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81권 - 1화
“유일신께서 그를 섬기는 신들과 함께 강림하실지니!”
“한낱 인간이었던 템빨신에게 현혹 된 우민들이여! 무의 근원이자 정점의 무위를 목도하고 개안하라!”
“무신 제라툴께서 너희들을 다시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리라!”
무신의 추종자는 Satisfy를 대표하는 몬스터 중 하나다.
보통 더러운 오물 취급하며 피했다.
무신의 비급에 현혹되어 이성을 상실한 저 광신도들은 몹시 난폭하며 고통과 공포를 몰랐기 때문이다.
종족이 인간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괴수보다 본능적이었다.
습득한 비급의 개수에 따라서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기도 했다.
드롭하는 아이템이 보스 몬스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값졌지만 가능한 피하는 게 상책인 것이다.
그런 지긋지긋한 놈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대륙 각지에서 수십 명으로 시작했던 무리가 어느 시점부터 수천수만 명으로 불어났다.
존재 자체로 위협이었다. 막말로 움직이는 재앙이었다.
무신의 추종자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본능이 바로 호승심인 탓이다.
대상이 짐승이든, 인간이든, 괴수건 가리지 않고 눈만 마주치면 싸우려고 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놈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광경을 어느 누가 맘 편히 지켜볼 수 있을까?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바빴다.
추종자들의 신체 능력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렬을 목격한 시점부터 이미 죽음을 직감하기도 했다.
한데 의외로 살육은 없었다.
추종자들이 드물게 본능을 억눌렀다.
아니, 그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여태껏 보아온 무신의 추종자들과 달리 체구도 좋지 못했다.
기존의 추종자들은 ‘선택 받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신체 조건부터가 우월했던 반면 행렬을 이룬 추종자들의 신체 조건은 평범하거나 그 이하였다.
급조 됐다는 증거다.
본래 선택 받은 인간 앞에 나타나 그들을 현혹했던 무의 편린이 이번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고 현혹했다.
순전히 선전에 써먹기 위해서다.
제라툴은 자신의 성전을 광고하기 위해 수천수만 명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다.
인마대전에서 증명 됐듯이 천상의 신들은 정녕 인간을 위하지 않는 것이다.
템빨신교의 지속적인 주장은 매번 진실로 판명됐다.
“아버지!!”
동공이 풀린 채 똑같은 외침을 반복하는 추종자들.
“어머니...!”
급기야 피를 토하면서도 여전히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치는 그들 중에는 누군가의 가족이,
“레놀드!”
“아란!”
연인이, 친구가 있었다.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소중한 이들의 이름을 애타게 외쳐보지만 닿지 않는다. 그들의 통곡은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무위가 없었다면 인류는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했으리라!”
“너희들로 하여금 유일신의 은혜를 망각시킨 템빨신은 엄벌을 받으리라!”
“이는 너희를 구원하기 위한 성전이다! 유일신께선 오직 너희를 위해 강림하시리!”
“무신 제라툴을 찬양하라!”
“무신 제라툴을 숭배하라!”
행렬의 규모가 끝없이 커졌다.
그들의 목적지는 라인하르트로 추정됐다.
그리드의 터전이자 템빨신교 본단이 위치한 장소.
지상 최대 규모의 도시로 성장한 까닭에 수용할 수 있는 관객도 많다.
되도록 많은 목격자 앞에서 그리드를 해칠 목적을 품은 제라툴의 입장에선 라인하르트보다 적합한 격전지도 없었다.
“저 버러지들이...”
요새도시 파트리안.
라인하르트로 향하는 관문 중에서도 유독 악명이 높아 ‘통곡의 벽’이라고 불려온 장소다.
영주 아슈르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성문 앞까지 다가온 추종자들의 행렬을 보고 치를 떨었다.
당장 성문을 열라고 시위하듯 성전을 외쳐대는 놈들을 숯덩이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인내했다.
이미 위에서 성문을 개방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까닭이다.
아슈르 후작의 위계로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까마득한 위에서 내려온 명령.
무려 재상 라우엘이 내린 명령이었다.
거부할 수도 없었고, 거부해서도 안 됐다.
“성문을... 열어라...!”
꽈드득, 이를 갈며 간신히 명령한 아슈르 후작이 추종자들의 행렬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당연하다는 듯이 도시를 활보하며 성전을 지껄이는 놈들.
놈들은 제라툴이 존재하므로 무(武)의 개념이 생겼고, 그로 인해 인류가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누가 봐도 무가 먼저고 제라툴이 후다.
맨몸으로 태어나 문명을 이루기까지.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던 인류가 탄생시킨 무의 개념 덕분에 제라툴이 탄생한 거라고 아슈르는 해석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무신의 추종자 중에 제정신인 사람은 없었으니까. 저들에게 백날 떠들어봤자 알아 듣지도 못하겠지.
아슈르 후작은 단지 기도하는 게 최선이었다.
“부디... 부디 저 잡것들과 잡것들을 탄생시킨 개새끼를 몰살시켜주시기를...”
***
[하늘에 뜬 태양이 라인하르트로 향하는 추종자들의 행렬을 비춥니다.]
[추종자들과 함께 무신의 성전을 응원해보세요. 하늘이 큰 기쁨을 느끼고 신비한 보상을 내릴 것입니다.]
“이젠 피아식별도 못하나?”
라우엘이 헛웃음을 흘렸다.
‘주기’에 들어갔다는 한울.
그의 무의식을 대변하는 알림창의 내용을 확인하면서다.
언젠가부터 템빨단을 대상으로도 템빨제국과 템빨신교를 위협하라는 퀘스트를 띄운다 싶더니 이젠 급기야 제라툴을 응원하고 있다.
