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746화 (1,745/1,794)

템빨 86권 - 16화

“템빨단은 최강이죠. 부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번 원정은 템빨단에서도 추리고 추려 뽑은 정예만 참여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드, 크라우젤, 유라, 지슈카, 휴렌트, 하스터, 지발, 페이커 등등... 어느 나라를 방문해도 귀빈 대접 받을 만큼 대단한 사람들이죠. 한 명, 한 명이 대체 불가능한 역대급 플레이어입니다. 거기에 그리드의 사도들과 검신 비반이 함께하는데 불가능할 레이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알의 죽음은 정말로 큰 변화를 가져올 거예요. 죽어서도 고통 받는 사람들의 운명이 올바르게 고쳐지고 세계는 절망을 극복하겠죠. 활력을 되찾은 사람들이 지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활동력으로 문명을 급격히 발전시킬 거예요. 트라우카가 일으킨 개벽을 시즌2의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바알이 죽어야 비로소 시즌1이 종료되고 새로운 시작이 열리지 않을까 싶어요.”

“바알은 죽어야하는 대상입니다. Satisfy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사라져야하죠. 레이드 불가 대상. 즉, 무적이어선 안 되는 겁니다. 템빨단은 성공할 겁니다. 반드시 바알을 죽여 없애줄 거예요. 흐름상 반드시 필요한 사건입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추측했다.

템빨단의 바알 레이드 성공률을 무척 높이 점쳤다.

이번엔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해서 언젠간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다.

재차 도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플레이어의 특권이니까.

하지만 그리드의 생각은 달랐다.

‘만약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엔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죽은 자의 힘과 기술을 포식하는 권능.

그 사기적인 바알의 권능은 NPC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종종 플레이어의 스킬마저 빼앗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네임드들은 ‘플레이어가 강해질수록 강해진다.’는 특혜를 받고 있었으니까.

그건 기본적인 법칙이다.

네임드 중의 네임드인 바알 또한 같은 맥락의 특혜를 받는 것이다. 플레이어를 죽일 때마다 플레이어의 스킬을 흡수하는 식으로.

‘물론 아직까진 여러 제약을 안고 있는 눈치지만...’

현재까지 바알이 흡수한 플레이어의 스킬은 아주 적었고 수준도 낮았다.

아마도 바알이 플레이어의 스킬을 빼앗기 위해선 어떤 조건들을 충족해야하는 눈치였다.

필히 바알이 직접 죽여야한다거나, 죽인 뒤 어떤 공정을 거치는 식으로.

아무튼 바알은 시간이 흐를수록, 싸우면 싸울수록, 이기면 이길수록 강해지는 존재였다.

플레이어와 같은 것이다.

이번에 죽이지 못하고 패퇴하게 될 경우.

또한 그 과정에서 그리드 본인과 사도들이 사망해서 힘을 빼앗길 경우.

후일을 도모하기가 굉장히 난처해졌다.

괜찮다.

다 알고 충분한 준비를 갖췄으니까.

앞서 말했듯이 바알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강해지는 존재였고, 그러므로 평상시 시간은 우리가 아닌 바알의 손을 들어줬다지만.

적어도 지난 한 달 만큼은 예외였다.

드래곤 웨폰과 아머를 생산하고 강화주문서와 표식을 수집해온 기간만큼은 바알의 성장력을 우리가 월등히 초월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지옥에 입장하였습니다.]

지옥 엘리베이터가 하강을 멈추고 알림창이 떠오른 순간.

템빨단원들은 물론이고 사도들 역시 다소 긴장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악마들이 미리 깔아놓은 함정이 발동할 확률이 높았으니까.

일전에도 한 번 당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전원 즉시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리드는 느긋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성큼 발을 내딛었다.

“잠시...!”

메르세데스가 다급히 따라나섰다가 멈췄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흔들렸다.

데빌 슬레이어 유라.

그리드의 명령 한 마디로 지옥에서 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온 그녀가 일행을 마중 나와 있었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 비교하면 마법의 수준이 크게 올랐군... 대비 없이 밟았다간 제법 낭패를 겪었겠어.”

유라를 중심으로 갈라진 땅 틈새마다 마법진의 흔적이 있었다.

그것을 살펴본 브라함의 평가였다.

이쯤 되자 메르세데스는 유라를 완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진 이곳 지옥에서 홀로 희생하며 꾸준한 실적을 남기지 않나.

“잘 지내셨나요.”

꾸벅.

놀라운 광경이었다.

메르세데스가 먼저 고개 숙여 유라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유라가 미소로 화답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는 참 많은 걸 느꼈다. 유라를 본받고 싶어졌다.

뒤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지슈카가 도끼눈을 떴다.

“메르세데스 쟤는 왜 나한테만 까칠하게 구는 거야? 가슴 크다고 질투하는 건가?”

