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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588화 (1,586/1,794)

템빨 79권 - 6화

20번째 서사시를 쓴 그리드의 격은 상위룡을 탑승했을 때와 비견 될 정도로 높아졌다.

드래곤 나이트에 의존할 필요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드래곤 나이트의 강점은 단순히 격이 오르는 것에 국한되지 않으니까.

모든 능력치의 3배 상승과 브레스의 구현.

그리드가 드래곤에 탑승했을 때 얻는 가장 큰 이점은 순수하게 ‘강해진다.’는 부분에 있었다.

현재의 그리드는 바알과 싸웠을 때와 비교해서 약했다.

템빨계 차원 효과를 등에 업고 ‘스킬 쿨타임 삭제’라는 무지막지한 권능을 휘두르곤 있었지만 6융합 검무 하나하나의 위력은 번헬리어에 탑승했을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물론 그리드는 도합 6번의 6융합 검무를 전개했다. 입에는 달콤한 사탕을 문 채다.

지옥의 바알을 2번 이상 죽일 만큼의 화력을 순간적으로 발휘했다.

하지만 네바르탄의 방어력과 생명력이 바알을 웃돈다는 점이 문제였다.

드래곤은 거대종과 초월종의 궁극이다.

하물며 고룡은 드래곤의 정점이었다.

절대방어 등의 권능과 관계없이 능력치 자체가 세계관 최강이란 말이다.

전신에 두른 비늘이 모든 종류의 데미지를 경감시켜주기도 했다.

쉽게 해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네바르탄에게 심각한 내상을 입고 바알을 상대로 여러 제약까지 받았던 번헬리어와는 경우가 완전히 달랐다.

실제로 6융합 검무에 난도당한 네바르탄은 여전히 멀쩡하게 활개치고 있었다.

잘려나간 팔다리를 눈에 보이는 속도로 수복하는 한편 기다란 꼬리를 휘둘러서 템빨계의 신전들을 박살냈다.

놈이 쉬지 않고 난사하는 브레스의 충격 여파로 템빨계 중심에 있는 깊은 호수가 몇 번이고 바닥을 드러내길 반복했다.

높이 솟구쳤다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호숫물에 그리드와 사도들, 그리고 결사들의 몸이 흠뻑 젖어갔다.

여유가 없다는 증거였다.

평상시 사도와 결사들은 비바람이나 눈보라 한가운데 떨어져도 옷깃 하나 젖지 않는다.

기와 마력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그들에게 이물이 침범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데 고작 호숫물이 튀기는 걸 막지 못하고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것이다.

네바르탄의 공격을 감당하기에 급급했으니까.

꽈아아아아아아아앙!!

“큭...!”

미친 심상의 영향일까.

네바르탄의 브레스는 다른 드래곤의 브레스와 달랐다.

직선으로 뻗어지다가도 도중에 궤도를 바꾸길 반복했다.

똬리를 틀듯이 솟구칠 때나 전 방위로 분사 되기라도 할 때면 피해 반경이 극도로 확장됐다.

변칙적인 수준을 넘어서 미쳐 날뛴다는 표현을 써야 옳았다.

“호흡을 벨 순 없소?”

네바르탄이 쉬지 않고 쏘아대는 브레스를 베어내고 막아내느라 발이 묶인 하야테가 비반에게 물었다.

부서진 신전의 잔해들을 검기로 흡착시켜 거대한 돌의 검을 빚던 비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흡을 벤다? 네바르탄의 호흡을 말입니까?”

“브레스를 토해내지 못하게 말이오.”

“허허, 모가지를 베어버린다면 또 모를까 어찌 호흡을 골라 베겠습니까. 늘 진중하신 공께서 이 상황에 농이라니 어울리지 않습니다. 든든한 전우들을 만나 썩 많이 들뜨셨나 보지요?”

“그렇구려.”

하야테는 굳이 크라우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치매끼가 심해지고 있는 비반이 감당하기 힘든 반응을 보일 것만 같아서였다.

비반이 걱정되는 한편 짧은 시간 함께했던 크라우젤이 그리웠다...

“네바르탄이 차원에 적응해가고 있어요.”

메르세데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바르탄의 측면을 집요하게 노리며 활약 중인 그녀의 혜안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고룡.

그들은 ‘협약’ 전까지 천상의 신들을 사냥하고 다녔던 생물체다.

고작 차원 효과에 발목을 잡힐 수준이었다면 아스가르드에서 날뛰는 게 가능했을까?

아스가르드는 태초부터 존재해온 신계다.

최근에야 세워진 신계 템빨계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차원이었다.

그런 아스가르드의 억압에도 적응하고 저항한 끝에 제집처럼 넘나들었던 고룡을 언제까지고 억압하기엔 템빨계의 수준이 너무 미약했다.

