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79권 - 11화
<황혼>
등급:신화(성장형)
내구력:무한 공격력:34,290
★공격 스킬의 전개 속도 60퍼센트 상승.
★공격 스킬의 위력 460퍼센트 상승.
★절대 명중률 50퍼센트 상승.
★매 공격 시마다 높은 확률로 대상에게 ‘실명’ 유발.
★무기로 공격을 방어할 때마다 높은 확률로 대상에게 ‘매혹’ 유발.
★대상의 방어 스킬, 마법, 권능을 85퍼센트 확률로 무력화.
★대악마, 대천사, 신, 드래곤에게 공격력 추가 적용.
★어두운 장소에서 무기 공격력 80퍼센트 상승.
★밝은 장소에서 보통 확률로 무기 은신 상태. 무기 은신 시 대상이 높은 확률로 공격 인식 실패.
★마법, 혹은 스킬을 최대 3개까지 귀속 가능. 등급 제한 없음. 단, 실패 확률 존재.
템빨신 그리드가 악룡 번헬리어의 송곳니를 제련하여 만든 검입니다.
템빨계의 신성을 머금었습니다.
적에게는 종말을 선고하는 황혼으로, 아군에게는 희망을 안기는 여명으로 비칠 것입니다.
착용 조건:그리드, 드래곤 슬레이어, 드래곤 나이트.
무게:2,950
강력한 위력만큼이나 아름다운 자태로 신화에 기록 될 검.
노을을 머금은 듯한 새로운 드래곤 웨폰은 어느 각도로 봐도 아름다웠다.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다.
‘황혼과 여명이라... 크라우젤의 드래곤 웨폰에 여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면 좋았을 텐데.’
황혼과 여명.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인가.
실제로 크라우젤의 드래곤 웨폰이 조금 더 밝게 빛났다. 여명에 어울렸다.
하지만 시스템은 두 자루 드래곤 웨폰의 이름을 똑같이 <황혼>으로 판정했다.
동일한 형태와 의도를 지녔으니 당연했다.
두 자루 검은 쌍둥이다.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함께 논의하고 설계한, 똑같은 무기였다.
물론 소재는 달랐다.
그러므로 제조 방식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드의 황혼은 접쇠 과정을 생략했다.
번헬리어의 송곳니 자체가 완전한 소재였던 까닭이다.
굳이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강화 할 필요성이 없었다.
필요 이상의 단련을 진행했다간 오히려 소재의 순수한 성질을 망칠 우려가 컸다.
반면 제논의 비늘은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번헬리어의 송곳니와 비교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었지만, 그리드는 제논의 비늘이 번헬리어의 송곳니와 최대한 비슷한 성능을 발휘하게끔 단련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게 백아도를 선물해준 크라우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
그래서 수천 번의 접쇠를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헥세타이아의 소검마저 초월하고 심지어 ‘성장형’ 판정을 받은 그리드의 황혼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었지만, 크라우젤의 황혼 역시 크란벨의 뿔과 비견 될 만한 신검 중의 신검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리드의 황혼이 한 단계 다운그레이드 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그리드의 황혼이 유일 등급으로 진화하고 나면 두 단계, 세 단계 이상으로 차이가 벌어질 수도 있었지만...
아무튼 소재의 질을 고려하면 엄청난 결과였다.
그리드의 기술과 크라우젤의 구상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의미가 됐다.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네.’
아이템 만들 때마다 곁에 세워두고 조언을 들으면 정말 큰 힘이 될 텐데...
발할라의 의금(옷깃)과 심장에 덧댄 제논의 비늘.
거기에 크라우젤이 직접 새겨준 빗금을 어루만지면서, 그리드는 무려 검성을 사사로이 쓰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다.
도검이라는 무기의 특징, 그리고 대부분의 검술이 지닌 특성을 꿰뚫고 있는 크라우젤이 비늘에 새긴 무늬는 깊지 않고 유려하되 소드 브레이커의 성능을 고스란히 발휘했다.
마치 황혼처럼 겉으로 봤을 땐 순전히 예술품 마냥 멋을 부려놓은 것 같은데 실상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내포한 병기인 것이다.
“음.”
드래곤의 비늘은 부위별로 크기가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도 제논이 선물로 준 비늘은 드래곤 하트를 감싸는 부위라서 유독 더 크고 두꺼웠다.
크라우젤의 검을 만들고 남은 물량만으로 발할라의 목과 가슴, 그리고 허벅지 부위에 덧댈 수 있을 만큼.
편의성을 고려해 짧은 치마처럼 펼쳐진 허벅지 보호구가 조금 화려해졌다.
드래곤의 비늘이 워낙 고급스러운 소재이다 보니 회색 비단으로 만든 도포를 갑옷 속에 덧대 입은 것처럼도 보였다.
“본좌가 천마이니라.”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심취한 그리드가 나지막이 말했다.
