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715화 (1,714/1,794)

템빨 85권 - 4화

아스가르드.

““어쩌다가 그자와 대적하게 된 거지?””

그리드의 새로운 신검과 갑옷을 떠올리며 진저리치던 가브리엘이 눈살을 구겼다.

예비 육체로 다시 태어나 복귀한 메타트론의 질문이 불쾌했던 탓이다.

“정확히는 그리드 그자가 우리를 대적한 거죠. 감히 여신의 권위에 도전하듯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가브리엘 너 또한 이 관계에 일조했구나.””

“아무 것도 모르면서 헛소리 작작해요. 내가 그자를 만나기 전부터 그자는 아스가르드를 적대하고 있었습니다.”

본능에 매몰 된 인형 따위가 대체 뭘 안다고 내게 책임을 전가하는가.

평정심을 잃은 채 거듭 분노를 키우는 가브리엘에게 메타트론이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사도의 수준이 주인을 못 따라간다는 점이다. 브라함이라고 했나? 여신을 섬기는 주신들과 비교해서 손색이 너무 커. 다른 사도들은 보나마나겠지. 그리드 개인은 특별할지 몰라도 세력적인 측면에서 지상은 영원토록 아스가르드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다.””

“그야 당연하죠. 새삼스러운 말을 지껄일 필요 없어요.”

““자칫 너희가 그리드를 도발해서 몇 번의 위기를 겪을 순 있겠지만 말이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분해서 짓씹듯이 답하는 가브리엘이었다.

진심이 담겼다.

그녀는 매우 분했지만, 그리드와 두 번 다신 상종하지 않을 거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던 차다.

너무 고강했다.

리파엘의 권한을 무시하고 아스가르드에서도 온전한 실력을 발휘했다는 점부터가 굉장히 위협적이다.

‘그러고 보니 왜 감감무소식이지?’

열쇠의 도안을 찾았다는 보고를 진즉에 접했다.

일개 천사의 신분으론 이례적이게도 쥬다르의 관심을 끌고 대천사 후보로 지목 된 ‘무무드’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영원의 감옥을 찾아간 상태다.

곧 리파엘을 데리고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선지 소식이 없었다.

‘제라툴이 훼방을 놓을 거란 점을 감안해도 너무 늦어.’

제라툴이 온전한 상태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안 그래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리파엘과 사투를 벌였을 테니까.

지금쯤이면 리파엘에게 제압당했을 공산이 컸다.

‘혹시 리파엘이 괜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가?’

결국.

마냥 기다리기 힘들었던 가브리엘이 친히 몸을 일으켰다.

영원의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 주변의 분위기가 의외로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인가요?”

천사들 앞에서 감정의 동요를 보일 순 없는 법.

위신을 지키기 위해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짓고 묻던 가브리엘의 표정이 차차 굳었다. 미소를 유지한 모습 그대로 모든 근육이 경직 됐다.

무무드의 손에 들려있는 열쇠가 무색하게도 굳게 닫혀있는 자물쇠를 발견한 여파다.

‘마법?’

황당하게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쭉 천사들이 관리해온 자물쇠가 어떤 마법들에 의해 변형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구조의 마법들. 한 눈에 봐도 파훼하기 힘든 형태다.

‘...그 빌어먹을 자가.’

보기에만 좋은 브라함의 면상을 떠올린 가브리엘이 재차 평정을 잃고 얼굴을 구기는 순간.

““수준이 낮다고 보긴 힘들군.””

메타트론이 브라함의 평가를 바꿨다.

그리드가 사도들을 선발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긴 덕목은 무력뿐만이 아닌 것 같다고 덧붙이면서.

한편 자물쇠에 걸린 마법들을 분석 중인 무무드의 감정은 요동치고 있었다.

‘나의 마법과 닮았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나의 마법을 오랜 시간 연구하고 진화시킨 듯한 형태다.

어째선지 헤아리기 힘든 분노와 슬픔이 치솟았다.

“무무드 그대에게도 어려운 일인가요?”

