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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573화 (1,571/1,794)

템빨 78권 - 12화

군신.

아레스는 자신의 이명을 각별히 아낀다.

신(神)이라는 허황한 칭호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군(軍)이라는 단어가 순수하게 좋아서였다.

어려서부터 장군을 동경하며 군인이 활약하는 영화들을 빠짐없이 챙겨 본 끝에 한국의 고전 영화 ‘장군의 아들’까지 접한 그는 얼떨결에 길거리 싸움에 매료되는 등 잠시 한눈을 팔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의 세계로 관심을 돌렸다.

잠시 한 눈을 팔았던 만큼 소중함을 깨닫고 한층 더 매료되었다.

그때 마침 Satisfy가 출시 된 것이다.

핵미사일 발사 버튼이 아닌 백병전이 중점이 되는 전쟁 시대.

당연하게 관심을 가졌다.

S.A그룹이 소개하는 직업란엔 존재하지도 않던 ‘장군’이 되기 위해서, Satisfy의 높은 자유도를 믿고 군에 입대했다.

비록 가장 낮은 병사로 시작했지만 국사무쌍을 꿈꿨다.

자신의 꿈을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흔하디흔한 밀리터리 매니아들과 같은 범주에 묶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겉으론 무심한 척,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아저씨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뒤로는 누구보다 노력했기 때문에 군신이라는 이명을 얻고 종국에는 건국 왕까지 이른 것이다.

그는 사하란 제국과 전쟁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적기사단의 기사들이 통솔하는 군대에게 발할라의 정예 5군이 패배를 반복하던 시대였다.

당시 발할라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템빨국과 비교해서 제국이 훨씬 손 쉬운 상대라고 판단했다.

당시 격전지였던 제국 동부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첫 번째 기사의 역량을 간파했었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소문처럼 막강한 검술 실력을 지녔던 그녀는 가히 전장의 사신이었다.

스캇과 럭이 직접 지휘하는 1천의 정예군단들이 그녀에게 단독으로 연속 격퇴 당한 사건은 아직도 발할라에선 악몽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그래, 단독이었다.

메르세데스는 총사령관으로 수천수만의 군사를 몰고 다니면서도 병력을 활용하지 않았다. 선두에 나서서 순수한 무력으로 적들을 압살했다.

바로 그 부분에서 아레스는 메르세데스가 훌륭한 장군감이 아니란 사실을 간파했다.

용병술이나 계책에 하자가 있어서가 아닌 성향의 문제였다.

압도적인 무재(武才)를 바탕으로 삼은 무인.

그녀에게 군대란 활용할 이유가 적은 패였고, 아레스는 그녀의 심리를 제대로 꿰뚫었다.

전장의 범위를 축소시켰다.

제국의 동부군단이 모조리 그녀와 같은 전장에서 그녀의 명령을 받게끔 유도했다.

과연 적군의 능동성이 줄어들었고 발할라군은 예상보다 선전했다.

결과적으로 패배하긴 했지만 제국의 전력을 충분히 파악할 시간을 벌었고 다음을 도모할 기회를 얻었다.

아무튼 결론은,

“저 모습이 그녀의 본질이라는 거야.”

해먹에 누운 아레스가 하늘을 올려보며 주장했다.

거대한 빛의 검으로 주위 모든 것을 때려 부수는 메르세데스의 폭력적인 모습을 비추는 하늘이었다.

“잠자코 서서 위기에 대응하기 보단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없애버리는 게 그녀의 성미에 맞지.”

콜라맛 음료를 홀짝이며 즐거워하는 표정에 위기감 따위 없었다.

바알이 연 수라도가 지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지옥 원정대는 고전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하물며 드래곤이 출몰해 세상을 멸망시킬 뻔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여유 있는 태도였다.

드래곤이야 소문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처리했고 지옥의 상황은 그리드와 메르세데스를 믿었으니까.

적으로든 동료로든 함께 싸워봤기에, 그는 그들 부부의 저력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다.

“부부라고 불러도 되는 거 맞나?”

“아이린 황후와 바사라 황비 앞에서만 조심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하하, 그래. 다른 부인들께 밉보이고 싶진 않으니까 조심해야지.”

콰드득!

22온스짜리 철제 컵을 한 손으로 우그러뜨린 아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지뭉치처럼 구겨진 컵이 툭, 모래사장 위로 떨어졌다.

