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646화 (81권 끝) (1,644/1,794)

템빨 81권 - 22화

““너무 오랫동안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무후총에서도 상황을 의심하고 있을 텐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군.””

무덤이란 시간이 멈춰있게 마련이다. 죽은 자들이 묻힌 장소이기에.

무후총은 예외였다. 거대한 조직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수천의 토병과 수만의 언데드가 무덤의 안과 밖을 오가며 인신을 사냥했다.

장장 수백 년 동안 말이다.

한데 최근.

대략 반년 이상 무후총은 기능을 멈췄다.

인신 포획을 위해 무덤 바깥으로 나온 사냥꾼들은 오랫동안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들을 지원해야 할 무덤 내부의 본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저쪽이다!”

““빌어먹을 인간 놈들이 벌써...””

며칠 전.

물의 신 달비다를 거의 다 잡아놓고 놓친 사냥꾼들의 상태는 온전하지 못했다.

두개골을 비롯한 골격 곳곳이 훼손되어 있었다.

그리드의 사도 미르가 갑자기 난입해서 날뛴 까닭이다.

놈에게 최후의 병력마저 잃은 ‘긴 검’과 ‘큰 지팡이’는 간신히 퇴각했고 지금은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저벅.

깊은 던전에 노을이 드리운다.

주황색 신성을 두른 사내의 출현 여파였다.

사내의 정체는 데미안.

수개월 전 교황의 지위에 오르고 사실상 종교대통합을 이룬 거물이었다.

긴 검이 기껏 점령했던 야탄교를 탈환 당한 것도 순전히 데미안 탓이었는데, 그리드교 교인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데미안의 전력은 가히 인외의 경지로 막강했다.

“하이요, 해골 센세들.”

““...””

긴 검과 큰 지팡이는 엘리트 데스나이트와 엘리트 리치다.

정예 중의 정예라는 의미.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가능한 최상급 개체였고 이는 상당한 강점이었다.

적에게 공포를 심고 의욕을 꺾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도리어 약점으로 작용했다.

존재감에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데미안의 언행이 그들의 표정을 썩게 만든 탓이다. 적에게 동요를 표출하고 말았다.

데미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겁에 질렸군.”

““뭐?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을 뿐이다!””

목소리를 깔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데미안에게 큰 지팡이가 버럭 성을 냈다.

생전에 대마도사였으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언데드가 된 존재.

리치란 자신의 학구열을 충족하기 위해 인간성마저 버린 비상식적인 존재들이다.

자존심이 무척 높은 탓에 의외로 흥분도 잘했다.

즉시 데미안에게 달려드는 놈의 목덜미를 긴 검이 붙잡아 당겼다.

콰작!!

간발의 차로 창이 떨어졌다.

긴 검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큰 지팡이의 두개골을 박살냈을 창.

<그리드의 창>이었다.

“아깝네요.”

데미안의 심복 중 창술을 장기로 삼는 여인은 몇 없다.

그중에서도 그리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창을 무기로 다루는 여인은 단 한 명.

““이사벨...””

“저를 아나요?”

““주인을 배신한 개의 이름은 본래 유명해지는 법이지. 똑똑히 기억해놔야 뒤통수 맞을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겠나.””

“감히 이사벨 쨩을 나쁘게 말해?”

부인이 모욕당했다.

분노해서 도끼눈 뜨는 데미안의 등 뒤로 우르르, 병력이 끝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성전 전까지 템빨신교라 불렸던 그리드교 소속의 교인들이었다.

전원 그리드의 검무를 사용한다고 알려진 인계의 괴물들이다.

하지만 긴 검은 동요하지 않았다.

““숫적 우위를 내세우기엔 이곳이 몹시 좁지 않나.””

““애초에 이곳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건 우리다.””

어느새 냉정을 되찾은 큰 지팡이가 긴 검에게 호응했다.

좁은 입구를 막고 선 긴 검이 교인들의 진격을 막는 사이 던전 곳곳에 설치해뒀던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모조리 죽어라!””

꽈르르릉...!

던전이 무너졌다.

잔해에 묻힌 교인들이 벽이 되어 데미안과 이사벨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놓쳐버렸네.”

