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710화 (1,709/1,794)

템빨 84권 - 20화

“...!?”

“당했다.”

아득히 먼 과거에 만들어진 열쇠의 도안.

지나간 역사를 되짚으며 도안의 행방을 찾던 천사들의 얼굴이 불시에 굳었다.

리파엘의 기척을 느낀 까닭이다.

아스가르드 각지에 흩어진 천사가 모두 느꼈다.

천사들에게 있어서 대천사장의 존재감이란 그만큼 거대했다.

“신성을 해방하신 상태셨다. 위협을 받고 계신 게 분명해.”

“제라툴 신과 함께 갇힌 시점부터 그건 당연한 일이겠지... 중요한 것은 새로운 침입자의 정체인데... 설마 또 그리드인가?”

“그리드여도 문제고, 그리드가 아니라도 문제다. 감시망에 어떤 문제가 생긴 거지?”

천사들이 동요하는 가운데.

‘감히!’

날개를 활짝 펼친 대천사들은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시야를 가로막는 황금색의 구름을 몇 겹이나 꿰뚫으며 수직으로 하강했다. 전신에 신성을 두른 탓에 그야말로 빛살처럼 보였다.

‘여신께서 온전하지 않은 틈을 이용해서 연달아 잠입하다니, 이 비열한 자가!!’

천사들을 소집할 틈도 없이 침입자를 추적하는 대천사들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누가 봐도 천사가 아닌 악마의 형상.

그들의 분노가 극한에 치달았다.

당연하다.

성역을 연속해서 침범당한 것이다.

부끄럽게도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진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 채지도 못했다.

여신의 주기로 인해 감시망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드 그놈은 당최 무슨 수로 아스가르드에 잠입하는 걸까?

또한 어째서 리파엘의 ‘권한’은 놈을 제약하지 못했을까. 떠오르는 의문이 많았지만 매몰 될 여유가 없었다.

대천사들은 당장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머저리 같은 리파엘이 소실한 ‘날개’의 기척을 쫓았다.

도주 중인 침입자가 거머쥔 것으로 추정되는 그것은 통치, 지배를 상징한다.

지극히 일부에 불과할지언정 대천사장의 권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유출되어선 안 됐다.

하물며 타천사 사리엘을 거느리고 있는 그리드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간 최악의 사태를 가정해야 할 수도 있었다.

“쫓아! 서두르라고!!”

제2위 대천사 가브리엘의 커다란 눈이 거의 하얗게 뒤집혔다. 날개의 흔적을 실시간으로 뒤쫓는 삼백안에 극도의 살기가 담겼다.

“놈이 지상에 도착하기 전에 잡아야 해!!”

대천사들은 침입자의 정체를 눈치 채고 있었다.

브라함.

처음에야 당연히 그리드나 적야의 대도인 줄 알았지만, 희미한 마력의 흔적들이 침입자의 정체가 마법사란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감시망을 유린하는 은신 마법과 대천사와 추격전을 벌이는 게 가능한 초고속 비행 마법을 동시에 구사하는 존재가 브라함이 아니면 또 누구란 말인가.

“빨라. 기존에 존재하던 마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다.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겠는걸.”

제5위 대천사 라구엘이 나지막이 의견을 내놓자 가브리엘이 흥분해서 맞받아쳤다.

“그랬다간 끝이야!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고!”

“진정하고 마음에 여유를 가져. 상대는 마법사야. 거리를 좁히는 즉시 징벌할 수 있다고. 설령 지상에서라도 말이지.”

제4위 대천사 우미엘이 재차 의견을 피력했지만 가브리엘을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웃기지 마! 지상은 그리드의 영역이 된지 오래라고! 발을 들이는 순간 사악한 이교도들에게 둘러싸일 테고 우리는 기회를 얻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휙! 가브리엘의 고개가 거의 꺾이다시피 뒤로 돌아갔다.

가장 후위에 있는 제7위 대천사에게 염원이 담긴 시선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6장의 날개로 얼굴과 머리를, 28장의 날개론 제 몸을 꽁꽁 감싼 채 오직 2장의 날개로만 비행 중인 천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천사들을 어렵지 않게 뒤쫓고 있는 그에게 가브리엘이 소리쳤다.

“메타트론! 도와주십시오!!”

“가브리엘!”

우미엘과 라구엘이 사색이 됐지만 가브리엘은 멈추지 않았다.

“계약을 선행하겠습니다!”

““...계약의 담보를 말하라.””

“저의 날개를!”

““내겐 가치가 없다.””

“...침입자에게 빼앗긴 리파엘의 날개를 드리겠습니다!”

““좋다.””

날개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 메타트론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 듯했다.

촤아아아악!!

메타트론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날개 중 4장이 펼쳐졌다.

유독 거대한 날개들.

