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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734화 (1,733/1,794)

템빨 86권 - 4화

탈리마.

염룡 트라우카가 둥지를 튼 까닭에 수백 년간 고립됐던 드워프들의 도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곳은 사람들에게 낯선 땅이었다.

극히 소수의 인물들만 우연히 발을 들였을 뿐,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탈리마의 정보를 일체 획득하지 못했다.

탈리마의 대장장이들은 레전드리 등급의 무구와 에고 아이템을 가판대에 늘어놓고 판매한다더라, 식의 소문 정도야 접했지만 어디까지나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치부해왔다.

“...마냥 헛소문은 아니었어.”

암벽에 둘러싸인 도시를 관광하던 플레이어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도시 곳곳의 대장간에서부터 검, 도끼, 철퇴 따위의 무기가 솟구쳐 오르더니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는 광경을 보면서다.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에고 아이템들이었다.

가판대에 늘어놓고 판매한다는 소문엔 필시 과장이 있었지만, 탈리마의 대장간들은 죄다 에고 아이템 몇 개씩을 상비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궁!!

탈리마 성이 등지고 있는 언덕 위로 수십 개의 에고 아이템이 떨어졌다.

네 명의 침입자를 겨냥한 채다.

단 하나도 명중하지 못했다.

극도로 단련 된 감각을 지닌 침입자들은 놀랍도록 쾌속한 움직임으로 에고 아이템의 기습을 회피했다.

바알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알을 자처한다 싶더니 최소한의 자격은 갖춘 것이다.

“기껏 찾아온 평화에 적응조차 못했건만...”

떨어진 무구의 중심에 선 드워프가 그늘 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괴력난신 앙트리노.

4등신의 신체에 응집 된 용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초월자다.

발할라가 염룡 트라우카에 의해 고립되기 전까지.

그는 무려 수백 년 동안 드워프들의 삶을 지킨 영웅이었다.

얼마 전.

트라우카가 둥지를 옮기고 발할라가 다시 세계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앙트리노는 영웅이라는 명함을 되찾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고룡이라는 천재지변이 물러난 이상, 앞으론 반드시 탈리마를 지켜 내리라고 샬롯 왕과 동족들 앞에서 다짐해보였다.

한데 쉴 틈도 없이 새로운 천재지변을 마주한 것이다.

제1위 대악마 바알.

숫자가 넷인 걸 보아 본체가 아닌 듯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가 고강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절대자들의 바람에 영원토록 휘둘려야하는 건가...”

앙트리노가 탄식했다.

드워프는 몹시 뛰어난 손재주를 타고나는 종족이다.

타고난 손재주를 극한까지 연마하려는 습성을 지녔다.

다른 존재들의 표적이 되기에 적합했다.

현재 템빨제국에서 활약 중인 케를 옹이 증명하듯, 국가는 단 한 명의 드워프만 거느려도 부국강병을 누릴 수 있다.

염룡 트라우카조차 드워프의 기술력을 탐내서 이곳에 레어를 세웠을 정도 아닌가.

드워프의 타고난 재주와 본능은 온갖 벌레들을 꼬이게 만드는 꿀 따위로 비유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앙트리노의 책임이 컸다.

종족에서 드문 전사.

그중 유일하게 초월의 격을 쌓아온 그에겐 종족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탈리마 전체를 통틀어서 오직 그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초월자도 천재지변 앞에선 무력한 법이다.

염룡 트라우카를 상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듯이, 그는 제1위 대악마 바알을 상대로도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다.

만약 바알이 진짜였다면.

싸울 의욕조차 생기지 않았을 터다.

‘내 운 좋게 이놈들을 해치운다고 해도... 결국 언젠간 진짜 바알에게 탈리마가 지배당하는 꼴을 보게 되고 말겠지.’

앙트리노는 그리드에게 의지한다는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했다.

탈리마는 불과 며칠 전까지 고립되어 있었으니까.

바깥소식에 어두웠다.

애초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해서 곧장 타인에게 의지할 생각을 품는다는 건 상식과 거리가 멀었다.

‘뭐... 고룡과 비교하면 그나마 싸울 만한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앙트리노가 자신을 중심으로 꽂힌 에고 아이템 수십 자루를 허공에 띄웠다.

만마전에 봉인해놓은 통제 불능의 에고 아이템들이 아닌 이상에야.

탈리마의 에고 아이템들은 대부분 드워프족 최강의 전사인 앙트리노를 존중하며 그의 뜻대로 움직였다.

적어도 이곳 탈리마에서 앙트리노는 검성과 동격의 이기어검을 구사하는 게 가능했다.

“어리석은 난쟁이가 저항을 꿈꾸는가.”