“도망치는 실력이 일품이네요.”

“그러게.”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데미안의 얼굴에 아쉬움은 없었다.

적들이 퇴로를 마련했을 거란 사실쯤이야 처음부터 짐작했으니까.

“다시 잡으면 그만이지, 뭐.”

데미안은 교황이다. 그리드교를 이끄는 동시에 신을 잃고 배회하는 삼신교와 야탄교를 지탱하기도 했다.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무지막지하게 많다는 뜻으로 그 단위가 최소 ‘억’이었다.

[교황 ‘데미안’이 모든 교단에게 퀘스트를 내립니다.]

[도망친 무후총의 잔당들을 추적하십시오!]

천라지망이 펼쳐졌다.

던전이 자리 잡고 있는 숲 전역과 그 너머까지 그리드교 교인들과 삼신교인들, 그리고 야탄교인들이 몰려들었다.

***

““외부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무후총의 언데드들은 최소 수백 년을 존재해왔고 앞으로 영원히 존재할 예정이었다.

그들에게 시간이란 몹시 희미한 개념인 것이다.

인신 사냥을 떠난 사냥꾼들과 몇 달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정도다.

하지만 슬슬 의심이 싹텄다.

망령께서 갈증을 느끼시는 눈치였기에 시간의 흐름을 자각했다.

““크고 영롱한 지팡이를 내보내라.””

무후총의 리치들을 총괄하는 ‘망령이 애용하는 지팡이’, 일명 망령의 지팡이가 명했다.

연락이 끊긴 사냥꾼들을 지원하고 사태를 파악할 의도였다.

““이 몸이 나서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거지? 후훗, 좋아. 오래간만에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다니 기대되네.””

크고 영롱한 지팡이가 해골답지 않은 요염한 발걸음으로 무후총을 떠났다.

그녀를 따르는 리치의 숫자만 무려 20기.

어지간한 왕국쯤 하루 안에 멸망시킬 전력이었다.

한데...

““크고 영롱한 지팡이와도 연락이 끊겼다고? 어쩔 수 없지... 크고 굽은 지팡이를 내보내라.””

““크고 굽은 지팡이도 감감무소식입니다...””

““...””

몇 번이나 새로운 원군을 파견해도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위대한 망령의 종들이 무후총을 떠나자마자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그리드라는 분께서 인신 출신으로 유일신에 등극했다지? 필시 그분과 관련이 있을 거다.””

결국 데스나이트를 총괄하는 ‘망령이 애용하는 검’까지 나섰다.

““그분께서 인신들을 보호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리드... 가짜 무신을 패퇴시켰다는 놈 말이지...””

““놈이라니? 호칭에 주의해라.””

““이런... 내가 위대하신 분께 감히 결례를...””

세상의 모든 신은 망령을 위해서 존재한다.

언젠가 망령께서 포식하실 대상이기에.

위대한 신은 위대하다고 인정해야 망령의 업적 또한 덩달아 위대해지는 것이다.

““내가 다녀오마.””

끝내 망령이 애용하는 검, 일명 망령의 검이 직접 나섰다.

유일신 그리드.

비록 가짜 무신을 없애고 확장시킨 신격이라고 할지언정 몹시 강력할 터였다.

무후총의 간부 중 하나인 자신쯤 돼야 그의 동향을 관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잠시 후.

““...?””

소수의 정예 병력을 이끌고 출진한 망령의 검이 짐짓 당황했다.

무후총을 나서자마자 인간들을 마주한 까닭이다.

“이번 놈은 등급이 더 높아 보이는데?”

“그러게. 여기 진짜 명당이야.”

네 명의 인간.

놈들 주변에 백골이 널려있었다.

앞서 실종 됐던 지원군들의 흔적이다.

““무능한 놈들... 위대하신 유일신 그리드 님께 당한 게 아니라 한낱 인간들에게 사냥 당해왔단 말인가.””

무후총의 사냥감은 늘 신이었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발목이 붙잡힌다는 건 상상도 못해본 치욕이었다.

““죽여라...””

망령의 검이 명령했다.

자신은 검을 뽑지도 않은 채 제자리에 서서 부하들을 통솔했다.

무려 10기의 엘리트 데스나이트.

