷발 다 휘두르며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여전히 타격감 0인 공격이었다. 그저 간지럽기만 했다. 보송보송 토끼 발.
마지막으로 토끼 뒷발 돌려차기에 얌전히 맞아준 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뼉을 짝짝 쳐 주었다.
“훌륭한 공격이었사옵니다, 토끼 폐하.”
“캬훙!”
더욱 성이 난 토끼가 수염을 씰룩이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토끼의 하찮기 그지없는 공격이 재차 날아들려던 차였다.
“저…….”
어느샌가 우리 곁으로 다가온 로드리가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 왔다.
소년의 붉은 눈동자가 오롯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