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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643화 (1,641/1,794)

템빨 81권 - 19화

관을 형상화한 무대.

무신 제라툴의 신화가 묻힌 그 거대한 무덤이 점차 검게 덧칠되고 서서히 상공으로 떠오를 무렵.

템빨단에서 6명의 전설이 추가로 탄생했다.

영광의 주인공은 후로이와 폰, 라엘라와 반트너, 하스터와 포식이불족발이다.

그들 모두 스스로 쌓아올린 업적을 토대로 전설이 됐다.

후로이의 말에는 더 큰 힘이 실렸고 폰의 창은 완벽한 점을 이뤘다. 두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와 창은 회피, 방어, 반격이 어렵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물론 지금은 후로이가 한 수 위다. 전설 이전에 초월의 격마저 쌓아올렸으니.

라엘라는 템빨이라는 이름이 걸린 주요 시설의 주인다운 위용을 갖췄다. 자신만의 마법식을 창조할 자격을 얻고 템빨국에 ‘마법 명문’이라는 명성을 추가시켰다.

반트너의 민머리는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적들을 손쉽게 장님으로 만드는 한편 템빨계의 노을빛 신성을 반사시켜 한층 더 널리 퍼뜨렸다.

반트너는 인정하지 못했지만 존재만으로 이로운 사람이 된 셈이다.

하스터는 붉은 현자의 지식과 용장의 힘을 우연히 결합시키기 시작한 시점부터 급격히 성장했다.

애초에 성장 환경 자체가 너무 좋았다.

크리스, 지발, 휴렌트라는 최고의 실력자들과 함께 무후총에서 활동하다보니 많은 부분에서 배움을 얻었다. 그전까지 그리드가 특훈을 시켜주기도 했고 말이다.

포식이불족발은 본래부터 많은 업적을 쌓고 있었다.

그가 만든 던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방면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중이었으니까.

포식이불족발의 지난 활약들을 고려하면 진즉 전설이 됐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던전 마스터의 성장 한도치는 유니크 등급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계를 깨고 전설이 된 점에 대해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전설과 초월이 공존하고 노말 클래스가 전설이 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서 특정 클래스의 잠재력을 놓고 트집을 잡는 건 스스로가 흐름에 뒤처지는 인물임을 증명하는 꼴밖에 안 됐다.

공교롭게도 희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레가스가 전직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5차 직업군을 개방하기는커녕 3차 직업군 아수라로 회귀해버린 탓이다.

아수라라는 클래스에 잠식당한 느낌.

지옥에 있는 아수라의 존재를 한층 더 의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한편 지옥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유리 성을 거점으로 삼은 데빌 슬레이어는 대악마들을 상대로 연전연승 중이다. 지옥에서 바알의 영향력을 야금야금 약화시켰다.

오죽하면 바알이 직접 나서게 만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크리스탈 성의 특성을 살린 유라는 바알의 추적을 연속해서 회피했고 바알은 드물게 분노했다.

그리드가 유일신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동요하는 눈치였는데 유라에게 엄청난 이점으로 작용했다.

지옥의 절대자가 데빌 슬레이어를 의식하는 행동들 자체가 그녀의 격을 조금씩 상승시켰기에.

한편 전대의 검성을 만나러 떠난 당대의 검성은 벌써 몇 개의 차원의 틈새를 박살냈다.

치열한 전투가 연속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후폭풍이 거셌다.

흩어진 차원의 파편이 세상에 여태껏 없던 괴물들을 탄생시켰다.

그 탓에 사도들이 바빠졌는데 의외로 지슈카가 사도들 못지않게 활약했다.

그녀가 쏜 파마의 화살이 상공을 지배하며 괴물들을 손쉽게 정화시키는 광경은 가히 압권이었다.

“아그너스!!”

본래 인류의 대적이 되어야만 했던 사내는 악(惡)을 대체하던 독기를 상실한지 오래였다.

속세와 동떨어진 탑의 결사를 기연으로 얻고 새로운 힘을 깨우쳤으나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죽어...! 이 쓰레기 새끼! 죽어!!”

한때 무력하여 자신에게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작금에 이르러서 휘두르는 전설의 힘에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감수했다.

그래, 전설의 힘이다.

템빨단 소속이 아닌 플레이어 중에서도 극히 드물게 전설이 탄생했다.

스스로의 업적으로 이룬 전설이 아니라 전직서를 사용해 계승한 전설이긴 했지만, 그건 그들이 이룬 성과를 폄하할 근거가 되지 못했다.

세상은 또 한 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늘 그랬듯 그리드가 흐름을 앞당겼다.

그가 유일신이 되면서 템빨계와 템빨계의 신들이 강해졌고 그로 인해 지상이라는 ‘차원의 격’이 덩달아 상승한 여파다.