대천사 우미엘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천사는 마법에 천적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그건 타고난 체질일 뿐, 마법을 잘 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무무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없던 마법적 재능을 타고난 대가로 천수를 잃은 존재.

대천사들이 알기로 무무드는 온 세상을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될 자격을 지녔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과연 무무드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감정의 동요를 내색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대답하는 그의 뇌리엔 한 가지 개념이 관통하고 있었다.

‘전생.’

자물쇠에 걸린 이 마법을 풀어낼수록.

또 다른 나를 알아가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

<심상세계>를 창조하라.

템빨단 전체에 내려온 공지였다.

“심상, 뭐?”

“그리드가 쓰는 금의 협곡 같은 걸 말하는 듯한데.”

“히든 퀘스트나 특정한 전직 없이 배울 수 있는 스킬이었나?”

“그러니까 이런 지령이 떨어졌겠지.”

“근데 왜 방법은 안 알려주는 거야?”

공지의 내용은 몹시 불친절했다.

단순히 심상세계를 창조하라고 지시할 뿐, 창조 방법에 대해선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템빨단원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자연스러운 것이란 말이다.

그나마 <의지> 스탯을 개방시킨 단원들은 맥락이라도 이해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무형지기의 레벨을 올리면 되나? 마스터하면 특수한 일이 발생한다거나.”

“그런 히든 피스가 있었으면 그리드가 진즉에 알려주지 않았을까.”

전설, 혹은 초월자의 위계에 오른 최상위 템빨단원들.

염룡 트라우카 탓에 바뀐 대륙에서 그리드의 역할을 대행 중인 그들의 면면은 무척 화려했다.

지슈카, 페이커, 크리스, 휴렌트, 지발, 반트너 등등.

홀로 지옥을 파수 서는 유라와 비교해도 명성에 손색이 적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그리드 앞에선 초보자에 가깝다.

심상세계를 여는 방법을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정확한 방법은 그리드도 몰랐으니까.

“...문의가 폭주 중인데요.”

그리드를 찾아온 라우엘이 토로했다.

단원들에게 심상세계를 창조하라고 공지한 건 라우엘이지만, 그에게 공지를 내리라고 지시한 장본인은 그리드였기에.

“대충이라도 힌트를 주실 순 없는 겁니까?”

“그냥 빡겜하다 보니까 되던데?”

“...”

라우엘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 따먹기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리드는 진지했다.

의지를 관철한 끝에 얻은 것이 심상이니까

실제로 며칠 전 칸은 ‘자신의 기술과 작품으로 그리드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심상세계를 만들었다.

“진짜야. 내가 생각했을 때 심상세계를 개방하는 조건은 정형화 된 게 아니라 사람마다 달라. 삶의 궤적... 그러니까 플레이 내역에 시스템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의지나 집념 따위가 존재하면 자연히 얻게 될 거다. 나라는 존재가 세계를 침범하는 감각으로.”

“그럼 다소 난해하군요. 동료들의 의지가 주군과 비교해서 하찮은 것은 아닐 텐데요.”

“나도 그게 참 이상하단 말이지...”

기본적으로 템빨단은 랭커로 구성 된 집단이다.

그것도 수십 억 플레이어 중에서 손꼽히는 랭커들.

왕년에 게임에 미친놈, 밥만 먹고 게임만 하는 놈이란 소리를 최소 수백 번은 들어봤을 위인들인 것이다.

하물며 Satisfy는 세계 경제의 기반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템빨단원 중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Satisfy를 마주하는 자는 없다.

전원 전심전력으로 Satisfy를 플레이해왔다.

그리드와 비교했을 때 남긴 업적이 비록 적다고 하나, 그건 행운이나 실력의 차이로 벌어진 결과이지 열정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한데 여태껏 그 누구도 심상세계를 얻지 못했다.

정확히는 시스템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사도들의 사정도 같아.’

브라함을 제외한 사도들에게도 심상세계가 없다.

어쩌면 지크에겐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일 뿐.