해안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아레스의 큼지막한 두 눈에 ‘바다 위’를 달려오는 무언가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수상비를 익힌 놈이 삼백이라.”

무신의 추종자.

동대륙에서 수련 중이던 놈들이 대규모 활동을 시작했다.

적해를 넘어 서대륙으로 몰려오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제라툴의 신탁을 받고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바알이라는 최악의 악마가 발생시킨 혼란을 틈타 인간 세계를 위협하는 신이라니.

‘어째 제대로 된 놈이 없군. 이래서야 믿을 만한 신은 그리드밖에 없는 건가.’

만약 그리드가 신화 등급으로 전직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 신들의 실체를 엿볼 기회가 적었다면.

20억 플레이어는 지옥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도리어 큰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본질을 숨긴 신들에게 실컷 이용당하다가 신들을 의심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어서 자중지란을 일으켰을 확률이 높다.

쉽게 말해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거란 의미다.

그때서야 신의 실체를 눈치 채봤자 대항할 힘을 상당수 잃은 뒤였을 테지.

“그리드 그 친구 참 대단하단 말이야.”

“갑자기요?”

쿠르르르릉!!

아레스가 해안가에 이르자 모래사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등 뒤로 수만의 기마가 도열한 여파다.

템빨국산 무기와 갑옷을 무장한 대륙 최강의 기마대였다.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똑같은 기파를 발산해댔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이지를 상실한 무신의 추종자들이 잠시 주춤거릴 정도였다.

쏴아아아...!

300명의 추종자가 불시에 걸음을 멈춘 순간 발생한 파동에 해일이 몰아쳤다.

성벽처럼 치솟은 파도가 해안가로 밀려왔다.

아레스와 기마대는 현혹되지 않았다.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했다.

재차 수상비를 발휘한 추종자들이 파도를 타고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핑족이냐.”

너털웃음을 터뜨린 아레스가 호령했다.

“전군, 섬멸.”

쿠구구구궁...!

추종자들의 대규모 진격 소식을 접하자마자 아레스가 친히 전선에 나선 이유는 하나다.

무조건 이기기 위해서.

그가 직접 통솔하는 군대는 평시보다 족히 4배 이상 강했다.

무려 13종류의 버프가 덧씌워졌으니까.

그리고 그 버프 중 하나의 이름이 다름 아닌 국사무쌍.

아레스는, 꿈을 이뤘다.

***

““잡아라...!””

검성의 영혼을 이식 받은 악마.

놈은 메르세데스의 검기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아니, 단순히 변했다는 감상은 적절하지 않다.

숨겼던 것을 들춰낸 것에 가까운 느낌.

열어선 안 될 상자를 연 기분이다.

““쫓는 게 옳은가? 우리가 영역을 침범하면 싫어할 텐데?””

늙은 악마들의 말소리가 차츰 빨라졌다.

긴 세월 묵언한 탓에 굳었던 성대가 드디어 풀린 거일 수도, 상황이 긴박해서일 수도 있다.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다. 저건 상극이므로 협력해야 옳아.””

검성의 영혼을 이식 받은 악마가 지껄일수록 다른 악마들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영 기이하다는 반응.

그럴 수밖에 없다.

저 밑에 도사리고 있는 건 괴물이다.

수억 개의 영혼이 뭉친 괴물.

이해의 영역이 아니므로 대적할 수가 없다.

한데 무슨 수로 상극이란 말인가?

““칫.””

검성의 영혼을 이식 받은 악마가 결국 홀로 나섰다.

섣불리 나서지 않는 악마들을 뒤로한 채 새카만 지하로 뛰어내렸다.

유독 혼자서만 의무감이 강해서?

아니다.

그의 영혼이 메르세데스와의 싸움을 바라고 있었다.

본능적인 이끌림이었다.

***

두근, 두근, 두근!

지옥의 가장 깊은 지하.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붉은 구체가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의 심장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무지막지하게 거대했으니까.

드래곤 하트도 저것보단 수백 배 작을 것이다.

콰앙!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진 걸까.

메르세데스가 지면에 착지한 순간 지하 전체가 흔들리는 충격파가 발생했다.

붉은 구체 앞에 선 그녀는 개미처럼 작았다.

그녀의 시선은 구체를 더 이상 한 눈에 담지 못했다.

문제는 없다.

이리 될 걸 알고도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혜안은 구체의 분석을 이미 마쳤다.