[침입자 ‘네바르탄’이 템빨계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템빨계가 소멸 할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네바르탄은 템빨계의 환경에 적응하는 수준을 넘어서 위협하고 있었다.

놈이 날뛰면서 신전이 파괴될 때마다 해당 신의 격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특히 어획의 신 라스의 상태가 나빴다.

몇 번이고 바닥을 드러낸 끝에 수심이 얕아진 호수의 영향이었다.

드문 힐 능력을 보유한 라스의 약화는 아군의 활동에 지장을 줬다.

“신계의 억압에 저항하는 게 가능할 줄이야...”

브라함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천 년도 전부터 자신의 이상에 도달해 있는 인물 하야테.

그런 하야테가 인정하는 새 시대의 최강자 그리드.

거기에 지크와 프론잘츠에 이르기까지.

지금 이곳엔 브라함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자가 수두룩하다.

템빨계의 차원 효과까지 이용하면 네바르탄을 필히 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드래곤을 모르기에 내린 오판이었다.

네바르탄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꽈아아아앙!!

브라함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수십 겹의 마력 실드를 부수고 들어온 꼬리에 얻어맞고 팔과 허리가 기이한 각도로 꺾인 채다. 부러진 늑골들이 내장을 파고들며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너무 빠르다...!’

그간 쌓아올린 신격과 초월의 격을 토대로 위기를 감지할 순 있으나 정작 반응할 수가 없다. 공격이 날아온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엔 이미 공격을 허용하고 있는 식이었다.

그나마 상시 전개하고 있는 실드가 아니었다면 즉시 불사를 소모했으리라.

“본능대로 움직이는 게 이 정도라고?”

회복과 재생, 촉진을 뜻하는 룬어를 생성하며 날아온 지크가 브라함을 부축했다.

과연 우연일까.

브라함은 대마법을 캐스팅하자마자 네바르탄의 표적이 됐다.

그 탓에 치명상을 입고 마력의 역류 증세를 겪게 된 것이 우연이라기엔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

흠칫 놀란 지크가 자리에서 이탈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브라함을 때리고 지나갔던 꼬리가 되돌아와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감지, 탐색, 가속 등의 룬어를 몸에 두른 덕분에 반응할 수 있었던 지크의 안색이 드물게 어두웠다.

타고난 사냥꾼에게 본능은 도리어 축복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광증은 네바르탄을 약화시키는 요소가 아니었다.

정신 상태가 온전할 때와 비교해서 전투 능력에 큰 하자가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었다.

프론잘츠가 말했다.

“광증 탓에 약해진 게 맞소.”

과연 지혜로운 거인족다웠다.

지크의 표정과 반응을 토대로 생각을 읽은 눈치였다.

“드래곤의 용언이 봉인 됐다는 건, 사람으로 치면 사지가 절단 된 것과 큰 차이가 없소이다.”

“그 정도라고?”

지크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그의 어깨에 빨랫감마냥 늘어져 있는 브라함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드래곤과 싸워온 그리드의 위대함을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덤으로 하야테와 결사들에게도 더 큰 존경심을 품게 됐다.

마침 피아로와 켄의 도움을 받은 그리드가 네바르탄에게 재차 접근하고 있었다.

금의 성역을 펼치고 6융합 검무를 연속 전개했다.

물결치며 결착되는 비늘을 들어내고 박살내며 두꺼운 살을 파고드는 기세가 흉흉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네바르탄을 관통하지 못했다.

네바르탄이 휘두른 손에 등짝을 얻어맞고 자신의 심상으로 세운 협곡까지 날아가 처박혔는데 템빨계 전체가 흔들려댔다.

기함하는 지크와 브라함의 눈동자에 곧바로 다시 벌떡 일어나는 그리드의 뒷모습이 투영됐다.

언제 봐도 경이로운 방어력이었다.

어느새 몸을 날려 그리드 곁에 도착한 지크의 귓전에 그리드의 음성이 스며들었다.

“보조 고맙습니다.”

지크의 룬어는 대부분 그리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수십 개의 단어들이 실시간으로 다른 의미의 문장을 이루며 그리드를 도왔다.

“우리만으론 안 된다.”

지크의 등에서 내려온 브라함이 말했다.

그리드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현재 그리드와 함께 네바르탄을 공격하고 있는 인원의 면면은 몹시 화려했다.

사도 전원과 결사 전원이 모이지 않았나.

이중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네펠리나와 브레스를 막는데 열중하고 있는 하야테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네바르탄에게 총공세를 가하고 있었다.

근데 이걸로 부족하다고?

순순히 받아들이기엔 시사하는 바가 너무 컸다.