고작 4명의 인간이 감당할 전력이 아니었...

““...!””

꽈르르르릉!!

망령의 검의 보랏빛 안광이 다소 크게 부풀었다.

불쑥 나타난 백색의 거인이 데스나이트들을 처참하게 짓밟는 모습을 보면서다.

““마장기...? 게다가 운전 솜씨가 보통이 아니군.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츠캉!

망령의 검이 무기를 뽑아 쥐고 내달렸다. 정확히 지발을 노렸다.

가장 큰 위협으로 판단한 것이다.

“어, 어라?”

지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레이더스의 공세를 가뿐하게 회피하며 접근해오는 망령의 검이 엄청나게 쾌속했기 때문이다.

무후총 입구에 자리 잡은 뒤로 반년.

여태껏 수많은 데스나이트와 싸워온 지발이 봤을 때 망령의 검은 차원이 다른 상대였다.

서걱!

뚜렷한 검광이 새겨진 뒤에야 파공음이 울린다.

레이더스의 창이 애꿎은 허공을 꿰뚫을 때 지발은 가슴에 큰 검상을 입고 있었다.

““죽어라...””

높이 도약해서 지발을 베어냄과 동시에 선회한 망령의 검이 선고했다.

놈의 검이 정확히 지발의 심장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지발을 죽이는 건 설사 드래곤이라도 힘든 일이었다.

칠악성의 힘, 강운.

지발에겐 Satisfy 최강의 도주기가 있었기에.

““이 힘은?””

지발의 정체를 눈치 챈 망령의 검이 좌측으로 손을 뻗었다. 즉시 넓게 펼쳐진 보라색 오라가 크리스의 기습을 막아냈다.

“이거 진짜 초월자네?”

크리스가 혀를 내둘렀고,

“심지어 급이 높아. 일단 후퇴하고 정비하는 편이 낫겠다.”

휴렌트가 판단했다.

전설이 된 오러를 채찍처럼 휘둘러 망령의 검의 손발을 묶었다.

이미 하스터가 붉은 현자의 마법을 가동하고 있었다.

파티원에게 실드를 덧씌우는 한편 기억 된 장소로 귀환시키는 마법이었다.

[고도의 마법이 당신의 마법에 개입합니다.]

[마법의 캐스팅이 취소되었습니다.]

“...!”

““어딜 도망치려고.””

새로 나타난 적이 크리스 일행의 얼굴을 핼쑥해지게 만들었다.

물론 하스터는 마법사가 아니다.

하지만 명색이 전설인데 하스터의 마법 캐스팅을 강제로 취소시킨 망령의 지팡이는 필시 망령의 검과 동급의 강자였다.

““이놈들이 그간 우리를 애먹게 만든 쥐새끼란 말이지.””

““힘을 조절해라. 생포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고작 인간 따위를 포획해서 뭐하자고?””

““전설들이다. 마장기와 칠악성의 힘을 다루는 자까지 섞여있다.””

““허...? 대단하신 분들이셨군.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오. 정중히 모시겠소이다.””

“...”

[타임 어택 퀘스트 <탈출>이 발생합니다!]

[제한 시간 내에 도망치세요! 적에게 포획당할 경우 엄청난 페널티를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발! 강운을 써라!”

“방금 써서 쿨타임이...”

“쟤네 미친놈들 같은데 이거 진짜 난리났구만.”

크리스 일행이 호들갑을 떠는 그때.

““...?””

망령의 검과 지팡이가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 챘다.

슬그머니 하늘을 올려봤다.

초월자의 감각으로 읽은 것이다.

저 높은 하늘 위.

구름 너머에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음을.

쿠구구구구구궁...

대지 위로 흐릿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거대한 무언가가 구름을 꿰뚫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급격히 짙어지는 그림자였다.

““저게 무슨...?””

불가해의 영역.

너무 커서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연신 불똥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니, 불똥이라기엔 너무 크다.

점차 커진다...

“XX! 튀어!”

기겁한 크리스 일행이 산개했다.

메테오의 단점 중 하나.

피아식별이 힘들다는 점이다.

“앗...”

템빨포병대 대장 정의상실이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신음했다.

(81권 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