“...난 이유를 알 것 같은데.”

너의 그런 말투가 문제 아니냐...?

반트너가 차마 거기까진 말 못하고 딴청을 부리는 사이, 유라의 곁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도착했다.

“오랜만이야. 브라함 님도 안녕하세요.”

패배를 모르는 제10위 대악마 레라지에와,

“지상의 신을 환영하오.”

태도가 미묘하게 정중해진 흑기사 엘리고스였다.

전투를 치른 직후 같아 보였다. 온 몸에 마물들의 피를 흥건하게 뒤집어썼다.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마물들을 모조리 도륙한 눈치였다.

템빨단원들의 감각이 곤두섰다.

초월의 격이 두 악마에게 반응하는 여파였다.

저들이 지옥을 대표하는 강자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다.

과거에 만났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젠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수천수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다지.’

실로 막강한 우군이다.

상기하는 템빨단원들의 긴장감이 다소 풀렸다.

[신께서 지옥에 강림하자 지옥의 군주들이 맞이했다.]

[지옥의 파수꾼 켈베로스와 함께 윤회의 강을 지키는 흑기사 엘리고스.]

[패배를 모르는 패왕 레라지에.]

[제1위 대악마 바알이 굴복시키지 못한 유이한 군주들이 지상의 신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서사시가 갱신되며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유라와 함께 그리드를 마중 나온 존재들이 엄청난 거물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시청자들이 감탄했고 지상의 인간들은 환희했다.

그들의 환희가 그리드의 눈에만 보이는 알림창을 만들었다.

[인류가 바알에게 품은 공포가 아주 약간 옅어집니다.]

‘좋아.’

예상대로다.

서사시가 그리드에게 유리한 전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라우엘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알을 죽일 ‘열쇠’로 작용하는 것이다

서사시가 켜진 시점부터 그리드의 행보는 만인이 알게 된다.

그리드가 바알을 위협하면 위협할수록 인류가 바알에게 품은 공포는 옅어져갈 것이고, 급기야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바알은 치명적인 손상을 겪는다.

무한한 목숨.

인류의 공포로부터 비롯한 최강의 권능을 소실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절대로 경거망동해선 안 돼.’

나의 활약도에 따라서 사람들의 공포가 옅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활약이란 단순히 적을 박살내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동요하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내가 동요하는 순간 사람들도 덩달아 동요하고 기껏 옅어진 공포를 다시 상기할 우려가 있었다.

‘지금부터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천재야. 어떤 함정에 빠지더라도 처음부터 예상했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무적이다.

심장에 칼이 꽂혀도 모기에 물린 것처럼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그런 일을 겪지 않는 게 최선이긴 했지만.

“...”

티나지 않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린 그리드가 걸음을 뗐다.

시간을 지체할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상황이 계획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일정에 맞춰서 서둘렀다.

몹시 반가운지 힐끔힐끔 눈길을 보내는 레라지에와 회포를 나누는 것도 미뤘다.

‘아니.’

그리드가 걸음을 멈췄다.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자신을 보고 서운해 하는 레라지에 앞에서였다.

“패배를 모르는 지옥의 패왕이여.”

“응...? 에?”

“지옥 제일의 마수 켈베로스를 말처럼 다루는 용맹한 흑기사 엘리고스와 함께 나를 잘 보좌해다오.”

“냥? 지옥 제일 마수는 이 몸... 읍읍.”

눈치 빠른 후로이가 노에의 입을 가로막았다.

그리드의 발언이 서사시로 떠오르고 있었다.

지옥의 초월자들에게 신탁을 내리는 지상의 위대한 신으로 묘사됐다.

[인류가 바알에게 품은 공포가 아주 약간 옅어집니다.]

효과가 곧바로 나타났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린 그리드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레라지에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고 엘리고스는 그리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위엄이 더욱 늘었군. 마음에 들어.”

“...”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일행은 서둘러 그리드를 뒤쫓았다.

처음 계획대로 파티를 짜면서다.

메르세데스, 하스터, 유페미나, 폰은 1번 파티다.

‘체파르데아의 산란처’로 이동, 체파르데아가 죽어도 부활하게 만드는 ‘알’을 소거하는 한편 그곳을 파수 서는 바알의 측근들을 제거한다.

유라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로 지목했기 때문에 전력을 크게 투자했다.

피아로, 휴렌트, 데미안, 제드노스는 2번 파티다.

마기를 끝없이 생산해서 악마들과 마물을 강화하는 ‘악마들의 요람’으로 이동,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정확히는 파괴가 아닌 변화다.

피아로가 요람을 논밭으로 바꾸는 순간 지옥에서 활동하는 인간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테니까.

피아로가 논밭을 만들고 지속하는 것이 관건이기에 전투 지속력이 뛰어난 휴렌트와 데미안을 보좌로 붙였고, 제드노스를 추가로 투입해서 마법에 대한 저항력까지 갖췄다.