“그쯤 했으면 이제 꺼져라.”

폐허가 된 저택.

불쑥 난입한 침입자들에게 잠자코 얻어맞던 아그너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생명력이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그를 둘러싼 랭커들이 콧방귀 뀌었다.

“쫄아서 아무 것도 못하던 놈이 갑자기 분위기 잡아 봤자다. 이 퇴물 새끼야.”

“죽기는 싫은가 보지? 구질구질한 놈... 어억!”

랭커들이 사방팔방으로 나가떨어졌다.

아그너스의 몸에 꽂아놓고 있던 무기를 손에서 놓치면서다.

절그럭, 끼기긱!

아그너스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늑골 사이사이에 꽂혀있는 검과 창들이 서로 충돌했다.

소름끼치는 광경.

잠시 위축 된 랭커들에게 아그너스가 이죽거렸다.

“분풀이 좀 하게 해줬다고 선을 넘으면 안 되지.”

굴레는 스스로 벗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그너스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증오와 분노를 묵묵히 감수했다.

과거의 내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

나로 인해 소중한 존재를 잃었을 그들의 원한 깃든 보복에 저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의까지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죽음을 겪고 힘을 잃기엔 그의 목표가 너무 컸다.

제1위 대악마 바알.

아그너스는 놈에게 한 방 크게 먹여줄 작정이다.

무한한 목숨을 믿고 설치는 놈의 면상이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반드시 보고 말 것이었다.

“저 염치도 없는 새끼가...!”

“쫄지 마! 저놈은 이미 개피다!”

빠르게 냉정을 되찾은 랭커들이 사기를 북돋았다.

그들의 중심엔 전설을 이룬 플레이어가 있었다.

아그너스의 생명력이 바닥까지 떨어졌음을 재차 확인한 그들이 예비 무기를 꺼내 협공을 개시했다.

잠시 후.

“크윽...! 두, 두고 보자!!”

“다음엔 반드시 복수하겠다!!”

영혼까지 털린 랭커들이 한 마디씩을 남겨놓고 줄행랑 쳤다.

아그너스가 조금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저런 대사를 남기는 건가...?”

영화 속 삼류악당의 대사는 사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창조 된 거였나...

‘...아무튼 나중에 꼭 다시 찾아와라.’

언젠간 순순히 죗값을 치를 테니까.

다만 지금은 안 된다.

‘상대가 너라고 해도.’

아그너스의 시선이 발밑으로 향했다.

그림자에서 사람의 머리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그너스 네겐 부동심이 없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존재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풍문에 따르면 ‘특정 대상에 한해서 높은 공격력을 발휘하는 무기’를 그리드에게 얻고 <살생부>의 효율을 수십 배 이상 이끌어내기 시작했다는 살신 페이커의 출현이었다.

“언젠가 보았을 땐 살인귀였고, 언젠가 보았을 땐 자포자기에 빠진 폐인이더니.”

페이커는 주기적으로 아그너스를 감시해왔다.

그리고 오늘, 마침 찾아와서 랭커들을 박살내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했다.

아그너스가 죽음을 거부하는 모습을 봤단 말이다.

“이제는 또 어떤 열정을 품었군.”

냐앙!

구석에서 튀어나온 작은 멤피스가 털을 곤두세웠다.

지옥에 남지 않고 굳이 아그너스를 따라온 녀석이었다.

“꺼져!”

깜짝 놀란 아그너스가 황급히 외쳤다.

하지만 멤피스는 말을 듣지 않고 페이커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싸울 기세였다.

상대가 강한 걸 알기에 굳이 나서는 것이다. 은인을 돕기 위해 제 목숨을 바칠 작정으로.

“큭...!”

아그너스가 멤피스를 펫으로 삼지 않은 걸 후회했다.

우리 안에 갇힌 채 고통 받던 녀석을 재차 속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이 순간 강제할 권한이 없다는 사실이 한이 됐다.

“...그리드와 베티 공의 배려로 얻은 기회를 활용하려는 거겠지. 올바른 태도다.”

아그너스와 멤피스를 무표정하게 응시하던 페이커가 감상을 읊었다.

그걸로 끝이다.

어느새 그는 사라져 있었다.

‘귀신같은 놈.’

한숨 돌린 아그너스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살생부에 적혀 처참한 죽음을 몇 번이나 당했던 그다.

내색하지 않을 뿐, 이젠 솔직히 페이커의 눈빛만 봐도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냐앙.

멤피스가 다가와 뺨을 부빈다.

말 한 번 더럽게 안 듣는 녀석.

도대체 왜 베티도, 노에도 아닌 나를 쫓아와서는...

눈살을 구긴 아그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나아가기 위해선 쉴 틈이 없었기에.

“물건도 챙겼으니 다시 떠날 거다. 한가하면 따라오던가.”