조깅할 때 종종 듣는 무협지 속 대사였다.
“천마가 뭐냐옹?”
불쑥 나타난 노에가 질문했다.
민망해서 헛기침한 그리드가 화제를 돌렸다.
“오늘 교육도 잘 끝냈어?”
“당연하다냥.”
“꽤 애먹을 줄 알았는데 잘 하고 있네.”
“내 카리스마가 워낙 대단하지 않냐옹. 아이들이 꼼짝도 못하고 잘 따른다옹.”
바알에게 고통 받던 수십 마리의 멤피스가 베티와 아그너스에게 구원 받았다.
베티가 상처를 말끔하게 치료해주었다.
물론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해줄 수는 없었다.
어째선지 아그너스의 어설픈 위로에 위안을 얻은 3마리의 멤피스를 제외한 모든 멤피스가 지옥 뿔뿔이 흩어져 숨어버렸다. 언젠가 바알에게 꼭 복수할 거라는 다짐과 함께.
그들을 제외한 3마리의 멤피스는 베티와 아그너스를 쫓아 지상에 올라왔는데, 아그너스가 아무리 꺼지라고 욕해도 껌딱지처럼 따라붙은 1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2마리는 라인하르트에 자리를 잡았다.
지혜의 탑에 서식하기엔 환경적으로 무리가 있는데다 노에가 제법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렇구나. 아이들이 착해서 다행이다.”
“걔들이 착한 게 아니라 내 카리스마가 대단한 것이라냥!!”
‘예민한 거 보니까 일이 잘 안 풀린 게 분명하군.’
노에는 지옥에서 구출해온 멤피스들에 비해서 몹시 어린 축에 속했다.
노에 자신은 멤피스들이 인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중이라고 주장했지만, 곁에서 보기에 멤피스들은 노에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는 막둥이를 대하는 태도에 가까웠다
뻔히 알면서도 그리드는 노에의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우리 노에가 참 장하다.”
“다, 당연하다냥. 엣헴.”
애써 가슴을 펴는 노에를 랜디가 가엾게 바라보는 가운데.
“출발하자.”
마음을 다잡은 그리드가 지옥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 앞엔 미리 연락 받은 유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유라는 썩 내키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리드가 바알과 싸워서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실제로 그리드의 얼굴 역시 긴장감으로 굳어 있었다.
이번에 그의 곁에는 번헬리어가 없다.
번헬리어의 빈자리를 네펠리나와 새로 만든 드래곤 웨폰, 그리고 강화 된 발할라가 채워줄 수 있을까?
바알과 그리드가 격전을 치렀을 당시.
번헬리어가 수시로 쏘아줬던 브레스의 도움이 엄청 컸던 게 사실이다.
바알이 반드시 대응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그리드가 빈틈을 노렸다.
반면 이번에 그리드 혼자서 싸워야만 했다.
자칫 6융합 검무를 적중시키지 못할 경우 그대로 패배라고 봐야 옳았다.
“일단 도전은 해 봐야지. 정 안 되겠으면 관두면 되는 거고.”
사실 그리드에겐 선택지가 많다.
일단 동대륙으로 가서 청룡과 백호의 봉인을 풀거나 무후총으로 가서 성장을 도모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황혼의 옵션을 믿어 보고 싶었다.
높은 명중률 보정 효과.
템빨을 제대로 받으면 혼자서도 바알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알이 격을 회복할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좋아요.”
유라가 그리드의 고집에 순순히 따랐다.
그녀는 언제나 그리드에게 순종적이다.
한때 마녀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냉혹한 성격은 대부분 그리드를 제외한 타인에게만 적용됐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함부로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는 인성에 문제 있냐는 질문을 살면서 몇 번 못 들어봤다.
그마저도 대부분 지슈카에게 들은 말이었기 때문에 유라는 의외로 자신의 성격에 자부심이 강했다.
쿠르르르릉!!
그리드와 유라, 그리고 네펠리나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곧 지옥에 도착했다.
요란한 도르래 소리를 내면서 열리는 문 틈 너머로 지옥의 살벌한 풍경이 펼쳐졌다.
보름 전에 왔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작위 전이진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
‘천하의 바알이라도 그 정도 대단위 마법을 상시 유지하기엔 부담이 크겠지.’
그리드의 생각을 비웃듯이,
번쩍!!
그리드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흙 아래 숨겨져 있던 마법진이 발동했다.
[제2지옥으로 강제 전이됩니다.]
“...!”
그리드 일행이 보는 풍경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높이 솟은 산들이 온통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세상.
지옥이라기엔 너무 하얗고, 성스럽다기엔 너무 차갑고 섬뜩한 풍경이었다.
-템빨신.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피의 맹약을 맺고자 찾아온 것이구나. 그대의 활약은 아무쪼록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스산한 쇠사슬 소리와 함께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새하얀 세계의 중심에 아모락트가 있었다.