브라함, 극검, 후로이, 라엘라는 3번 파티다.

이쪽은 바알을 따르는 대악마들을 수색해서 학살한다. 막말로 미친 듯이 날뛸 예정이었다.

브라함의 마법과 극검의 발도술, 후로이의 욕설 폭격 3연타를 감당할 존재는 거의 없으니까.

브라함이 흥분하면 타인을 돌볼 확률이 낮으므로 라엘라까지 붙였다. 극검과 후로이를 마법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이다.

미르, 유라, 페이커, 레라지에, 토반은 4번 파티였다.

지하로 잠입해서 지옥 달을 투영하는 붉은 살덩이 즉, 아수라를 생산하는 공장의 가동을 멈추는 게 목적이었다.

길이 워낙 복잡하고 경비가 삼엄한 까닭에 지리에 밝은 유라의 역할이 중요했다.

페이커가 소란 없이 경비를 허물 것이고 토반은 유라를 보호할 것이다.

붉은 살덩이가 이전처럼 그리드의 분신을 빚는 등 저항할 확률이 높아 미르와 레라지에를 투입해서 충분한 전력을 갖췄다.

지크, 지슈카, 반트너, 마안족 왕은 5번 파티다.

5번 파티는 우선 그리드와 함께 움직인다.

유라의 증언에 따르면 바알 성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는 아수라의 머리를 무력화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바알이 1차 방어선으로 구축한 구역 같았기에 주둔군이 많았다.

마안족 왕의 파괴 광선으로 아수라의 머리를 견제하는 한편 지슈카의 저격으로 방어선을 허물 필요가 있었다.

반트너가 마안족 왕을 호위한다.

파티 전체의 파괴력과 생존력은 지크의 룬어가 크게 끌어올릴 것이며, 소별왕의 신성을 다루는 지크의 자체적인 전투능력은 어떤 변수가 발생해도 충분히 대응할 만했다.

네펠리나와 지발은 6번 파티다.

이쪽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드를 뒤쫓는다.

그리드와 번헬리어의 협력이 모종의 이유로 끊겨 드래곤 나이트가 비활성화 될 경우 네펠리나를 투입하기 위해서다.

단, 거리를 최대한 멀리 유지해야했다.

지발이 ‘강운’을 이용해서 네펠리나를 보호할 테지만 바알의 표적이 됐다간 전장에서 완전히 이탈해야하는 불상사가 생길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크라우젤과 엘리고스는 7번 파티였다.

이들은 든든한 보험이다.

바알이 수세에 몰릴 경우.

윤회의 강을 떠도는 영혼들을 포식해 회복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어 윤회의 강을 방비한다.

최후의 보루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중요했다.

크라우젤 입장에선 전선에 서지 못한다는 게 몹시 아쉬울 수도 있었지만 묵묵히 역할을 받아들였다.

이벨린을 포함한 다섯 명의 천사는 비반과 함께 8번 파티다.

일단 대기하다가 지원 요청이 들어오는 즉시 출동한다.

천사는 그리드, 그리고 사도들과 실시간으로 교신이 가능하다는 점.

특히 어떤 마법이나 물리력에도 교신을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지원군 역할을 담당하기 좋았다.

전원 비행이 가능해서 지형지물에 구애 받지 않고 고속 이동이 가능하기도 했다.

그리드 다음 최강 전력인 비반이 그들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며 전장을 조율할 것이다.

끝으로 카츠는 단독 임무다.

붉은 피부의 악마 글런트에게 안내를 받아 제2번 지옥으로 이동, 아모락트의 동태를 살피는 한편 베리아체와 접선을 시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베리아체의 전사이니만큼 어떤 히든 피스가 작동할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것이었다.

모든 계획은 유라의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삼았다.

또한 이 모든 계획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드와 바알의 1대1 전투를 성사시키고 지속하는 것.’에 있다.

그리드가 아무런 훼방을 받지 않도록, 바알이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란 말이다.

서사시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드가 1대1로도 바알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인류가 비로소 안심하고 공포를 완전히 떨쳐낼 테니까.

‘...엄밀히 말하면 2대1이지만.’

뭐, 번헬리어를 ‘탈 것’으로 구분하면 사실상 1대1이 맞지.

이건 결코 치사한 게 아니다...

크롸라라라라!!

파티 구성을 마치고 산개하는 그리드 일행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차원 이동을 통해 막 지옥에 도착한 번헬리어의 그림자였다.

“몇날 며칠을 싸워야할 수도 있어. 스태미나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은 체력 안배 잘 하도록.”

그리드가 재차 주의를 주었다. 노파심에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지긋지긋할 법도 했지만, 일행은 군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들 충분히 멀어진 상태였다.

그리드 역시 목적지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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