꽈아아아앙!!

마침 날아오는 꼬리를 수십 미터 크기의 거대한 돌검이 막았다.

비반이 휘두른 검이었다.

꼬리에 실린 무게를 상쇄시키는 역할을 했다.

산산이 조각나 비산하는 돌의 파편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구젤의 검이 날카로운 검광을 터뜨렸다.

서걱!

네바르탄의 꼬리가 잘려나갔다.

하지만 경거망동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드래곤의 신체 부위 중 가장 빨리 재생하는 부위가 꼬리라는 사실을 이미 지긋지긋할 정도로 학습했으니까.

꾸드드드드득!!

즉시 재생한 네바르탄의 꼬리가 일행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쯤 되자 그리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어.’

이건 단순히 템빨계의 환경에 적응해서가 아니다.

네바르탄은 잃었던 격을 회복해가는 것과 별개로 공격력과 방어력, 회복력과 저항력 모든 면에서 우월해지고 있었다.

“네바르탄은 피해를 입을수록 강해진다던 번헬리어의 평가가 과장 없는 진실이었구려.”

꽈앙!!

네바르탄의 꼬리와 브레스의 경로가 겹치는 순간을 노리고 막아낸 하야테가 그리드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사도들과 결사들은 각자 도생하시오.”

네바르탄의 브레스를 굳이 하야테가 전담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브레스의 위력이 너무 강했다.

용살검으로 약화시키지 않는 이상 베어내거나 막아내는 게 힘든 수준으로, 다른 결사나 사도가 네바르탄의 브레스를 감당하기 위해선 그 한 번에 전력을 다 쏟아야 할 정도였다.

효율이 나쁘단 의미다.

하야테는 자신이 브레스에 맞서는 동안 다른 이들이 그리드와 함께 네바르탄을 멸하길 바랐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렇게 된 이상 선택지는 하나다.

“템빨신께선 나와 협력합시다.”

스아아아아...

하야테의 백색 의복이 점차로 길어졌다.

발목에 닿던 상의가 망토처럼 바닥에 끌리더니 급기야 휘장처럼 펄럭였다.

극성까지 끌어올려 백열하기 시작한 용살의 검기가 흩날리는 것이다.

네바르탄의 의식이 하야테에게 집중됐다.

“지금.”

──!

소리가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광속에 도달한 용살검이 일대를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

무지막지한 압력에 짓눌린 그리드가 일순 당황했다.

하지만 이를 악 물고 어떻게든 한 걸음을 내딛었다.

절대자에게 호응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의 시야에 여러 색채의 빛들이 산란하고 있었다.

네바르탄이 포효하며 쏘아낸 브레스와 그를 향해 나아가는 용살검의 기파가 어지럽게 얽히고 번지길 반복했다.

반면 그리드의 주황색 신성은 미약했다.

소리가 사라진 세계에서 앞으로 전진하질 못했다.

절대자들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는 것이다.

아직 내가 도달하지 못한 세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씁쓸한 기분을 느끼는 그리드의 발에 뭔가 단단하면서도 물컹한 것이 밟혔다.

폴리모프를 푼 네펠리나의 등이었다.

제 부친보다 수십 배는 작은 어린 용이, 그리드의 전진 경로를 예측하고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리드의 사도로서, 벗으로서, 가족으로서 교감한 끝에 이뤄낸 기적이었다.

[나는...! 나는 그리드하고 살아가고 싶어!!]

소리가 사라진 세계에 네펠리나의 외침이 선명하게 번졌다.

육성이 아닌 의지.

용언이었다.

[해츨링이 어찌...?]

네바르탄이 경악했다.

구멍이 뚫린 것처럼 새카맣던 그의 두 눈이 일순 금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해츨링의 완전한 용언.

드래곤 역사상 최초로 한계를 극복하고 초월을 이룬 딸아이의 기특한 모습이 그의 의식을 일깨운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봤을 땐 왜곡됐을지언정 자식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진짜였다.

[당신의 사도 ‘네펠리나’가 칭호 <초월룡>을 얻었습니다.]

[당신의 사도 ‘네펠리나’의 능력치 일부가 해금됩니다.]

[나는!! 그리드하고 함께할 거야!!]

한계를 벗었기에 초월룡.

아직은 작고 미약하나 늠름한 딸아이의 모습이 네바르탄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허락하마.]

[초월룡 네펠리나에 탑승하였습니다.]

[세계에 유일한 칭호 <드래곤 나이트>의 효과가 활성화 됩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치가 3배 상승하고 격이 상승합니다.]

화르륵!!

꺼져가던 주황색 신성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리드가 절대자의 세계에 진정으로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

[너희들의 결합을.]

“...!?”

꽈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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