다만 지크는 아직 칠악성 스킬을 선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상태창에 물음표가 너무 많았다. 그 물음표들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기엔 지크를 존중하지 않는 느낌이라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해서 심상세계의 개방 조건이 까다로운 것 같지도 않고.’

브라함과 비반은 단순히 전설이던 시절부터 고유의 심상세계를 갖고 있었다.

‘의외로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그리드에겐 막연한 믿음이 있었지만 스스로 해답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엔 늘 그랬듯이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초조해 할 필요 없어. 다들 어련히 잘 해내겠지.”

그러면서 그리드는 오늘 막 새로 만든 <브라함의 지팡이>의 상세정보를 라우엘에게 공유해주었다.

“초조해야 할 건 당사자들이지.”

<브라함의 지팡이>

등급:유일

내구력:착용자의 정신력(마나 수치)과 비례.

마법 공격력:35,990~???

★지력 +2,000

★퍼펙트 메모리얼 최대 5개 가능.

★모든 마법의 위력과 효과 지속 시간 상승, 재사용 대기 시간 감소.

★공격 마법의 적중률 80퍼센트 상승.

★<이계:탐구의 방> 효과 상시 활성화.

유일신 그리드가 마법과 지혜의 신 브라함과 심상합일을 이룬 상태로 만든 지팡이입니다.

염룡 트라우카의 의념이 잔재하는 뼈와 비늘을 브라함의 마법으로 단련했습니다.

끝없는 지혜를 갈구하는 브라함의 의지를 대행하여 여태껏 없던 형태의 재앙을 보여줄 것입니다.

착용 조건:브라함, 그리드

무게:2,500~???

명료하다 못해 단순한 설명.

브라함의 지팡이는 역천과 달리 옵션이 적었다.

심상 효과를 상시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게 큰 이점인가 싶기도 했다.

탐구의 방의 설명을 확인하기 전까지의 감상이다.

<이계(二界):탐구의 방>

패시브

모든 ‘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개입합니다.

아군의 스킬과 마법을 높은 확률로 강화, 개조합니다.

적의 스킬과 마법을 높은 확률로 복제, 흡수, 반사합니다.

신성, 권능, 심상, 절대방어처럼 ‘기적’으로 분류되는 현상들을 낮은 확률로 차단합니다.

지공의 명백한 상위 호환.

브라함의 심상 중 하나인 탐구의 방은 차라리 메르세데스의 <혜안>과 닮았다.

신조차도 두려워한다는 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격이다.

그것이 심상에 그쳤을 땐 현실에 개입하는 힘이 약해 실용성이 낮았지만 이젠 아니다.

그리드의 도움을 받아 만든 지팡이 덕분에 앞으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의념 제작으로 만든 전용 무기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고유의 심상세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이 사실을 알고도 손발 놓고 있을 템빨단원은 내가 알기로 없어. 안 그래?”

의념 제작.

그것은 단순히 말해서 그리드의 전용 아이템을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브라함이 시스템 자체를 바꿔버렸다.

아니, 바꾼 게 아니라 증명했다.

그리드가 아닌 타인의 심상을 주체로 삼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그렇네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라우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천, 염룡의 갑옷, 브라함의 지팡이.

이걸 보고도 침착할 템빨단원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들 역시 같은 아이템을 갖고 싶어서 심상세계에 집착할 것이 분명했다.

당장 라우엘만 해도 초조해졌다.

이미 오래 전 전장에서 은퇴한 그에게 템빨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전용 무기를 갖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이고 말았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나의 심상이 적용 되어 나와 닮은, 오직 내게 최적화 된 아이템.

무소유를 외치는 스님 플레이어들조차 욕심내리라.

“저도 열심히 분석해보겠습니다.”

그리드와 다른 플레이어들의 차이가 뭘까.

어떤 차이가 심상세계의 유무를 결정 지었을까.

오늘부터 라우엘은 탐구할 것이다.

그리드가 미소 지었다.

“듬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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