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778화 (1,777/1,794)

템빨 88권 - 5화

한 마디로 대박이었다.

포식이불족발이 세운 탑은 라인하르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끊이지 않는 사람들의 행렬을 목격한 극검이 혀를 내둘렀다.

“막말로 온 대륙에서 몰려오는 듯한 기세군. 상상 이상의 반응이야. 외부인이 탑을 이용하려면 족발이하고 일방적인 계약을 맺어야하지 않나?”

“다른 던전하고 비슷합니다. 탑에 입장해서 획득하는 경험치와 보상 일부가 포식이불족발 님께 넘어가죠.”

“그래도 남는다?”

“당연하죠.”

올라가면 강해지는 탑의 가장 큰 강점은 ‘정체됐을 때 이용하기 좋다는 점’에 있다.

레벨이 올라 기존에 이용하던 사냥터에서 획득하는 경험치가 현저히 떨어졌을 경우.

그러나 상위의 사냥터를 이용하기엔 스팩이 부족할 때 탑을 찾아오면 시기적절하게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었으니까.

포식이불족발에게 몇 퍼센트의 보상을 양도해도 전혀 손해가 아닌 것이다.

심지어 개인이 양도하는 보상의 비율은 탑의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현저히 줄어들었다.

“내가 볼 때 인생은 족발이처럼 살아야 돼.”

던전 몇 채 지어놓고 뒷짐 짓고 있으면 경험치와 돈이 알아서 굴러 들어온다...

그야말로 건물주의 위엄인 것이다.

부러워서 위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 극검이 얼굴을 찌푸릴 때였다.

“별로 남는 것도 없어. 네 생각처럼 내가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면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겠나?”

포식이불족발이 다가와서 해명했다.

“벌리는 돈의 대부분은 던전 유지, 보수 비용으로 빠져나간다고 보면 된다.”

물론 던전에서 작업하는 모든 행위가 포식이불족발에겐 귀중한 경험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포식이불족발은 레이드나 사냥에 참여하지 않아도 늘 최상위 랭킹을 유지했고.

“내가 제대로 돈을 벌려면 던전을 함정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템빨단과 어울리게 된 뒤로 그런 짓은 깔끔하게 관뒀다.”

“애초에 그런 짓을 안 하지 않았나?”

“뭔가 단단히 오해하는군. 아예 안 하진 않았다.”

포식이불족발에게도 직접 삽질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설이 된 지금이야 던전이고 탑이고 뜻하는 대로 뚝딱 만들어냈지만, 과거의 포식이불족발은 손수 땅을 파고 공구리를 치면서 일일이 던전을 세우곤 했다.

악명 높은 다크 게이머 집단 <블러드 카니발>의 수장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악행을 저지를 시간조차 없이 노가다만 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포식이불족발의 과거를 미화해선 안 됐다.

포식이불족발 본인도 반성하고 있기에 사람들에게 던전과 탑을 베푸는 것이다.

당연히 이용 대금은 받았지만...

아무튼 포식이불족발 덕분에 숨통 트인 플레이어가 많다.

템빨단의 이미지가 좋아지는데 크게 일조한 인물 중 하나가 포식이불족발이었다.

“그건 그렇고 단원들이 의외로 애를 먹는군.”

다크라는 멋진 예명으로 활동했던 시절을 추억하다가.

불쑥 던전에 침입한 그리드를 만나 죽도록 얻어맞은 기억을 떠올린 포식이불족발이 화제를 돌렸다.

랭킹 목록을 열면서다.

탑을 높이 등반한 사람 목록에 템빨단원은 거의 없었다.

라우엘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평범한 플레이어들과 비교하면 훨씬 불리한 입장이니까.”

템빨단은 강적들과 싸워왔다.

최근에 레이드한 보스 몬스터의 수준이 최소 상위 대악마였기 때문에 탑의 상층을 돌파하는데 애를 먹었다.