짙게 드리우는 그림자가 대천사들의 신성을 다소 퇴색시켰다.

“제정신이야? 저자에게 통치의 권한을 주겠다고?”

“그리드에게 빼앗기는 것보단 나아.”

“사리엘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활용하는 방법을 모를 텐데...!”

“태평하구나. 잔말 말고 날개의 회수에 집중해.”

콰아아아아아앙!!

티격태격하는 가브리엘과 우미엘의 전신을 충격파가 덮쳤다.

어느새 점이 되어 사라진 메타트론이 남긴 파동이다.

다른 절대자들과 비교해도 몹시 쾌속한 속도.

세 명의 대천사들은 사력을 다해도 거리를 좁히기 힘들었다.

점차로 침입자를 따라붙는 메타트론의 기척을 느끼며 안도하는 게 최선이었다.

‘됐어. 차원 이동이 가능한 지점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을 거야.’

그리드와 죄수들을 놓쳤던 그곳 말이다.

가브리엘은 생각했지만,

“...!”

메타트론이 브라함을 거의 다 따라잡기 직전에 브라함의 기척이 한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을 먼 거리에서 즉시 다시 나타난 것이 느껴졌다.

“텔레포트?”

침입자가 아스가르드의 깊은 내부에서 무슨 수로 이동 마법을?

아스가르드의 결계가 그 정도로 볼품없이 허물어진 상태는 아닐 터인데?

“자유롭게 쓸 수 있었으면 처음부터 썼을 거다. 무리한 게 분명해.”

라구엘의 분석은 정확했다.

침입자 브라함의 안색이 눈에 띄게 초췌해져 있었다.

‘뭐지, 저 괴물은?’

브라함의 강화 마법은 몇 번의 진화를 거듭해왔다.

탐욕에 디스인티그레이트와 메테오를 부여한 뒤에도 괜히 산속에 틀어박혀있던 게 아니란 말이다.

브라함의 플라이 마법은 특별했다. 최대 출력을 발휘할 경우엔 브라함 본인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초고속 비행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한데 순식간에 따라잡힌 것이다.

침입자의 마력을 억제하는 아스가르드의 환경에서 강제로 텔레포트를 전개했음에도 또 재차 따라잡히기 직전이었다.

수십 장의 날개로 제 몸을 구속하고 있는 기이하고 흉측한 천사에게.

저런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인류가 찬양해온 천사들은 대부분 아름답게 묘사됐었으니까.

““야탄의 먼 혈육인가.””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라함의 근원을 꼬집는 내용을 담은 음성이 브라함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베리아체라는 멋진 이름을 건너뛰고 야탄을 논할 필요가 있나?”

““베리아체... 모르겠군.””

“눈과 귀를 막고 있으니 천치가 될 만하다.”

가볍게 조소하는 브라함이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야탄이 지옥을 탄생시킨 직후에 낳은 자식의 이름을 모른다?

얼마나 먼 과거의 존재란 말인가?

‘태초에 근접하단 거겠지.’

물론 다른 대천사들 또한 태초에 근접한 시기에 탄생했다.

레베카가 최초로 빚은 피조물이 일곱 대천사였으니까.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등 뒤의 존재는 대천사가 맞는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하자를 지닌 게 분명했다.

그러므로 세월과 단절되어 베리아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거겠지.

‘너무 많은 날개... 구속... 나와 동류인가?’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 동족을 해쳤던 나처럼.

저놈 또한 어떤 본능에 매몰되어 다른 천사들의 날개를 빼앗고 끝내 죄수가 된 것은 아닐까?

괴물 같은 천사의 날개가 많은 이유, 그리고 세월과 단절 된 이유를 분석해보는 브라함의 의식은 여러 개로 분산되어 있었다.

메타트론을 따돌리기 위해 실시간으로 마법의 술식을 개조하는 한편으로 다른 대천사들이 변수로 작용할 수 없도록 함정 마법을 구름 곳곳에 설치했다.

마력의 압박이 약해지는 순간 즉시 전개할 수 있도록 차원 이동 마법까지 캐스팅을 끝내 놓았다.

착륙 지점을 되도록 인적이 드문 곳으로 설정하기 위해 좌표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고.

필사적인 것이다.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브라함은 죽음을 극복하므로 두렵지 않았다.

단순히 트롤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제1사도의 신분으로 그리드를 망신시킬 순 없지.’

이제 브라함은 확신한다.

자신이 그리드의 일곱 사도 중 최강이라는 사실을.

물론 다른 사도들의 잠재력이 워낙 막강해서 언제까지 이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아무튼 그리드의 얼굴에 먹칠을 해선 안 되는 입장인 것이다.

‘의식을 조금 더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브라함은 자신 때문에 전투를 포기하고 순순히 떠났던 트라우카에게서 커다란 영감을 얻었었다.