“추악한 생김새만큼이나 생각 또한 어리석구만. 멍청한 녀석.”

“제법 전사다운 걸.”

네 명의 바알은 말투가 미묘하게 달랐다. 같은 광경을 보고도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걸 보아 성격 자체가 다른 듯했다.

‘각자 다른 자아에서 파생한 분신인가.’

바알의 능력엔 끝이 없다...

예로부터 전해져온 이야기를 떠올린 앙트리노가 심호흡했다.

솥뚜껑 같은 손에 월부를 거머쥐며 주변에 띄운 에고 아이템들과 의식을 완전히 결합시켰다.

곧바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다.

네 명의 바알 모두 맨손으로 근접박투를 펼친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수의 무기 운용을 장기로 삼는 드워프족 최강의 전사가 상성 상 우위였다.

“쓸모없는 것들.”

진로를 막는 대형 도끼의 날을 디딤돌 삼은 바알이 쯧, 혀를 찼다. 다른 세 명의 바알을 숫제 아랫것 취급하는 태도. 자신이야말로 진짜 바알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쾅! 놈의 신형이 허공 높이 솟구쳤다.

“고작 난쟁이 한 놈에게 애를 먹어선 안 되지.”

지잉, 지잉, 지이이이잉...

하늘 위 바알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각종 무기를 이용해 간격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앙트리노를 원거리에서 손쉽게 요격할 의도였다.

덤으로 탈리마 전역을 초토화시킬 생각이기도 했다.

드워프들을 모조리 죽이고 놈들의 기술을 통째로 지옥에 옮겨놓을 작정이었다.

바알이 무려 4개의 분신을 탈리마에 파견한 이유다.

앙트리노가 유독 강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탈리마 전체가 목적이었다.

“지옥에서 다시 만나자.”

하늘 위 바알이 웃는다.

자신이 하루살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분수를 모르고 훗날을 기약한다.

곧바로 징벌이 떨어졌다.

“...!”

마법을 작동시키기 시작하던 마법진들이 순식간에 지워진다.

새빨간 화염의 기둥에 의해서다.

마치 지우개처럼.

직선으로 쏘아진 화염의 기둥은 경로 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퍼어어어어어엉!!

“큭...! 쿨럭, 쿨럭!!”

주변에 펼쳤던 마법진들이 소거됨과 거의 동시에 화염의 기둥에 휩쓸린 바알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넝마가 된 채다. 팔다리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염룡...”

“...트라우카!”

지상의 앙트리노와 바알들이 경악했다.

사색에 가까워진 얼굴로 하늘을 올려봤다.

방금 전 화염의 기둥.

필시 염룡의 브레스였으니까.

한데 하늘을 가득 채웠어야 할 염룡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염룡은 레어를 옮긴지 얼마 안 됐다.

굳이 다시 이곳에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바짝 긴장한 채 하늘 곳곳을 관찰하던 앙트리노가 한 발 늦게 깨달았다.

‘아니, 방금 그게 진짜 브레스였나?’

기운은 몹시 닮았지만 위력은 상당히 약하지 않았나?

과거에 목격했던 트라우카의 브레스를 떠올려본 앙트리노가 의문을 품은 순간.

번쩍!

하늘의 끝자락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초월의 격이 반응한다.

본능적으로 움직인 앙트리노가 다급히 자리에서 이탈했다.

마침 두 번째 포격이 지상에 떨어졌고,

꽈아아아아앙!!

또 하나의 바알이 넝마가 됐다.

첫 번째 당한 바알은 오만의 자아에서 태어난 파편이었고, 두 번째 당한 바알은 나태의 자아에서 태어난 파편이었다.

4개의 파편 중에서도 최약체였단 의미.

하지만 이렇게 쉽게 당해선 안 됐다.

앙트리노와 함께 자리를 이탈했던 2명의 바알이 ‘아수라의 일부’를 꺼내 곁에 세우며 확신했다.

“트라우카의 브레스가 맞다.”

다만 몹시 약해진 상태다.

어쩌면 수백수천 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쏜 브레스가 이곳까지 도달한 것일 수도 있다.

“드워프는 제 것이니 노리지 말라는 경고인가...?”

바알들의 해석이 앙트리노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만드는 그때.

“...”

어떤 기척이 가까워졌다.

트라우카로 착각했던 게 부끄러워질 정도로 미약한 기척.

궁성 지슈카의 것이었다.

“저건...?”

어느새 가까워진 여인의 모습을 확인한 앙트리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드래곤.

그것도 염룡 트라우카의 비늘과 뼈로 만든 대궁.

적발 여인이 손에 쥔 활은, 탈리마의 드워프들조차 여태껏 상상해본 적 없는 것을 재료로 삼아 만든 물건이었다.