특히 얼마 전 지옥 원정에 참가했던 단원들이 죽을 썼다.

전원 10층을 돌파하지 못했다.

그들이 10층에 올랐을 때 만나게 되는 적은 붉은 살덩어리나 아수라, 혹은 대별왕이었으니까.

“속된 말로 엿 된 거지. 내가 갓리드도 아니고 무슨 수로 대별왕을 단독으로 잡냐고...”

물론 탑은 각종 버프를 준다.

능력치를 상승시켜주는 평범한 버프부터 시작해서 ‘격’을 올려주거나 죽음을 유예하는 버프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몹시 강력한 효과를 지녔다.

당장 극검만 해도 탑 외부보다 내부에서 훨씬 더 강했다.

심지어 그는 1층에서 9층까지 등반하는 동안 운 좋게도 최상급의 버프를 여러 개 획득했다. 그걸 종합하면 상위의 초월자를 자처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한데 적은 절대신이다.

비록 ‘영체’로 영락해 전성기엔 한참 못 미친다지만, 극검 혼자서 뭘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었다.

“이건 단단히 잘못 됐어. 10층에서 만나는 보스를 설정할 수 있게 해주는 식으로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우린 전부 망한다.”

플레이어들이 성장하는 건 분명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굳이 템빨단이 뒤쳐질 필요는 없다.

우려를 표하는 극검에게 포식이불족발이 난색을 표했다.

“내게 시스템을 바꿀 권한은 없는데... 정해진 시스템에 개입하는 건 그리드도 못하지 않나? 예를 들어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검을 만들 때 나무를 재료로 쓰면 그건 결국 목검밖에 안 되잖...”

극검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그리드를 예시로 들던 포식이불족발이 입을 닫았다.

그리드가 만든 목검은 어지간한 철검도 양단 낼 것 같아서였다.

“음... 탑의 레벨이 오르면 개입할 여지가 생길 수도...”

말을 바꾸던 포식이불족발이 재차 입을 닫았다.

막 떠오른 알림창 때문이었다.

[플레이어 ‘크라우젤’이 탑의 10층을 돌파했습니다.]

“뭘 어떻게 한 거지?”

지옥 원정을 다녀온 템빨단 전원 10층에 머물러있는 실정이었다.

크라우젤의 사정도 같았다.

그 역시 대별왕을 10층 보스로 만났을 것이다.

한데 돌파해버렸다고?

“15시간...? 설마 회복 불가 디버프를 활용한 건가?”

크라우젤의 클리어 타임을 확인한 포식이불족발이 눈치 챘다.

탑에서 얻는 버프 목록에는 ‘대상을 공격할 때마다 회복 불가 상태를 거는’ 버프가 존재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다른 버프들과 비교해서 평범한 성능의 버프인지라 선택률이 낮았다.

한데 정황상 크라우젤은 그걸 이용해서 11층 등반에 성공했다.

“뭐?”

포식이불족발에게 설명 듣고 내막을 알게 된 극검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감탄했다.

15시간 동안 대상을 좀먹는 식으로 레이드에 성공하다니...

그게 가능하기 위해선, 15시간 동안 전투 유지력을 보존해야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즉, 크라우젤은 대별왕을 상대로 공격을 별로 허용하지 않았단 뜻이다. 심지어 스태미나를 보존하도록 최대한 작은 움직임만으로.

‘그건 어디까지나 컨트롤의 영역이니까 크게 놀랄 부분은 아니야. 나야 몇 번이나 리트라이 해야 간신히 성공하겠지만 크라우젤 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 템빨단엔 비교적 많으니까.’

극검이 크라우젤에게 크게 감탄한 부분은 피지컬이 아닌 뇌지컬 쪽이다.

아마 크라우젤은 탑의 버프가 절대적인 효과를 자랑한다는 점에 주목했을 것이다.

공격한 대상에게 회복 불가 상태를 거는 디버프.