‘지옥 달.’

바로 이것이 지옥 달의 원형이다.

마치 수면에 비추는 달처럼, 이 붉은 구체는 지상과 지옥의 하늘에 투영되고 있었다.

우주에 있는 진짜 달과 달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무언가였다.

‘거대한 살덩이.’

메르세데스가 그 무언가의 정체를 정의하는 순간.

스아아아!

살덩이 곳곳에서 희미한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핏물처럼 흐르는 붉은 빛이었다.

하늘에선 무량대수의 핏발 선 눈으로 보이는.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영혼이었다.

강한 원한이 실렸기에 핏발 선 눈으로 묘사 된 걸까.

무거운 마음으로 생각하는 메르세데스에게 붉은 빛 하나가 쏘아졌다.

몹시 위협적인 기세를 품고 꽂혀왔다.

메르세데스는 잠자코 있었다.

회피도, 방어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음을 간파했으니까.

꺄아아아악...!

쏘아진 빛은 어떤 여인의 영혼이었다.

아이 잃은 여인의 생전 기억이 절규가 되어서 메르세데스를 관통할 뿐,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저열한 허초군요.”

메르세데스가 사늘하게 뱉었다.

허초.

방금 전 공격은 속임수가 맞았다.

메르세데스가 아니었다면 강력한 위협으로 인지하고 반응하다가 어떤 연계에 당했을 확률이 높은.

붉은 살덩이는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신중하고 교활했다.

두근, 두근, 두근!

말귀를 알아 듣는 걸까.

메르세데스의 비난을 듣고 더욱 세차게 맥동한 살덩이가 이번엔 여러 개의 빛을 쏘았다.

사람들의 눈에는 붉은 빔의 세례로 보였다.

하지만 메르세데스의 혜안에는 빛 하나하나가 다르게 인식됐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손인사, 잔혹한 살인귀의 살해 수법, 이름 모를 병사의 어색한 검술, 어느 농부의 기계적인 호미질, 어떤 마법사의 마법, 손주를 그리워하는 노인의 포옹 등등.

어떤 건 위협적이었고 어떤 건 따스했으며 어떤 건 슬펐다.

그리드 앞에서를 제외하곤 대체적으로 무표정했던 메르세데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을 때는 빛을 받아들였고 옅게 눈살을 찌푸릴 때는 빛을 베어버렸다.

제3자 입장에선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괴물 같은 놈.””

콰차차차차차착!!

메르세데스의 발밑에서부터 검림이 솟구쳤다.

검성의 영혼을 이식 받은 악마가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검술로 승부 보자...””

갈라진 음성으로 토하는 악마의 검기가 매섭게 휘몰아쳤다.

앞서 메르세데스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묘리를 품은 검술이었다.

검로의 가능성이 수천 갈래로 존재했기에 혜안으로 읽어도 대응이 힘들었다.

혜안에 읽히는 즉시 실시간으로 변모하는 검술이었기에.

그 검술을, 여전히 거대한 빛을 품고 있는 메르세데스의 거검이 단박에 베어 흐트러뜨렸다.

개세적인 위력,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꺼져요.”

도톰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언사가 어색하지 않다.

고결한 얼굴에 의외로 잘 어울렸다.

생각하면서, 측면으로 살짝 몸을 기울인 악마가 지면을 박찼다.

검기에 베여 한쪽 어깨를 잃고도 화살보다 빠르게 쏘아졌다.

한 손에 거머쥔 2개의 칼자루가 눈에 띄었다.

능숙한 손놀림에 따라 가위처럼 교차 된 2개의 칼날이 제대로 작동할 기세였다.

저게 과연 위협적일까?

처음 보는 검술을 습관적으로 경계하던 메르세데스가 문득 경계심을 지웠다.

뭐든지 상대적인 법이다.

아무리 낯설고 위협적인 검술이라도 더 강한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었다.

극적제승의 패도적인 검기가 심어주는 믿음이었다.

쿠콰콰콰콰콰쾅...!!

검을 회수한 메르세데스가 재차 휘두른 검기가 이번엔 횡으로 공간을 베었다.

위아래서 파고드는 악마의 검기를 반으로 끊어버리고 나아가 악마의 목까지 닿았다.

황급히 상체를 젖혀 피한 악마가 어쩔 수 없이 비기를 꺼냈다.

““우주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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