상식의 개변을 강요하는 물건.

드래곤 웨폰이다.

저런 게 실재할 수 있다니,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걸 용케도 피했네? 같은 파편이라도 수준 차이가 심한가봐?”

곧 앙트리노의 곁으로 다가와 선 지슈카가 말했다.

죽어가는 2개의 파편과 멀쩡한 파편들을 비교하면서다.

활기찬 목소리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과장 된 연기에 불과하단 사실을, 바알의 파편들은 눈치 챘다.

‘2회에 그친 저격... 그것이 한계라는 거겠지.’

마치 브레스처럼 쏘아졌던 저격.

놀랍게도 드래곤 웨폰을 무장하고 나타난 당대의 궁성은, 기껏 확보했던 저격 포인트를 포기하고 스스로 가까이 다가왔다.

더 이상 저격을 할 수 없다는 의미.

실제로 그녀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재생 물약 등을 수단으로 써서 상처를 회복한 눈치였지만, 손과 옷에 묻어있는 혈액의 양을 감안했을 때 손이 완전히 폭발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인간의 몸으로 고룡의 브레스를 미약하게나마 구현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것이다.

“궁사의 간격치곤 너무 짧군. 칼이라도 휘두르겠다는 거냐.”

파편 중 하나가 느긋하게 말했다.

아수라의 어깨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놈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지슈카의 활에 담긴 염룡의 화기가 서서히 소멸해갔다.

앙트리노의 용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건... 뭐지?”

잠시 넋이 나가있던 앙트리노가 뒤늦게 이질감을 눈치 채고 경계했다.

거인의 어깨를 도려낸 것 같은 물체.

그것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때마다 몸에서 진이 빠져나갔다. 단전에서부터 끝없이 샘솟던 용력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저 무언가의 어깨가 무척 불길하고 위험한 물건이란 사실을 쉽사리 눈치 챌 수 있었다.

뒷걸음치는 앙트리노에게 지슈카가 말했다.

“유일신 그리드의 전언이에요.”

“...?”

“지금부터 탈리마는 템빨계의 비호를 받는다.”

지슈카의 선언과 동시에.

쿠구구구구구궁...

세상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늘을 가득 채우는 그림자 탓이었다.

짙게 물든 구름 너머로 거대한 물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니, 물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컸다.

저건 차라리 도시에 가깝다.

신들의 무덤.

움직이는 템빨계의 출현이었다.

“서둘러.”

거대한 것은, 단지 그 크기만으로 위압감을 선사하는 법이다.

위기감을 느낀 바알의 파편들이 다급히 움직였다. 탈리마의 확보는 포기하고 일단 눈앞의 지슈카와 앙트리노를 노렸다.

한 발 늦었다.

신들의 무덤은 진즉에 포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콰쾅!

쿠콰콰콰콰콰콰쾅!!

증식하는 탐욕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숫자를 늘린 템빨포.

수백 개의 포신에서 쏘아진 디스인티그레이트와 메테오가 바알의 파편들을 덮쳤다.

“소용 없...”

디스인티그레이트는 마력으로 구성 된 마법의 창이다.

아수라의 어깨와 가까워지는 순간 마력이 흩어지며 소멸해버렸다.

그 광경을 본 파편들이 미소를 짓다가 이내 굳었다.

메테오.

그것은 단순한 운석이었으니까.

아수라의 어깨가 지닌 권능이 적용되지 않는 물리력이란 말이다.

콰쾅! 쿠콰콰콰콰콰콰쾅!!

운석에 짓눌리고, 또 다시 짓눌린 끝에 곤죽이 된 파편들이 잿빛으로 산화했다.

여파가 컸다.

탈리마 전체가 흔들렸다.

성의 높은 첨탑들은 급기야 쓰러지기 시작했다.

레지스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돌로 만들어진 만마전의 문 역시 충격에 활짝 개방됐다.

탈리마의 수치처럼 더러운 성격을 지닌 까닭에 봉인 된 에고 아이템들이 도시 바깥으로 튀어나와 안 그래도 혼란에 휩싸인 드워프들에게 더 큰 위기감을 선사했다.

곳곳에서 희생자가 생기기 직전이었다.

‘일단 샬롯 왕부터 구출을...?’

당황하면서도 신속하게 판단하고 움직이던 앙트리노가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천상에나 존재하리라 믿었던 신들.

신들의 무덤에서 쏟아져 나온 템빨계의 인신들이 각종 권능으로 탈리마를 보호하고, 수복하는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지슈카가 빙그레 웃었다.

“말했잖아요. 오늘부터 이곳은 템빨계가 비호한다고.”

템빨계의 영역이 거듭 확장되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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