현실의 보스 몬스터는 대부분 저항하는 디버프다.

탑을 등반하는 사람 중에서 그것을 보상으로 선택한 사람은 정말 몇 없을 터였다.

한데 크라우젤은 선택했다.

탑의 보스가 탑 내부에서 절대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개념에 저항하지 못할 것을 처음부터 예측하고서.

“대단한 놈... 갓리드 다음을 자처할 만하단 말이지.”

극검의 의욕이 들끓었다.

“나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9층까지 오르는 건 일도 아니다.

판단한 극검이 도전 현황을 초기화시켰다.

그리고 1층부터 다시 탑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회복 불가 디버프가 보상 목록에 뜰 때까지 반복하며 노가다를 할 셈이었다.

한편.

“운이 좋았군.”

탑 내부에선 크라우젤이 한숨 돌리고 있었다.

9층에서 운 나쁘게 얻은 최하급 보상.

회복 불가 디버프 덕분에 10층 돌파에 성공하게 될 줄이야.

운이 좋았다는 말밖엔 상황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20층부턴 빨라지겠어.”

10층에서 나타난 대별왕을 레이드한 대가로 획득한 보상이 무려 7개였고 그중 4개는 탑에서 적용되는 버프였다. 덕분에 공격력이 몇 배나 강력해졌다.

20층에서 재차 만나게 될 대별왕 역시 10층에서 출현한 대별왕과 비교하면 강력하겠지만, 생명력과 방어력이 몇 배나 뻥튀기 될 가능성은 낮으므로 빠른 토벌이 가능할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

“치타는 웃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게...”

지난 일주일.

일반인 플레이어들은 역대급 희열을 만끽하고 있었다.

올라가면 강해지는 탑.

포식이불족발의 신작 게임... 아니, 던전 랭킹 목록엔 템빨단이 거의 없었으니까.

같은 조건(?)이면 우리도 템빨단과 비교해서 못하지 않다고, 사람들은 착각한 채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었다.

하지만 3일 전.

크라우젤이 갑자기 상위 랭킹에 이름을 올린다 싶더니 급기야 오늘은 랭킹 목록이 전부 템빨단으로 물갈이 됐다.

고작 3일 사이에 천지개벽이 일어난 셈이다.

사람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템빨단은 다만 늦게 시작했을 뿐임을.

앞서 가는 우리를 출발 지점에서 귀엽다는 듯이 지켜보다가 느긋하게 등반을 시작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쯤 되자 궁금해졌다.

여전히 랭킹 목록에 없는 그리드.

신혼생활을 만끽하느라 탑을 방치하고 있는 듯한 그는 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랭킹 1위에 오를 것인가...

Satisfy 관련 매체들이 온갖 추측을 내놓기 시작했다.

어떤 유명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방송 중에 내기를 걸었을 정도다.

그리드의 이름이 랭킹 목록에 나타나는 시점을 기준으로 며칠 내에 랭킹 1위가 그리드로 바뀔지에 대한 내기였다.

월드 스타급 한류 아이돌과 헐리웃 배우 등등.

출연자 목록이 워낙 화려했던 예능인지라 큰 화제가 됐다.

그리드는 죽을 맛이었다.

“나 좀 가만히 내버려둬...”

아이린, 메르세데스, 바사라, 마리로즈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그리드.

나도 슬슬 탑을 등반해볼까 생각하며 동향을 파악하던 그리드가 순식간에 의욕을 잃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랭킹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부턴 쉴 틈 없이 탑을 등반해야할 것 같아서였다.

물론 그 누구도 그리드에게 랭커가 되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크라우젤, 밥 먹으러 갈 시간 아니야?

-괜찮다. 어머니께서 친구 분들과 휴가를 떠나셨거든.

-...미국에서 새로운 친구 분들을 사귀셨구나. 정말 잘 됐다.