환국의 대적이 아스가르드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듯이.
한울이 주기에 들기 전 그리드에게 품었던 원한이나 분노 따위의 감정이 이런 웃기지도 않은 상황을 연출하는 것 같았다.
‘진짜로 원한이나 분노를 품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리드가 말하길.
고룡만 해도 악룡을 제외하면 죄다 불가해를 마주한 느낌이라고 했다.
미식룡과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면서도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면서, 한없이 큰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하물며 태초신을 함부로 재단한다?
몹시 위험한 일이었다. 인간의 기준으로 이해를 논하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폐하의 말씀대로 그들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아.’
적어도 현재 시점에선 없는 셈 치는 게 낫다.
실제로 큰 개입을 해오는 것도 아니고.
물론 한울의 경우엔 아주 집요할 정도로 저격을 감행했지만 어디까지나 플레이어를 상대로 퀘스트를 부여하는 수준에 그쳤다.
플레이어에게 큰 호의를 얻고 있는 템빨제국의 실정을 고려하면 큰 위협이 아닌 것이다.
단, 만약 이번 성전에서 패배하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컸다.
숨죽이고 있던 미치광이들이 날뛸 테고 덩달아 민심도 흔들릴 테니까.
만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겨루는 시점부터 무지막지한 후폭풍을 각오해야하는 거다.
패배가 용납이 안 될 수준으로, ‘져도 괜찮다.’, ‘죽어도 다시 도전하면 그만이다.’라는 플레이어의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 환경이라고 봐야 옳았다.
이쯤 되면 제라툴이 알고 저격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지경.
“괜찮...겠지...?”
라우엘은 그리드를 믿는다.
그러므로 사도들도 믿었다.
그들이 패배하는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라툴의 본격적인 행보를 보고 있자 마음 한켠에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실력에 얼마나 큰 자신이 있으면 저럴까 싶었기에.
애초에 가짜라고 해도 무신 아닌가...
“재상께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군요.”
자신들이 직접 이 땅에 ‘제전’을 세우겠다고 설치는 추종자들에게 쌍욕을 날리고 있는 케를 옹을 창밖으로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황후마마께서 어찌 친히...”
아이린 황후가 라우엘의 집무실에 행차했다.
급히 몸가짐을 정돈한 라우엘이 그녀를 상석으로 안내하려 하자 아이린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재상의 시간을 빼앗으려고 찾아온 게 아니에요. 자, 받아요. 레몬즙에 절인 후 말린 베라 찻잎이에요.”
[<아이린 황후가 말린 찻잎>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린 황후가 말린 찻잎>
대제국의 황후이자 신의 부인인 ‘아이린’이 귀중한 재료와 정성,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말린 찻잎입니다.
어렴풋하나마 신화적인 탄생 배경을 지닌 셈입니다.
이 찻잎으로 차를 타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모든 정신계 상태이상을 회복, 면역합니다.
“재상께선 이번 사태에 고뇌하지 말고 폐하를 믿으세요.”
“...”
라우엘은 새삼 느꼈다.
늘 상냥한 미소를 머금은 채 용기를 북돋아주는 아이린 황후가 이 나라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해주고 있는지.
내부에서 제국을 지탱해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
지금 당장 나만 해도 그녀 덕분에 평온을 얻지 않았나.
“예, 기꺼이.”
아이린이 떠난 후.
라우엘은 즉시 궁전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무신의 추종자 따위가 무슨 권리와 염치로 이 땅에 제전을 세우겠다는 것이냐며 여전히 쌍욕을 토하고 있는 케를 옹에게 다가가 말했다.
“케를 옹, 중앙 광장을 비울 테니 그곳에 최대한 성대하고 멋진 무대를 만들어주십시오. 최고의 목수들을 소집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재상께선 무슨 심정으로 저 몰염치한 놈들의 요구를 들어주시겠다는 거요?”
“폐하를 길바닥에서 싸우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
“그렇다고 추종자들이 이 땅에 시설물을 세우는 걸 허락할 수도 없으니 케를 옹께서 책임지고 맡아주십시오.”
“쩝...”
눈살을 찌푸린 케를 옹이 덥수룩한 턱수염을 벅벅 긁었다. 불만을 표출할 때 나오는 습관이다.
라우엘은 몇 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알겠소이다. 대신 무대의 형태를 설계하는 건 내게 일임해주실 수 있겠소?”
“뭘 어떻게 만드시려고...?”
“관짝. 무대가 곧 무신이라는 놈의 묫자리가 되도록 꾸밀 생각이외다.”
“그것 참 멋지겠네요.”
며칠 후.
목이 찢어져라 무신을 찬양하며 도시를 순회하던 추종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을 무렵.
본래 제국의 백성이었던 그들을 수습한 성녀 루비가 따스한 빛으로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졌고 케를 옹은 무대의 설치를 마쳤다.
수십 미터 상공에서 보면 관의 형태를 이룬 초대형 무대였다.
신들의 대전을 감안해 규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수십 만 명의 인파를 수용했던 중앙 광장이 무대로 가득 찼고 템빨계의 신들과 브라함이 설치한 결계가 무대 주변을 빼곡히 감쌌다.
“그리드가 이곳이 제 무덤이 될 거란 사실을 눈치 챘구나.”
꽈르릉...
급격히 어두워진 하늘에서 무신 제라툴이 강림했다. 샛노란 번개가 켜켜이 번쩍이며 그가 밟을 계단의 형태를 이뤘다. 총 여덟의 신이 황금색 구름에 오른 채 그를 뒤따른다.
완전한 삼위일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