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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608화 (1,606/1,794)

템빨 80권 - 6화

아스가르드를 벗어난 신과 천사는 급격히 약해진다.

지금은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강함과 약함이란 늘 상대적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인계에 강림한 신과 천사가 강력한 페널티를 겪을지언정 그를 손쉽게 격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없었다.

꽈아아앙!!

영원의 탑이 크게 휘청거렸다.

이름값을 못하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혼비백산했다.

쩌적! 쩌저저적!

탑의 고층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졌다.

그 중심에 피아로가 못 박혀 있었다.

“쿨럭!”

각혈하면서도 농기구를 쥔 손에선 힘을 풀지 않는다. 손등에 울퉁불퉁 솟아난 혈관을 따라 핏물이 흘러내렸다. 앞서 죽은 천사들이 뿌렸던 피다. 호미에 두개골이 박살나거나 쇠스랑에 척수가 뽑혀 죽은 천사들.

“당신처럼 잔악한 분은 지옥에도 드물 겁니다. 극악무도한 형태의 살상병기를 특별하게 개발해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인간으로 위장한 바알은 아닐까 의심이 들 지경이군요.”

“이건 농기구...”

“이제 그만 죽으시죠.”

피아로를 둘러싼 천사들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악과.

지옥에서 가끔씩 탄생하는 그 신화적인 열매는 몹시 위험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신의 존재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었고 악신을 탄생시킬 수도 있었다.

지옥에서 천사가 태어나거나 천상에서 악마가 태어나는 것도 가능했다.

너무 많은 가능성을 지녔다.

야탄이 악의를 품고 만든 개념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스가르드 입장에선 반드시 제거해야 할 변수였다.

이번에 무려 백다섯이나 되는 천사가 지상에 강림한 이유다.

대천사 셋과 일반 천사 백둘.

부대 규모였다.

주신과 대적하는 상황을 상정한 편성으로, 신들의 전쟁 이후 이토록 많은 천사가 하나의 작전에 투입된 경우는 처음이었다.

템빨신과 마주치는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둔 것이다.

템빨신의 사도쯤이야 손쉽게 제압 할 전력이라고 자체 평가했다.

한데 고작 한 명의 사도에게 애를 먹었다.

무려 일곱의 천사가 참혹하게 죽었다.

그 여파로 삼위일체가 풀린 수십 명의 천사가 전장에서 잠시 이탈하기도 했다.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전설 출신의 인간으로 만든 병사가 바로 천사다.

천사가 인계에서 페널티를 겪을지언정 전설급 인간쯤 혼자서도 능히 감당해야 옳았다.

게다가 병사로 육성되지 않았나.

천사는 개인일 때보다 다수일 때 더 강했다. 숫자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몇 배는 더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했다. 하여 부대라는 형을 갖추는 순간 주신마저 대적하게 되는 것이다.

한데 고작 한 명의 사도.

그것도 사도 중 최약체라는 피아로를 상대로 이런 낭패를 겪었다.

대천사들의 심중에 불안이 싹텄다.

‘...섬기는 신의 영향일 테죠.’

템빨신.

그는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자다.

성장 속도가 신들의 이지마저 초월했다.

그의 사도들 또한 영향을 받아 성장 속도가 남다른 듯했다.

“전력을 다해서 소멸시키세요. 오늘 제대로 싹수를 잘라놔야 합니다.”

지이이잉...

대천사들의 명령을 받든 천사들이 머리 위의 고리를 움직였다.

천사의 상징.

빛으로 이루어진 고리가 급격히 확장된다.

100개에 육박하는 원이 일제히 기울어지며 피아로를 조준했다.

현장의 모든 천사가 피아로를 죽이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생존할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이건... 끝이군...’

여태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었다.

설마 천사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날 줄이야.

하나가 더해질 때마다 급격히 강해지는 군단에 단독으로 저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피아로가 농부라서 일곱이나 되는 천사를 길동무로 삼은 것이었다.

농부란 전답을 만들어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위대한 존재니까.

과찬이 아니다.

순수한 인간 중에서 심상 세계와 같은 필드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그중에서도 피아로가 으뜸이었다.

꽈아아아아아앙!!

천사들의 고리로부터 빛줄기가 쏘아졌다.

피아로를 지탱하고 있던 불사의 지속 시간이 끝난 순간을 정확히 노린 일제 사격이었다.

‘...후회 없는 삶이었다.’

후회 따위 그리드가 모두 없애주었다.

새하얗게 물든 시야를 보며.

피아로는 미소 지었다.

그리드라는 청년을 만나 주군으로, 왕으로, 황제로 섬긴 끝에 신으로 숭배하기까지의 일생을 돌이켜보자 저절로 그려지는 미소였다.