놈이 포기하고 등을 돌린 순간, 그전까진 눈치 채지 못했던 ‘기척’들이 세계 도처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였다.

그 기척은 다름 아닌 트라우카가 분산시켜놓은 의식들이었다.

그리드와 마리로즈, 그리고 결사들을 상대하는 한편으로 놈은 세계 전역을 감시하고 있었다. 혹시 또 모를 위협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태를 염두에 두고 경계했던 것이다.

비교적 오만했던 과거의 브라함이었다면 겁쟁이라고 비웃었을 광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브라함은 달랐다.

브라함은 트라우카의 신중함을 배우기로 했다.

트라우카처럼 의식을 수천수만 개로 분산시키진 못할지언정 가능한 많은 의식을 활용하도록 노력했다. ‘전능’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

...여전히 오만한 것이다.

““...?””

브라함을 바짝 뒤쫓던 메타트론이 멈칫했다.

이미 마나가 날뛰는 부작용을 겪기 시작한 침입자가 재차 텔레포트를 전개한다 싶더니 기척을 수십 개로 늘린 까닭이다.

지고한 경지에 오른 디코이의 활용이었다.

본체와 분신의 차이가 없다.

메타트론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얼굴과 머리를 감싼 8장의 날개를 살짝 벌리더니 그 틈새로 드러난 눈에서 광선을 쏘았다.

쏘아지는 즉시 시야의 끝자락까지 뻗어나가 부채꼴을 그리는 광선이다.

수십 개로 분산 됐던 브라함의 기척이 모조리 광선을 맞고 사라졌다.

단 하나, 본체의 기척만 남기고서.

‘괴물 놈이?’

이를 악 문 브라함이 서둘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목적지에 도착해 지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저 거대한 천사는 지상에서 싸워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괴물이긴 했지만... 아스가르드에서 싸우는 것보단 수천수만 배 유리했으니까.

““정녕 너의 희망인가?””

브라함을 재차 뒤쫓은 메타트론이 질문했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단 중얼거림에 가깝다. 지상으로 탈출하길 집착하는 브라함의 태도에 약간의 흥미를 느낀 듯했다.

““지상에 무엇이 있다고?””

베리아체를 모르므로 당연히 그리드도 모른다.

본래 리파엘과 함께 천사들을 이끌던 지도자였으나 7위로 추락하고 힘을 봉인당한 과거의 죄수는, 브라함의 발악을 몹시 하찮게 여겼다.

방심했단 이야기는 아니다.

계약에 걸린 것이 통치의 날개일지언정 파편에 그치는 이상.

메타트론이 온전히 펼칠 수 있는 날개는 단 4장에 불과했고, 고작 그 정도로 따라잡기엔 침입자의 수준이 몹시 고강했다. 야탄의 피를 보기보다 짙게 이은 듯했다.

“와서 확인해라.”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한 브라함이 차원 이동 마법을 발동시켰고,

““좋다.””

메타트론이 뒤쫓았다.

지상의 대해 위에 강림한 둘은 즉시 뒤얽혔다.

마력을 억제하는 아스가르드에서 고차원의 마법을 연속적으로 전개한 여파로 온전치 못했던 브라함은 템빨계의 버프를 등에 업고도 불완전했고, 메타트론은 삼위일체의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죄수인 탓에 템빨계의 디버프를 잠시 무시했다.

“크아아아악!!”

광선에 심장을 꿰뚫린 브라함이 드문 비명을 토했다.

메타트론은 그의 목숨엔 큰 관심이 없었다.

““강대한 신의 기척... 첫 번째 세계와 크게 다르긴 하군...””

지상의 변화를 흥미롭게 관찰하는 한편으로 브라함의 오른쪽 손을 뽑아버릴 뿐이다.

리파엘의 날개를 쥐고 있는 손이었다.

““그리운 힘이군.””

뜻을 이룬 메타트론의 시선이 상공으로 향했다.

그와 달리 삼위일체를 이룬 세 명의 대천사가 황금 구름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내려주고 있었다.

“돌아가죠.”

가브리엘은 초조함을 버린 상태였다.

이곳이 지상임에도 불구하고 몹시 차분했다.

설령 그리드가 나타날지언정 메타트론이 있었으니까.

계약을 대가로 메타트론의 힘을 개방시킨 지금.

그녀가 두려워할 건 최소 고룡의 위계였다. 그 이하의 힘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여 굳었다.

염룡 트라우카의 기척이 문득 다가왔을 때는.

“...뭐?”

다가온 기척을 향해 고개를 돌린 가브리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일신 그리드.

다름 아닌 그가 트라우카의 기운을 품고 있었으니까.

“너희들 여기서 뭐하는 거냐.”

사늘하게 묻는 그리드의 손에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화염이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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