냐앙!

***

템빨계는 실시간으로 거대해지는 중이다.

라인하르트 전역이 템빨계 판정을 받았고 적해 너머의 동대륙도 절반 이상 템빨계에 편입 된 상태였다.

“오오오...!”

템빨성.

따스한 신성에 감싸인 그곳에서 사람들의 감탄이 빗발쳤다.

비행정을 온전히 시야에 담기 위해선 템빨성의 높은 고도에서도 고개를 크게 젖혀야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까닭이다.

어제보다 오늘 더 높이 떠오른 비행정은 내일 더 높은 곳에 위치하리라.

사람들은 생각하며 흐뭇해했지만 정작 라드볼프 형제의 표정은 어두웠다.

“출력이 부족하다.”

오직 그리드만 ‘템빨함’이라고 지칭하는 비행정.

사람들 사이에선 제라툴의 관, 혹은 무신의 관이라고 불리는 그 거대한 비행정 위에서 라드볼프가 탄식했다.

그리드가 지원해준 탐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했건만 비행정의 상태가 기대 이하였다. 현재 출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 고도는 고작 150미터.

그마저도 온갖 병기를 싣기 전이다.

요새처럼 성벽을 두르고 필요한 시설들을 설치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비행정의 무게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터였다. 고도가 훨씬 더 낮아질 거란 의미다.

몇 달 동안 탑을 비운 대가치곤 성과가 적었다. 실패에 가깝다.

“사령부의 시야와 안전을 온전히 확보하기 위해선 중앙에 그야말로 성을 세워야 할 텐데... 이 상태론 턱도 없겠군요...”

케를 옹이 조심스럽게 동조하는 순간이었다.

“하야테 공을 섬기는 자들치고 식견이 다소 얕은 듯한데.”

프론잘츠와 라드볼프 형제 사이로 은발의 사내가 내려앉았다.

마법으로 공간을 격했건만 반향이 없었다. 일대가 고요했고 사내가 걸친 망토는 미동조차 안 했다.

마법과 지혜의 신.

템빨계에서 2번째 위계에 있는 존재의 마법은 기척을 드러내지 않는 경지에 놓인 것이다.

흠칫 놀란 라드볼프 형제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과거 함께 지옥을 방문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

브라함의 태도 또한 바뀌어 있었다.

“탐욕은 그리드의 일부요. 그리드가 서사시를 쓸 때마다 성장을 거듭한다 싶더니 유일신이 된 이후론 기능이 대폭 강화 됐음이 증거지.”

자신 역시 목례하며 주제를 이끈다.

목례.

그조차도 브라함에겐 최대의 겸양이었다.

신이 되고나서야 비로소 결사들의 희생을 한층 더 실감하고 그들을 전보다 존중하는 것이다.

“고려하고 있습니다. 탐욕의 성장이 궁극에 도달했다는 점을요.”

그리드는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는 존재다. 완벽했다.

탐욕 또한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비행정의 출력을 증가시킬 방법은 이제 단 하나뿐이다.

그리드가 남겨놓은 탐욕이 증식하길 기다리는 것.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거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이미 라드볼프 형제는 가장 필요한 위치에 탐욕의 설치를 완료한 상태다.

여기서 더 이상 탐욕을 설치해봤자 큰 효율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탐욕이 늘어날수록 비행정의 질량이 늘어날 거라는 점도 고려해야했고.

“뭔가 곡해한 듯한데, 탐욕의 성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음.”

확실히, 탐욕의 성장이 끝났다면 브라함이 새삼스레 탐욕의 잠재력을 논하진 않았으리라.

브라함은 그리드가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눈치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어찌 감히 우리가 유일신의 한계를 재단하겠나.

라드볼프 형제는 반성하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드에게 앞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남았다고 해도 그 또한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었으니까.

결국 이 비행정은 먼 훗날에나 가동하게 될 것...

“...!”

안 그래도 황소의 눈처럼 커다란 라드볼프 형제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마침 브라함이 꺼내든 수정구를 보면서다.

수정구 속에서 빛이 명멸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발생하는 폭발은 순전히 마법적인 현상이었다.

‘심상세계를 구체화시켜서 외부로 반출했다고?’

수정구의 정체를 눈치 채고 경악하던 라드볼프 형제의 사고가 이내 경직됐다.

구슬 속에서 반복되는 폭발이 무엇을 자극하고 있는지 알아 챈 까닭이다.

작은 티끌.

자극 받을 때마다 새카맣게 일렁이며 어렴풋한 황금빛을 토하는 그것은 필시 탐욕의 파편이었다.

“마법 단조...!”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라드볼프 형제가 경악성을 터뜨림과 동시에.

번쩍!

비행정 곳곳에 설치 된 탐욕이 일제히 백열하며 강력한 마력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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