죽음을 앞두고도 흔들림 없는 자부심이 그를 충만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일체의 공포도, 미련도 느끼지 못한다.

그를 누군가가 비난했다.

“지금이 웃을 때인가요? 남겨지는 사람들의 슬픔을 생각해야죠. 가족까지 있는 분이 왜 그래요?”

청량한 음성.

소녀가 아니되 소녀처럼 맑고 밝은 음성의 소유자는, 그 목소리만큼이나 작고 어린 외모를 지닌 여성이었다.

유페미나.

템빨마탑의 수호자가 마탑주 라엘라의 호출에 응해 이곳에 강림했다.

자신의 작은 얼굴보다 큰 붉은 열매를 품에 안은 채다.

“선악과...!”

천사들의 두 눈이 부릅떠졌고,

“가요! 유페미나!!”

탑의 상층에서 라엘라의 외침이 들려왔다.

피아로가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퀘스트를 완료하고 선악과의 효능을 입증해낸 그녀는 유페미나의 잠재력이 오늘 만개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무무드의 후예 유페미나.

모든 종류의 마법을 무무드식으로 해석해서 훨씬 더 강력하고 신속하게 구사하는 전설의 대마법사.

그녀에게 전설이란 종착지가 아니었다.

무무드의 후예라는 클래스 자체가 신화 등급을 보장했다.

하지만 등급의 성장이라는 것은 단순히 레벨을 올리고 업적을 세운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신화가 된 그리드의 선례가 증명했다.

유페미나는 ‘신화요? 포기했어요.’라는 말을 대놓고 하고 다녔을 정도다.

그럴 만도 했다.

신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조건 중 하나는 바로 숭배.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인데 유페미나는 도무지 숭배 받을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그리드와 달랐으니까.

애초에 사람이 사람들에게 숭배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리드는 특별했다.

처음 그리드를 봤을 때부터 유페미나는 직감했었다.

아, 나는 저 남자의 상대가 될 수 없겠구나, 하고.

그래.

유페미나는 그리드처럼 될 자신이 없었다. 꿈도 꾸지 않았다.

선악과가 진화의 실마리를 제공할 거라는 라엘라의 말을 듣고도 전혀 들뜨지 않은 이유다.

<선악의 열매>

...

..

★마법사가 복용 시 마력에 특별한 변화가 생깁니다.

템빨마탑주 ‘라엘라’가 밝혀냈습니다.

‘흑마력과 신성력을 얻게 될 거라고?’

통상 흑마력이란 악마와 계약해야 얻는 자원이고 신성력이란 신을 섬기는 사제나 성기사로 전직해야 얻는 자원이었다. 평범한 마법사는 얻지 못할뿐더러 양립할 수도 없었다.

물론 템빨단원들은 정령과 계약이 가능하다.

암흑 정령이나 빛의 정령과 계약하는 식으로 흑마법이나 신성마법을 다룰 수 있었다.

또한 무무드의 후예인 유페미나는 흑마법과 신성마법에도 나름대로의 조예가 있었다. 가장 기초적인 흑마법과 신성마법은 무무드식으로 해석해서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악마와 계약한 흑마법사처럼 마력의 성질 자체가 악으로 바뀐다거나 사제들처럼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대성하는 게 불가능했고 위력 자체가 낮았다.

한데 선악의 열매가 가능케 한다고 한다.

마력조차도 선과 악으로 구분 짓게 만드는 효과를 지녔다면서 라엘라가 장담했다.

모든 마법을 다루는 유페미나가 선악과를 복용할 경우 남들은 꿈도 못 꿀 효과를 누릴 거라고. 그러니까 꼭 유페미나가 복용해야 한다고.

그럼 차라리 브라함이 복용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반문엔 이렇게 답했다.

“브라함 공은 뱀파이어잖아요. 중립 성향인 인간과 달리 종족 자체가 악으로 판정 받기 때문에 선악과가 마력보단 종에 먼저 개입할 거예요. 변수를 예측할 수 없죠.”

“그리고 지금 당장 피아로 공의 목숨이 위험하다니까요? 빨리 와서 이거 먹고 피아로 공부터 구해줘요!”

“그리드 님은 걱정 말고요. 선악과의 처분은 제게 맡기겠다고 이미 허락해주신 데다가 당신이 성장하는 걸 누구보다 바랄 사람이 바로 그리드 님인 걸요.”

‘선악과의 효과가 진짜라면...’

이론적으로 유페미나는 전능에 가까운 마법사가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선 브라함조차 초월하게 된다.

그런 위대한 힘을 거머쥘 자격이 내게 있을까?

...당연하다.