친구의 어머니께서 완전히 건강을 되찾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지내게 되셨다는 소식은 그리드를 진심으로 기쁘게 만들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며 절로 미소가 그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아니 좀 쉬엄쉬엄 하라고.’

227층.

독보적으로 앞서나가는 크라우젤의 랭킹을 재차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리던 그리드가 문득 웃고 말았다.

옛 추억이 떠올라서다.

도전자의 입장이 된 게 얼마만인가.

“그리드다.”

“헐.”

“진정한 치타가 드디어 몸을 일으켰어...!”

올라가면 강해지는 탑.

인파로 가득 찬 그곳에 도착한 그리드를 발견한 사람들이 술렁였다.

그 탓에 추억에서 벗어나 현실을 깨달은 그리드였지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함부로 표정을 구기진 못했다. 애써 미소를 유지한 채 열렬히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화답해주었다.

“방송국에 가면 톱스타들이 사인해달라고 줄 선다면서?”

“그거 당신이 낸 소문이잖아.”

마침 탑에서 나온 극검과 마주친 그리드가 결국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말았다.

극검이 하하 웃었다.

“난 진실만을 말하고 다녔을 뿐이야. 아이고~ 피곤하다. 랭킹 9등까지 찍어놨으니까 오늘은 푹 쉬어야겠어. 아, 그러고 보니 갓리드 넌 9층에 주차해 뒀던가? 우리 둘이 숫자‘는’ 똑같군. 하하.”

“...”

“천천히 해, 천천히. 여기 랭커 돼봤자 뭐 따로 주는 것도 없는데 굳이 열 낼 이유가 있나? 안 그래도 미르가 대별왕의 환생을 확인했다며? 쉴 때 마음 편히 푹 쉬라고. 아랫공기 맑고 좋잖아?”

극검을 비롯한 템빨단원들은 결국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게임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노력했고, 덕분에 랭커가 된 이후 그리드와 인연이 닿아 지금에 이르렀다.

기본적으로 경쟁의식들이 강하단 말이다.

그렇다.

지금 극검은 그리드에게 진실 된 마음으로 휴식을 권장하는 동시에 견제하고 있었다. 도발은 덤이었다.

그럼에도 악의는 전혀 없는, 그저 타고난 게이머의 성정인 것이다.

허투루 넘길 그리드가 아니었다.

“아랫공기 쐬면서 쉬어야 할 사람은 극검 당신이죠. 조만간 190층이 밑 동네가 될 거니까.”

“헐.”

수많은 목격자가 하나둘씩 로그아웃하기 시작했다.

그리드의 선전포고를 어서 커뮤니티에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의도와 다르게 세간의 관심에 호응해버린 그리드였다...

뒤늦게 아차 싶어 점차 표정을 굳히는 그의 두 손을 극검이 덥썩 붙잡았다.

“역시 갓리드... 네가 진정한 슈퍼스타다.”

“...”

그리드는 휴가를 반납했다.

처음 본 날과 달리 엄청 높아진 탑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같은 시각, 지옥.

“어째서 발길이 뜸한 거지...?”

템빨단이 지옥의 악마 잔당 토벌에 열을 올릴 거라고 추측했던 제1위 대악마 바알.

대별왕의 힘을 회수하기 위해 틈을 노려 지슈카를 저격할 계획을 짠 그는 벌써 열흘 가까이 지옥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한데 잠잠하다.

원하는 상황이 도무지 발생하질 않았다.

아스가르드와 달리 더럽고 미개한 이곳에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물러야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어 초조해질 지경이었다.

그와 함께 활동 중인 대악마 자매가 시선을 마주치며 웃었다.

흑요와 백요 자매.

본래 제1위 대악마 바알을 엿 먹이기 위해 대악마가 됐다가 나설 기회를 놓치고 한동안 방황했던 그녀들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 솔직히 많이 후회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즐거울 따름이다.

제1위 대천사 리파엘.

제1위 대악마 대신 표적으로 삼을만한 존재가 스스로 굴러와 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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