수백 년 동안 방치 된 가시덩굴마냥 복잡하게 늘어져 있는 쇠사슬에 온 몸을 꽁꽁 묶은 채다.
육신은 인간 여성의 몸과 같았고 얼굴은 천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다.
[분쟁의 대악마 ‘아모락트’가 출현하였습니다.]
‘이거...’
아모락트가 초대한 게 아니라고?
‘...아모락트가 나하고 접선하려던 걸 바알이 알고 있었다면?’
백퍼센트 함정이다.
깨닫는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고 아모락트 또한 그 낌새를 읽었다.
다급히 두 손을 휘두르는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서 파도처럼 출렁여댄 쇠사슬이 일제히 사방팔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녀의 손짓 한 번이 눈의 결정처럼 복잡한 구조를 이루는 쇠사슬의 결계를 만들어 냈으니까.
-아이야, 템빨신을 데리고 피해라.
아모락트가 유라에게 속삭이는 그때.
꽈르르르르르릉!!
새하얀 세계에 균열이 발생했다.
쇠사슬의 결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거대한 창에 의해서였다.
““아모락트 네가 성에서 기어 나올 줄이야. 기대 이상의 수확이구나.””
어지간히도 초조했나 보군.
창을 지지대로 삼아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악마.
전율스러운 존재감 탓에 당연히 바알인 줄 알았으나 달랐다.
그리드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는 그것의 이름은 ‘아수라’였다.
-바알, 오로지 파멸을 목표로 나아가는 그 미치광이가 지옥의 마지막 질서마저 무너뜨리려고 하는구나.
““너 스스로가 질서를 자처하기엔 손색이 너무 크다.””
“...!”
그리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러 개로 겹쳐지는 아수라의 음성에서 바알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닮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동일했다.
착각이 아니다.
지난 보름 동안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던 그리드는 바알과의 전투를 수백 번도 더 복기했다.
그때마다 자연히 머릿속에 맴돌던 바알의 음성은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너... 뭐냐?”
““신(神).””
스아아아아!
아수라를 중심으로 어둠이 번진다.
순백의 세계가 삽시간에 검게 물들어버렸다.
“악신(惡神)이다.”
터엉!
감히 태초신을 자처한 미치광이가 도약했다.
그리드와의 거리를 좁히고 창을 찔러 넣는 동작이 하나의 호흡으로 완성 됐다.
복잡한 쇠사슬의 결계를 돌파하느라 행동에 낭비가 있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쾌속한 공격.
인공 감각으로 아슬아슬하게 읽어낸 그리드가 검을 휘둘러서 응수했다.
세상을 물들인 어둠 탓에 도리어 더욱 선명해진 주황색 신성이 그의 몸과 황혼에 양분되어 있었다.
마치 노을이 2개로 분절되어 따로 너울지는 듯한 광경.
꽈아아앙!
““...!?””
아수라의 표정이 변했다.
워낙 또렷한 이목구비 탓에 표정에 담긴 의미를 유추하기 쉽다.
‘듣던 것과 다른데?’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끼기긱!!
황혼이 아수라의 거창을 서서히 뒤로 밀어냈다.
이쯤 되자 아수라도 상황을 파악했다.
““어둠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드래곤 웨폰이라? 나의 탄생을 예측하고 대비했나?””
지옥달의 원형과 내 파편들이 어지간한 단서가 되어준 모양이군.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아수라가 어둠을 거뒀다.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
어차피 이곳은 지옥이고 아수라는 악신이다.
어둠의 존재 유무와 관계 없이 그는 강했다.
하얗게 변한 세상에서 황혼에 깃든 노을빛이 흐려졌음을 확인한 아수라가 창을 섬전처럼 뻗었다.
푸화하하학!!
““...!?””
아수라의 표정이 재차 변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흐릿해진 황혼이 그의 어깻죽지를 베어버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실패했군.””
눈살을 찌푸리는 아수라의 목과 얼굴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이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토해낸 건 바알이었다.
그 탓에 껍데기만 남은 아수라는 서서히 재가 되어 지옥 전역으로 흩어져갔다.
마물들과 악마들의 그림자에 다시금 자리 잡을 파편들이다.
“저건 역대 최악의 실패작이었으니 기억에서 지워라.”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바알이 마검을 빚어 쥐었다.
순식간에 크기를 부풀린 마검이 그대로 그리드의 목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먼저 베인 건 바알이었다.
그리드의 손에 맺힌 노을이 흐릿하게 번진다 싶더니 자각하지 못하고 베였다.
두 눈을 부릅뜬 바알이 드디어 깨달았다.
조금 전 벗어던진 아수라는 처참한 실패작이 아니었다.
“지옥에서의 보름이 지상에선 15년이었나?”
단지 그리드 저놈이 강해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