이건 자격을 논할 문제가 아니라 의무에 가까웠다.

당장 피아로부터 구해야 했으니까.

앙.

유페미나의 작은 입이 선악과를 베어 물었다. 다람쥐처럼 부품 뺨이 오물오물 움직인다.

천사들이 쏜 광선이 마침 바로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헤.”

유페미나는 천재다.

선악과를 먹고 맞이한 변화를 즉시 파악하고 익숙해졌다.

전개 중이던 실드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며 취소하고 다른 마법을 전개했다.

말려 올라가는 입 꼬리가 소악마를 연상시킨다.

“스타더스트.”

우주가 펼쳐졌다.

무무드식 블리자드를 신성력과 흑마력으로 발동시킨 여파다.

검게 물든 세상에서 빛이 흡수되고 산란하길 반복하며 행렬이나 기둥을 이루었다.

스타더스트는 이 광경을 예측하고 갖다 붙인 이름이다.

“...!?”

천사들이 쏘았던 찬란한 빛들이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약한 빛은 어둠에 삼켜졌고 강한 빛은 더 강한 빛에 삼켜지는 식으로 소멸한 것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유페미나의 금색 트윈테일만이 방금 전까지 빛의 포화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힐.”

선악과를 먹은 유페미나의 자원은 크게 3종류로 나뉘었다.

마나와 흑마력, 그리고 신성력.

무무드의 지식 덕분에 습득하곤 있었지만 자원이 없는 까닭에 사용 못했던 힐 등의 마법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같은 마법을 쓰더라도 어떤 자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마법의 형태와 효과가 바뀌기도 했다.

방금 전 사용한 무무드식 블리자드가 그랬다.

마나가 아닌 흑마력과 신성력으로 전개하자 눈의 결정을 이뤘어야 할 술식이 별빛을 이뤘다. 냉기를 일으켰어야 할 술식은 어둠을 불러왔다. 빛, 혹은 어둠을 흡수하거나 부정하는 광역 마법의 탄생이었다.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의식해서 다른 자원을 사용한다는 건 상당한 집중력과 순발력을 요구했지만 유페미나는 오히려 즐거웠다.

복제술사 시절보다 훨씬 더 재밌는 ‘조합 놀이’를 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유페미나보다 더 많은 스킬과 마법을 사용해본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유페미나는 스킬 조합의 귀재였다.

“바로 당신이... 템빨신의 마지막 사도가 되겠군요.”

대천사들이 유페미나를 경계했다.

이미 잃은 선악과에 대해선 미련을 버렸다. 선악과를 복용한 유페미나를 소거하면 해결 될 문제쯤으로 보았다.

물론 쉽지 않은 상대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지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천사는 대부분의 마법을 면역한다. 흑마법과 신성마법은 쉽지 않았지만 아무튼 마법사를 상대론 상성상 우위에 있었다.

천사들이 대열을 정비하는 그때였다.

그리드가 새로운 신화 황룡의 주인이 됐다는 서사시가 세계에 각인 됐다.

덩달아 송장에 가까웠던 피아로가 활력을 되찾았다.

아니, 저건 되찾은 수준이 아니다...

“과연 폐하께서는 신이시다.”

이런 절묘한 타이밍에 새로운 신화를 쓰고 사도에게 힘을 내려주시다니.

매번 기적을 일으키시는 행보에 탄복할 뿐.

만면에 미소를 그린 피아로가 씨앗을 뿌리며 돌진했다.

당황하는 천사들의 틈새로 난입해서 농기구를 휘둘러댔다.

덕분에 유페미나는 충분한 계산을 거듭하며 마법을 전개 할 수 있었다. 3종류의 자원을 적극 활용해서 여태껏 없던 마법들을 선보였다.

마탑의 수호자.

소속 마탑의 주인보다 실력이 우위에 있는 마법사에게 내려지는 지위.

실력 면에서 유페미나는 템빨마탑의 실질적인 1인자였다.

그리고 이곳엔 마탑주 라엘라도 있었다.

선망해온 유페미나의 활약을 보고 용기를 얻은 영원의 탑의 마법사들도 수백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제2의 황도 타이탄이다.

영원의 탑이 도시 외곽에 있다지만 지금쯤이면 충분히 성에 기별이 갔을 거다.

이변을 감지한 황비 바사라와 공작들이 직접 원군을 이끌고 출정했을 것이며,

“...귀찮게 구는군.”

뇌신 카일은 이미 현장에 도착해버렸다.

전광 그 자체인 그의 속도는 초월적이었기에.

“여기가 정녕... 인계라고요?”

천사들이 술렁였다.

아직 템빨신을 만난 것도 아닌데 위기가 도래한 듯했으니 당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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